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잃어버린 보물 보물을 찾아라 최고 보물 4점, 100억위안 한화2000억원 넘는다
소스:EK 이페어케이 플러스
인류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매우 귀중한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는 최고의 국보라고 할 수 있는 네 가지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값어치가 없는 보물이며, 백억, 천억을 주고도 살 수 없으며, 또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바로 행방불명이다.
첫 번째는 북경 원인 두개골입니다.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인류의 기원을 배울 수 있다면, 유명한 북경 원인에 대해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우리나라에는 70만 년 전부터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간단한 생산도구를 돌로 다듬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원시인류가 살고 있으며 간단한 언어와 손짓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고 한다.이들은 현재의 베이징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베이징 원인(北京人人)'으로 불렸다.
북경원인의 두개골은 1929년 겨울에 출토되었는데, 당시 비교적 완전한 북경원인의 두개골 6점이 발굴되었으며, 북경원인이 사용했던 간단한 석제 도구와 일부 치아와 두개골 파편이 출토되었다.이 북경 원인 두개골은 연구 가치가 높고 사학계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 대체할 수 없는 국보라고 할 수 있다.베이징 원인 두개골은 일본군이 중국을 침공하자 문화재 보호를 위해 미 해병대에 보관 의뢰했다.이 해병대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큰 타격을 입었고, 이들이 보관하고 있던 문화재들도 모두 소식이 끊겼다.
두 번째는 헌원검입니다.예로부터 보검과 영웅은 명나라 장수 이승훈이 일찍이 천하의 명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명검기》를 썼는데, 그중에는 보검이 있는데, 이를 헌원검이라고 한다.헌원검은 헌원황제가 수산에서 생산한 구리를 채취해 직접 주조한 것으로 매우 날카롭고, 검에는 천문 고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전설에 따르면 헌원황제는 이 검을 대우에게 물려줬고, 대우는 나중에 이 검을 상탕에게 물려주고 행방을 감췄다고 한다.『광황제동행기』는 헌원검이 헌원황제가 죽은 뒤 부장품으로 교산에 묻혔고, 500년 뒤 교산이 붕괴돼 부장된 묘실에는 이 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나중에 헌원검을 잃었다는 고서다.
셋째, 화씨벽.화씨벽의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완전히 조가 들려준 것이 바로 이 미옥의 이야기이다.나중에 조나라는 이 화씨벽을 진나라의 왕인 영정(,政)에게 자진해서 바쳤고, 영정은 이 미옥을 얻어서 매우 사랑했고, 명수공은 이 미옥을 전국옥새로 만들었고, 이 전국옥새는 제왕의 증표가 되었다.그 후 이 전국옥새는 많은 왕조의 국군과 난세의 효웅들의 손에 돌아갔는데, 이 전국옥새를 갖는 것은 곧 합법적인 제왕의 자리를 갖는 것과 같다고 여겨졌다.이 전국 옥새는 왕조가 바뀌면서 빼앗겼다가 황위 교체로 어수선한 오대십국에 이르러 완전히 행방을 잃었다.
넷째, 왕희지의 서예 작품 난정집서.서기 353년의 어느 봄날, 한 무리의 문인아사(文人的士)들이 회계산음(會山山陰)의 난정(亭亭)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그들은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곡수는 술잔을 기울이며 즐겁게 놀았고, 많은 사람들이 흥에 겨워 시를 썼다.왕희지는 이 집회의 주최자로, 이번 아집을 위해 서문을 만들고 이 서문을 손수 썼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난정집서>이다.이 서예 작품은 '천하제일행서'로 불리며 예술적 가치가 높다.당 태종 이세민은 왕희지의 서예 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그의 진적을 많이 수집하였는데, 이 진적은 대부분 당 태종의 부장(葬葬)이 되어 땅속에 묻혔다고 한다.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난정집서'는 당나라 서예의 대가 풍승소가 모사한 것인데, 이것도 당 태종이 가장 만족스럽게 모사한 작품으로 원작의 신운에 매우 가깝다고 한다.난정집서의 진적은 당나라 이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최고의 국보는 또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