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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崔遠)은 노쇠하였으므로 면직되고, 진도 군수(珍島郡守) 선거이(宣居怡)로 전라 병사를 삼다. 곽준(郭峻)의 관직을 삭탈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하고 조방장 이복남(李福男)으로 전라 방어사를 삼다. 거이는 이때에 수원(水源)에 있었는데, 최원이 강화(江華)로부터 나와서 인부(印符)와 군사를 인계하다.
○ 남원 진사 방처인(房處仁)이 군사를 모집하여 광양(光陽)의 도탄(陶灘) 진주(晉州)와의 접계이다. 에 매복을 설치하고, 도탄의복(陶灘義伏)이라는 네 글자를 전사(篆寫)로 새겨서 군장(軍章)을 삼다.
○ 군사가 일어난 지 1년 만에 국가의 재정이 부족하여 약간의 남은 저축도 모두 탐관(貪官)의 손에 들어갔으므로 벼슬을 파는 것이 사세가 부득이하게 되다. 1백 석을 내면 3품의 되고 30석을 내면 5품을 주다. 계사년ㆍ갑오년에 이르러서는 120석만 내면 가선당상(嘉善堂上)에 승진시켰으나 응모하는 사람이 없었다.
○ 경상 좌순찰사 한효순(韓孝純)의 장계는 다음과 같다.
도내에 유둔한 적이 인동(仁同)ㆍ대구(大邱)ㆍ청도(淸道)ㆍ밀양(密陽)ㆍ기장(機張)ㆍ동래(東萊) 및 함창(咸昌)으로부터 당교(唐橋) 등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둔하고 있는데 당교의 적은 좌우도의 인후(咽喉)가 되는 곳에 있어 그 세력이 심히 치성하니, 신은 비록 한 도의 힘을 다하여서라도 반드시 이 적을 먼저 치는 것으로 목표를 삼겠습니다. 병사 박진(朴晉)과 우후(虞侯) 권응수(權應銖), 밀양 부사 이수일(李守一) 및 부장(部將) 정대임(鄭大任) 등 모든 장수가 모두 안동ㆍ예천(醴泉) 등지에 모여서 경영하고 살핀 지가 이미 수개월이 가까우나, 적이 편리한 지점을 점거하고 있고 더구나 중간에 큰 내가 가로막혀 장수들이 모두 어렵게 여기어 아직까지 한 번도 공격하지 못하니, 통분하고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정예한 군사 2천 명을 선발하여 응수에게 맡겨서 기회를 보아 밤에 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은 장차 10여 고을의 군사와 말을 징발하여 의성(義城)ㆍ안덕(安德) 등지에 주둔하여 인동의 적세를 엿보아 만약 기회만 오면 크게 한번 공격할 것이며, 만약 불편하면 날랜 군사를 가지고 밤에 습격하려 합니다. 또 병사로 하여금 대구의 적을 밤에 공격하게 하여 이미 약속을 정하였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군량이 매우 어려워서 군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싸가지고 오도록 하자니 민간에 한되 한말의 저축이 없어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잇달았으며, 관량(官糧)을 주자 하니 각 고을의 창고가 간 곳마다 비었으니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경상순영록》에서 나옴.
○ 경상도 안동 향병 대장(鄕兵大將) 김해(金垓)ㆍ이정백(李廷栢)ㆍ배용길(裴龍吉) 등이 좌순찰사에게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1. 기율(紀律)을 세울 것입니다. 무기는 흉한 기구요, 싸움은 위태로운 일인데 쟁기로 밭 갈고 호미로 밭 매던 백성들을 합하여 흉하고 위태로운 땅으로 가게 하면서 먼저 기율을 세우지 않으면, 비유컨대 양떼를 몰아서 맹수를 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능히 성공이 있으리오. 옛말에 이르기를, “군사가 장수를 두려워하는 자는 이기고 적을 겁내는 자는 패한다.” 하였으니, 만약 군사가 적을 겁내지 않는다면 그 두려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율을 세우는 데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율을 버리고서 군사들이 흩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사닥다리 없이 하늘에 오르고, 배를 버리고서 바다를 건너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금에 패전한 장수들은 모두 분명한 벌을 피하고 가르치지 못한 백성만이 엄한 벌을 당하니, 도망한 군사만을 베어도 군정(軍政)이 날로 해이해지는 것보다는 한 장수를 베어 기강이 절로 서는 것이 낫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사람을 베는 것은 만 사람을 온전히 하는 바이다.” 하였으니, 원컨대 상공(相公)은 기율을 세워서 붕괴되어 흩어짐이 없게 하소서.
2. 관하 수령의 출척(黜陟)을 엄하게 할 것입니다. 천지 사이에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은 모두 도적이라 하는데, 밖에 있는 도적은 그 해가 얕고 안에 있는 도적은 그 해가 깊으니, 밖에 있는 도적을 치려 하면 먼저 안의 도적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무릇 지금에 민심을 잃어서 붕괴하게 만든 것은 실로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수령들이 토색질하고 빼앗아 먹기를 혹독히 하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나, 대궐이 아득하고 멀어서 상벌(賞罰)이 일정하지 못하고 겸하여 상공께서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덕으로써 사람을 감화시키려 하는 까닭에, 저 큰 쥐들이 윗사람의 용서하는 도량을 가만히 엿보아 스스로 벌을 면할 꾀를 쓰고 반이나 죽게 된 백성들의 피를 날로 짜내어 더욱 몸을 살찌울 교묘한 꾀를 부리니, 그 해독이 도리어 왜보다도 심함이 있습니다. 가까운 고을에 몇몇 수령의 죄상이 현저한 것은 상공께서 이미 환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옛날 범방(范滂)이 천하를 깨끗이 맑힐 뜻이 있자 소문만 듣고 인끈[印綬]을 풀어 놓고 가는 자가 서로 잇달았으니, 원컨대 상공은 수령의 출척을 엄히 하여 민적(民賊)을 제거하소서.
3. 좋아함과 미워함을 밝힐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좋아함과 미워함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착한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이요 악한 것은 사람들의 미워하는 바입니다. 천하에 어찌 좋아함과 미워함이 분명치 않고서 능히 국가를 보존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지금에는 위로 임금과 신하에서 아래로 친구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용서하는 것으로 덕을 삼고 충고하는 것을 잘못으로 보아서, 할 말을 하니 않고 구차스럽게 날을 보내어 좋아함과 미워함이 분명하지 않고 시비가 정하여지지 못하여 인심이 의혹하여 좇을 바를 알지 못하니, 국가가 위태로움이 대개 여기에서 말미암았습니다. 《춘추(春秋)》에 이르기를, “곽공(郭公)이 착한 것을 착하게 여기면서도 능히 쓰지 못하고, 악한 것을 악하게 여기면서도 능히 제거하지 못하여 망하는 데 이르렀다.” 하였습니다. 옛글에 이르기를, “어진 이를 보고도 등용하지 못하고, 착하지 못한 이를 보고도 멀리하지 못하는 것은 태만함이다. 사람이 좋아하는 바에 반대되면 재앙이 반드시 몸에 미친다.” 하였으니, 원컨대 상공께서는 좋아함과 미워함을 밝혀서 인심을 일정하게 하소서.
