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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고종은 내외의 강력한 퇴위 압력에 시달려...순종에게 강제로 양위를 당한다.
서양인의 기록으론 순종은 ... 즉위식에 참가 안했고...다른자가 대신 순종역으로 즉위식을 했단다.
이거 상식적으로 말이 않 됀다.
고종이 항상 두려웠던건...순종이 대를 잇기 어렵단 것이였다.
자기 대신 이재면을...이재면의 아들인 이준용을...
대원군이 끊임없이 일제의 힘을 빌려 앉이려 했던게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이다.
대역죄를 무려 3번이나 저지른 대원군과 이재면 이준용이였으나...
맘여린 고종은...아버지라 가택연금만 시키고...형과 조카라 이재면과 이준용을 살려주고 나중엔 형식적인 관직까지 준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조선을 다 먹은 일제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친일파였던 이재면을 상왕으로...그 아들 이준용을 새 왕으로 앉일건 뻔한 이치였는데...
이를 친일 내각들과 일제가 알아서들... 민황후의 아들인 순종으로 즉위시켜 준다면...
고종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고마운 상황였던 때이다.
고종과 순종은 차라리... 친일내각과 일제에 고마워했어야할 사안이다.
그걸 순종이 거절해 즉위식에 참가 않했단 것도 말이 안돼고...
차기 황제도 없이 누가 대신 황제복을 입고 즉위식에 참가했단 것도 말이 않됀다.
황제즉위식이 동양에선 어떤 행사인데...?
이를 종합해 보건데...
당시 일제와 친일내각들이 고종에게 양위하라 한 그 순종은...
민황후의 아들인 그 진짜 순종이 아닌...대원군과 친일파들과 일제가 ...그리도 목숨걸고 고종대신 앉이려했던...
이재면의 아들 이준용일 확률 99.999999999%일 수밖엔 없다.
이를 고종은 거부했던 것이고...
이미 을사보호조약 체결후 온 조정은 친일내각들이 휘젓던 때이고 보면...
고종의 의사와 무관하게...강제적 짝퉁 순종(이준용)의 즉위식이 거행됐다 보면 됀다.
이를 본 외국 언론은...
분명 순종이 참가하지 않고 누가 대신 황제복 입고 즉위식을 했다 기록한 것이다.
이후의 일제시대 사진들을 보건데...
고종이란 자의 사진은...대부분 다 이재면이다...수염이 왼쪽으로 심하게 휘었다...눈고리가 처졌다.
순종이란 사진은...아주 건강하다...아관파천기의 순종과는 인상도 전혀 다르다.
고종과 이재면은 형제지간이라...얼굴이 많이 닮긴 했지만...
고종은 온화하면서도 샤프한 인상을 주는 반면...이재면은 좀 미련스럽게 생기고 눈고리가 처졌다.
그래, 대원군이도 첫째 보단... 영민한 둘째인 고종을 조대비에게 양자로 밀었던 것이다.
밑의 사진들 비교해 보시져...
아관파천기로 보이는 러시아제복을 입은 고종과 순종사진입니다.
고종은 턱수염이 곧습니다.
순종은 가비(커피) 암살사건여파인지...을미사변때 심하게 당한 후유증과 함께...완전 중환자의 모습입니다.
건강이 아주 안좋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앞이빨이 벌어진 모습이 보입니다.
황태자가 사진찍으며...기본인 입을 다물지도 못합니다.
똑바로 서지도 못해 오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손에낀 장갑을 보십시오...
순종은 장갑을 그냥 마비됀 손에 억지로 걸친 형상입니다.
순종의 당시 사진모습은...
거의 다 죽어가는 중환자가 억지로 서서...마비됀 손에 흰장갑을 억지로 걸치고 찍은 사진입니다.
순종은 이후로도 골골 알다가 일제시대때 죽었다 하는데...
그런 순종의 일제시기때 사진은...아주 단단하고 건강한 모습입니다...?
손으론...놓칠까봐 칼도 꼭. 움켜 쥐었습니다.
