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V.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KJV. AV. 등의 성경이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한글 성경이나다 같이 오류가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자기 아버지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나이가 32세에 즉위하여 8년을 치리하다가 죽었으니까 분명히 그는 40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호람이 죽고 그의 아들 중에 막내아들이었던 아하시야가 그 아비 여호람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그 막내아들의 나이가 42세라고 되어 있으니 말하자면 아들의 나이가 아비보다 2세가 많았다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호람의 아들들 중에 막내아들이었던 아하시야가 42세라고 하였으니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여호람의 다른 아들들 즉 아하시야의 형들은 나이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와 오류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교리와 진리까지 오류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번역이나 사본을 만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누구나 부분적으로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실수와 오류는 KJV. 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없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완전한 사본 완전한 번역이라는 것은 주장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하 21:5) 여호람이 치리하기 시작했을 때 삼십이세였으며 그가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니라
[KJV]대하 21:5
Jehoram [was] thirty and two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eight years in Jerusalem.
(대하 21:20)그가 32세에 통치하기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팔년을 통치하다가 아끼는 자 없이
죽었으며 백성이 그를 다윗 성읍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에는 하지 않았더라
[KJV]대하 21:20
Thirty and two years old was he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in Jerusalem eight years, and departed without being desired.
Howbeit they buried him in the city of David, but not in the sepulchres of the kings.
[KJV]대하 22:1
And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made Ahaziah his youngest son king in his stead:
for the band of men that came with the Arabians to the camp had slain all the eldest. So Ahaziah the son of Jehoram king of Judah reigned.
예루살렘 거민들이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로 그를 대신하여 왕을 삼았으니 이는 아라비아인들과 함께 진영에 온 군대가 그의 모든 형들을 죽였음이더라 그리하여 유다의 여호람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치리하였더라
[KJV]대하 22:2
Forty and two years old [was] Ahaziah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one year in Jerusalem.
His mother's name also [was] Athaliah the daughter of Omri.
(대하 22:2)아하시야가 치리하기 시작할 때 사십이 세였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아달랴로 오므리의 딸이더라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 아하스는 20세에 왕이 되었고 16년을 치리하였으니까
분명히 3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었으니까
자기 아버지와 불과 11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아하스는 10세에 결혼하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성경을 번역하시는 분들이나 KJV.만이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그 동안 성경을 성실하게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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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예레미야 27장을 봅시다.
(렘 27:1-4)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
거기 1절을 보면 유다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때는 여호야김의 왕의 시대가 아니라시드기야 왕의 시대라는 것을 바로 그 다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그 때 즉 시드기야 왕이 즉위한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 등이 시드기야 왕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하여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1절에 있는 여호야김 왕은 여호야김이 아니라 시드기야 왕이라고 되어 있어야 말이 됩니다.
KJV.나 RSV.등의 책에서는 모드가 다 "여호야김"이라고 했고 오히려 NIV.에서는 이를 시드기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원본에 오류가 있을리는 만무하고 사본 즉 텍스투스 리셉투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또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마27:9-10)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마태복음은 이 구절을 인용할 때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상은 스가랴서 11장 13절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필시 마태의 실수가 아니라면 텍스투스 리셉투스의 오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라고 해서 완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본문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원저자가 실수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대개 사본을 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말들을 합니다.마태가 실수 했다면 원본에까지 오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사본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교회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한 문자나 한 단어의 누락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있다"가 "없다" 된다든지" "안 했다"에서 "안"자 한 글자가 빠지게 되면 뜻이 정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원본이 단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사본도 절대시 할 수 없고 여러 사본을 존중하면서 살펴서 점 더 조심스러운 자세로 성경을 공부하게 된다고 봅니다.
마가복음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절에
(막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여기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하신 말씀은 이사야가 한 말이 아니라 말라기 3장 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마가가 틀렸던지 마가에게 복음을 들려준 베드로의 설교가 틀렸던지 아니면 텍스투스 리셉투스 사본을 만든 사람들의 오류이든지 오류가 있었던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문제는 있습니다.
요한이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기록한 이 계시록을 일곱 교회사자(使者)에게 보내라 하신 말씀에서 그리고 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편지 서두마다 나오는 사자(使者)라는 말인데 이것은 KJV. RSV.에서는 모두 angel 로 번역했습니다.
만약 이 계시가 기록되어 천사에게 가는 것이었다면 굳이 육체를 가진 요한이 이 계시를 종이로 된 책에 기록하여
천사에게 보낼 필요가 있었을까요 ! 이는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오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용어에서 사자(使者)는 "말라크"라는 말이 주로 사용 됩니다. 그러나 이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는 대개 안겔로스(angelos)로 번역했는데 이를 영어로 직역하니까 angel이 되었고 이를 다시 영어번역 특히 KJV.를 따라서 번역하니까천사로 번역하고 말았습니다.그렇다면 인간 요한이 천사에게 편지나 쓰고 있는 꼴이 됩니다.
다행이 우리 개역 성경과 중국어 성경은 사자(使者)로 번역했습니다.
"말라크=사자(使者) 중에 육체가 없이 영으로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자는 천사(天使)라 번역할 수 있고 육체를 가지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은 사자(使者)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바른 번역이라 할 것입니다.이 문제를 그냥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계시록 1장을 바르게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자기 병이 낫겠는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낸 말라크도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0절이나 야고보서 2장 25절에 나오는 사자들도 다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자는 엘리야의 심정과 정신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었고 야고보가 말하는 사자는
여리고 기생 라합 집에 들어온 여호수아가 보낸 사자(使者)였습니다.
우리가 KJV.성경이나 그 대본이었던 텍스투스 리셉투스나 면밀히 살펴 볼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다 살펴 보려고 했다가는 아무 일도 못하고 아무 믿음도 갖지 못하고 그 일에 매달려 고생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텍스투스 리셉투스에 대한 글을 쓰신 분은 신학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박창환 교수입니다.
그분은 선친께서 순교하신 가문에서 자랐고 일찍이 신약신학을 전공하셔서 장로회 신학대학교 학장을 지내셨으며 신약성경 새 번역이 그분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분이 신약성경 새 번역을 내실 때는 한국에서 아무도 헬라어 실력에서 그분을 따라갈 수 있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분이 인도네시아 선교하시려 가실 때는 헬라어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만 가지고 가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은 모스크바의 장로회 신학대학교 학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모르긴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학자들 중에 그분만큼 학문적으로 진지하신 분들을 만나 뵌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저같은 사람이야 감히 KJV.에 대하여 정당한 평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하도 오늘날은 저마다 말을 많이하는 세상이라서 저까지도 분수에 넘어서는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많은 학자들이 피눈물 나는 공생을 해서 사본들과 역본들을 대조하면서
성경본문을 조사하여 이른바 비평노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그러한 학자들에 의하여 드러나게 된 것은 그 분량이 약 성경 페이지 수로 한다면 4페이지 혹은 5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살펴 보아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사용하는 개역 성경이나 기타 온 세계 개혁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들에서 우리의 신조나 교리를 뒤 흔들 만한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성경에는 오늘날 일반화 되기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성경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번역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렵기는 하겠지만 좋은 번역이라면 주석이 없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었으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에스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