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그들은 영인이 좀 더 밝고 명랑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온갖 신경을 쓰며 주말이나 휴일에는 두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 야외로 나가거나 공원을 찾아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희영은 도시락을 준비를 하면서도 두 아이와 함께 한다.
“누가 엄마가 김밥 싸는 것을 도와줄래?”
“엄마, 제가 도와드릴게요.”
보라가 나선다.
영인이 역시 말은 하지 않아도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온다.
“영인이도 엄마 도와줄래?”
영인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영인아!
우리 영인이 목소리를 엄마가 듣고 싶은데 영인이 목소리로 대답해 줄래?“
”네,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래, 엄마가 아들과 딸이 도와준다니까 참으로 행복하다.
“자, 엄마 따라서 해 볼까?”
희영은 그렇게 두 아이를 데리고 김밥을 준비한다.
영인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진다.
“영인아!
재미있어?“
”네!
엄마, 근데 우리 정말 소풍가요?“
”그래, 우리 영인이 좋으니?“
”네!
진짜 좋아요.“
영인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내 보인다.
희영은 그런 영인이를 보면서 안도하는 마음이 된다.
그렇게 영인은 조금씩 가족이 되어간다.
어린이 집에서도 처음과는 달리 조금씩 활발한 행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영인이의 모습이다.
의태와 희영은 두 아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자라주는 것이 고맙고 대견스럽다.
김정숙은 아들이 또 아이를 더 입양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만 자리에 눕는다.
남편의 엄명으로 아들의 집으로 찾아갈 수도 없다.
그대로 생병이 나는 김정숙이다.
어떻게 내 아들이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을 데려다 키운다는 말인가?
금쪽같은 내 아들이 어쩌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에 천불이 일어난다.
고생을 하며 돈을 벌어 쓸데없는 남의 자식들에게 모두 쏟아 붓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여보!
나 서울 좀 다녀와야겠어요.“
”못가!“
“글쎄 당신은 우리 의태가 저러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겁니까?”
“의태가 어때서?”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의 자식들을 왜 거둡니까?
뼈 빠지게 벌어서 왜 그런데다 낭비를 해야 하느냐고요?“
“이 여편네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의태가 어떻게 살든 그것은 그 애의 몫이고 삶이야!
당신이 나서서 상관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정신 차리고 구구로 잠자코 있나 해!“
정씨는 아내를 향해서 언성을 높인다.
그러나 김정숙은 남편의 말을 받아드릴 마음이 없다.
어떻게 하든 서울로 올라가 그 아이들을 내 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남편의 서슬에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당신 내 말을 명심해!
또 다시 서울로 올라갔을 때는 더 이상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어!
내 귀에 들어오는 즉시 이 집이 아니라 당신은 정신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
“..............................”
김정숙의 깊은 한숨이 땅을 꺼지게 할 것만 같다.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서울을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 김정숙은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고 있다.
남편의 말은 위협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고도 남을 남편의 성품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김정숙으로서는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그렇게 김정숙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태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두 아이를 키우는 재미와 행복함속에 젖는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 모두 타고난 성품이 착하고 어진데다가 잔손이 가는 갓난아기가 아니라 그런지 부부는 큰 어려움이 없이 아이들을 키운다.
이제 영인이도 점차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가 지나 유치원에 들어간 영인이의 모습은 데리고 왔을 때보다도 얼굴이 환하고 활기가 차 있
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이제 보라와 영인이는 서로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영인이를 먼저 챙기는 보라다.
유치원에서 영인이를 데리고 와서 아주머니가 준비해주는 간식을 먹으면서도 늘 영인이를 챙기곤 한다.
“영인아!
이제 누나 학원에 다녀올게 아줌마 말씀 잘 듣고 책보고 있어!“
“응!
누나 올 때까지 동화책 읽고 있을게!“
영인이는 보라가 한글을 가르쳐 모든 글을 쓰고 읽는다.
누가 보더라도 남매의 모습이다.
부부는 그런 보라와 영인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보라아빠!
이번 여름휴가를 당신과 날짜를 맞추었으면 하는데 어때요?“
”둘이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바캉스라도 가려고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그래?
