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계엄하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입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초중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억압받고 피곤하고 짜증나는 시간도 습관화되면 버릇이 되는 것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때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로부터 계엄령이 발령됐지요. 밤 12시에서 새벽 4시까지는 통행이 금지됐습니다. 20년이상 계속된 통행금지령속에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왜 밤 12시부터는 통행을 하면 안되는지 왜 성탄절과 12월 31일에는 통행금지령이 해제되고 아버지 형들이 밤새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술마시는 것이 일상화됐는지 의문도 갖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선진국들에서 그나이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 지금 처한 이런 현실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문도 가지고 따져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유일한 즐거움이랄까 낙은 친구와 학교앞에서 떡볶기먹고 몰래 숨어 담배피고 대학교때는 학교앞에서 막걸리 마시는 것이 나름 찾을 수 있는 행복이랄 수 있었습니다.
고교시절 선생님이 눈에 불을 켜고 분필을 분질러가면서 칠판에 무엇인가 가득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 선생이 부인에게 뭔가 엄청 혼났나 하는 정도로 판단했습니다. 유신헌법 개정으로 영구 집권을 획책하는 조치등에 따른 선생님의 울분이라는 것을 짐작도 못했습니다. 나름 젊은 선생으로 부임해 오면서 뭔가 불만인 표정으로 교단에 섰던 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릴 정도의 정신세계를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들어간 대학교에서는 매일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고교시절 세상물정을 배우지 못한 정신소유자는 그냥 그런 모습이 싫어 대학교 근처 술집에서 술마시는 것으로 세월을 소비했습니다. 무엇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군인들이 탱크를 주둔시키고 학생들은 매일 돌맹이를 던질까에 대한 생각은 못한채 그냥 피곤한 세상 술로 해결하는 그런 세월을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낙은 몇 안되는 친구들과 젊음이라는 안주로 술마시고 어쭙지 않은 운동을 하는 것이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밤이었습니다. 제가 대학 4학년때이지요. 다음날이 제 아버지의 환갑날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부엌에서 전과 요리를 만들고 형들은 아는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근처 양조장에 술배달을 주문하면서 그렇게 밤이 되었습니다. 고시공부라느라 늦게 군대에 간 제 바로 위의 형이 도착하면서 내일 환갑연의 흥분은 고조됐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환갑날 사용하려한 모과주 가운데 한통을 형제들이 다 마신 그날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새벽 그러니까 1979년 10월 27일 새벽입니다. 밤새 마신 술을 해장할겸 6형제가 모두 근처 목욕탕에 가서 텔레비젼을 보는 순간 전국에 걸쳐 계엄령이 발령됐다는 것입니다. 제 바로 위의 형은 옷을 입자마자 군에 귀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부터 통행금지가 실시됐습니다. 아버지의 환갑연은 그래도 새벽까지 진행됐습니다. 인근 파출소 경찰관이 여러번 이러면 안된다 법의 저촉된다고 압박했지만 아버지는 무시해버렸습니다. 3일 생각하고 준비한 술통이 그날 밤 모두 소진됐습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10반쯤입니다. 한국에 계엄령이 발령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 최고 권력자가 유고상태인 모양이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계엄을 내린 주체가 대통령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유고가 아니고 북한군이 처들어 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은 야당이 하도 야단을 쳐서 힘들고 지지율이 저조한 것도 야당의 잘못이고 야당인사들이 종북사상에 몰입돼 있고 의사들이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 의료대란을 일으켰으니 그런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부득이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나름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33년 이상을 소비했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를 터득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야당이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문제를 해결할 주체인 검찰이 제 역할을 안하니까 특검이라는 것을 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자신의 통치에 발목을 잡는다고 판단한 것이나, 종북세력을 척결한다는 전두환 노태우 시절 이야기를 지금 다시 들먹이는 것이 얼마나 시대적으로 뒤쳐지고 예전 미국의 매카시 선풍을 염두에 둔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매카시 선풍은 1950년대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인 트럼프도 러시아 푸틴과 유대관계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도 다시 매카시 선풍이 일어야 합니다. 트럼프를 공산진영 추종자로 처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북한의 김정은 시스템에 반발하고 극혐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국민이 뽑은 야당 대표들을 종북세력으로 보는 그 시각이 너무도 우려스럽고 웃기기도 합니다. 그런 정신상태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또 회담을 한다면 트럼프를 처단해야하는 주체로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곧 있어 발생할 한미 정상회담에 어떤 스탠스로 나설까도 우려스럽습니다.
