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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바고문화사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용고뚜리는 한자로 龍貴乭로 쓰는데 병자호란때 조선을 침략한 여진족 장수 용골대를 이른다. 여진말로 타타라 잉굴다이(1596~1648)이며 용골대는 호란을 전후해 조선을 드나들며 처음 담배를 접했고 곧 엄청난 골초가 되었으며 청나라에 담배 무역을 하는데 깊숙하게 개입했다. 그리고 청나라 귀족층과 왕인 홍타이지까지 골초로 만들었다
조선 국왕이 청 칙사에게 하사한 담배 목록기록
홍타이지가 담배에 여진족 병사들이 너무 빠지는것을 경계해 금연령을 내린 교서가 위에 있다. 그러나 병사들이 불만을 표시해 바로 금연령을 거두어 들였다한다. 물론 홍타이지도 골초였다.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사업을 한것 중 담배교역이 가장 큰 사업이었다한다. 주로 일본에서 수입한 지사미라는 얇게 썰어 말린 담배였는데 처음엔 수입했다가 곧 국내에서 생산해 청에 조공도 하고 팔기도 했는데 여진족 전체를 골초로 만들었다 한다.
용골대는 담배교역과 조공에 깊숙이 개입했는데 조선 사람에게 용골대는 담배를 잘 피우고 맛을 잘 분간하며 담배를 탐욕스럽게 구한자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용골대는 골초의 대명사로 둔갑했다. 용고뚜리는 잉굴다이의 발음이 조금 바뀐것이다.
19세기초반 이상적은 "담파고부"에서 "담배맛을 잘 분간하는 귀뚜라미는 속이기 어렵고 품질을 따지자면 지네 다리와 같이 고급이지"라고 했다. 귀뚜라미는 용귀뚜라미의 약칭이다. 이상적은 주석에서 "용귀뚜라미는 담배맛을 잘 분간하는 옛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용골대의 예에서 볼수 있듯이 한양에 온 청나라 칙사는 장소를 불문하고 입에 담뱃대를 물고 연기를 뿜어댔기 때문에 예절도 모르는 골초로 받아들여졌다.
철록어미는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철록어미나 용귀돌이나 담배를 잘 먹는다"는 속담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철록어미도 인명으로 보인다. 어감상 그도 용골대처럼 담배유행의 초창기에 담배연기를 뿜어대던 이름난 여진족 골초의 하나였을 것 같다
1610년 조선에 담배가 일본에서 처음 약용으로 들어왔다가 급속히 퍼지다가 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에 담배가 들어갔는데 중국 중북부 지역에 담배가 퍼진것은 거의 조선을 통해 들어간 담배때문이었다한다. 홍타이지 이후 섭정이었던 도르곤도 엄청난 골초이었는데 이때 어렸던 순치제는 시도때도 없이 연기를 뿜어대며 담배피우는 걸 무척 싫어했다한다. 결국 강희제는 아예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청나라에 유럽에서 들어온 코담배가 유행하게 되었다한다. 당시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보기에 여진족들이 한족에게 강제로 흡연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호란을 통해서 조선도 심하게 당했지만 용골대를 통해 여진족들을 급격히 골초로 만들어 청의 몰락에 기여한 점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때 독한 조선담배맛을 봤으니 영국이 들여온 아편도 쉽게 퍼졌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