얼굴도 아관파천기와 다릅니다...???
다른늠이 순종이라 설친정황이고...
다른늠이 고종이라 나댓던게 일제시기이란 정황입니다.
대원군과...이승만, 유길준,유치한, 이상재,서재필등등의 초기친일파인 독립협회(일본당)애들의 숙원대로,,,일제의 목표대로...
고종을 퇴위시키고...이재면을 상왕으로 앉히고...이준용을 왕으로 앉혀...고종과 순종으로 둔갑시킨 정황입니다.
어짜피 비슷하게 생겻고...당대 조정 측근들은 모조리 친일파로 갈렸으니...
누구하나 이늠 가짜라고 떠들늠덜도 없었던 땝니다.
당대 고종이 따로 가택연금돼어 있음을 핵심 각료들은 알았다 해도...
친일파들이고 일제고...이후부턴 이재면을 고종대신...이준용을 순종대신 내세워 조선통치를 했던 정황이며...
그래 일제기 의친왕과 짝퉁고종(이재면) 영친왕 덕혜옹주들이 찍은 가족사진이...
뽀샵을 가한 오려붙이기 조작이 들통난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고여...
민황후의 아들인 순종은...을미사변당시...
민황후가 일제에게 처참하게 능욕돼고 난도질로 살해당한걸 목격한 아들입니다.
일제에게 어딜 얻어 맞았는지...이후로 씨도 못받고...
황태자비 민씨는...민황후와 같이 고종의 침전인 곤녕합에서 궁녀복을 입고 위장전술을 펴다가...다른 궁녀들같이 당했다니...
대부분 가슴을 도래낸 만행을 당했던 궁녀들과 다르지 않았다 보이니...
민황후도 후대 가슴알이를 하시다 승하하셨단 얘기가 그것일건 뻔 합니다.
순종은 어머니의 너무도 처참하고 치욕스런 죽음을 목격했고...일제가 확인까지 강제로 하게 만들었고...
부인까지 저들에게 처참히 당한 후유증을 알타가 세상을 떠나...
그 원한은 골수에 사무치던 황태자입니다.
일제가...
이전부터 대원군과 공모해서...그리도 이준용을 조선왕을 만들려 그 개고생을 하고도...
정작 조선을 완전히 먹은 이후인 을사조약 이후에...일제를 천추에 사무친 원수로 알고있는 순종으로 즉위시켰다...?
0.00000000000001%의 확률도 않돼는 말도 않돼는 경우의 수입니다.
어쩜... 지금 홍릉에 묻혀기신 분들은...
친일파 이재면과 이준용일 확률이 많고...
남양주시 마석에 대원군 옆...초라한 납골묘로 옮겨진 이재면과 이준용의 묘는...
진짜 고종과 순종의 납골묘일 수도 있단 예상입니다.
민황후의 묘를 합장했단 현재의 홍릉엔...
민황후묘는 북경(원조 경성)에 있기에...옮기지도 않았을 확률 많다 봅니다.
밑의 기록사진들 보십시오...
분명 일제시기 나돌아 댕기던 고종이란 자는 이재면같이 수염이 오른쪽으로 심하게 휜 잡니다.
고종도 이재면으로 둔갑시킨 일제와 친일파들이...순종을 이준용으로 둔갑 못 시켰을 확률 역시 0.0000000001%입니다.
아관파천기의 순종 기록사진을 보건데...
순종은 반신불수에...중환자이고...몇 년 못가서 승하하셨을 확률 많습니다.
그가 바로 북경(원조 경성)에서 독살됐단...광서제일 확률 많다 보입니다.
비소가 광서제 머리카락에서 나왔다져...?
고종과 순종이 마신 가비(커피)엔...아편이 아닌...비상가루가 들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고종은 맛이 이상해 뱉았으나...
순종은 다 마셔 폐인이 됐다가...시름 시름 알다 죽었던걸...
역사 왜곡자들이 그를 서태후에게 암상당한 서태후 아들이라 조작을 한 거라 예상됍니다.
대원군...