4. 비용을 절약할 것입니다. 이 난리를 당하여 각 고을이 텅 비었는데, 사신을 접대하는 것이 모두 백성에게서 나오니 군관이 많아서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있어서도 또한 감당하기 어렵다 하거늘 지금 이 난리에 어찌 당하겠습니까. 소위 군관이란 것은 비록 없을 수는 없으나 반드시 쓸 때가 있는 것이요 보통 출입에는 인도하고 따르는 이가 없는 것이 아니니, 군관이 비록 적더라도 위의를 갖출 만합니다. 상공께서 만일 싸움터로 달려갈 뜻이 있다면 병사 이하가 모두 상공의 군관인데, 하필 잡되고 지저분한 무리들을 써야 하겠습니까. 원하건대 상공은 비용을 절약하여 한 폐단을 제거하소서. 무릇 이 네 가지 조건은 비록 훌륭한 계책은 아니라도 진실로 난을 평정하려면 이것을 버리고는 계책이 없습니다. 다만 적을 토벌하는 방책은 이 네 가지보다 급한 것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전일에는 군사를 뽑는 방법을 건의하여 전구(前驅)에 쓰게 하였더니, 도리어 사패(射牌)의 항오에 편입하여 마침내 행차를 호위하는 것으로 삼으니 몸을 부지하는 데도 겨를이 없는데 용맹을 뽐낼 것은 어느 때이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상공이 능히 이 네 가지 조건에 반드시 먼저 유의한 연후에야 군사를 가르치고 적을 토벌할 수 있는 것이요, 만약 이 말을 좋다고만 하고 깊이 살피지 아니하여 썩은 선비의 말이라고 본다면, 한신(韓信)ㆍ백기(白起 진(秦) 나라의 명장)가 장수가 되고 군사를 1백만이나 거느린다 해도 상공이 장차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대저 건의하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실용에 적합함이 어렵고, 말을 구하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채택하여 시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니, 어리석은 저희들은 이미 건의는 하였으나 그 말이 실용에 적합할지 않을지는 알지 못합니다. 혹시 상공께서 전일에 말을 구하던 성의를 그대로 지니어 반드시 채용하여 시행하시면, 국가를 위해 수치와 욕을 씻는 데에 아마도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상공은 굽어 살피소서. 《경상순영록》에서 나옴.
○ 경상도 함창 의병 소모관 전 봉교(奉敎) 정경세(鄭經世)는 좌도 각 고을 수령 및 사림 제군자(士林諸君子)에게 격문으로 고하나이다.
하늘이 돌보지 않아 난리가 평정되지 않은 때 세 계절이 이미 다 지났으나 원수의 적이 아직 치성하여 평정하고 회복하기가 거의 기약이 없으니, 신하와 백성 된자로서 적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통분함은 피차가 마음이 한 가지 일 것이니, 차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개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인이라 스스로 헤아려 보매 유위(有爲)할 수가 없는 줄을 극히 잘 알고 있으나, 분격한 뜻으로 능히 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의병으로 모이는 거사를 초가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사의 세력이 고단하고 약하여 아직도 성 하나 공격하여 부수지 못하고 진 하나 섬멸하지 못하였으며 구구이 베어 죽인 것이 비록 반백(半百)에 이르렀으나, 정위새[精衛鳥]가 돌을 물어다 바다를 메우매 바다는 메워지지 아니하니 이 사이에 통분하고 민망한 생각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수년 동안 전란의 나머지에 연로(沿路) 일대에는 공사(公私)가 텅 비어 군량이 땅을 쓴 듯 떨어졌는데 판출할 길이 없어 온갖 방법으로 경영하여 근근이 지탱한 지가 지금 이미 6개월입니다. 사방으로 망연히 돌아보아도 호소할 곳이 없어 장수와 군사가 굶주리고 피곤하여 용맹을 베풀 곳이 없으니, 수양(睢陽)의 군사는 겨우 쥐를 파먹는 것을 면하였고 동군(東郡)의 군사는 겨우 아직 투구를 삶아 먹을 지경에만 이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왼쪽에 밥이 있고 오른쪽에 죽이 있는 낙(樂)은 없고 아침에 흩어지고 저녁에 무너질 걱정이 있는데, 이러고도 여러 군자에게 고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죄입니다.
그윽히 생각건대, 좌도[江左]의 여러 주변에는 비록 전란을 겪었으나 적이 오래 머물지 아니하여 농사의 풍년이 평일과 다름이 없거늘 하물며 적이 가지 않은 고을도 있음이겠습니까. 남은 것을 나누어 위급한 이를 구해주고 가산을 탕진하여 군비를 돕는 것은 이것이 정히 여러 군자가 힘을 다할 시기입니다. 아, 종묘사직이 폐허가 되고 승여가 진흙과 이슬을 맞으며 고생하시며 남은 백성이 거의 죽어가니, 연(燕) 나라의 점령을 당한 제(齊) 나라의 땅 중에 보존된 것이 몇 성이었습니까. 수천 리 조총의 강토와 2백 년 의관과 문물이 모두 왜놈[卉服]의 손과 불꽃 속에 들어갔으니, 무릇 이 땅에서 먹고 살아 이씨의 신하와 백성이 된 자라면 누구인들 창을 베고 쓸개를 맛보아 하늘에 사무치는 통분을 조금이나마 풀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 군자께서 피눈물을 삼키는 정성을 가지신 지가 오래일 것입니다. 위청(衛靑)은 일개 천한 종의 출신이로되 오히려, “흉노를 멸하지 못하였는데 집을 가질 수 없다.” 하였고, 복식(卜式)은 한 평민이로되 오히려, “재물이 있는 자는 관에 납입하고, 용맹이 있는 자는 변방에서 죽으면 흉노를 멸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한 나라 때에 흉노는 반드시 토벌해야 할 죄가 없었지마는 신하된 이가 능히 그 임금을 위하여 뜻을 가다듬음이 이와 같았으므로 무제(武帝)가 오랑캐를 물리쳐서 땅을 개척한 공이 예전 역사에서 견줄 자가 없거늘, 하물며 오늘날의 욕됨은 실로 신자로서 차마 말하지 못할 바가 있는데 이겠습니까. 닥쳐올 걱정이 또 오늘보다 심함이 있을 터인즉 오늘의 일은 진실로 조금도 늦출 수가 없는데, 우리들의 정성이 능히 옛사람과 같다면 또 어찌 적을 멸하지 못하고 공을 세우지 못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격문이 이르는 날에는 많으나 적으나 힘에 따라 각기 양식을 내어 군향(軍餉)을 도와주어서 이 모집된 군사로 하여금 붕괴되어 흩어지는데 이르지 않고 불러 모은 군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전하게 하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아, 북궐(北闕)의 애통한 교서는 모두 신자가 피눈물을 뿌려야 할 말씀이니 동해에 빠져 죽기 전에는 우리들이 목숨을 바칠 날이 이를 것입니다. 기꺼이 들으실 것이라 생각하므로 이에 충고하나이다. 《경상순영록》에서 나옴.
○ 경상도 안동의 전 검열 김용(金涌)이 군사를 모집하는 통문은 다음과 같다.
