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동영상 고혈압 수치가 400에서 150으로~!
시작은 그러니까 당뇨부터였습니다.
구리센터 윤간란(주부)
시작은 그러니까 당뇨부터였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였죠. 1988년도에 교회에서 헌혈을 하다가 당뇨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도 다 죽게 되기 전까지는 생전 제 발로 병원에 가는 법이 어디 있나요? 요즘 사람들이야 비웃겠지만, 우리는 다들 그렇게 살았습니다. 1년 동안은 ‘에이, 그까짓 것’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자꾸 기운이 없어지더니 툭하면 길바닥에 쓰러져 눕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자칫하면 자식들 망신시키겠다 싶어서, 그제서야 별 수 없이 병원에 갔습니다. 혈당 수치라는 게 대번에 200이 나와서 그날부터 지겨운 당뇨 약을 쉬지 않고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큰 병이 하나 생기면 그게 두세 개로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당뇨 약을 한 10년쯤 먹었더니, 이번에는 혈압이 따라오데. 뒷목이 무슨 쇳덩어리처럼 뻣뻣해지면서 또 쓰러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이제부터는 당뇨 약만 먹지 말고 혈압 약도 먹으래. 그런데 약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데 하도 오래 먹었더니 약이 슬슬 안 듣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한 알 먹던 게 두 알 되고 세 알이 되는데도 안 들어서 나중에는 하루에 여섯 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4개월에 한 번씩 약 대신 링거를 맞게 됐죠.
“할머니, 혈당 수치가 안 내려가면 합병증으로 죽어요.”
이쯤 되자 의사도 슬슬 걱정이 됐나봐요. 하루는 진료를 받고 났더니 이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할머니, 약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운동을 하셔야 병을 이길 수가 있어요. 혈당 수치가 조절이 안 되면 합병증으로 죽어요.” 그러면서 날더러 수영이나 걷기 운동을 하래요. 난 물은 질색이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2시간씩 매일같이 걷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러면 뭘 해? 혈당 수치는 영락없이 300~400이 나오는데, 혈당이 높으니까 나중엔 다리가 아프고 온몸에 혹이 달린 것처럼 그렇게 결리고 아팠어요. 하지만 살려고 하루 4시간씩 산을 오르내리며 갖은 애를 써 봐도 허무할 정도로 혈당이 그대로인 거예요. 그러면서 자꾸 세월만 간 거죠.
나중에는 병이 대여섯 가지로 불어났어요. 당뇨에, 혈압에, 골다공증에, 퇴행성 관절염에, 위염에……. 시간이 갈수록 병이 낫기는커녕, 점점 하나 둘 늘어나니 자식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였죠. 딸이 전화로 협박을 하더라고요. “엄마,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엄마가 쓰러져도 우리는 몰라요. 먹고살기 바빠서 엄마 못 보살핀다고요. 그러니까 엄마 병은 제발 엄마가 알아서 해요.”
그 소리를 들으니 정말 걱정이 되데요. 이미 온갖 병이 종합선물세트로 들어찼는데 여기에 중풍 하나만 더 들어오면 내 인생이고 자식들 인생이고 완전히 엉망진창 되는 거죠. 그래서 딸한테 그랬죠. “나도 한다고 하는데도 그런 걸 어떡하니? 엄마가 어떡하면 살 길이 있는 지만 알려다오. 그러면 내가 니 말대로 다 할게.” 그랬더니 딸이 이미 작정한 게 있었던가봐요. “정말 내 말대로 할 거지?” 하고 다짐을 받더니, 오후 3시까지 어디어디로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날 데려간 곳이 단센터였죠.
매일같이 울면서 배운 단학 수련과 뇌파진동
어휴, 처음 한 달 동안은 말도 하지마세요. 동작 하나하나 따라하는 게 어찌나 아픈지 날마다 울면서 했다니까. 1시간 하고 나면 집에 가서 끙끙 앓아 눕고 그랬죠. 마음 같아선 너무 아플 때는 하루쯤 쉬고 싶기도 했지만 딸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도 없었어요. 나더러 “엄마, 아프다고 꾀부리면 안 돼.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처음에는 많이 아플 거야. 그래도 열심히 해서 어서 건강해져야지.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돼!” 하고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너무 아프니까 나중에는 아픈 것도 포기랄까 체념이 되데요. ‘이까짓 것, 수련장에서 죽으나 집에서 죽으나 매한가지인데 죽기살기로 해보자. 여기서 죽는 건 차라리 행복이다’ 이런 생각이 든 거죠.
뇌파진동 수련은 어땠느냐고요? 그건 그나마 내 체력에도 어렵잖게 따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냥 하는 것보다 입으로 마치 구령을 하듯이 ‘뇌파진동 천지기운, 뇌파진동 천지기운, 뇌파진동 천지기운……’ 하면서 장단을 맞춰서 하니까 더 쉽게 따라할 수 있던걸요. 그런데 신기한 건 뇌파진동을 하고 나면, 쑤시고 결리던 목이랑 어깨, 등짝이 파스라도 붙인 것처럼 서늘해지더라는 거예요. 원장님께 말했더니, 이게 다 몸에 묵은 탁기가 나가느라고 그런 거라고 했죠. 근데 정말 뇌파진동 하고서 1주일 만에, 잠도 못 자게 사람을 잡던 근육통은 좀 가라앉았죠.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열흘 뒤에 벌어졌어요. 단센터에 다닌 지 열흘쯤 지나서, 약이 똑 떨어져서 병원엘 갔거든요. 그랬더니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할머니, 도대체 그동안 뭘 했어요? 뭘 했길래 이렇게 수치가 뚝 떨어졌어요?” 나도 눈이 휘둥그레졌죠. 세상에, 산에 그렇게 기를 쓰고 오르내려도 300~400으로 꼼짝 안 하던 당뇨 수치가 115가 나왔으니 신기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어찌나 놀랬던지 갑자기 ‘뇌파진동’이라는 말도 안 떠올라서 그냥 “왜, 이렇게 고개 흔드는 운동 있잖아요?” 그랬다니까요. 그런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 운동이 유명한가봐요. 의사가 대번에 알더라고. “아, 뇌파진동이요” 그러던데요.