지 며느리이자 일국의 국모가...
왜놈들에게 능욕당하고 난자당하며 숨을 거둘때...
궁녀들의 선혈이 낭자한 건청궁 곤녕전에서...고종에게 호통을 치며 정치협상 중이였고...
미우라가 입궐하곤 싱글벙글 희색이 만연해...
며칠후 궁중연회때는 미우라 주뎅이에 지 여물숫가락을 디밀며...고맙다고 최고의 아부를 떨었던 자랍니다.
이런 자가 조선황제의 아비이고 보니...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그게 더 기적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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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있는게 순종의 사진이란다...???
위의 아관파천 당시의 순종과 얼굴도 틀리고...칼을 꼭 움켜쥐고...무지 건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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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흥선대원군
오른쪽 맨 위 사진은 고종
아래에 있는 사진 두장은 흥친왕 이재면 (고종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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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사진이다.
온화하면서도 샤프한 인상이다..턱수염이 곧다.
고종의 어진이다.
틀림없이 턱수염이 곧다.
젊은시절 고종사진이다.
눈고리가 처지지 않고...온화하며 사프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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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기 고종의 사진이란다...??? 이재면과 같이 수염이 왼쪽으로 엄청 휘었다. 눈고리가 처지고 미련한 인상이다. 고종이 아닌 이재면을 고종이라 대신 앉혀놓은 사진같다.
눈꼬리가 처진 것으로 봐선 역시 고종이 아닌 이재면같다.
역시 눈고리가 처지고 수염이 왼쪽으로 휘었다. 고종이 아닌 고종으로 둔갑시킨 이재면의 사진같다.
밑에 모두는 역시 욕심이 많고 미련하게 생겼다. 턱수염이 왼쪽으로 심하게 휘었다...고종으로 둔갑한 이재면사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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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18일 영친왕가 관련 일기와 사진 등 주요 유물을 공개했다. 영친왕비의 친필 일기 1첩, 편지 39통, 엽서 121장, 사진 514장, 영친왕의 수첩, 다큐멘터리 필름 등 700여점이다. 덕수궁 함녕전에서 촬영한 고종(왼쪽)과 영친왕. 2010. 2. 18. < < 문화부기사 참고,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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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덕전에 치러진 순종황제의 강제 즉위식의 희귀한 그림이다.
이태진국사편찬위원장(한국사)이 2004년 동아일보에 제공한
이탈리아 잡지 ‘라 트리부나 일루스트라타’ 1907년 8월 4일자 표지에
실린 순종황제 즉위식 그림이다. 미국의 한국사 연구자인 캐럴 쇼 씨가
미국에서 찾아내 이교수에게 기탁한 그림들 가운데 하나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킨 뒤 1907년 7월 20일 병력을 동원해 서울 경운궁을 포위한 채 중화전에서 고종황제의 양위식을 가졌다.
이날 양위는 고종도 황태자도 참석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다.
8월 27일 순종의 황제즉위식이 경운궁의 돈덕전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즉위식에도 순종과 고종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 참석을 거부했다. 일제는 순종황제 대신 어좌(御座)에
대리인을 앉혀 즉위식을 강행했다.
이 교수는 “초록색 관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어좌에 앉은 사람은 환관(宦官)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에 의한
강제 즉위식 상황을 보여 주는 귀중한 그림 사료”라고 평가했다.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등의 협박에 이어 일본은 대포와 기관총을 경운궁에 설치하며 고종을 위협했다.고종은 7월 19일 잇단 협박과 양위서류 조작발표 등의 압박으로 하는 수 없이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튿날 고종의 황제 양위식이 열렸지만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은 그자리에 모두 불참했다.또 8월 27일 돈덕전에 열린 순종황제의 즉위식에도 순종황제가 참석치 않았다.