아, 이것이 어떠한 때인가. 이 어찌 몸을 숨기고 해를 피하여 제 몸만 편안하기를 도모할 날이랴. 승여가 파천하고 경성이 함몰되며, 열한대의 왕릉이 먼지를 뒤집어썼고 억만 백성의 피가 땅에 흘렀다. 신하가 되고 자식이 되어 군부의 수치와 욕됨이 무궁하고, 부모가 되고 형제가 되고 부부가 되어 골육의 원통함이 이미 지극한데, 아, 죽지 않고 남은 우리가 어찌 차마 환한 대낮에 낯을 들고 팔짱을 낀 채 요망한 적을 보면서 원한을 씻을 도리를 생각하지 아니하랴. 하물며 혹독한 불길이 사방에서 치성하여 누에가 뽕잎을 점차 먹어 들어오는 것 같고, 우리들이 어육이 될 걱정은 비늘처럼 차례로 겹쳐 오니 비록 한 구석에서 구차히 살려하여도 역시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이 짐승이 된다면 모르거니와 진실로 우리 군부를 생각하여 원수와는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것을 안다면 어찌 한번 죽음을 결단하고 일어나지 않겠는가. 생등(生等)은 복수를 결심하여 쓸개를 맛보기 여러 달이 어서 밤중에 주먹을 불끈 쥐고 관병을 모으려 하니 관병이 이미 흩어졌고, 막부(幕府)에 협력하려 하니 막부는 제 직임이 아니었다. 썩은 선비의 오활한 계책이 시설(施設)할 데 없는 줄을 오래 전부터 알았지마는 오히려 목숨을 버릴 각오를 잊지 아니함은 참으로 원수를 갚아야 할 의리가 있고 헛되게 죽어서는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용감한 사람을 얻어 심복의 동지를 삼는다면 바다를 굴리고 산을 돌리는 것도 모두 어려울 바가 없을 것이니, 저 적이 비록 많은들 무엇이 두려우랴. 이에 감히 남은 장정들에게 두루 타이르고 옆으로 중들을 모았더니 수십 일이 못 되어 수백 명이 되었다. 장차 몸을 잊고 약속에 달려가서 마음과 힘을 일치하여 나아가 죽는 것이 영광이 되고, 퇴각하여 사는 것이 욕이 되는 줄을 알 것이니, 저 도망하고 붕괴된 군사가 오직 두려워 쥐처럼 숨기에 겨를이 없는 자들과 비교해 볼 때에 그 용감함과 비겁함이 또한 현저하지 아니한가. 다만 난을 겪은 뒤에 이미 도두 탕진되어 양식은 콩 반쪽의 저축이 없고 기계는 활촉 한 개도 남은 것이 없어 우레처럼 달리고 번개처럼 칠 군사가 거의 다 빈 전대[橐]만 가졌고, 기를 들고 힘을 뽐낼 무리들이 반은 빈주먹이라, 한갓 왜놈을 잡을 뜻은 간절하나 용맹을 쓸 곳이 없으니 이것이 실로 오늘의 한 가지 큰 걱정이다.
그윽히 생각건대, 열 집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忠信)한 사람이 있는 것이요, 흙덩이의 보탬도 태산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한두 이웃 고을은 집이 모두 열 집이 넘고 선비가 모두 의리를 아니 적이 경계에 들어오기 전에 준비할 길이 있다. 윗사람을 위해 죽는 데에 어찌 을가(乙可)의 종이 없겠는가. 대대로 농사에 힘썼으니 또한 차달(車達)의 곡식이 많을 것이다. 진실로 원하건대, 글이 이르는 날에는 각기 정성을 다하여 충성을 바치기를 생각하여, 향병에 이미 나갔다고 핑계대지 말고 관군에 다 맡겼다고 어렵게 알지 말라. 힘이 미치는 데는 응모하기를 메아리[響]처럼 하여 혹은 자제를 보내고 혹은 종을 보내며, 혹은 군량의 소용으로 쌀이나 콩, 피곡(皮穀)이나 필목(匹木), 혹은 군기에 소용되는 것으로 아교나 깃, 전죽[箭]이나 철물 같은 것을 가지고 갖가지로 서로 도와 한번 승낙에 변함이 없으면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서 내놓기는 어렵지 않고 군수(軍需)에 쓰이는 데는 심히 관계되어 나라를 중흥시키는 정성이 이 한 번의 도움에 의뢰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어찌 장하지 않겠는가. 만약 웅번(雄藩)과 거진(巨鎭)도 간 곳마다 흙 무너지듯 하고 용사와 명장(名將)도 모두 바람처럼 쓰러지는데 ‘백면 서생(白面書生)이 무엇을 하랴.’ 하고 한 번 웃기만 하고 힘을 써주지 아니한다면 자못 여러분에게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니, 마음을 맞추어 원수를 갚겠다는 원을 또 장차 어디에 기대하랴. 아, 이제부터는 죽고 사는 것이 마땅히 적을 치고 치지 못하는 데서 결정되리니, 나라를 위하는 충성이 어찌 국록을 먹고 먹지 않음으로 인하여 차별이 있으리오. 일이 성공하면 신명과 사람에게 설분(雪憤)이 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헛된 죽음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여러 군자들은 힘쓸지어다. 《경상순영록》에서 나옴.
○ 소모사(召募使) 변이중(邊以中)이 완산(完山)에서 각 고을에서 징발한 군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서울 길로 향하다.
○ 송응창(宋應昌)ㆍ이여송(李如松)이 대군을 거느리고 중국 조정에서 우리나라로 오는데 주사관(主事官) 원황(袁黃) 등이 먼저 강을 건너 용만(龍灣)에 이르러 권유문(勸諭文)을 내니, 다음과 같다.
흠차 경략방해어 왜군 병부무고 청리직방청리사 원외랑(欽差經略防海禦倭軍兵部武庫淸吏職方淸吏司員外郞) 유황상(劉黃裳)과 사주사(司主事) 원황은 의병을 권유하여 광복(匡復)을 함께 도모하노라. 살피건대 그대 나라가 본시 문물을 숭상하고 대대로 충성을 돈독히 하더니 근자에 왜이(倭夷)가 무도하여 마구 몰아와 집어삼켜 임금과 신하가 풀밭에 파천하여 유리(流離)함이 어찌 이리도 곤한고. 대명 황제께서는 그대들이 2백 년간 신하의 직분을 삼가 지켜온 것을 생각하여 만금의 비용을 아끼지 아니하고 장수를 명령하여 와서 토벌하게 하신다. 그대 나라 가운데 어찌 종척(宗戚)으로 중한 소임을 맡아 충성과 의분이 마음에 가득한 이가 없겠으며, 어찌 현관(縣官)으로 지방을 지켜 강개히 목숨을 바치는 이가 없겠으며, 어찌 충신으로 임금이 욕되면 신하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은 이가 없겠으며, 어찌 의사로 몸을 버려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가 없으리오. 마땅히 황제께서 떨친 위엄을 받들어 속히 의병을 불러 각기 일려(一旅)의 군사를 이끌고 함께 아홉 번 토벌[九伐]할 뜻을 펴라. 지금 왜구는 비록 강성하나 그 형세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요, 그대 나라는 비록 미약하나 그 형세는 반드시 이긴다.
시험 삼아 헤아려 보자. 우선 천도(天道)로써 말하겠다. 조선의 분야는 석목(析木)의 부분에 해당하고 지난해부터 세성[木星]이 인방(寅方)에 왔는데 일본이 와서 침범하니, 이것은 우리가 득세하였는데 저놈들이 침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역행(逆行)하면 비록 강성하더라도 반드시 약해질 것이 첫째이다. 왜구는 추위를 겁내는 것인데 금년은 궐음(厥陰)이라 풍목(風木)이 하늘을 맡아서 양명조금(陽明燥金)이 초(初)의 기(氣)가 되니, 입춘(立春) 뒤에도 오히려 2, 30일 동안은 한기가 녹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시(天時)를 꾀할 수 있는 것이 둘째이다. 그대 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함께 이 성중에 있는데 새벽에 일어나 기상을 바라본즉 아름다운 서기(瑞氣)가 비단과도 같고 그림과도 같다. 그러므로 왕기(王氣)가 우리한테 있으매 형세가 반드시 회복된 것이 셋째이다. 다음에는 인사(人事)로써 논하겠다. 대국의 웅장한 군사가 범과 같고 곰과 같으며, 무적(無敵)의 대포를 한 번 쏘면 한 발(發)에 천보씩 가니 저들이 힘을 헤아리지 않다가 마땅히 가루가 될 것이 첫째이다.
