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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朝鮮칼럼]-
다음은 고종이 1890년 6월 양어머니인
조대비가
서거했을 때 청나라 황제에게 보낸 서신이다.
----고종(高宗)황제----
"당신의 신하 조선의 왕 이희(李熙-고종의 이름)
는 어머니 조씨가 서거했음을 공손히 알립니다.
저는 폐하 앞에 큰 걱정과 슬픔에 잠겨 무릎을 꿇습니다.
종은 폐하께서 자비롭게 배려해주시기 청합니다."
이 정도면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시진핑의 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외에도 조선은 왕이 부임 시 중국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매년 엄청난 공물을 바쳤다.
중국 사신이 황제의 친서를 가지고 오면 왕이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네 번 절했고,
사신이 떠날 때는 백성들이 길에 나와 황제의
은총을 기뻐하며 춤을 춰야 했다.
----청나라 황제(光緖帝)----
청나라 황제는
"주변국 중 이희만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없다"고 칭찬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선조들의 행위가 창피하기
짝이 없지만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중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나라이다.
주변 55개 민족을 병합했고 특히 티베트와 위구르는
무력으로 잔혹하게 짓밟은 전력이 있다.
우리가 이 정도 살아남은 것은 조상들이
비굴하게나마 목숨을 부지한 덕택이다.
그랬던 우리가 근세에 들어 중국보다 잘살게 된 것은 기적이었다.
조상들이 환생해서 지금 우리가 중국에서 발 마사지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중국에서 발맛사지----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중국과 관계를 끊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진작 이렇게 해서 세계 대국으로 굴기했는데,
우리는 한발 늦어 수모도 많이 당했지만 그나마 이 정도 살고 있다.
여기에는 외세를 막아주고 엄청나게 큰 자유 시장을 내준
미국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근자에 들어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과거 영화를 재현하려는 중국몽을 키우고 있다.
그 속내는 칭화대 옌쉐퉁 교수가 밝혔듯이
주변국들이 다시 중국의 신하 국가로 복귀하는 것이다.
----옌쉐퉁 칭화대 교수----
특히 가장 충성스럽던 우리에게 미국과 관계를 끊고
중국 편에 서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어
우리로서는 갈수록 난감한 상황이 되고 있다.
강자 편에 서는 것이 안전하다면 미국이 답이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산 원유는 중국이 수입하는
중동산보다 배럴당 5~10달러 이상 싸졌다.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힘도 막강하고, 세계 모든 혁신이
미국에서 일어날 만큼 과학기술도 최고 수준이다.
인구 구조도 중국은 생산가능 인구가
2016년부터 계속 감소하지만 미국은 향후 100년간 튼튼하게 늘어난다.
----미국의 쉐일가스----
이번 우한 폐렴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은 사회 시스템도 취약하여
이변이 없는 한 현 세기 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리적으로는 미국 편에 서는 것이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경제 의존이 높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을 멀리할 수도 없다.
미국이 고립주의가 심화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도 꺼림칙하다.
그렇다고 중국 편에 서는 것은 더 절망적이다.
미국이 떠나는 순간 경제 폭락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속국 신세가 되면서 겪어야 할 수모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니 묘안이라고 나온 것이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의 뜻대로 움직인 사례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전환기에는 역사에서 답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역사의 교훈은 '힘이 약한 나라는 결국 당한다'는 것이다.
조선 역시 힘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중국만 믿고 있다가 망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부국강병하는 길 외에는 없다.
----외세에 의지하지 말고 부국강병----
경제는 중국 의존도를 완화하고,
외교에서는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다.
외국 석학들은 미·중 외에 우방을 많이 가질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전혀 반대이다.
부국강병은커녕 국민은 분열되고,
경제는 이념화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으며,
북한만 바라보는 외교로 국제사회에서는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우방인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다.
현 정권의 지나친 친중 편향도 우려스럽다.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
여권 인사들이 중국몽을 칭송하고,
'주한미군 철수해도 된다'
'중국의 핵우산으로 들어가자'
는 등 주장하는 것은 가볍기 짝이 없다.
'미국, 일본이라는 원심력이 없으면
중국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는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 전략 책임자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중국의 구심력에 자칫 빨려 들어 간다----
지금은 현란한 수사(修辭)보다 미래 생존을 위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동북공정의 음모로부터 우리가 살아 남는 길^^
1.동북공정의 문제성
요즘 중국의 한국 역사왜곡이 그 도를 넘어서
한중간 역사전쟁으로 까지 치다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중국정부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일부 학자들의 자발적인 연구 움직임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어거지는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고 있다.