“도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수치가 뚝 떨어졌어요?”
그때부터 차츰차츰 당뇨 약을 줄일 수 있게 됐죠. 아침, 점심, 저녁에 각각 세 알씩 여섯 알을 먹던 걸 조금씩 줄여서, 6개월이 지난 요즘에는 아침에만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뿐인가요. 혈당 수치가 내려가니까 이제는 골다공증약과 관절염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이 좋아졌어요.
사실 그때까지 당뇨도 당뇨지만, 골다공증하고 관절염 때문에도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오죽하면 우리 손주가 날더러 ‘땜빵 할머니’라고 불렀겠어요. 아, 그 별명이 어떻게 생긴 거냐 하면, 내가 맨날 몸이 쑤시고 저리니까 몸에 온통 파스로 도배를 하고 살았거든요. 그걸 보더니, 하루는 녀석이 “할머니는 완전 땜빵 할머니야” 이러더라고요. 그 놈 말이 맞지. 온몸을 파스로 ‘땜빵’하고 살았으니까요.
하루는 정말 나았는지 나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어서, 17층이나 되는 우리 집을 일부러 계단으로 올라온 적도 있어요. 그런데도 말짱해요. 끄떡없어요. 요새는 친구들한테도 아주 노래를 부르듯이 그러지요. 아프다고 징징대지 말고, 단센터 다니라고.
아, 그러고 보니 좋아진 게 또 있어요. 좀 부끄러운 얘긴데, 지난 일이니까 다 털어놓지 뭐. 사실 수련하기 전에는 내 허리 사이즈가 34인치나 됐어요. 어찌나 뚱뚱한지, 의사가 툭하면 내 배를 꾹꾹 누르면서 이거 빼야지 혈당 수치가 내려간다고 얼마나 구박을 했는지 몰라요. 장장 20년 동안 말도 못 하게 구박을 받았죠. 그런데 아무리 운동을 해도 안 들어가던 배가 단센터 다닌 지 6개월 만에 쏙 들어가는 거예요. 친구들이 “간란이 배, 어디 갔나?” 하고 물으면 “아직도 몰라? 단센터 가서 해산했잖아” 그러죠.
온몸을 파스로 땜질하며 살았던 ‘땜빵 할머니’ 노릇은 끝났다
나는 매일 새벽에 단센터에 가서 수련을 해요. 하루를 그렇게 시작하기로 아예 내 마음에 법으로 정해놨어요. 몸이 아무리 좋아진다 싶어도 절대 게으름 안 피우고 죽을 때까지 이 수련을 할 작정이예요. 왜냐면 한번 꾀를 부렸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거든요. 딱 1주일 단센터를 못나갔는데, 그게 그렇게 표가 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당뇨 약을 타러 병원 갔다가 의사한테 제대로 걸렸잖아요. 의사가 결과를 보더니 대번에 그러더라고요. “할머니, 수치가 ‘168’이 뭡니까? 잘 나가시다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요새 운동 안 하고 게으름 부렸죠?”
그 뒤로는 하루라도 빼먹어 볼까, 이런 생각은 절대 안 한다니까요. 게다가 의사도 나를 보고 자극을 단단히 받았나봐요. 지난 달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양반이 그러대요. “할머니 좋아지는 거 보고, 저도 이제 단센터 다녀요.” 그 말 듣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내가 건강해지니까 자식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병원비다 약값이다, 나도 자식들한테 짐 지우는 게 미안했는데 그게 확 줄어서 이제 한결 떳떳해졌죠. 이 달치 진료비하고 약값하고 모두 뽑아보니까 달랑 1만5천 원이 전부더라고요. 그동안 매월 약값만 30만 원도 넘게 나갔는데, 그러니 얼마나 이익을 본 거야예요. 나도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 뇌파진동을 개발하셨다는 이승헌 박사님을 생각하면서 “아이고, 이박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릴 정도죠.
뇌파진동 덕분에, 나이 예순일곱에 찾아온 새로운 꿈
수련하고서 내 몸이 이렇게 달라지니까, 아프다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 죽겠어요. 뇌파진동을 배우면 될 텐데, 그걸 모르고 사는 게 남의 일인데도 너무 속상해요.
며칠 전에도 새벽에 수련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아파트 놀이터에 할머니들 대여섯 명이 의자에 앉아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하는 말이 죄다 “다리가 아파 죽겠다, 난 허리가 아파서 끊어질 거 같다……’ 뭐 그런 소리예요. 내가 구변이 좋으면 달려가서 뇌파진동을 가르쳐줄 텐데 싶더라고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까 요즘은 나도 목표가 생겼어요. 뭐긴 뭐예요? 뇌파진동 강사가 되는 거죠. 그러고 보면 뇌파진동이 좋기는 진짜 좋은 운동이네요. 내가 나이 예순일곱에 이런 꿈을 다 갖게 됐으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