일제는 순종황제대신에 내시가 황제의 보위에 올라 황제 즉위식을 치르는 이상한 장면까지 연출하는 등 조선을
끝까지 능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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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추악함을 잘 증언한...왜놈들의 을미사변 변명질 중 한 대목>
글 쓴 사람의 프로필>
이름: 나카다.히데오(田中秀雄)
출생年/地: 1952년 일본후쿠오카현
학력: 게이오의숙(慶應義塾)대학 문학부 졸업
저서: <영화에서 본 동아시아의 근대> <또 하나의 남경사건>
<암흑대륙 중국의 진실> <미국은 아시아에 개입하나> 등등
민비암살의 진짜범인
민비살해 후 민비일족과 대립하고 있던 대원군은 주범격인 미우라 고로우(三浦梧樓)에게 만면이 희색이 되어 먹던 수저를 미우라의 입에 넣어주며 최대의 친밀감을 표시했다. 왜 그랬을까?
경솔하게 사람을 좋아하는 소행
일한의 근대사는 항상 일본이 가해자, 조선/한국은 피해자라고 하는 논조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민주당정권도 이러한 악습을 또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일본은 나쁜 놈, 조선은 좋은 놈>론을 뒷받침할만한 것으로 꼭 짚고넘어가야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일청전쟁이 끝나고 약 반년 후인 명치18년(1895년)에 일어난 <민비암살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를 결정짓게 했다 해도 좋을 츠노다.후사코(角田房子)씨의 저서 <민비암살>에서도 그 집필 동기는 <(일한이 진정한 우호관계를 갖기 위해서는)우리들 대중이 나름대로 “유감스럽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우리 서민들이 사용하는 말로 “미안했습니다”라고 사죄하는 마음>이라고 츠노다(角田)씨는 쓰고 있다.
확실히 민비암살이라고 하는 사건만 놓고 보면 일본인이 관여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일본인이 나쁘다고 분개하는 또는 죄악감을 갖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주사변으로부터 일본의 패전까지 15년간만을 하나의 시점으로 보는 이른바 <15년 전쟁>사관(史觀)과 같은 것이다. 그 전후의 사정을 보지 않고 일부만을 꺼내어 논하는 것으론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순 없다.
한국 서울 교외에 있는 영원(英園)에서 매년 5월10일에 이방자비전하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도 몇 번인가 참배한 적이 있다. 2005년에 있었던 일인데, 묘지 한쪽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TV카메라와 마이크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민비 묘 앞에 일본인들이 사죄하러 왔다는 것이다. 민비암살범이 된 일본인들의 후손인 노인들이었다. 땅바닥에 앉아있는 사진이 다음날 한국 신문에 나와서 알게 되었다.
일본인의 선량함을 나타냈다고도 말하지만, 국방의식, 국가의 위기감과는 거리가 먼 경솔하게 사람을 좋아하는 소행이다. 신문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구나>라며 탄식만 했다.
희색이 만면한 대원군
<거인두산만옹(巨人頭山滿翁)/1923년>이란 책이 있다. 도쿄아사히신문 기자인 후루모토.쇼소크(藤本尙則)가 쓴 두산만(頭山滿)의 전기이다. 그 책 속에 당시 조선 공사(公使)였던 미우라.고로우(三浦梧樓)자신이 민비암살사건에 대하여 지지신보(時事新報)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누가 죽였냐고 묻는다면, 내가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
처음부터 담담하게 암살계획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미우라는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일한쌍방의 지사(志士)와 수비대(일본) 훈련대(조선) 등이 대원군을 옹호하여 일으킨 쿠데타였다.
민비살해를 목적으로 한 일단(一團)이 왕궁에 돌입한 것은 10월8일 동틀 무렵이었다. 미우라는 공사관에 있으면서 총소리도 듣고 있었다. 그 직후 고종(국왕)으로부터 호출을 받은 미우라가 왕궁으로 갔을 때 <선혈이 뚝뚝 떨어지며 궁궐 안 여기저기에 (선혈이) 흩뿌려져있는> 처참한 상태였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고종을 신분이 높아 보이는 한 노인이 준열하게 꾸짖고 있었다. 그 노인이 바로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었다. 공사로 부임한지 아직 한 달이 채 안된 미우라와 대원군은 그것이 첫 대면이었다. 대원군은 머리를 낮추고 이런저런 말을 하며 <희색이 만면해> 있었다.