동북공정을 일부 이상한 학자들의 호기어린 연구시도에 불과하다고
묵과하기에는 동북공정이 시도하는 역사왜곡의 정도가 너무 큰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들의 말대로 정말 너무 과민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중국인들의 악의에 찬 역사왜곡의 문제를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명분과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민족이라는 동질적 공동체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계속 생존할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거기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문제를 확대 해석하는 것같이 여겨질지도 모르겠으나
필자가 여기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
그것은 역사란 그 민족의 혼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2.역사와 혼
역사는 혼이다. 이 말은 역사문제를 거론할 때 흔히 비유되는 말이다.
왜 역사를 혼이라고 부르는가?
또 역사는 어떤 이유로 그 민족의 혼이 되는가?
먼저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흔히 역사를 혼이라고 부를 때,
거기에는 오랜 세월동안 어떤 국가와 민족이 동질성을 잃지 않고
생존할 수 있도록 그 밑바탕이 되어 주었던 사회구성 원리 내지는
정신을 역사 속에서 찾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민족이라는 혈연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구속시킬 명분과 설득력을 품게 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삶을 함께 한 결과 갖게 된 소속감과 일체성으로부터 온다.
역사는 바로 이러한 삶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로서
구성원들이 나눠가지는 동질성에 대한 산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혼이 되는 이유이며
이것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역사의 정신을 두고 E. H. CARR( 1892 - 1982)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 라고까지 정의 내렸던 것이다.
민족을 거론하면서 역사를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역사는 민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구심력으로서 혼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하나의 독립적이고 완성된 개체로서 존립할 수 있는 것은
육신 이면의 정신적 실체로 인하여 가능했듯이,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존속가능한 것도
이면의 정신인 민족혼이 역사를 통해 살아있음으로 인하여 가능한 법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민족으로부터 혼인 역사를 빼앗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는 너무 뻔하다. 말할 나위도 없이 민족의 소멸이 될 것이다.
정신을 잃어버린 민족이 어떻게 자신의 독특함을 지켜 단일 공동체로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3.중국에 의한 우리나라 역사왜곡의 전례
동북공정의 문제가 우리들에게 심각한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혼이요 정신 그 자체인 역사를 말살하려 한다는 점 때문이다.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생략하겠다.
다만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중국인들의 악의에 찬 도전과 시비가
사실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 가야겠다.
우리가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밝혀주는 정사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사기 역시 모양만 달랐다 뿐이지
지금의 동북공정과 궤를 같이 한다면 믿어지는가?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사마천은 사기라는 역사서를 통해 동아시아 역사를 편찬하면서
교묘하게 중국 한족 중심의 역사로 동아시아 역사 전체를 왜곡시켰다.
소위 역사가의 지침으로까지 거론되는 공자의 ‘춘추필법’이란 것도
기실은 다름 아닌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 역사관을 가리키는 말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마천은 바로 이 춘추필법에 입각하여 중국 한족에게 불리한 역사는
철저하게 숨기거나 왜곡시키고, 오로지 한족중심의 입장에서 당시 역사를 서술했다.
이러한 사마천 사기의 실체를 확인케 해 주는 증거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 지나(중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였던 단군조선(고조선)이
사기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사실은 모든 사실을 웅변해 주고도 남는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BC 707년, BC 654년, BC 280년경에 있었던 '단군조선'과
'연·제 연합군'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철저히 산융, 북융, 동호와의 전쟁이었다고
거짓말로 꾸며 배제시켰으며 그 내용도 '조선전'이 아닌 '흉노전'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기상의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것은 BC 707년 당시를 살면서 단군조선과의 전쟁을 겪고
그 사실을 자신의 저서 속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 발견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제나라의 재상 관자의 저서인 '관자'와 또 다른 사서인 '위략(魏略)'이다.
'위략'(魏略)은 역사의 사실적 기술로 인하여 '중국25사' 목록에서 제외되었다고
믿어질 정도로 역사기술이 중국내 여타의 사서와는 달리 객관적이다.
또 춘추필법의 위선적 태도는 양계초(1877-1930)의
‘중국역사연구법(中國歷史硏究法)’에 다음과 같이 잘 지적되고 있다.
“중국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목적을 위한 추초(짐승먹이 풀)구축의 노릇을 할 뿐이다.
