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1일의 올림픽 경기는 대체로 환호를 부르지 못했다. 다이빙에서도 남자 개인 양궁도 야구도 축구도 모두 지는 날이었다. 누군가의 환호가 누군가에겐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니, 꼭 우리에게만 환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올림픽 정신은 최선을 다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기에.
어쩐지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웠다. 정보를 얻자고 검색했던 블로그가 화근이 되었던 것일까. 항암치료 과정마다 자신의 증상을 상세히 기록한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이때는 이만큼 힘들구나, 이때는 이런 증상이 있구나, 이때는 이렇게 주의해야 하는구나. 그냥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블로그에 오래 머물렀다.
잘 먹을 수 없는 남편
|
▲ 한낮의 더위인데 갑자기 싸-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남편은 말없이 앞장서서 걸었고 나는 엉거주춤 뒤를 따라갔다. |
ⓒ 최은경 | 관련사진보기 |
남편과 산책하는 오전 시간. 분위기 무겁지 않게 한다고 말을 건 게 잘못이었다. 우연히 들여다본 블로그에서 자신의 증상을 그렇게 기록했더라는 말을 했다. 내가 환자의 증상을 상세히 알면 뭔가 대처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남편도 블로그의 주인처럼 상세히 자신의 증상을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예상 못한 질문이 날아왔다. "그 얘길 왜 하는 건데?"
정말 잠시 당황했다. 그런저런 생각을 말하기가 쑥스러워, 항암치료의 과정이 힘드니 잘 먹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치료받기 전까지 몸을 좀 건강하게 해 놓아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낮의 더위인데 갑자기 싸-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남편은 말없이 앞장서서 걸었고 나는 엉거주춤 뒤를 따라갔다. 거리상으로 5분 정도의 거리였을 것 같은데 체감은 30분은 지나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먹을 수가 없는데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은 왜 하는 건데?" 역시 예상 못한 말이었다. 누구나 한 마디씩 하는 말치레가 스트레스였구나, 생각했다. 이어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면서 뻔한 소리를 왜 하는 건데?" 환청이 들렸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기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하나마나한 얘기는 왜 하는 거냐는 타박으로 들렸다. 순간 마음이 삭막해졌다.
차라리 그게 아니었다고 곧바로 말했으면 오늘이 괜찮았을까. 생각만 하다 이미 긴 거리를 걸었고 시간도 많이 지나 있었다. 마음의 거리는 걸어온 거리만큼 자꾸만 멀어졌다. 입이 더 다물어졌다. 버릇이었다.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때 적극 해명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더 애를 써야 했나? 더 애를 써야 했어. 혼자서 묻고 답했다. 잠시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세 끼 환자를 돌보는 것도 할 만하다고 마음을 놓았다. 웃기도 했던 것 같다. 여유와 여유에서 나오는 웃음이 소홀함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때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음식은 먹을 수도 없고, 몇 안 되는 음식으로 돌려막기를 하던 중이었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말을 안 해도 적어도 그 어려움은 충분히 헤아려야 했다.
집에 먼저 들여보내고 시장으로 향했다. 다른 음식을 생각해야 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섬유질이 많지 않으면서, 잡곡이나 콩류가 아니면서, 딱딱하지 않은 것이면서 먹을 수 있는 것. 한바퀴 돌며 무수히 많은 반찬가게를 지났는데, 남편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었다.
결국 국물용 멸치 한 박스를 샀다. 양파도 한 망을 샀다. 양 손이 묵직했다. 땡볕을 걸었다. 어깨가 자꾸 처지고 등은 쪼그라드는 것처럼 아팠다. 집에 오니 티셔츠가 흠뻑 젖어 있었다. 마음의 충돌이 있었지만, 다른 대책이 없으니 또 똑같은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생선만 종류를 바꿔 상에 올렸는데, 그것도 모범 답안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다시 걷기 위해 나갔다가 아이들을 위한 피자를 들고 들어왔다. 애들까지 어두운 마음을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없는 먹성에는 헛웃음이 나왔다.
눈치를 살피며 늘 그랬던 것처럼 둘이 저녁을 먹었다.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최선, 사전적 의미로는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의 최선과 나의 최선을 잠시 생각했다. 나의 최선은 가장 좋고 훌륭했을까. 그 최선이 누군가에겐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최선에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없어진 최선, 그래도 다시
|
▲ 31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김연경(10), 오지영(9) 등이 일본에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한 뒤 환호하고 있다. 2021.7.31 |
ⓒ 연합뉴스 | 관련사진보기 |
하루 종일 멸치 똥을 땄다. 수십 번 자세를 바꾸며 한 박스를 가지고 씨름했다. 애들은 나와서 잠시 눈치를 살폈고, 허리가 아파오는 데도 오기를 부리며 멸치와 씨름했다.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진땀을 흘리며 일을 끝마쳤다. 서둘러 저녁을 챙기다 양파 가는 강판에 손가락을 갈고야 말았다. 흐르는 물에 피가 번졌다.
삶이 멸치 똥 따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소득 없이 진 빠지는 날. 하지 않으면 음식이 안 되니 힘들고 하찮아 보여도 해야만 하지만 당장 소득은 없는 일. 멸치 똥을 정성스럽게 발라내니 손에 냄새가 진하게 뱄다. 여러 번의 비누칠에도 손을 멀찍이 두게 만들었지만, 이후로 한 달은 편할 것이다. 이런 날도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저녁을 마치고 축구도 야구도 지는 게임을 뒤로 하고 일본과의 배구 경기를 시청했다. 경기를 하는 선수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희극과 비극을 오락가락했다. 질 듯 끌려가는 경기를 보니 땡볕에 질질 끌려가는 것 같았던 오전의 마음이 떠올랐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고 끊임없이 서로를 다독이는 선수들이 보였다.
경기는 이겼고 비로소 마음껏 웃는 선수들을 보니 우울한 하루가 씻겨지는 느낌이었다. 일본과의 승부를 마치고 김연경이 한일전의 소감을 말하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일본전은 감정에 휩쓸리는 경기가 많다. 짜증 나는 느낌도 많이 난다. 감정 조절을 안 하면 일본전은 어렵기 때문에 웃는 것보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한 점 한 점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다른 말보다 감정 조절이라는 말이 내게는 진하게 다가왔다. 김연경 선수처럼, 감정 조절을 잘 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마음껏 웃어도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조용히 파이팅을 외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