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으라
지난 토요일 부산을 찾았습니다. 작년 1월31일 부산고검장을 마치고 부산을 떠난 후 사적인 방문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중간에 부산검찰에 일을 보러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온 적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놀러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십 수 명이 함께 골프를 하는 행사였는데 저는 그날 아침 대검의 부탁으로 로스쿨 생 150여명에게 특강을 하는 바람에 골프는 같이 하지 못하고 오후 3시 KTX로 부산에 내려가 약속장소인 청사포에 있는 횟집에 7시 무렵 도착하였습니다.
일행들 중 상당수는 모처럼 찾은 부산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개인적으로 골프를 할 계획을 세우고 내려왔지만 아무런 사전 계획이 없는 저로서는 밤 11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올 생각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녁 한 끼 먹으러 부산에 간 것입니다. 모임을 주최하신 허남식 부산시장님의 정성을 보아 내려오기는 하였지만 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부산 사람들은 흔히들 서울에 저녁 약속을 하고 당일치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심리적으로 잘 용납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님이 그러지 말고 내일 아침 일찍 골프를 같이 하고 가라고 강하게 권하셨습니다. 양복차림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심지어는 무겁다고 지갑도 들지 않고 카드 한 장과 약간의 돈만 가지고 내려간 저에게 골프는 너무도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 것입니다. 골프채와 신발은 빌린다고 하지만 운동복은 어떻게 할 것이며 속옷은 등등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2011년 5월 17일자 월요편지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살게 될 나의 인생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수없이 많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저는 또 두개의 카드 중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특별한 경험이 저에게 좀 더 도전적인 선택을 하도록 힘을 줄 것입니다. 그 선택이 항상 최선은 아닐지라도 저는 즐길 것입니다. 제가 즐기면 그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머리가 판단하는 선택이 아닌 가슴이 원하는 선택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의 가슴은 이미 필드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밤 11시경 호텔에 들어와 준비상황을 점검하였습니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구입하여야 하였습니다. 호텔을 나서 24시간 편의점에서 양말, 팬티 그리고 와이셔츠를 대신할 라운드 티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담을 쇼핑백도 하나 샀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내일 운동바지는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을 하였지만 정 부득이하면 양복바지를 입고 칠 요량을 하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골프장에 도착해 모자와 티셔츠를 샀지만 바지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살 수는 있지만 바지 단을 조정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양복바지를 입고 치기로 하였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골프를 쳤지만 양복바지를 입고 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날씨가 환상적이었고 동반자도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계획하지 않은 라운딩이 주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하였습니다.
여행이 이리 좋은 걸, 왜 그동안 주저하며 부산을 내려오지 못하였을까? 부산을 떠날 때는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는데 1년 반 만에 오다니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재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훌쩍 떠나오면 KTX로 2시간40분이면 오는 거리, 반가이 맞아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이곳을 오기 힘들게 한 것이 무엇인지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해보았습니다. 부산 분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그분들은 반가운 목소리로 ‘언제 골프하러 내려 올거냐’ 고 물었고 저는 ‘조만간 연락드리고 가겠습니다.’ 라고 답변 드렸는데 그것이 1년 반이 지났고 골프는 사전에 준비도 없이 창졸간에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벼르기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참 운동을 하고 있는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대구검사장 이경재 별세”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심장판막수술을 한 것이 잘못되어 혼수상태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운명하신 것입니다. 이 검사장님은 제가 부산고검장 시절 차장검사로 6개월을 같이 근무하였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많으시지만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주셨고 훈훈한 인품으로 모두를 편안하게 해주신 분입니다. 한 달 전 전화를 하셔서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잘 지내시죠. 한번 불러주십시오.”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예. 조만간 한번 연락드려 저녁 할 기회를 갖겠습니다.” 라고 답변 드렸습니다. 이제 그 저녁은 영원히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체험하며 골프를 마치고 서울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참을 꾸벅꾸벅 졸다가 부산역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펴들었습니다. 코넬 대학교의 칼 필레머 교수가 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입니다. 그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에 관한 수많은 책과 강연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한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생의 모든 길을 직접 걸어본 70세 이상 노인 1,000명을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냈습니다.
몇 대목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만났습니다. “더 많이 여행하라. 할 수 있는 한, 필요하다면 다른 일을 포기하더라도 여행을 많이 다녀라. 대부분의 인생의 현자들이 여행경험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회상한다. 그리고 더 많이 여행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우리 부부는 은퇴를 하면 여행을 많이 하기로 했지.
그런데 정작 은퇴 후에는 아내는 암으로 떠나고 세상에 없었지. 몇 번 혼자 여행을 가긴 했는데 재미가 없더군.” 이 대목에서 왜 그 동안 부산을 가지 못하였는지 아니 왜 그리 어리석게 이런저런 이유로 부산행 KTX를 타는데 주저하였는지 후회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양복바지 차림에 골프를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대목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어느 노인의 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슨 일이든 너무 오랫동안 미루지 말라는 거야. 왜냐하면 다른 때는 하지 못하는, 딱 그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거든.” 또 다른 분의 말입니다. “장례식은 참석 못하더라도 친구는 지금 당장 만나라.” 내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라네. 나는 친구의 초청을 받으면 아무리 먼 곳도 간다네. 그리곤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자네 장례식에는 가지 않을 걸세. 그래서 여기 온 거라네.’ 그러면 친구들도 정말 좋아하더라고.” 이경재 검사장님과 전화를 한 후 바로 만났더라면 이리 아쉽고 허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인생의 현자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이러한 인생관을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라고 말이다. 삶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인생이 짧다는 것을 깨달아야 얻는 선물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서 행복을 찾고 계신가요. 아니면 언젠가 어떤 일이 일어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고 계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7.9.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