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의 180조어치 광물을 외국 회사가 가져간다고?
마치 아마존과 같은 무성한 밀림, 푸른 바다와 그 한복판에 펼쳐진 무수한 작은 섬들.
무궁무진한 활용도의 희귀 자원과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위험한 공기.
2009년에 이어 또 한번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아바타'의 배경입니다.
영화 아바타 속 인류는 지구의 에너지 고갈 문제 해결을 위해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판도라'라는 행성을 무단으로 침입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판도라까지 진출한 이유는 단 하나,
지구에서는 구할 수 없는 희귀 자원인 언옵테늄을 손에 넣기 위함인데요.
1kg에 240억 원짜리 광물이라면 영화 속 인류가 아니니라 지금 현재 인류도 죽음을 무릅쓰고 판도라로 진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언옵테늄이라는 금속은 소설이나 공상과학영화 등에 나오는 가상의 금속입니다.
그 영어 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획득하기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설령 얻을 수 있더라도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그런데 우주에만 귀중한 광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광물이 존재하는데 강원도 영월에 오래된 폐광에는 5대 핵심 광물 중 하나가
빽빽하게 매장되어 있습니다.
이에 캐나다의 광산 업체가 1,700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급 광물을 캐기 위해 지금 열심히 준비 중이죠.
혹시 여러분은 '신의 지팡이'라는 무기를 알고 계시나요?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레이지 독'이라는 폭탄으로 베트콩의 진지를 초토화시킨 경험이 있는데
레이지 독은 폭약을 넣지 않는 폭탄입니다.
폭약이 없는 폭탄이라는 말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레이지 독은 길이 44mm, 지름 13mm, 무게 20g의 탄환형 금속으로
지면 근처에서는 시속 804km의 무서운 속도에 도달했습니다.
이 무서운 속도 덕분에 공중에서 이를 투하하기만 하면 인간의 몸을 관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 자체로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집속탄과 같은 불발탄의 위험성도 없었죠.
모탄에 해당하는 큰 금속 통에 이 금속을 잔뜩 채운 후 비행기에서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구조는 집속탄과 비슷한데
여기에 운동에너지가 가해지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미군이 레이지 독을 좀 더 크게 확대시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신의 지팡이'라는 무기입니다.
신의 지팡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텅스텐이라는 광물이 필요한데 텅스텐이라는 단어는 스웨덴어로
무거운을 뜻하는 텅과 돌을 의미하는 스텐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무거운 돌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에서는 이를 중석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국방비로 천조 원을 쓰는 미국도 결국 신의 지팡이는 개발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텅스텐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텅스텐이 워낙에 비싼 금속이라 천조국 미국이라지만 중간에 프로젝트 진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혹시 강원도 영월의 폐광에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텅스텐이 빽빽하게 매장됐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는 벌써 문 닫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상동광산이라는 오래된 폐광이 하나 있습니다.
강원도는 한국에서도 그나마 지하자원이 많은 축에 속하는데 전국에 매장된 광물자원 161억 톤 중 약 75%가 강원도에
매장되어 있죠.
이 자원들의 잠재 가치는 최대 180조 원에 이르는데 만약 채굴 기술이 발전한다면 강원도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영월의 상동광산인데 상동광산은 원래 텅스텐, 즉 중석 광산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이 덕분에 한때 상동읍에는 3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지만, 폐광된 지금은 고작 천여 명 사는 폐광촌으로 전락해 버렸는데요.
텅스텐은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무거운 돌이라는 의미인데 무겁고 단단하기 때문에 주요 금속 중에서도
녹는 온도가 가장 높습니다.
열에 강하기 때문에 대포 포신과 같은 무기 제조의 필수 광물로 꼽히죠.
그런데 텅스텐 매장량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상동광산이 단연 으뜸인데 단일 광산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자
추정 매장량이 5,800만 톤입니다.
품질이 워낙에 좋은 데다 소련의 확장에 겁먹은 미국은 영월의 중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결국 한국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한미중석협정'을 체결해 선금 50억을 지불하고 2년간 중석 15,000톤을 수입하기로 결정하기도 했죠.