그 결과 억지로 중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위조하여 사가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
이 악습은 공자의 수법에서 나와 2천년 동안 중국역사가 그 악습을 탈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사마천 사기의 실체는 철저한 중화주의 사관의 결과물에 불과했던 것이며
이러한 중국중심의 태도는 현대의 동북공정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4.역사를 통해 배우는 교훈
과거의 기록인 역사는 현재의 교훈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어야 더욱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러한 교훈의 관점에서 과거 사마천등이 중화주의 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을 때
우리가 거기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아쉽게도 당시 우리 선조들께서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 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그 이후의 우리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오히려 사대의 굴종주의에 빠져 사마천 사기를 역사 교과서요
또 우리 자신의 역사를 서술하는 지침서로 까지 삼아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왜곡하고 마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로 우리 한민족은 종래의 삶의 터전이어 왔던 대륙의 땅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한반도의 좁은 강역으로 쫓겨 들어 와 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민족적 기상을 단 한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끌려오며 살아 올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분명 민족의 혼인 역사를 잃어 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한 한가지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5.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
그런데 우리가 역사문제에 접근할 때
아전인수식의 국수주의적 태도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것은 중국이 그것을 통해
자국위주의 국가이기주의 논리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을 반대한다면서 우리도 역시 국수주의 논리에 빠져
역사를 가지고 자기 고집을 부리게 된다면
그것은 또다른 동북공정의 출현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또다른 동북공정의 배태를 경계하면서
지극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토대위에 서서 우리 역사를 지키는 길은 무엇일까?
그 첫 출발은 역사 앞에 지극히 솔직하고 겸허한 자세로
서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우리가 역사를 간직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확실히 하여야 하는 것이다.
역사 그 자체를, 우리가 선조이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으로서,
거기에 포함되어 있을 애환인 슬픔과 즐거움,
환희와 고통의 기억 그 전부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한 삶의 흔적 전부가 역사이며
따라서 역사 속에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어야 되는 법이다.
특히나 그것이 오랜 역사성을 자랑하는 민족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 한민족의 오랜 과거역사는 그대로 현실을 사는 우리 자신의 거울이 되며,
앞으로도 쭉 민족 공동체로서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 무엇보다도 더한 존재의 명분이자 구심력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벌이면서
고대사의 영광을 우리와 다투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역사는 오직 승리자의 역사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았던 일만 기억하고 나빴던 일은 기억하지 말기로 한다면
그 것은 역사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왜곡된 역사인 것이며
그것은 현실의 삶에 아무런 명분이 되어주지를 못한다.
현실이란 좋은 일만 있는 법이 아니다. 현재의 삶이 어렵다고 포기해서도 않된다.
역사를 구미에 맞춰 선택적으로 기술하고 기억하려는 태도는
자신에게는 항상 좋은 때만 있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철부지의 심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허구적 역사위에 서 있고자 하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실제 역사왜곡의 위험은 여기에 있다. 결국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중국이 벌이고 있고,
과거 중국이 벌여 온 잘못은 반드시 응보를 받게 될 것이다.
과거 중국한족의 역사가 변방의 이민족에게 점령되어 살아 온 역사로서
점철 된 것도 어쩌면 그러한 응보의 댓가였는지도 모른다.
좋은 과거만 기억하려는 민족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거기에 대한 항거의 정신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6.동북공정은 결국 역사문제
이번 동북공정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대국임을 자처하는 중국의 치졸함과 엉뚱함이다.
동북공정은 북한의 붕괴 후를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해석은 일견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지난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 이후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방관계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 정권이 아직 건재한데 적국도 아닌 우방간에
붕괴 후 운운 하면서 그 땅을 노릴 수 있는가?
정상적으로는 그러한 식 보다는 현재의 북한 정권을 돕거나,
차후에 친중국 정권을 세우고자 공작을 꾸미려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중국은 북한의 동조하에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아니면 북한과의 동맹관계 마저 이미 청산하고 그것을 진행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진실이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위협으로 중국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동북공정을
역사문제가 아닌 정치논리로 접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여전히 동북공정은 역사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역사를 지키는 민족은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살아 남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이 어떤 정치적 야욕을 품고 있다 할 지라도
그 야욕을 실현시킬 무기는 무력보다는 역사말살 쪽을 선택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은 한반도 공략에
역사문제를 활용할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7.국내의 안이한 역사인식 비판
사실 동북공정이 지금처럼 현실적인 차원에서 국가간의 시비로 불거져
국가적 위기로 까지 치닫게 된 데는 국내 정권의 안이한 역사인식이
일정부분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는
국사교육이 1학년 때 국민공통교육과정으로 포함되어 있을 뿐,
2학년이후에는 선택과목으로 빠져 있다.
