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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세계 / 윤혜지
사로잡힌 세계 / 윤혜지 아무 때나 전화하고 싶어서 연인을 만들었어요 굴착기를 좋아하는 사람 병원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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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세계 / 윤혜지아무 때나 전화하고 싶어서 연인을 만들었어요굴착기를 좋아하는 사람병원 침대에 누워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자신이 부순 어떤 마을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상점들의 벽마다 방패 모양의 금속판이 촘촘히 붙어 있었는데 쇠와 쇠가 부딪히는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했고계피와 빵과 비누 따위를 얻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돌아가 또 무엇을 떼어낼까 골몰했습니다 수도꼭지든 뭐든 다 팔아먹고 거리로 나온다네요그것 참 쓸쓸하군요, 하며 웃다가 병이 깊어지고 말았습니다어느 날엔 저수지에 가라앉은 목각 인형을 건져올린 이야기도들었습니다 굴착기 끝에 닿은 인형의 마디마디가 부러져 나뭇조각에 불과해져버렸다고요나도 인간의 형체가 바닥났어요 그냥 조그맣고 쪼글쪼글한 조약돌일 뿐이에요,라고 하자 그는 달걀도 깨뜨리지 않을 만큼 얌전하게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뜨겁고 달고 부드러운 것을 먹이다 포기한 사이모든 것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데도 모든 병을 긁어낸 듯 말끔하게 나은 것만 같아그가 좋아하는 것을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옆집에서 개를 기르는지 험한 소리가 나서복도에서 보이지도 않는 개를 달래주고 나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파헤쳐지는 침묵뿐인데마스크의 안팎을 분간 못 해입을 멈출 수 없군요볕이 잘 드는 아파트이제 더 이상 팔아먹을 것도 없다고종일 기다리던 개가 말해주었습니다<문학과사회 2021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