정말 좋은 생각이네!
어디로?“
”여름이니 당연히 바다로 가야겠지요.
그리고 날짜는 영인이가 방학을 하는 기간으로 맞추었으면 하는데 마음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영인이 방학기간을 알려주면 그렇게 조정을 하도록 할게!“
의태는 두말없이 승낙을 한다.
지금까지 아내와 단 둘이서 바다를 가 본 적이 없다.
보라를 데리고 와서도 바캉스를 떠나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삶이다.
아직은 직장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부는 그저 남들 이야기로만 흘려듣기만 하고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둘이다.
아들과 딸이 얼마나 피서를 가고 싶을 것인가?
여름이면 집집마다 모두 피서를 떠나는 것을 아이들의 눈에도 보일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말로서 표현을 하기 보다는 그저 안으로 삭이며 참아야 한다는 것부터 배우는 어린
아들과 딸이라는 것을 희영은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아직도 부모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여름휴가 장소를 신중하게 선정을 한다.
희영은 유치원의 방학날짜를 알고 나서 자신의 휴가날짜를 맞춘다.
의태 또한 아내와 같은 날짜로 맞추고 나서 그들을 아이들의 수영복과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해 온 가족이 쇼핑을 한다.
“엄마!
우리도 정말 바다로 피서를 가는 거예요?“
보라는 믿기지 않다는 듯 묻고 또 묻는다.
“그동안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피서를 갈 생각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 우리도 남들처럼 피서도 즐기면서 살자.“
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한다.
생전 처음으로 예쁜 수영복을 구입한 보라는 수영복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이리 보고 저리 만져보면서 행복해한다.
영인이는 물놀이 용구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튜브와 공 물안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것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기도 하고 공을 튀겨보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보라에겐 우리가 얼마나 미숙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부모였던 것 같소.”
의태 또한 두 아이가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며 여행날짜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부모로서 미숙했던 것을 생각해 낸다.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으로 부모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든 것을 알아주면서 함께 하고 깊은 사랑으로 보듬어 주며 감싸주고 이해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 부부는 배워간다.
여행 전날 보라와 영인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비가 오면 어쩌나 늦잠을 자서 자신만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들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보라와 영인이다.
출발 준비는 이른 새벽부터 북적인다.
희영은 가족들이 먹을 주먹밥과 간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다.
의태 또한 그런 아내와 손을 맞추어가며 준비한다.
“자, 이제 출발을 해도 되겠지?”
“네!”
“네!”
두 아이의 대답은 힘이 실려 경쾌하고도 맑다.
의태는 이미 모든 짐들을 승용차에 다 싣고 난 뒤다.
가족들이 집을 나서자 의태는 모든 집안의 문들을 다시 확인하고 집을 나서며 현관을 잠근다.
도우미 아주머니 또한 휴가비를 드리고 자신들이 없는 동안 휴가를 주었다.
사박 오일동안 비어있을 집이다.
의태가 그렇게 가족들을 태우고 동해안으로 출발을 할 때 김정숙 또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남편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사이에 서울로 올라오는 김정숙이다.
나중이야 어찌 되었건 며느리를 만나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호통을 치지 않으면 가슴에 병이 들어 죽을 것만 같다.
아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들만 같고 아들이 불쌍해서 이대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남편은 이른 아침 일박 이일 예정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사이에 서울로 올라오는 김정숙이다.
김정숙이 서울역에서 내린 것은 정오 무렵이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탄다.
급한 것도 급한 일도 아니건만 김정숙의 마음은 초조하고 급하다는 생각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간 아들의 집이 비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집의 잠금쇠 번호를 알고 있는 김정숙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자신이 열고 들어가 집안을 살펴보고 아이들의 방을 모두 살펴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들의 돈이 얼마나 새어 나가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을 해 볼 것이다.
택시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고 아들이 사는 곳에 머물자 택시요금을 지불하고 급하게 뛰어 엘
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엘리베이터는 맨 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조급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아랑곳없다는 듯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야속하고 중간에 잠시 멈추는 시간마저도 피를 말리게 한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내리고 나서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