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성녀 체칠리아(연대 미상)는 로마에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고, 크리스찬으로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성녀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결혼하였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남편이 자신의 동정을 존중해주도록 설득시켰고, 마침내 크리스찬으로 개종시켰다.
그후 그녀의 남편과 오빠 티부르시오가 순교하자,
체칠리아 역시 이방 신전에 끌려가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써 참수치명한 것이다.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아주 뜻밖에도 자신의 결혼식 때에 그녀가 결혼 음악과 환호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체칠리아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이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초대 교회가 그녀에게 바친 영예에 대한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4세기 후반의 단편적인 기록이 그녀의 이름을 딴 교회를 언급하고 있고 그녀의 축일은 적어도 545년에 와서 경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체칠리아는 발레리아노라는 로마인과 약혼한 높은 신분의 젊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영향으로 발레리아노도 개종하고 그의 형제와 함께 순교했다.
체칠리아의 죽음에 관한 전설은 칼로 그녀의 목을 세 번이나 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살아 있다가 교황에게 자기 집을 교회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고 죽었다고 한다.
문예 부흥기 이후 그녀는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른 착한 그리스도인처럼 체칠리아도 마음 속으로, 때로는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녀는 훌륭한 음악이 전례의 내적 요소이며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교회에 크나큰 가치가 있다는 교회의 확신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 음악의 혼란 상태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몇 마디 말을 상기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부제들이 보좌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전례 의식을 노래로 성대히 집전할 때, 그 전례 의식은 더욱 고귀한 외양을 갖춘다. …성가대가 부단히 육성되어야 하는 바, 특히 주교좌 성당에서 그렇다.
그와 동시에 주교들과 기타 영혼의 목자들은 노래로 거행되는 어떠한 전례 의식에 있어서든지, 모든 신자들의 무리가 그들에게 속한 부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 돌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