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와 커뮤니케이션, 그 끝없는 밀림의 탐험》 ①
왜 골프와 커뮤니케이션인가
《관훈저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론연구 계간지다. 저널리즘의 학문적 연구와 언론 현장의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으로 우리나라 언론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관훈저널》에 ‘골프와 커뮤니케이션’이란 생뚱맞은 주제의 글을 쓰게 된 사연부터 설명하는 게 《관훈저널》 독자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육철수 관훈클럽 사무국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현직 시절 취재에 얽힌 뒷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사절해왔다. 많은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긴 했지만 수십 년 전 일이라 정확히 환기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다 유능한 선후배들의 취재 후기와 차별화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날 때마다 원고를 부탁하는 육 국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우연히 식사 자리에 함께하는 바람에 피할 길이 없었다. 어김없이 육 국장은 원고를 부탁했다. 나는 평소처럼 별로 쓸 게 없다고 사절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골프 관련이라면 모를까?” 원고 청탁을 피하려고 언론과 상관없는 골프 얘기를 꺼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쉽게 물러설 줄 알았던 육 국장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상관없습니다. 평소 골프 칼럼을 쓰면서 ‘골프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주제를 자주 다루신 것 같은데.”
미소를 지으며 나를 꿰뚫어 보는 그의 눈이 빛났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의 위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평소의 골프 철학을 커뮤니케이션과 관련지어 풀어내면 충분히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텐데요.” 골프와 인연을 맺은 지 40여 년. 골프의 밀림을 헤맨 후 골프가 커뮤니케이션과 너무나 밀접하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실감하고 있는 나에게 육 국장의 공세는 설득력을 발휘했다. 나는 별수없이 ‘골프와 커뮤니케이션’이란 주제로 글을 쓰기로 승낙하고 말았다. 《관훈저널》의 애독자께서 이런 사정을 안 뒤 졸고를 양해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골프와의 인연
골프와의 만남은 작은 단초로 시작됐으나 그 여정은 끝없는 인생 순례로 이어졌다. 지나고 보니 골프는 내게 단순히 취미나 도락이 아니었다.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운동은 더욱 아니었다. 경제부 기자를 하면서 우연히 지인에게 이끌려 골프채를 잡았다. 그전까지는 그야말로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 완전 문외한이었다. 동네 연습장에 등록해 보름 정도 레슨프로로부터 스윙의 기초를 배웠다. 스윙의 기본을 익히면서 골프 관련 서적들을 섭렵했다. 초보자를 위한 다양한 입문서를 훑어본 뒤 골프의 기원이나 역사, 위대한 골프선수들 얘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골프채를 잡은 지 한 달쯤 지나자 골프에서 딱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심연(深淵) 같은 것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듯했다. 레슨프로가 시키는 대로 간단한 스윙만 하는 데도 공을 날려 보내는 재미 외에 다른 스포츠와 다른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초보자로 몇 번의 라운드를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밀림이나 오지를 헤매는 호기심 많은 탐험가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왜 골프가 인간이 고안해낸 스포츠 중 가장 불가사의한 운동인지 느낌이 다가왔다.
“인간이 발명한 놀이치고 골프만큼 건강과 상쾌한 흥분, 그치지 않는 즐거움의 원천을 주는 것은 없다.” - 아서 밸푸어(영국 총리)
“골프의 가장 큰 결점은 너무도 재미난다는 데 있다. 골프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흥미는 남자로 하여금 가정, 일,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 잊게 한다.” - 작자 미상
“골프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만인의 게임이다. 걸을 수 있고 빗자루질할 힘만 있으면 된다.” - 작자 미상
“골프를 보면 볼수록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인생을 보면 볼수록 골프를 생각하게 한다. - 헨리 롱허스트(골프평론가)
“골프코스는 머물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야 할 덧없는 세상살이 그 모든 것의 축약이다.”- 장 지라두(프랑스 작가)
“100을 치는 사람은 골프를, 90을 치는 사람은 가정을, 80을 치는 사람은 사업을 소홀히 한다. 70을 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홀히 한다. - 작자 미상
위의 골프 금언들을 보면 골프의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을 짐작할 수 있다. 골프가 왜 불가사의한 운동인가를 주제로 대화를 한다면 밤을 지새워 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골프는 상식과 통념을 거부한다. 이 때문에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지팡이를 짚을 수 있을 때까지 놓지 못한다.
“60세 노인이 30세 장년을 이기는 골프가 어찌 스포츠란 말인가!”(버드 쇼탠,
작가) 이 한마디가 골프의 불가사의성을 대변한다.
골프의 ‘불가사의한 불가사의성’은 유별난 중독성에 그 뿌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골프의 중독성은 다른 스포츠에 비하면 치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웬만해선 발을 빼기 어렵다. 그 이유를 꼽으라면 끝이 없을 것이다.