경략 송(經略宋 소응창)은 지혜가 깊고 꾀가 감추어져 있어 귀신도 측량하기 어렵고, 제독 이(提督李 이여송)는 가슴속에 가득한 충의와 백 번 싸움을 겪은 용맹으로 옛 명장의 기풍이 있다. 본직(本職)이 본래 충성을 가지고 그들과 마음을 한가지로 하고 힘을 맞추어 이 적을 멸하여 천자에게 보답하기를 맹세하고 두 나라의 군사를 합하였으니, 궁한 적을 몰아내기는 떨어지는 것을 떨치는 것과 같이 쉬울 것이 둘째이다.
관백(關白)이 포악하여 위로는 그 임금을 협박하고 아래로는 그 백성을 혹사하니 하늘이 그들을 망치려고 우리에게 손을 빌리는 것이다. 어제 국왕을 뵈었는데 거동이 안상(安詳)하고 얼굴이 준수하고 장하니 형세가 반드시 중흥할 것이요, 그대 나라에서 전에 보낸 여러 사신이 천조에 청병할 적에 성의가 간측(懇側)하여 눈물이 쏟는 듯하여 신포서(申包胥)가 초국(楚國)을 위해 우는 충성과 방불하니 임금과 신하가 이러한데 어찌 끝내 함몰되리오. 이것으로 적을 토벌하면 어느 공인들 이루지 못하랴. 왜놈이 믿는 바는 오직 조총(鳥銃)인데 세 번 쏜 뒤에는 곧 계속하기 어렵고, 그 군사가 비록 많으나 강한 놈은 얼마 없어 앞에 오는 1, 2백 명만 죽이면 나머지는 모두 바람을 따라 도망할 것이니 이것이 가히 이길 기회요, 정히 지사(志士)의 공을 세울 시기이다. 우리 조정에서 영을 내리기를 우리나라 그대 나라 사람을 물론하고 다만 평수길(平秀吉) 및 중 현소(玄蘇)를 사로잡거나 베는 자는 은 1만 냥을 상으로 주고 백작(伯爵)을 봉하여 세습하며 수길의 가신(家臣) 평행장(平行長)ㆍ평의지(平義智)ㆍ평조신(平調信) 등 이름있는 여러 추장(酋長)을 사로잡거나 베이는 자는 매번 은 5천 냥을 상주고 지휘사(指揮使)를 세습하며, 그 이하에 무릇 베이고 포로로 잡은 데는 각각 상격(賞格)이 있을 것이다. 그대 나라 신하와 백성이 다만 능히 때를 타고 군사를 모아서 함께 큰 공을 세우면, 이미 본국의 사직을 회복하고 또 천조의 후한 상을 받아서 쇠한 나라의 남은 백성으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시조가 될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하여 글을 내리니 모름지기 속히 각 도의 신하와 백성에게 전해 보여서 의병으로 이미 일어난 자는 곧바로 전진하고, 일어나지 않은 자는 속히 불러 모아 혹은 협력하여 적의 위세를 꺾고 혹은 번갈아 나가 싸워서 적의 세력을 분산되게 하며, 혹은 그 물러가는 길을 막고 혹은 그 양식 운반의 길을 끊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모두 스스로 편리한 데에 따라 하기를 허락하노라. 이를 위하여 글을 내니 꼭 도착하게 하라.
25일. 경략 송응창과 제독 이여송이 대군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의주(義州)에 들어와서 곧 본국에 격문을 보내니, 다음과 같다.
흠차 경략계요 보정 산동 등처 방해어 왜군무 병부시랑 송(欽差經略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軍務兵部侍郞宋)은 조선 국왕에게 격문을 보낸다. 동해에 개국하여 천조에 정삭(正朔 정월 초하루)과 조공을 받든 지 2백 년간에 충성과 공순함을 바치기를 하루같이 하였다. 시서(詩書)를 외우고 법받아 학사(學士)와 유자(儒者)의 풍도가 빛나니 다른 나라와 견줄 바가 아니다. 지금 황제께서 신성하사 사해를 어루만져 편안케 하여 만이(蠻夷)를 복종시킬 적에 유독 왕의 나라의 책봉에는 덕의가 심히 두터웠다. 지금 북으로는 달단(韃靼)에 이르고, 남으로는 안남(安南)ㆍ섬라(暹羅) 등 모든 나라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합밀(哈密) 여러 민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향화(向化)되어 머리를 조아리고 토산물을 바쳐 앞다투어 뒤질까 저어하는데, 저 일본은 조그만 미꾸라지처럼 섬 안에 있으므로 다시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찌 왕의 나라와 이웃하여 왕이 선량한 종족으로 풍속이 무(武)를 익히지 않았음을 업신여기고 문득 마구 엄습하여 전란을 일으켜서 이미 왕경(王京)을 빼앗고 평양을 점령하며, 왕의 두 아들을 포로로 하고 왕의 선영[先墳]을 파헤치며, 충신을 찢고 열녀를 죽이니 극히 악하고 참혹하고 독함은 신명과 사람이 함께 분히 여긴다. 왕이 이미 파천하여 의주에 거처하고 세력이 부족하고 힘이 약하여 천조에 구원을 청하니 폐하께서 깊이 측은히 여기시고 크게 성내시어 본부(本部 병부)에 명령하여 소사마(少司馬)로 하여금 깃발과 도끼를 잡게 하시었다. 군사가 일어나매 꾀있는 신하와 맹렬한 장사가 비바람처럼 모여들어 활을 당기고 창을 뽐내며 말을 달리고 수레를 몰아, 비단 깃발은 하늘의 해를 가리고 우레 같은 북소리는 바다 물결을 진동하여 모두 강한 놈을 베고 약한 이를 붙들며 곤란한 이를 건지고 충성된 이를 보전케 하여 천하에 대의를 펴고 큰 이름을 만세에 날리려 하고 있다.
왜놈이 비록 우둔하나 역시 지각이 있는 것들이니, 우리 군사가 동으로 와서 토벌하는 것을 듣고 곧 머리를 숙여 땅에 엎드리고 헐떡이는 주둥이로 밤에 도망하여 저의 본국에 돌아가 평정하여 한다면, 이것은 그들이 형세를 헤아리고 힘을 비교하여 화(禍)를 바꿔 복을 만들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매하여 마음을 바꾸지 않고 자신들이 견고하다고 믿는 것이 전과 같다면, 곧 불수레를 몰고 귀신의 채찍을 갈겨서 번개처럼 달리고 뇌성처럼 빨리 평양을 포위하고 함락시켜 선봉을 피칠할 것이다.
하물며 이미 민(閩)ㆍ광(廣)의 장수로 하여금 섬라(暹羅)와 유구(琉球) 여러 나라의 군사와 연락하여 배를 젓고 돛대를 날려 바로 일본의 소굴을 두들기고 다시 진(秦 섬서(陝西))의 정예(精銳)와 촉(蜀 사천(四川))의 극모(僰矛), 연(燕 북경 이북)의 철기(鐵騎)와 제(齊 산동(山東))의 지극(枝戟), 삭방(朔方 요동(遼東))의 건아(健兒)를 징발하여 봉황성(鳳凰城)에 진을 쳤는데이겠는가. 압록강을 건너 대마도에 도달하여 맹세하기를, 왜놈의 종족을 벌하여 피가 바다에 뜨고 골수는 산에 발라 귀역(鬼蜮)이 모두 소멸되고 이무기와 고래들을 끊어 죽여서 왕으로 하여금 왕경에 돌아가서 옛 땅을 안정시켜 폐하에게 보답하고 우러러 빛나는 기운을 펴기로 하였다. 왕은 지금 마땅히 복수의 일념으로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보아 그대 나라의 사대부와 더불어 남은 군사를 수합하여 용맹을 떨쳐 힘껏 싸워서 회복하기를 도모할 것이니, 저 평양 제도(諸道)에 어찌 충의와 호기(豪氣)로 내응하는 이가 없겠는가. 가만히 꾀하고 묵묵히 통하여 지혜를 깊이하고 정신을 길러서 그 형편을 보아 요해지를 굳게 지키라. 천병이 이르기를 기다려 한 곳에 군사를 합하여 왕에게 음부(陰符)를 주고 장수들에게 분포하여 진군할 차례를 지시하여 비린내를 깨끗이 씻어 함께 기이한 공을 바랄 것이니 폐하의 신령하심을 드러내고 기자(箕子)의 옛 땅을 보존하도록 하라. 불과 같이 해외에 공을 세운 것은 성탕(成湯)의 군사요, 일려로 하(夏) 나라의 왕업을 중흥시킨 것은 소강(小康)의 어짊이니, 왕은 힘써서 대대로 떨치게 할지어다. 격문이 이르거든 자세히 생각하여 마땅히 율령(律令)과 같이하라.
