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막의 달과 별은
더욱 빛나는가
몽골 고비사막
글 \ 사진 이치상 경희대산악부OB
고비사막에 함께 가자는 남기탁(부산약사회) 선배의 제안에 열사의 땅을 여행하리라는 막연한 상상만 했을 뿐 몽골에 대해선 생각지 못했다. 봄철 불청객인 황사의 발원지가 고비사막이라는 사실과 징기스칸, 중국과 러시아 틈에 끼어있는 결코 작지 않은 나라, 말이 뛰노는 드넓은 초원지대 등이 내가 알고 있는 몽골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가겠다고 나선 것은 사막에 대한 동경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모래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밤마다 빛나는 무수한 별과 달을 바라보며 그 아래서 밤을 지샐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산에 익숙한 내게 동화나 영화 속 이야기처럼 낭만이 가득한 풍경들로 다가왔다. 사하라사막을 다녀온 후배는 살아가면서 꼭 한 번 해봐야할 것이 사막여행이라고 강력히 추천하기도 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 3시간 30분 만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칭기즈칸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작지만 깨끗한 공항청사와 생각 외로 간단한 입국 수속이 몽골의 첫인상이었다.

바얀작의 붉은 언덕. 공룡알과 공룡화석이 발견되면서 유명해진 곳으로 붉은 빛의 언덕이 석양을 받으면 불타오르는 것과 같다하여 ‘불타는 언덕’이라는 별칭이 붙은 곳이다.
말 대신 오토바이 탄 목동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 사막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거나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출발 전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출발 당일이 휴일이라 민간 환전소에서 환전(1달러당 1350투그릭)하고 차량도 4대를 빌렸다. 토요타 랜드크루져는 비싸기도 하지만 탑승인원에 제한이 있고 러시아식 봉고인 후르공은 싸지만 승차감이 떨어져 4륜구동의 승합차인 미쓰비시사의 델리카를 선택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가득 채우고 예비 연료통에도 기름을 담아 캐리어에 매달았다. 채소류와 간식, 물 등은 마트에 들러 구입했다. 일행 중 고비사막을 여행했던 사람이 있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쉽게 마칠 수 있었다.
차는 울란바토르 외곽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초원으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사막이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험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하게 내달렸다. 4대의 차량이 일렬로 달리면 전체적인 통제는 쉽겠지만, 앞 차가 일으킨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하므로 운전수들은 각자의 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땅위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말 위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몽골사람들. 과거 유럽까지 영토를 넓힌 선조들의 뜨거운 피가 그들에게 흐르고 있음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몽골인 운전수는 차를 마치 말 몰듯이 내달렸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으로 내달리는 통에 덜컹거리는 차안 뒷자리에서 불안한 심정으로 사고만 나지 말기를 바라며 손잡이를 잡고 버텨야 했다. 길이라야 초원 위에 새겨진 차바퀴 자국이 전부지만 그것을 벗어난다 해도 차가 달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평원이 계속되었다.
고비사막에 접어든지 1시간 30분 만에 첫 유목민을 만났다. 양과 염소 떼를 몰고 가는 그 유목민은 말이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흩어진 가축들을 클랙슨으로 불러 모으고 있었다. 8년 전 몽골을 여행했던 몇몇 대원들은 ‘당시에는 오토바이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말 탄 목동을 구경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며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 쉬었다.
고비(Gobi)는 ‘사막화 되어 가고 있는 땅’을 의미한다. 사막이라면 의당 하얀 모래가 자유롭게 물결치다 멈춘 모래 언덕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고비는 고운 흙먼지가 잔돌과 함께 뒤덮여 있고, 돌무더기 산들이 뒤섞인 황량하기 그지없는 광활한 땅이다. 점점이 자라고 있는 풀들은 지평선 가까운 쪽을 바라보면 초원처럼 푸르게 펼쳐져 있다.
고비사막 여행시즌은 겨울이 완전히 끝난 후인 7월부터 9월까지다. 봄철은 황사로, 한 겨울에는 너무 추워 여행객들이 거의 발길을 끊어버린다. 여러 시간동안 차를 달려야 여행자를 위한 숙소인 게르(Ger)를 만날 수 있고, 숙소가 한정되어 있어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면 잠자리를 걱정해야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오지여행을 하면서 원주민 외에 여행객을 자주 만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못 된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완전한 시즌 전인 6월로 정했던 것이다.
첫날 캠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굴과 사원터, 눈에 바르면 시력이 좋아 진다는 우물 등을 둘러보자는 현지 가이드 ‘민구’를 따라 나섰다가 캠프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서녘 하늘의 장관에 모두들 넋을 잃은 듯 한참 동안 멍하니 붉게 타오르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짙은 빛깔의 저녁놀과는 다른, 붉디붉은 불꽃이 마그마처럼 수놓은 장관은 고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라고 한다.
지평선으로 내려온 하늘
둘째 날, “어제는 250km왔는데, 오늘은 400km를 가야하니까 서둘러야합니다.” 가이드 민구의 말에 손은 허리와 엉덩이로 갔다. 다만 ‘어제보다 길이 좋기 때문에 늦게 도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일단 믿기로 했다. 어제와는 달리 평원은 완전한 지평선이 사방에 머물렀다. 초원의 물결치던 푸르름이 어느 순간부터 먼 지평선까지 뻗어가 끝 모를 광활한 대지의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크고 넓은 땅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를 완벽하게 품은 광경이다. 지평선까지 내려온 하늘은 한없이 크고 넓게만 보였다.