골프는 송곳과 같다. 정상에 도달했다는 느낌은 극히 짧은 순간 전율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송곳의 끝에 머물 수 없듯 골프의 정상에도 머물 수 없다.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을 그대로 물려받은 인간이 골퍼다. 열심히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시시포스는 다시 굴러떨어진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한다. 골프는 신기루다. 목표를 갖고 추구하지만, 결코 ‘이만하면 됐다!’라고 할 만한 성취감을 안겨주지 않는다.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세워둔 목표에 다다른 순간 새로운 목표가 나타난다. 골프에서 목표란 다가서면 저만치 멀어져 있고, 손에 잡힐 듯한데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신기루다. 그래서 골프는 꿈에 가깝다. 열심히 꿈을 꾸지만 깨어나면 사라져버리는 그 꿈이 골프다.
육체의 운동량으로 따지면 골프는 축구·배구 같은 구기 종목이나, 마라톤이나 장거리달리기 같은 육상 종목과 비교되지 않는다. 쾌감 또한 사격·야구·승마 등에서 얻는 것보다 진하다고
할 수 없다. 역동성이나 관객의 열광 면에서도 밀린다. 마치 안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 없는 느슨한 취미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치명적 골프의 중독성은 바로 조금씩 모자란 듯한 것들의 절묘한 조합에서 잉태되는 것은 아닐까. 육상이나 구기 종목·격투기·등산처럼 많은 칼로리를 요구하는 운동도 아니면서 슛·스파이크·펀치·배팅처럼 강렬함도 약하다. 프로골퍼를 제외하곤관중으로부터 주시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제각각의 스윙, 그다지 빠르지 않은 걷기, 충분히 어깨에 멜 수 있는 골프백과 각각의 장비,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경기규칙 등 얼핏 보면 골프는 이렇다 할 특색이나 역동성이 없는 스포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골프가 치명적 중독성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결 구도의 모호성, 땀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결과의 의외성, 두 번 다시 같은 샷을 날릴 수 없는 일회성, 감독이 없이 스스로가 심판관이 돼야 하는 경기방식, 끝없는 탐험에도 불구하고 골프의 진수를 알았다고 큰소리칠 수 없는 불가사의성 등이 아닐까 싶다.
정신세계 탐험의 길
구력이 한 1년 지나자 골프가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정신적인 스포츠라는 데 마음을 빼앗겼다. 체격조건이나 기량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마음의 평정(平靜)을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나를 선(禪)의 세계로 이끌었다.
골프채를 잡은 이상 새로운 기록에 대한 욕심,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경쟁심, 동반자들의 상황에 따라 요동치는 마음의 출렁임,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따른 자학과 분노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가 설파한 “골프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기술이 20%, 정신력이 80%이다”라는 말은 그가 처음 한 말이 아니다.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선 속담 차원의 골프 상식으로 통하는 것인데 위대한 니클라우스의 입을 거치면서 골프의 신앙처럼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장비가 발달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 평준화한 요즘엔 정신력의 비중이 90%
에 이른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을 정도로 골프에서 정신력의 비중은 막대하다.
‘정신적’이란 무엇일까. 영어로는 ‘mental’로 쓰지만 이에 담긴 의미는 매우 폭넓고 다의적이며 복합적이다. 전문적인 용어 탐색을 생략하고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보면 ‘멘탈’(mental)은 ‘피지컬’(physical, 육체적·신체적인)의 상대어로 ‘정신적’·‘지적인’·‘마음의’·‘관념적인’ 것 등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정신적이란 게 뜬구름 같다. ‘정신적’이라면 제법 차원 높은 것으로 들리지만 사실 정신은 가둬두기 곤란한 인간의 생각·느낌·감정의 다발이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마음작용의 뭉치다. 이 마음을 어떻게 보고, 다스릴 것인가는 모든 종교의 화두이기도 하다.
골프는 일상생활에서보다 더 강도 높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일으키는 스포츠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정성을 기울여도 미스 샷이 나오게 마련인 골프에서 라운드 내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대부분 스포츠는 타고난 소질에다 자신이 흘리는 땀의 양과 쏟는 정성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 만족하는 정도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해도 대체로 그 결과는 흘린 땀과 쏟은 정성을 배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절망감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골프는 다르다. 스코어가 결코 연습량에 비례하지도 않고, 아무리 좋은 컨디션이라도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늘이 내린 골퍼’라는 찬사를 듣는 완벽한 골퍼라도 한순간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는 게 골프다. 철두철미하게 정신이 지배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골프가 ‘여백의 스포츠’라는 점도 골퍼들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골프는 그림에 비유하면 동양화다. 그중에서도 수묵화다. 서양화는 여백 없이 색으로 채워지는 반면 동양화 특히 수묵화는 여백이 많다. 사군자나 산수화는 여백이 절반을 넘는다. 수묵화의 묘미와 깊이는 바로 이 여백에 있다.