그 후, 미우라는 대원군의 권유로 왕궁내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노인은 자신이 먹던 수저를 들어 내 입에 넣어주는 게 아닌 가, 미인이 먹던 거라면 “앙” 하며 받겠지만 백발노인의 이에 치분(齒糞)이 붙어있어서 약간은 질렸다. 어떻든 이것은 상당히 친밀한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한국의 풍습 같았다>
미우라가 기분이 나빴던 것이 이러한 리얼리티가 있었던 게 아닐까. 대원군이 미우라와 그의 부하인 일본인들의 행동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이 행위에서 알 수 있다. 대원군의 숙원이 성취됐던 획기적인 순간의 회심(會心)의 생각이 이 행위에서 표출된 것이다.
이것을 읽고 한국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지금도 친밀한 사이에서는 이런 행위(수저를 상대의 입에 넣어주는)를 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 낭인들의 행동은 대원군의 염원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민비암살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협력으로 획책된 것이다. 이 점을 실행범의 유족들은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츠노다.후사코(角田房子)씨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비슷한 경우로... 충무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충무공을 이순신과 직결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조선시대에 충무공 시호를 받은 분이 여럿입니다... 그 중에는 이순신 장군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시민 장군의 시호도 충무공입니다.
제가 그 기본도 모르고 나대겠습니까...?
님들 말씀대로..님들은 .흥선대원군의 정식 추증묘호도 생략하고...대원군이라 하면서..
명성황후를 민황후라 생략해 글을 쓴게 뭔 그리 꼬투리거리가 돼냔 겁니다.
민비라해야 실례지..민황후가 폄하라는 겁니까...?
중국애들 누가 서태후리 약칭하지...뭔뭔뭔뭔 뭐뭐 자희태후라 한답니까...?
꼬투릴 잡으실것들을 잡으세요...
본문내용가지고 하십시다요...자꾸 샛길로 몰고가지말고여...
누가 그 기본도 모르냐고여...?
명성황후는 추증묘호의 약칭...살아기실땐 평상시는 백성들은 민황후마마...그면전에선 황후마마...
그런대 왜 님들은 대원군 추증묘호를 안 부르고 무성의하게 대원군이라하시면서...
민황후님만 명성황후라 사망후의 묘호를 않썼다고 꼬투리냔 겁니다.
이거 모순 맞져...?
한국어 모르세요...?
그 쓰시겠단 논문수준 뻔해 뵙니다.
님하고 노닥거릴 시간에...
본문글이나 쓰겠습니다...불만 있으시면 거기서 허자고여...
초등생에게도 배울건 있다니...서로 내가 초등생이란 자세로 겸손하게 해 보시자고여...
논문으로 위협하지 마시고여...독수리타는 떨립니다.
그런데여...서울사나이님 역사 본문글이 거의 않 보입니다....?
여긴 정치싸이트가 아니라 역사싸이튼데..?
왤까...여?
죄송합니다 요즘 글들이 없으셔서여...
그런데 다 뻔한 기본적 강단사학 메뉴나열들만 하셨네여...책광고하고여...
본인이 연구해 주장하시는 그 흡인역이랄까 그런게 없어 보입니다.
겉만봐도 알겠습니다.
대개 우리나라 먹물님들 논문글이 그렇져 뭐...이해합니다.
본문글 쓰러가겠습니다.
기대해주세여...가슴이 콩딱대시져..?
역사참여마당에...
조선의 원조 한양은 섬서성 화산 남부의 한중(漢中)이고..
한양기준 또다른 한양인 남경은..동정호 북단 호북성 무안이란 본글 올렸습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서사님~
속이 시원하군요 (*^▽^*)
제가 봐도 도주같네요 ㅎㅎ
네... 구찮아서 역사참여마당으로 도주했습니다.
거기서 하시자고여...기다리겠습니다.
혹여 정치글밖엔 담당이 아니셔서 못 오시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