계엄령 포고령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병원을 벗어난 의사들이 즉각 의료기관으로 복귀하지 않을 시에는 처단하겠다는 지시입니다. 의사들을 겨냥한 것 아닙니까. 의사들까지도 적의 개념으로 판단하는데 대해 의아심을 넘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사들의 행위를 통치에 저항하고 종북세력이자 이 나라를 좀 먹는 집단으로 판단하는 것이 너무도 걱정스럽습니다. 물론 의사들이 행하는 집단행동에 대한 불만세력도 당연히 있습니다. 의대 정원 증원하자는데 왜 그렇게 집단행동을 하느냐하는 지적을 하는 부류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으려 않고 단지 그들의 정부조치에 저항하는 자세만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그것을 계엄 즉 군대의 힘을 빌어 무자비하게 진압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너무도 의아스럽고 그야말로 말이 되지 않는 발상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1979년 10월의 비상계엄은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살해되는 상황에서 자칫 나라의 대단한 위협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에 대비한 조치로 판단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권력자가 죽으면 상당한 혼란과 혼동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물론 기득권 세력이 야당 등 피곤한 세력에 대한 대비태세로 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2024년 12월 비상계엄은 이유도 명분도 까닭도 1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그야말로 웃기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상계엄령 발령이 갖는 의미는 너무도 많고 확실합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2024년 12월 5일) 국회 국방위에서 있은 일에서 과연 이런 인물들에게 한국의 국방을 맡기고 밤에 편안 잠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가증스럽고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회 국방위에 참석한 국방부 차관(장관이 바뀌었음)과 계엄사령관의 자세와 답변입니다. 그들은 모두 그런 상황을 잘 몰랐다 자신들은 그냥 위에서 시키는데로 했다고 답했습니다. 상황이 대단히 불리하게 돌아가니 면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모두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시키는데로 했지 자신들은 계엄의 성격과 특징 그리고 해야할 일도 모른채 병력을 급파하고 한국의 국회를 장악하려 했다고 진땀속에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사실상 저는 그들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 너무 힘들고 이러다가 나라가 망할 지 모른다는 걱정과 우려속에 이룬 행동이고 다시 그런 지시가 내려와도 똑같이 행할 뿐이라고 답하는 것이 그나마 듣기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전두환의 둔마인 장세동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국방차관이나 계엄사령관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위의 지시에 따라 행한 것이니 선처를 부탁한다는 그런 말로 일관하는 이런 상황에 저는 너무도 좌절하고 실망하고 짜증이 납니다. 정말 이런 인간들이 군의 최고 위치에 있는데 그들을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군가가 너무도 하잖고 부질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정말 국가적 위기사태 즉 북한군의 침범같은 일이 일어났을 경우 군최고 지휘관들이 이렇게 별볼 일 없고 긴장상태가 해이한데 무슨 국방이고 안보가 유지되겠는가 하는 처참함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모 지자체 장은 이번 사태를 해프닝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게 무슨 해프닝입니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사태를 해프닝이라고 바라보는 그 시각이 나라를 정말 패망시키고 힘들게 할 것입니다.
미국이 지금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대통령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미국을 움직이고 운영하는 시스템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4년 또는 8년에 바뀌지만 미국의 시스템은 변동없이 유지되기에 지금 세계를 리더할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 권력자가 이상한 행동과 판단을 해도 아래에서 받아드리는 참모들의 판단력 그리고 사고방식이 그 나라를 수렁에서 구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하라니 합니다라는 발언은 자신은 영혼이 없는 좀비라는 말과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우려스럽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배경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위에서 하라는 데로 그야말로 까라면 까는 그런 생각으로 나라를 운영하고 특히 국방을 운영할 생각을 하는지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하라고 해서 계엄포고령을 제대로 검토도 안하고 병력을 국회로 급파하고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과 방송 관련자들을 체포할 생각을 하는지 정말 2024년12월 이 순간에 상상도 못할 전율속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이 왜 지지율이 바닥인지, 왜 야당이 그렇게 특검발의를 위해 나서는지, 여당내에서도 반윤파가 생기는 지, 의료대란은 왜 생겼는지, 자신의 부인과 장모의 문제는 없는지 등등을 곰곰히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고 따지고 문제를 삼는 그런 비판세력을 군대 즉 폭력을 동원해 처단하겠다는 그 사고방식자체가 정말 무섭게 다가옵니다. 서울대 법대출신에 엘리트중에 엘리트인 대통령 그리고 그 주변에 모인 그 유능한 인재들이 결국 내놓은 시국돌파책이 계엄령이라는 그 자체에 할 말을 잊게 합니다. 이건 진보 보수의 측면이 아닙니다. 이 나라 즉 내 아이들 내 손주들이 살고 뛰어놀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 땅 그리고 이 시점에서 45년전 1979년 10월 마지막 발생한 그 계엄을 박물관에서 꺼집어 내서 최고 권력자에게 건의한 그 인물들은 과연 무슨 머리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그냥 궁금하고 의문스럽고 답답한 심정입니다. 한국은 정말 1979년으로 되돌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2024년 12월 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