○ 체찰사(體察使) 정철(鄭澈)이 종사관(從事官) 송영구(宋英耈)로 하여금 군사와 말을 충청ㆍ전라에서 수합하여 천병에 합세하라는 격문에 응하기로 하다. 이때에 남정(男丁)은 노약(老弱)한 자들까지 모두 징발되어 싸움터로 나갔으므로, 영구가 지경에 들어가자 군사를 수합할 도리가 없었다. 이에 이르는 고을마다 품관(品官)과 교생(校生)으로 하여금 각기 한 명씩을 바치게 하고 바치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 군대에 가게 하였더니, 선비들이 종사관의 앞에 들어와서 명단을 바치는 것이 모두 부호(浮戶)였으므로 문득 도망하여 흩어지기에 다시 선비들을 군사에 충당하여 각 고을의 수령들이 친히 데려다가 전주(全州)에 바치는데 정철이 듣고 중지시켰다. 영구는 다만 산졸(散卒) 수백 명만 얻어서 경성으로 향하였다. 당시에 남원 판관 노종령(盧從齡)이 이미 파면되고 홍영(洪嶸)을 임명하였더니, 이에 이르러 홍영이 영구를 따라 경성으로 가는데 각 고을 수령이 따르는 자 또한 많았다. 계사년 3월 경성 수복 후에 모두 돌아왔다.
○ 개령(開寧)에 주둔한 왜장이 본현의 백성에게 고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시안예(羽柴安藝)와 재상(宰相) 휘원(輝元)은 일본의 관백(關白)인 수길(秀吉)에게 명을 받았다. 우리 왕이 대명(大明)에 뜻이 있어 이 나라에 길을 빌리려 하였더니 이 나라 국왕이 듣지 않았으므로 이에 장수들을 명령하여 모든 장수를 8도에 나누었다. 유악(帷幄) 가운데서 계획을 하여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니, 그 성을 함락하고 그 마을을 불태워 없고 이미 조선 국왕을 손바닥 속에 쥐었다. 개령 백성에게 고하노니, 개령 백성들은 왜 돌아오지 아니하는가. 돌아와서 각기 그 직업에 안정하여 농부는 제 농사를 지어 혹은 물을 대고 풀을 매며, 장사꾼은 장사하여 혹은 그 재물을 교통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옳다. 비록 깊은 산골에 있어 종적을 숨기고 1백 년을 지낸들 또한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를 위하는 자는 큰일을 이루지 못하나니 너희들이 속히 산에서 내려와 항복하면 상관(上官)이 알아서 재물을 빼앗고 처자를 포로하는 자를 금할 것이다. 그 사이에 비록 법을 범하는 자가 있더라도 그 죄에 중벌을 줄 것이니 주면 무슨 거리낄 것이 있겠느냐. 이 글을 보매 더욱 그놈들의 고기를 먹고 싶다.
경기 감사 권징(權澄)이 파면되고 심대(沈岱)가 대신하여 삭녕(朔寧)에 와 있었는데 적병이 불의에 야습하여 드디어 죽임을 당하였다. 적이 심대의 머리를 가져다가 서울에서 효시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이다. 심대의 아들이 은을 가지고 가만히 들어가서 아버지의 머리를 가지고 나와 몸에 연결하여 장사지냈다.
[주-D001] 급(汲) :
적병의 머리 하나 베는 것을 급이라 한다. 그것은 적의 머리 하나에 벼슬[爵] 1급을 주던 옛날의 예에 의해서 부른다.
[주-D002] 봉비(封臂) :
종을 심부름시킬 때에 빨리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종의 팔에다 노끈으로 아프게 묶고 거기다 도장을 찍어 봉하여 돌아와서야 풀어주는 방법이니, 종이 그 아픔을 못 견디어 빨리 돌아오게 된다.
[주-D003] 근왕(勤王) :
왕실의 일에 군사로써 힘을 다하여 근로하는 것이다.
[주-D004] 임시 섭정[權攝] :
선조(宣祖)가 의주로 파천하면서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을 후방에 머물게 하여 임시로 섭정하게 하였다.
[주-D005] 이극(貳極) :
임금의 자리를 극(極)이라 하므로 세자는 이극이라 한다. 이(貳)는 부(副)의 뜻이다.
[주-D006] 분조(分朝)의 책임 :
임금이 파천해 가면서 세자에게 분조의 권한을 준 것이니, 분조는 조정의 지부(支部)란 말이다. 즉 조정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D007] 나 홀로 고생한다는 슬픔 :
《시경(詩經)》에 “나만 홀로 현명하여 노고하네[我獨賢勞].” 하였으니, 국사(國事)에 혼자 오래 고생한다는 의미이다.
[주-D008] 술을 쏟아 …… 마시게 하니 :
진(晉) 나라와 초(楚) 나라가 전쟁할 때에 어느 사람이 임금에게 술 한 병을 바쳤는데, 임금이 전쟁하는 군사에게 나누어 마시게 하고 싶으나 술이 적어서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술을 하수(河水)에 쏟아서 군사들로 하여금 그 물을 마시게 하니, 군사들이 감격하여 힘껏 싸워서 초 나라가 크게 이겼다.
[주-D009] 신릉군(信陵君) :
전국 시대(戰國時代) 위(魏) 나라의 신릉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진(秦) 나라의 침략을 받은 조(趙) 나라를 구하였다.
[주-D010] 적개(敵愾) :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왕의 노함을 적대한다[敵王所愾].”는 말이 있는데, 신하가 임금의 적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주-D011] 관중(關中) :
한 고조(漢高祖)가 항우(項羽)와 싸워서 천하를 통일하였을 때에 지금의 서안(西安)인 관중을 근거지로 하였다.
[주-D012] 궁금(宮禁)을 숙청 :
당(唐) 나라 덕종(德宗)이 주자(朱泚)의 난을 만나 지방으로 파천하고 주자가 서울을 점령하였는데, 이성(李晟)이 주자를 쳐서 멸하고 서울을 수복한 뒤에 덕종에게 아뢰는 글에 “신이 이미 궁금을 숙청하였습니다[臣已肅淸宮禁].” 하였다. 궁금은 곧 궁궐을 말한다.
[주-D013] 소하(蕭何) :
한 고조가 항우와 싸울 때에 관중을 지키고 있던 소하가 군량을 끊이지 않고 전지에 보급하였으므로 뒤에 공신이 되었다.
[주-D014] 문교(文巧)로 ……그치리라 :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초기에 어떤 사람이 한 나라 초연수(焦延壽)가 《주역(周易)》의 학자로서 지은 점치는 책인 《초씨림(焦氏林)》으로 점을 치니, 그 중에 이 문구가 있었다. 원문에는, 「文巧俗敝, 將反大質, 僵死如麻, 血流漂杵, 民知其母, 不知其父, 然後乃止.」라고 되어 있다.