골프에는 틈이 너무 많다. 한번 라운드하는데 대략 4시간으로 잡으면 실제로 샷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개인의 스윙 빠르기나 성격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보통 샷을 한번 날리는데 3초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가령 80타를 치는 골퍼라면 240초, 즉 4시간 걸리는 라운드에서 스윙하는 시간은 기껏 4분 정도가 되는 셈이다. 90타를 친다면 270초, 즉 4분 30초 정도다. 나머지 3시간 50여 분이 바로 빈틈인 셈이다. 샷 준비를 하고 샷을 한 뒤 담소하며 이동하고 마지막 홀에서 장갑을 벗을 때까지 걸리는 이 시간이 바로 골프의 틈이다.
빈틈이 너무 많다는 바로 이 점이 골프가 다른 스포츠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의 하나다. 상대를 두고 벌이는 스포츠는 거의 틈이 없다. 복싱이나레슬링·태권도·유도 같은 상대와 가깝게 밀착해 대결해야 하는 스포츠는 경기 중 딴생각을 할 겨를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와 공격을 되풀이해야 한다. 게임 종료 벨이 울릴 때까지 사력을 다해 싸우면 된다. 농구나 배구·축구 등 구기 종목 역시 상대방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지만 역시 딴생각을 할 틈이 거의 없다. 쉴 새 없이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며 상대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는 일이 이어진다.
구기 중에 공수교대를 하며 벤치에서 기다리거나 피처가 공을 던지는 준비를 하는 사이 등 비교적 틈이 많은 야구는 속성이 골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직접 상대와 대치하지 않으면서도 기록으로 경쟁을 벌이는 양궁이나 사격은 골프와 거의 같은 속성을 지녔다. 실제로 활시위를 당기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순간적이라 할 만큼 매우 짧다. 경기에 걸리는 시간의 90% 이상을 호흡 조절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사용한다.
골프는 시간적으로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너무 틈이 많다. 함께 플레이하는 동반자와의 거리는 티샷이나 퍼트를 할 때, 카트를 타고 이동할 때 외에는 항상 멀리 떨어져 있게 마련이며 플레이를 펼쳐나가야 할 공간 역시 광활하다. 여기에 골프의 핵심이라고 할 샷과 샷 사이에 시간적 공간이 너무 많다. 바로 이 공간적·시간적 틈에 온갖 생각이 끼어들어 골퍼를 괴롭힌다. 매 순간 변하는 동반자와의 틈과 샷과 샷 사이의 틈이 골프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홀의 아쉬움과 실망감, 멋진 샷을 날린 뒤의 흥분, 같은 샷을 날리고 싶은 욕심, 라운드 중인 동반자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 경쟁자의 플레이에 따른 마음의 흔들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징크스, 하지도 않은 다음 샷에 대한 불안감 등 온갖 잡념이 여름 하늘에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아무리 골프 기량이 뛰어나다 해도 이 빈틈을 다스릴 줄 모르면 라운드를 제대로 펼칠 수 없다. 빈틈에 비바람·눈보라가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면 마음도 샷도 망가진다. 반대로 바람 한 점 없는 호수 면처럼 평온하면 평소 익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완벽한 기량으로 게임을 이끌어가던 골퍼가 어느 한순간 마음의 폭풍에 휘말려 추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주말골퍼들이야 이 틈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겠는가. 골프가 영원히 정복될 수 없는 스포츠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빈틈을 다스리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부분 골퍼는 한번 마음이 불길에 휩싸이면 자신을 불살라버린다. 이때 입은 내상은 쉬 치유되지도 않는다. 마음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이 참는 것이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 상자에 담아두는 방법이다. 내가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도 느끼지 못하니 해결된 것 같지만 마음속이 끓는 감정으로 가득 차면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 터지게 돼 있다. 자신을 불태워버릴 정도로 파괴력도 강력하다. 잠시 참아 불편한 감정의 잔재가 사라지면 다행이지만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면 언젠가 활화산이 되고 만다. 기막힌 샷 이후의 기쁨이나 충만감 등도 일시적으로 자신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자만이나 자아도취에 빠지게 해 더 큰 화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마음의 불길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골프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도 내 관심은 여기에 꽂혀 있었다. 서구의 골프 서적들은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음이란 애초에 제어 대상이 아니다. 컨트롤이란 무언가를 상자에 가두거나 억눌러 제어하는 개념이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마인드 컨트롤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는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 후 통제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격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격랑이 일어난 뒤 격랑을 견디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파도를 어떻게 제어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