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10)
바오로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목을 돕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을 향하여 '아들' 이라고 불렀다. 티모테오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고(2티모1,2), 티토를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라고 했다(티토1,4).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이라고 지칭된 오네시모스 역시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거듭났으며, 바오로의 사목을 많이 도운 것으로 나온다.
'얻은'(낳은)이라고 번역된 '에겐네사'(egennesa)의 원형 '겐나오'(gennao)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남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여기서는 전존재의 변화를 나타낸다. 전에는 죄를 짓고 도주한 노예였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다.
바오로는 랍비 문헌이나 쿰란(Qumran)문헌에서 발견되듯이, 학생들에 대한 영적 부권(父權)의 측면에서 오네시모스를 대했다. 바오로가 오네시모스를 영적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 안에서 갖게 되는, 교사와 제자와의 관계를 말한다.
한편, '오네시모스'는 '유익한 자'라는 뜻으로, 당시 노예들 가운데 흔한 이름이었다. 오네시모스는 콜로새 출신의 필레몬의 이교도 노예였다. 당시 콜로새 출신의 노예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이 많았고, 게다가 자신의 집에 해를 끼치고 달아난 오네시모스의 행위는 주인 필레몬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이 서간을 접한 필레몬은 본절에서 오네시모스란 이름을 대했을 때, 깜짝 놀랐을 것이다. 즉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도망자 노예가 바오로의 영적 아들로 거듭났다는 소식이 그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내 심장과 같은 그를'(12)
'심장'으로 번역된 '스플랑크나'(splangchna)는 7절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단어로서, 본래는 '창자', '내장'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내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이 단어는 긍정적 감정 즉 친절, 자비심, 동정심과 같은 추상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주인의 마음에 이러한 긍정적 감정을 갖도록 해주는 종이나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당시 부모들은 자녀를 가리켜, 자신의 '스플랑크나'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따라서 바오로가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오네시모스에게 자녀를 향해 나타내는 끓어넘치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친자식 이상으로 자신의 심장처럼 극진히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가 비록 노예였지만 회개하고 돌아와, 자신을 섬기는 그 모습 속에서 마치 아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극진한 사랑과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회심한 오네시모스는 이미 바오로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주인 필레몬으로부터 오네시모스가 용서함을 받아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기에, 심복같은 그를 일단 필레몬에게 보내는 것이다.
<피앗사랑 rigel 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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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