[주-D015] 하늘을 쏘려는 꾀 :
은(殷) 나라 임금 무을(武乙)이 가죽 주머니에다 피를 담아 놓고서 활로 쏘면서, “내가 하늘을 쏘아서 이겼다.” 하였는데, 그 뒤 들에 나갔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여기서는 왜놈이 명(明) 나라를 침범하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주-D016] 장소가 …… 바라노라 :
송(宋) 나라가 중원(中原)을 금(金) 나라에 빼앗기고 남방에 쫓겨 와 있을 때, 상소가 북으로 중원에 들어가서 선대의 능들을 살펴보고 보고를 올렸다.
[주-D017] 한관의 위의를 어디서 볼꼬 :
전한(前漢) 말기에 왕망(王莽)을 쳐부수려고 의병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유수(劉秀)가 왕망의 의관 제도를 버리고 다시 한 나라 제도를 썼더니, 백성들이 보고 환영하며, “오늘날에 다시 한 나라 관(官)의 위의(威儀)를 볼 줄 몰랐다.” 하였다.
[주-D018] 주운(朱雲)의 칼을 청하였으니 :
한(漢) 나라의 주운이 임금에게 아첨한 신하를 베라고 곧은 말을 한 일이다. 임금이 노하여 어사(御史)를 시켜 끌고 가서 죽이게 하니 주운이 크게 소리 지르기를, “장차 땅 밑에 가서, 옛날에 곧은 말 하다가 죽은 충신인 용봉(龍逄)ㆍ비간(比干)과 놀겠다.” 하고, 난간을 잡고 놓지 않자, 난간이 꺾어졌다.
[주-D019] 호방형(胡邦衡)의 봉사(封事) :
남송(南宋)의 호전(胡銓)의 자가 방형이니, 금(金) 나라와 강화하여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상소를 올리고 귀양갔다.
[주-D020] 역적 정 …… 착(浞)에게 비하였는데 :
하(夏) 나라 때에 유궁후 예(有窮后羿)는 한착(寒浞)이 극히 흉악한 역적이었다. 전주(全州) 사람 정여립(鄭汝立)이 처음에는 큰 선비로 이름이 나서 이이(李珥) 등이 추천하고 이발(李潑) 등이 친하였는데, 조헌(趙憲)이 그를 장차 예나 착과 같은 자이다 하였고, 그 뒤에 정여립이 역적의 죄로 죽었다.
[주-D021] 신하는 큰 강이 있으니 :
삼강(三綱)에, “아버지는 아들의 강(綱 그물의 벼리줄)이 되고 임금은 신하의 강이 되며, 지아비는 아내의 강이 된다.” 하였다.
[주-D022] 용사의 해 :
임진년과 계사년의 왜란이므로 용(龍 辰)과 사(蛇 巳)의 해라 하였다.
[주-D023] 운이 양구를 당하여 :
음양가(陰陽家)에 백륙 양구(百六陽九)라는 말이 있으니, 1백 6년 중에 심한 재난의 해가 있다고 한다.
[주-D024] 초수(楚水)에서 깨어 있음을 읊었으니 :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이 강호(江湖)에 추방을 당하여 글을 짓기를, “온 세상이 다 취하였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 하였다.
[주-D025] 지혜는 병을 이끄는 데 :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비록 병을 이끌어 물을 긷는 조그만 지혜만 있어도 제 그릇을 지켜서 남에게 주지 아니한다.” 한 말이 있다.
[주-D026] 종을 단 듯한 집 :
《춘추좌전》에, “집이 달아 놓은 종과 같다[室如懸磬].” 한 말이 있으니, 그것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왜적의 분탕질로 그런 빈 집도 없어졌다는 말이다.
[주-D027] 모래를 말질하는 민망함 :
남북조 시대 송(宋) 나라 장수 단도제(檀道濟)가 군중에서 양식이 떨어지자 적이 그 틈을 노릴까 염려하여 군량이 새로 도착된 것처럼 꾸미느라고 밤에 모래를 말질[斗]하여 헤아리는 소리를 외쳐 적을 속였더니, 아침에 적들이 양식 더미가 쌓인 것을 보고는 퇴각하였다.
[주-D028] 땔나무를 끄는 뜻 :
《춘추 좌전》에, 진(晉) 나라가 초(楚) 나라와 싸울 때에 진 나라 장수 난지(欒枝)가 땔나무를 끌고서 거짓 도망하는 척하다가 옆으로 공격하여 승전하였다.
[주-D029] 한 삼태기에 공이 무너져서 :
공자(孔子)의 말에, “아홉 길[九仭]의 산을 만드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공이 무너진다.” 하였다.
[주-D030] 구공을 빌려 달라는 소 :
한(漢) 나라 구순(寇恂)이 하내 태수(河內太守)로 있다가 갈렸는데, 광무제(光武帝)가 하내를 지나자 백성들이 길을 막고 구공(寇公)을 1년만 더 살려 달라 하였다.
[주-D031] 학익진(鶴翼陣) :
진법(陣法)의 하나이니, 학이 날개를 벌리는 형상으로 진을 치는 것이다.
[주-D032] 가장(假將) :
조정의 명령이 빨리 통하지 못하므로 각 도의 순찰사 등이 임시로 장수를 임명하니, 이를 가장이라 한다.
[주-D033] 친구가 …… 끊으려 하네 :
옛날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매 종자기(鍾子期)가 곡조를 잘 알았는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 타지 않았다.
[주-D034] 출사표(出師表) :
제갈량(諸葛亮)이 위(魏)를 치려고 출병하면서 임금에게 올린 표문(表文)을 출사표(出師表)라 하였다.
[주-D035] 중악(中岳)에서 달에 …… 뛰어나왔고 :
김유신이 소년 시절에 나라를 구할 큰 뜻을 품고 경주 중악의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였다. 뒤에 대장이 되어 당 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치는데 당 나라 대장과 말다툼이 있어 유신이 성을 내니 칼이 절로 칼집에서 뛰어나왔다.
[주-D036] 죄기(罪己)의 교서 :
나라 일이 위급하면 임금이 민심을 위로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죄를 돌려 스스로 꾸짖고 뉘우치는 글을 발표한다.
[주-D037] 손인갑이 강물에 빠져 죽었음 :
손인갑은 창녕 사람으로 낙동강에서 왜적과 싸워 크게 이긴 뒤에, 달아나는 왜놈을 추격하다 모래 속에 빠져 죽었다.
[주-D038] 관백 :
한(漢) 나라 소제(昭帝)가 어리므로 곽광(霍光)이 정무를 맡았으므로 모든 정부는 곽광에게 먼저 경유하여 여쭈었다〔關白〕. 일본의 막부(幕府)가 정무를 마음대로 하므로, 관백(關白)이라 칭하였다.
[주-D039] 내소(來蘇) :
《서경(書經)》에, “우리 임금을 기다렸더니 임금이 오니 살아났다[待我后后來其蘇].” 하였다.
[주-D040] 옥석구분(玉石俱焚) :
《서경》에, “곤강에 불이 붙으면 옥과 돌이 함께 탄다[火炎崑岡玉石俱焚].” 하였으니, 곤강은 옥이 생산되는 산이므로 불이 나면 옥과 돌이 구별 없이 탄다는 말이다. 대개 난리에 양민과 적이 한꺼번에 죽는 경우를 비유한 것이다.
[주-D041] 진정(秦庭)에서 통곡함은 …… 가진 것 :
오(吳) 나라가 초(楚) 나라에 침입하매 임금이 도망하였다. 초 나라 신하 신포서(申包胥)가 진(秦) 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매 진 나라에서 얼른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신포서는 진 나라 궁전의 뜰에 서서 7일 7야로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진왕이 감동되어 군사를 내 주었다.
[주-D042] 업(鄴)의 군사가 …… 주기 위함 :
진(秦) 나라가 조(趙) 나라를 침노할 때에 위(魏) 나라 신릉군(信陵君)이 업(鄴)에 주둔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조 나라를 구하였다.
