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이라는 분이 이렇게 대단한 영웅인줄 정말 몰랐습니다. 아래에 제가 퍼온 차범근의 활약상을 읽어보시면 정말 경탄하실 겁니다. 아니 감동하실 겁니다.
차범근 이 분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었고 이상하게도 선수 시절 이처럼 영웅적인 발자취를 남겼지만 감독으로서는 맡은 팀들이 항상 부진하여 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분명 성공하지 못한 분이지만 (마치 박 대통령께서 독재자라고 늘 공격받으신 것처럼) 선수로서는 정말 전무후무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20세기 최고의 대한민국 영웅인 것처럼...)
축구 영웅 차범근을 MBC월드컵 중계에서 늘 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성웅이 연상이 되는군요.
차범근 선수가 활약한 서독이라는 곳! 박대통령 내외께서 서독으로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시며 잘 살아보자 고 다짐한 곳입니다.
아무튼...
차범근의 활약상을 소개해 드립니다. 와!
* 차범근의 활약상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4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3골의 소나기 골.
-78년 현역 군인 신분으로 당시 공군 축구팀 소속 중 독일 다트슈타트 입단테스트를 통과하고 입단 계약.
그러나 한국정부는 차범근 선수에게 빨리 돌아와서 남은 병역을 이행하라고 지시.
사회 일각에서 차범근 선수가 어렵게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였으니 외국에서 국위를 선양 할 수 있도록 조기 제대를 시켜주어 계속 서독에서 활약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여론이 벌떼처럼 일어남.
결국 한국인 최초의 세계적인 빅리거의 꿈을 잠시 접은 채 한국으로 돌아와 79년 5월까지 남은 군복무를 모두 이행.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
-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1로 승리.
일간스포츠 톱기사
"차범근 두골! 오쿠데라 누르다"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시청률 최고.
12월 UEFA 컵 출전.
-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마테우스! 차붐을 막아라"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한심한 한국인들"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당시 나이 34세)
득점 4위.
-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신문 톱기사
"지구 최고의 선수 '차붐' "
KICKER지
"차붐, 팀 창단 첫 UEFA 우승 두번이나 이끌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의 최고스타"
-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아쉽게도 이기록은 최근 몇년전에 깨짐)
-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페널티킥 골은 단 한골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마저 동료에게 항상 양보했다.)
여기가 차붐의 조국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때 독일팀 입국당시)
-미하엘 발락-
"당신에게 사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2004년 본프레레호 월드컵 예선 대비 친선경기차 방한했을때)
-올리버 칸-
"내가 그런공격수랑 붙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
-파울로 말디니-
"내자신은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 "
-클린스만-
"우리가 풀지 못했던 주요한 문제는 차붐이었다.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였다."
(79년 에버딘 감독 당시 프랑크푸르트와의 UEFA컵 1라운드 경기 후)
-알렉스 퍼거슨-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80년 UEFA컵 결승전 2차전 차붐의 어시스트로 프랑크푸르트가 우승을 차지한 경기 후)
-마테우스-
"그가 독일인이었다면 주저없이 우리 대표팀으로 넣었을 것이다."
-베켄바워-
"차범근은 진정으로 축구를 잘할 뿐 아니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펠레-
"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슈뢰더 독일 총리-
첫댓글 능금도 차범근 좋아합니다. 원래 너무 잘하면 시기의 대상이지요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안좋은 점입니다.
저두 차범근 학교때 엄청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 그래도 MBC는 보기 싫더군요.SBS만 봅니다.지송~
전 차두리 팬입니다.이번에 실망많이 했지만 축구해설의 양념노릇을 톡톡히 하더군요 그래서 위로가 된답니다.차붐 화이팅
울라라 축구할때만 어쩔수 없이 저도 mbc를 시청합니다.. 차범근과 차두리땜시.. 차두리가 이렇게 잘 할줄 몰랐었는데..첨엔 목소리가 헷갈려서 차범근인지 차두린지.. 차두리는 목소리가 약간 강하면서도 허스키하더군여..ㅋㅋ
저는 축구방송만 봅니다. 우리나라 축구 영웅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