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창조성 가득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올까?
“우리에겐 그런 벽이 필요했어요. 벽에 꽂을 핀이 필요했어요.”
데이비드 색스는 급격하게 디지털로 전환된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크고 작게 느낀 불편함, 어려움, 충분치 않은 느낌의 심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를 추적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을 찾아 세계 최고의 전문가 200명을 인터뷰한다.
호기심과 창조성 가득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올까? 제니퍼 콜스태드의 포드자동차 설계팀은 몇 달 동안 디지털 도구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콜스태드는 2021년 6월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핵심 직원 여덟 명에게 디트로이트의 회의실로 나오게 해서 오프라인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오랫동안 붙잡아왔던 일은, 놀랍게도 세 시간 만에 끝났다. 방법은 간단했다. 콜스태드는 회의실 벽을 이용했다. 온라인에서 찾아낸 온갖 아이디어를 인쇄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회의실 벽에 붙였다. “벽을 보면 돼요. …… 벽을! 디지털 공간에서는 결코 안 되죠. 그 회의실 벽에 인쇄한 종이를 핀으로 꽂아놓고 그 위에 뭔가를 적고 그걸 다시 옮기는 거예요. 머릿속이 뒤엉킨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그만한 방법이 없어요. 그런 건 디지털로 복제할 수 없어요. 우리에겐 그런 벽이 필요했어요. 벽에 꽂을 핀이 필요했어요.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가상 학교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
“배움은 학교의 물리적 공간 전체에서 일어난다”
가상 학교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를 배웠을까?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더 나은 학교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 가상 학교는 학생의 수행 평가를 위한 거의 모든 기준(읽기와 수학 과목의 학업 성취도, 학생과 교사의 참여도, 시험 점수)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학생들은 수업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했고 적게 배웠으며 성적도 떨어지고 디지털 수업보다 아날로그 대면 수업을 압도적으로 선호했다. 디지털 학교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영역에서 나타났다. 전 세계의 학생들이 지독히 비참해한 것이다. 텍사스주립대학교 학 교심리학 교수이자 아동심리학자인 존 래서Jon Lasser 박사는 말한다. “학생들이 흥미를 잃었어요. 줌 온라인 수업에 실망했어요. 환멸을 느꼈어요. 그래서 우울감이 커졌어요. 지독한 좌절감에 빠졌어요. 교사도 좌절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학생들이 이탈하는 게 보였으니까요.”
데이비드 색스는 세계 교육 데이터를 추적하는 OECD 교육 책임자를 찾아가 디지털 교육이 할 수 있는 것과 부족한 부분, 학교와 교사의 의미와 역할, 가치를 듣는다. “학교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과과정의 사실과 정보만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닙니다. 실제로 배움은 학교의 물리적 공간 전체에서 일어나죠.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로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과 답변,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밖에도 데이비드 색스는 우리가 출근하고 등교하고 쇼핑하고 도시를 탐험하고 문화 생활을 누리고 휴식을 취하는, 당연하게 생각해온 일상을 새롭게 조명한다. 사무실, 교실, 음식점에 녹아 있던 접촉, 공감, 관계의 실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동시에 디지털로 진짜 세상을 대체하는 대신 개선할 방법까지 보여준다.
우리를 정말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을 발견하다
“스마트시티와 숲속도서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
“드론이 날아다니는 도서관과 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 뭐가 더 혁신적인가요?” 뉴욕타임스 칼럼의 한 대목에서 데이비드 색스는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이야기를 꺼낸다. 2017년 컨퍼런스차 한국을 찾은 그는 디지털 시대의 중심지인 한국에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일상 안,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삶, 책을 읽는 여유, 고즈넉한 공간에서 누리는 휴식이 바람직한 인간의 미래이자 디지털 만능으로 달려온 현재를 혁신하는 길이라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란 새로운 기술과 발명품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인간의 삶을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데이비드 색스는 몇 년씩 이어진 팬데믹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을 그저 예정된 목적지로 순탄하게 나아가다가 잠시 마주한 일탈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의 한계와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미래에 대한 값진 교훈으로 새기자고 제안한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디지털이 우리 삶을 개선해주지만 때로는 악화시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술이 진보와 동의어가 아니듯 모든 진보가 새로운 기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실해졌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다시 말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은 디지털 시대 인간의 길과 인간다움이 어디로 어떻게 향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