[주-D043] 오창(敖倉)의 곡식이 …… 보존하기 어려웠을 것이요 :
한 고조(漢高祖)가 성고에 있는 오창에 쌓인 곡식을 먼저 점령하여 전쟁에 이기는 기본이 되었다.
[주-D044] 견아(犬牙) :
옛날에 지방을 나눌 때에 이 군(郡)과 저 군과의 경계를 평행으로 하지 않고 개의 어금내[犬牙]처럼 서로 교착되게 하였다.
[주-D045] 화유(火維) :
화유는 남방의 분야이니, 남방이 화(火)에 속한 까닭이다.
[주-D046] 금성(金城)과 천부(天府) :
금성은 쇠로 만든 것처럼 견고한 성이란 말이요, 천부는 하늘이 자연적으로 만든 부(府)라는 뜻이다.
[주-D047] 추로(鄒魯) :
맹자가 추(鄒)에 살았고 공자가 노(魯)에 살았으므로 그 후세에 그 지방에 학자가 많다.
[주-D048] 금탕(金湯) :
금성탕지(金城湯池)란 말이다. 탕지는 끓는 못이니, 사람들이 건너지 못하는 것이므로 험한 방어 지대에 비유한다.
[주-D049] 봄 제비가 …… 짓는 것 :
《남사(南史)》에 나온 말이니, 참혹한 난리를 겪어서 인가가 없으므로 봄 제비가 집 지을 곳이 없어 숲 속 나무에 집을 지었다 하였다.
[주-D050] 제 나라 …… 고을만이 남았고 :
연(燕) 나라가 제 나라를 전부 짓밟았는데 거ㆍ즉묵 두 성이 남아서 수복하는 근거가 되었다.
[주-D051] 삼천 리 …… 두보(杜甫)가 슬퍼하였습니다 :
당 나라 시인 두보가 난리를 만나 촉중(蜀中)에 피해 있으면서 지은 시가 많으니, 검각은 촉중의 높은 산이다.
[주-D052] 하(夏) 나라의 일려(一旅) :
하(夏) 나라 소강(少康)이 일려의 남은 군사로 중흥하였다.
[주-D053] 강회(江淮)의 보장(保障) :
당 나라 안녹산(安祿山)의 난리에 장순이 수양성을 굳게 지켜서 적세를 막아 강회에 보장이 되었다.
[주-D054] 누가 한 나라 …… 신이라 칭하겠으며 :
한 나라 경공(耿恭)이 북선우(北單于)와 싸울 때에 화살에 독약을 발라서 쏘며, “한 나라 화살은 신(神)이 있으니 맞으면 이상한 징조가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그 화살을 맞은 자는 상처가 부풀어 올랐다 한다.
[주-D055] 경계(庚癸)의 소리 :
경계는 양식이 떨어졌다는 암호이니,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양식이 떨어지면 밤에 ‘경계’ 하고 외치라 하였으니, 곡식은 서방[庚方]에 속하고 물은 북방[癸方]에 속하므로 곡식을 청하는 암호로 쓴 말이다.
[주-D056] 회서(淮西)의 소범(小范) :
송 나라에서 서하(西夏)를 방어하기 위하여 회서를 지키는 이가 전에는 범옹(范雍)이 있고 뒤에는 범중엄(范仲淹)이 있으므로 중엄을 소범이라 하였는데, 서하에서 범중엄을 두려워하였다.
[주-D057] 강좌(江左)의 이오(夷吾) :
이오는 춘추시대 제 나라 관중(管仲)의 자이다. 진(晉) 나라가 중국을 빼앗기고 강좌(江左 강동(江東))로 옮아갔을 때에 왕도(王道)가 승상(丞相)으로 있었다. 환이(桓彛)가 처음 강동에 가서 조정이 미약한 것을 보고 실망하였으나, 왕도를 보고는, “내가 관이오(管夷吾)를 보았으니 다시 걱정이 없다.” 하였다.
[주-D058] 이공(二公)이 섬(陝)을 나누기는 하였으나 :
주공(周公)은 섬의 서쪽을 맡고 소공(召公)은 섬의 동쪽을 맡았다.
[주-D059] 적벽(赤壁)의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고 :
조조(曹操)가 80만 군사를 거느리고 강동(江東)을 치려고 적벽강(赤壁江)에 군사를 끌고 가서 군중에서 시를 짓기를, “달 밝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가 남으로 나네.” 하였다. 곧 싸움에 패하여 도망하여 돌아왔다.
[주-D060] 곤양(昆陽)의 무소와 …… 흩어질 것이요 :
한 나라를 회복하려는 군사들이 곤양(昆陽)에서 왕망(王莽)의 백만 군사와 싸우는데 왕망의 군사는 물소[犀] 코끼리[象] 호랑이들을 몰고 와서 싸움을 돕게 하였다. 비가 크게 오매 모진 짐승들이 벌벌 떨면서 흩어지고 왕망의 군사는 패하고 말았다.
[주-D061] 요(堯)의 의미를 …… 될 것을 :
어느 사람이 공자를 보고, “그의 이마는 요(堯)와 같다.” 하였다. 여기서는 임금의 얼굴을 말한 것이다.
[주-D062] 촉으로 가는 잔도(棧道) :
당 명황(唐明皇)이 안녹산의 난을 피하여 촉(蜀)으로 파천하였는데 촉에는 산길이 험하여 잔도(棧道 사닥다리 길)로 통행하였다.
[주-D063] 한궁(漢宮)에 풀이 푸르며 :
이것은 서울의 궁궐이 풀밭이 된 것을 말한다.
[주-D064] 숙(叔)ㆍ백(伯)이 귀먹은 듯함 :
《시경》에 〈모구편(旄丘篇)〉에, 여(黎)의 임금이 나라를 잃고 위국(衛國)에 와 있으매 그 신하들이 시를 짓기를, “높은 언덕[旄丘]의 칡덩굴이 벌써 마디가 컸구나. 우리가 여기 온 지 세월이 오래되었는데, 위국의 신하인 숙(叔)ㆍ백(伯)들은 귀먹은 듯 우리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구나.” 하였다.
[주-D065] 궁금(宮禁)을 숙청하고 …… 볼 만하였고 :
당 나라 이성(李晟)이 주자(朱泚)난을 평정하고 임금에게 올린 글에, “신이 궁금을 숙청하고 종묘에 공경히 뵈니, 악기도 옮기지 않았으며 종묘의 모양이 전일과 같습니다.” 한 문구가 있었다.
[주-D066] 신정에 모여서 ……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
진(晉) 나라가 강동 한구석으로 쫓겨간 뒤에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신정에 모여서 놀다가 주이(周顗)가 눈물을 흘리며 고국을 생각하였다. 왕도(王導)가, “마땅히 힘을 다하여 국사를 할 것이지, 초수(楚囚)처럼 서로 대해 우는가.” 하였다. 초수는 초 나라의 종의(鍾儀)가 진 나라에 포로가 된 것을 인용한 말이다.
[주-D067] 음기(飮器) :
춘추 시대에 진(晉) 나라 지백(智伯)이 조 양자(趙襄子)를 멸하려 하다가 도로 패하여 죽었다. 조 양자는 지백의 두골(頭骨)에 옻칠을 하여 마시는 그릇으로 만들었다.
[주-D068] 흔고(釁鼓) :
옛날에 북을 새로 만들면 짐승의 피로 발라서 틈[釁]을 메우는데, 전시에는 적을 잡아 죽여서 쓰기도 하였다.
[주-D069] 하늘을 깁기 :
옛날 전설에 하늘이 기울어지는 것을 여와씨(女媧氏)가 돌을 다듬어서 하늘을 기웠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기울어지는 나라를 붙든다는 뜻이다.