한참 미국으로 수출되던 당시 미국의 한 시험기관은 상동광산의 중석 정광을 분석한 후 한국의 텅스텐 정광의 품질은
세계 시장의 표준이라고 발표했을 만큼 품질이 대단했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중국의 시장개방과 더불어 중국이 텅스텐 수출을 시작하면서 상동광산의 채산성이 크게 약화됐고
1994년에는 결국 폐광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폐광 20년 뒤인 2012년 세계적인 투자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 상동광산에 무려 7,0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800억 원을 투자한 겁니다.
재산이 54조 원을 넘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투자의 전설 같은 인물이 강원도 영월에 작은 광산 하나에
800억 원을 투자한다니 상당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잘 아시다시피 현재 전 세계는 자원전쟁 중입니다.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마음 놓고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이 가진 지하자원 덕분이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출규제 등으로 막아버리니 중국에 미안한 소리 하지 않고는 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텅스텐도 마찬가지인데 텅스텐이 희토류만큼 중요하냐고 묻는 분들이 계실 텐데 희토류만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필요한 5대 핵심 광물 중 하나가 텅스텐이니까요.
지난 2017년 2월 광물자원공사는 신산업 기여도, 미래 성장 가능성, 수입 규모 등을 지표로 삼아 5대 핵심 광물을 선정했는데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그리고 텅스텐입니다.
텅스텐의 경우 열에 견디는 힘이 강해 대포 포신과 같은 무기류에도 사용되지만, 반도체 금속 배선의 주요 소재이기도 한데요.
그러니까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 첨단 무기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모든 분야가 이 텅스텐의 영향을 받는 겁니다.
이 또한 중국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도 한데 중국은 전 세계 텅스텐 부존량의 60%와 생산량의 82%를 차지하고 있죠.
이에 중국은 1991년부터 텅스텐을 국가 보호 광물로 지정해 수출을 제한하고 있어 텅스텐의 가격은 떨어지지도 않고
늘 상승하기만 합니다.
더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는데 텅스텐 생산을 위한
핵심 원자재인 파라텅스텐산의 유럽 가격은 1톤당 44만 원으로 전년 대비 25%나 상승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죠.
우리나라 역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텅스텐 소비국인데 필요량의 90%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1994년에 문을 닫은 상동광산은 어쩌다 워렌 버핏의 투자를 받게 된 것일까요?
폐광 12년 뒤인 2006년 캐나다의 광산업체 울프마이닝은 상동광산의 광업권을 인수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세계적인 광업회사인 캐나다의 알몬티가 울프마이닝을 인수·합병해 상동광산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그러고는 2020년 5월에는 무려 1,300억 원을 투자해 자회사인 알몬티 대한중석을 설립했죠.
작년 5월 28일 착공식을 한 뒤 광맥 조사, 시추, 갱도 굴진, 정광공장 건설 등 채굴에 앞선 사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부터 연간 2,500톤 생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소식은 오히려 해외언론이 먼저 관심을 가졌는데 로이터 통신은 지난 5월 1992년 이후
30여 년 만에 한국에서 텅스텐이 다시 생산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알몬티에 따르면 현재 상동광산에 매장된 텅스텐은 5,800만 톤으로 이는 연간 100만 톤씩 60년 동안 채굴할 수 있는 양입니다.
단일 광산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죠. 특히 상동광산에 매장된 텅스텐의 광물 내 함량은 0.45%로 0.19%의 중국산뿐 아니라
세계 평균인 0.18%에 2.5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한국에는 현재 텅스텐 원광을 제련해 품위를 높인 정광을 생산하는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알몬티는 원광을 정광으로 바꾸는 불순물 제거 시설만 국내에 갖추고 나머지 제련 작업은
미국 펜실베니아의 GTP에 맡길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벌써 GTP와 15년간 텅스텐을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해 두었죠.
사실 상동광산의 텅스텐, 즉 중석은 한국에게 있어서 창피하고 부끄러운 흑역사입니다.
1952년 미국과 체결한 협정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이용해 수입한 밀가루와 비료를 농민들에게 값비싸게 팔아
안 그래도 힘든 농민들의 피눈물을 빼놨었죠.
이를 대한민국 현대사 최초의 정경유착 사건인 '중석불 사건'이라 부릅니다.
차후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를 다루기는 하겠습니다만 중석은 한국 현대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정부가 세운 대한중석광업은 1960년대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효자 기업이 됐는데
한때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70%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탄광에서 검은 먼지를 마시며 중석을 캐낸 광부들의 피와 땀은 어디로 가고
이제 외국기업이 이를 캐 돈을 벌 계획이라고 하니 참 아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