즉 윤리, 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 경제, 정치, 사회문화,
법과사회,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 등의 과목들 중에서 2과목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또 중요한 국가고시에서도 역시 국사는 잘해야 선택과목 정도의 위치로서 밖에 취급되지 못하고 있다.
사법고시에서는 1997년에 벌써 제외되었고 나머지 고시에서도
2007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시험을 보고 그 이후부터는 시험과목에서 제외시킨다고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현장에서 민족의 역사를 가르치는
국사교육을 퇴출시켜 버리고, 그 결과로 무엇을 기대하였는가?
자신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역사는 줄줄 꿰는 국적불명의 한국인들이
나라 일을 책임 맡고 민족을 운운한다면 우습지 않는가?
그래서 개그맨들이 웃자고 만든 말임에도
그것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훈민정음을 창제한 분이 이순신장군이예요?’ 하고
묻더라는 어이없는 멘트를 가지고 말이다.
8.동북공정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
사람이 정신을 잃어버리면 생존할 수가 없듯이,
민족이 역사를 잃어버리면 더 이상 공동체로서 존속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중국인들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음모는
한민족의 존속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동북공정을 통해 벌이고 있는 중국의 음모는
결국 피차간에 얻을 것 없는 공멸의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
역사왜곡은 한중 양국에게 모두 정체성과 가치상의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금의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들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시대착오적 넌센스로 여겨지기 까지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중국의 망발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중국인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이 시대착오적이고 정신빠진 장난의 결과로
그들이 결국 어떤 낭패를 당하게 될 지는 우리의 관심밖의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들의 음모에 말려들어 잘 못 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러한 제반의 중국정부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있기 까지는 적극적인 대처는 보류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전부다.
이렇게 태연하게 있다가 내 집에 불이라도 붙으면 그 때서야 ‘불이야’하고 나서면서 따지려는 속셈인가?
그 때는 이미 내가 살 집은 다 타버려서 길거리에 나 앉아 있을 것이다.
동북공정이 진행되어 온 지난 5년간 이미 중국 정부는
여러차례 말을 바꿔 가면서 동북공정의 문제가 공식화되는 것을 피해 왔다.
그러면서 뒤로는 그것의 진척을 적극 지원해준 징후가 농후하다.
이제 동북공정이 백두산공정으로까지 이어져 세계 속에 그들의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음흉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시도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여전히 중국 정부의 공식 표명을 기다려 적극적인 대처를 미루려 하는가?
9.동북공정 극복을 위한 제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이상 방관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서둘러 국가적 차원에서 응당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로서 먼저 각급 학교교육의 커리큘럼에
국사교육을 다시 필수과목으로 추가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각종 시험에 국사과목이 빠지지 않도록 의무화 시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금 정부가 나서서 취할 수 있는 조치로서
가장 소극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조치인 동시에 당장에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조치들을 시행하는데 시간을 끌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국제사회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대외적으로 정부가 적극 나서서
동북공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어렵다면,
중국정부가 지금 하고 있듯이
우리도 민간차원의 역사찾기 운동을 일으켜 맛불작전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한다.
또 동북공정의 부당성을 성토하며 진위를 바로잡으려는 뜻있는 학자들을 내세워
전 국민 차원에서 우리 역사를 지키려는 운동이
확산되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상생실천운동본부 역시 민족의 정통성사수 차원에서
이번 중국의 악의적인 역사왜곡 음모에 대항하여
정의의 기치를 드는데 있어 한발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같은 순수 민간의 모임체에게 정부는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10.위대한 한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동북공정 음모를 분쇄하자
중국정부가 공식적인 표명을 유보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은
오직 동북공정이 가시적 성과를 거둘 때 까지 그것을 보호하자는 의도밖에는 없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 역시 국내의 민간단체를 내세워
우리 역사를 지켜내는 노력을 기우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결코 당파적 이해나 학문적 아집이 개입되어서는 않된다.
오로지 우리역사 사수라는 하나의 목표로 통일된 국민적 단합이 중요할 뿐이다.
얼마 전 월드컵에서 단합된 한국 국민의 힘이
전 세계에 길거리 응원문화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 냈듯이,
이번 중국의 악의적인 동북공정에도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그들의 음모를 분쇄하여야 한다.
그래서 세계 속에서 한민족의 참역사와 삶의 흔적을 온전히 지켜 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야말로 지구촌이라 할 정도로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합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세차게 일고 있는 그런 때이다.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로 윽박질러 되는 세상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크다고 해도 전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중국이 힘이 세다고 해도 전체 인류를 다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인류전체의 존엄과 양심을 걸고 지금 중국이 벌이고 있는
역사 왜곡의 음모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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