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아니라 주님이 목표이다
오늘 호주 퍼스에서 목회자 예수동행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참여한 목회자 부부의 수는 많지 않지만 퍼스 지역의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 부부가 모였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목표가 목회 성공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요 목회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중에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요 15:4)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난감하였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 성령이 임하신 이후에 있을 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다고 제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사명을 수행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좌절하고, 낙심하고, 지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포도나무요 가지처럼 온전히 하나가 될 것이며 (요 15:5)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목회 성공이나 실패의 의미가 새롭게 깨달아집니다.
목회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큰 교회는 성공이고 작은 교회는 실패가 아닙니다.
유명한 목사는 성공한 자요 무명한 목사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의 안에 거하여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목사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가 정말 붙잡아야 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저도 목회를 시작할 때, 이왕 목사가 되었으니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 성공은 큰 교회를 담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딜렘마에 빠졌습니다. 교회는 성장하는데,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아니 점점 더 불만이 커지고 짜증이 많아지고 낙심도 커졌습니다.
계속 교회가 더 성장하기를 원했고, 교회 건물은 더 커지기를 원했고, 교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원했습니다. 문제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런 나를 보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잘하는 것인가?’
그 때 보게 된 성경이 마 7:22-23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던 이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목회자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6)
이 말씀으로 주님은 ‘목회 성공’에 목을 매고 있던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비로서 사도 바울의 고백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 3:8-9) 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성공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더 이상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 바’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도 목회의 비젼도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목표나 비전이 주님 보다 앞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시선'이라는 찬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을 주님께로 향할 때 주의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너무나 막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동행 일기’를 쓰며 계속 주님을 바라보게 되니, 주님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시작임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