[주-D070] 사직의 신하로 …… 돌아오시게 하고 :
당 덕종(唐德宗)이 주자(朱泚)의 난에 봉천(奉天)으로 파천하였는데 이성(李晟)이 장안(長安)을 수복하여 임금을 모셔왔다. 덕종은, “하늘이 이성을 낳은 것은 사직을 위함이로다.” 하였다.
[주-D071] 간성(干城)의 장수 :
무인(武人)은 국가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방패[干]와 성(城)이다 하였다. 《시경(詩經)》
[주-D072] 이(李)ㆍ곽(郭)의 충성 :
당 나라 안녹산(安祿山)의 난은 이광필(李光弼)ㆍ곽자의(郭子儀) 두 장수의 공으로 평정되었다.
[주-D073] 종천(終天)의 원통함 :
하늘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부모의 원수를 말한다.
[주-D074] 정위(精衛) :
새의 이름이니, 옛날 염제(炎帝)의 딸이 바다에 빠져 새로 변하여 동해를 메우려 하였다 한다.
[주-D075] 금혁(金革)의 변례(變禮) :
상주가 국가의 난을 당하였을 때에는 상례를 지키지 못하고 변례로 무기[金]를 들고 갑옷[革]을 입고 나오는 것이다.
[주-D076] 맹진(孟津)을 막는 것 :
작은 흙으로 맹진(孟津)의 세찬 물결을 막는 데 비유하였다.
[주-D077] 중류의 지주(砥柱) :
황하의 중류에 지주라는 바위 기둥이 있으니, 홍수가 아무리 범람하여도 지주는 우뚝 서 있다.
[주-D078] 태원(太原)을 침략당한 욕 :
주 선왕(周宣王) 때에 북방 오랑캐가 태원을 침범하였다.
[주-D079] 기운이 산하(山河)를 웅장하게 하고 :
조(趙) 나라 충신 조정(趙鼎)이 분하게 죽으면서, “나의 기운이 산하가 되어 본조(本朝)를 웅장하게 하리라.” 하였다.
[주-D080] 길보(吉甫) :
주 선왕(周宣王)의 신하로 오랑캐를 축출하였다.
[주-D081] 곽거병(霍去病) :
한 무제의 명장으로 흉노를 토벌하였다.
[주-D082] 일곱 발자국 …… 없기를 기약하여 :
《서경(書經)》에 군령(軍令)을 선포하는 서사(誓辭)에, “세 발자국 다섯 발자국 일곱 발자국 안에 군령을 범치 말라.” 하였다.
[주-D083] 매처럼 드날리는 공 :
강태공(姜太公)이 목야(牧野)의 싸움에 매처럼 드날렸다[鷹揚] 한다.
[주-D084] 갈노(羯奴) :
오호(五胡)의 하나로 흉노의 별종이니, 산서성(山西省)에 살았다.
[주-D085] 방숙(方叔) :
주 선왕의 장수로 북방 오랑캐를 쳐서 쫓았다.
[주-D086] 맹시사(孟施舍)의 용맹 :
《맹자》에, “맹시사의 용맹은 적을 헤아린 뒤에 나아가고, 이길 것을 생각한 뒤에 시작한다.” 하였다.
[주-D087] 조괄(趙括)의 겁 :
조(趙) 나라 장수 조괄은 겁이 많아서 진(秦) 나라 군사에게 패하였다.
[주-D088] 도끼가 이지러지지도 :
주공(周公)이 동방을 정벌하고 돌아오면서, “나의 도끼가 이미 이지러졌네.” 하였다.
[주-D089] 기하(岐下)의 천도(遷都) :
주(周) 나라 태왕(太王)이 적(狄)의 침략을 피하여 기산 밑으로 옮기었다.
[주-D090] 이수(李收) :
전국 시대 조 나라의 명장으로 흉노를 토벌하였다.
[주-D091] 기린각 :
한 나라 선제(宣帝)가 공신(功臣)들을 기린각(麒麟閣)에 초상을 그려 붙였다.
[주-D092] 6월편 :
《시경》의 편명(篇名)으로, 주 선왕이 흉노를 토벌한 일을 읊은 시다.
[주-D093] 곤이(昆夷) :
주 문왕(周文王)이 곤이의 강함을 당하지 못하여 섬겼었다.
[주-D094] 배수진(背水陣) :
임진 왜란 때 신립이 조령(鳥嶺)을 지키자는 김여물(金汝物)의 말을 듣지 않고 한신(韓信)의 병법을 본받는다고 충주의 달천(撻川)을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쳤다가 패하였다. 한신이 조(趙) 나라와 싸울 때에 배수진을 쳐서 이기자, 싸운 뒤에 여러 장수들이 묻기를, “병법에, ‘오른쪽과 등 뒤에는 산과 언덕을 두고 앞과 왼편에는 물을 끼고 진을 친다.’ 하였는데, 오늘 장군이 물을 등 뒤에 두고 진을 쳐서 이긴 것은 어떤 까닭입니까?” 하였다. 한신이 말하기를, “내가 한 방법도 병법에 있으니, 군사를 죽을 땅에 집어넣어야 힘껏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 제군들은 내가 평소부터 어루만져 길러온 부하들이 아니니 장판의 사람을 몰아서 싸우는 것과 같다. 편리한 땅에 진을 치면 모두 도망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등 뒤에 물이 있어 갈 데가 없으니 전진이 있었을 뿐이다.” 하였다. 신립은 경우와 사세가 다른 데도 이 병법을 잘못 썼다가 패하여 죽었다.
[주-D095] 천시(天時)ㆍ지리(地理) …… 귀한 것인데 :
《맹자》에, “천시가 지리보다 못하고 지리가 인화보다 못하다.” 하였다.
[주-D096] 허통 :
서얼이나 문벌이 낮은 자는 문과에 올라 청직(淸職)을 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는 곡식을 바친 자에게 청직의 길을 터준 것이다.
[주-D097] 면천 :
천인(賤人)에게 신분의 구속을 풀어 주어 천역(賤役)의 기록에서 빼준 것이다.
[주-D098] 빈을 떠남 :
주 나라 태왕(太王)이 적을 피하여 도읍인 빈을 버리고 옮겨갔다.
[주-D099] 범방(范滂)이 천하를 …… 서로 잇달았으니 :
후한(後漢) 말기에 각 지방에 탐관이 많으므로 안찰(按察)하는 사자(使者)를 나누어 보냈다. 범방이 수레에 오르면서 천하를 맑힐 뜻이 있자, 탐관오리들이 소문만 듣고도 인수를 풀어 놓고 가는 자가 많았다.
[주-D100] 곽공(郭公)이 착한 …… 망하는 데 이르렀다 :
제 환공(齊桓公)이 놀러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나서 그 지방의 역사를 물은즉 노인은, “저기가 곽공이 망한 터입니다.” 하였다. 제 환공이, “곽공은 어찌하여 망하였는가?” 하니, 답하기를, “곽공은 착한 것을 착하게 여기고 악한 것을 악하게 여겼습니다.” 하였다. 제 환공이, “그런데 왜 망하였는가?” 하니, 답하기를, “착한 것을 착하게 여기면서 쓰지를 못하고, 악한 것을 악하게 여기면서도 제거하지 못하므로 망하였습니다.” 하였다.
[주-D101] 수양(睢陽)의 군사는 …… 것을 면하였고 :
당 나라 장순(張巡)이 수양을 치는데, 오래 포위되어 양식이 없으므로 나는 새를 그물로 잡아먹고 사람까지 수만 명을 잡아먹었다.
[주-D102] 아홉 번 토벌 :
촉한(蜀漢)의 강유(姜維)가 한(漢)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중원(中原)을 아홉 번 쳤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성낙훈 (역)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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