걷거나 말 혹은 낙타를 타고 여행하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큰 고비사막은 차량으로 가로지르는 일마저도 쉽지 않다. 줄곧 남쪽으로 5시간을 달려서 제법 큰 도시인 만달고비로 들어섰다. 주유를 하고 다시 차를 달렸다. 달랑자드가드에서 다시 주유하고는 40분 더 간 곳에서 해가 질 무렵 캠프로 들어섰다. 다행히 밤바람이 시원했다.
‘검은털 독수리의 입’이라는 의미의 ‘욜링암(독수리 계곡)’은 국가지정 공원이다. 말과 낙타가 방문자를 위해 대기해 있고, 계곡 안쪽 협곡에는 겨우내 쌓여 있던 눈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어 시원한 한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긴 절벽들과 계곡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개울은 고비여행에서 처음 맛보는 호사였다.
욜링암을 빠져 나와 고개를 넘어 다시 사막 위로 나섰다. 천둥을 동반한 비구름이 몰려왔지만 길에서 만난 오아시스 ‘우물’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모래와 먼지가 뒤섞인 강풍 속에서의 식사에도 즐거운 분위기는 꺾일 줄 모른다.

홍그린엘스의 모래산을 오르는 대원들
어느 순간 오른쪽으로 모래언덕이 끝 모르게 이어져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모래 언덕’이라는 뜻의 홍그린엘스다. 모래로 된 언덕이 180km나 뻗어있다. 여행 중에 가장 깊숙이 고비에 들어온 날이라 이날의 저녁은 ‘허러헉(몽골 전통 염소요리)’을 위해 특별히 요리사까지 차에 태워 함께 왔다. 저녁 무렵이면 폭풍이 몰아쳐 왔다가는 어느 순간 사라져 갔고, 그런 후면 사막은 정적이 감돌았다. 점점 차오르는 달과 반짝이는 별을 헤며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늘로 사흘째다.
홍그린엘스의 모래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모래산은 낮은 것은 수십m에서 높은 것은 200m가 넘게 솟아있다. 그 중에서 가이드 민구의 소개로 오르기 시작한 모래산은 가장 높은 것이었다. 바람은 이날따라 세차게 불어왔다. 가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종아리가 따가울 정도였다. 평범한 200m의 산이라면 금방 올랐겠지만 강풍이 불어 닥치는 모래산을 오르는 일은 절반 이상의 대원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비행기를 태워준다는 가이드의 말에 기운을 차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오며 거대한 수송기에 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모래의 공명은 비행기의 굉음처럼 울려 퍼졌고, 모래산을 오르느라 지친 대원들에게 보상으로 그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폭풍도 고비여행의 일부
붉은 빛의 언덕과 절벽들로 이뤄진 바얀작은 공룡화석(뼈와 알)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몽골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곳이고, 해질녘이면 저녁놀에 더욱 붉은 빛을 띠는 바얀작의 붉은빛 언덕들은 ‘불타는 언덕(flaming cliffs)’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준비해 간 텐트를 치고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폭풍이 몰아쳐 왔다. 동쪽에서 시작한 폭풍은 잠시 후에는 남쪽에서, 서쪽에서, 북쪽에서 불더니 다시 동쪽에서 한 동안 몰아치다가 텐트에서 자기를 포기한 대원이 3명 나온 후에야 멈추었다. 텐트 폴대가 바닥을 뚫고 나왔고, 날린 모래와 먼지에 텐트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텐트에서 자려고 마음먹은 대원들에겐 ‘이것도 고비여행의 일부’라며 조용해진 밤에 감사했다.
전날의 차 고장은 결국 여유로운 운행으로 이어졌다. 하루에 가기로 했던 거리를 이틀로 나눈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 고대 사원 터가 있는 옹기는 가까운 곳에 강물이 흘렀고, 굵은 나무들도 곳곳에 자라고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지금까지의 캠프와 비교하면 호텔이랄 수 있는 옹기캠프에는 사우나까지 딸려 있고, 전화도 가능해서 남아공에서 벌어진 월드컵 경기의 결과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바양고비에서의 낙타트레킹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는 마을에서 주유를 한 후에는 다시 드넓은 평원으로 나섰다. 근처의 유목민 게르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노인 부부와 젊은 부부에 세 아이가 딸린 유목민 가족은 이방인에게 자신의 거처를 너무 순순히 내놔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하면서 사는 사람들인지 짐작케 했다.
지난겨울 30년만의 혹한과 폭설(그 겨울의 혹한과 폭설 속에 몽골 전역에서 150만 마리의 염소, 92만 마리의 양, 17만 마리의 소, 9만 마리의 야크, 1,500마리의 낙타가 폐사했다) 속에 기르던 양과 염소 백 여 마리 중 백 마리를 잃고 시름에 빠져있는 유목민 가족들에게 우리의 방문과 조촐한 선물이 작으나마 기쁜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그들과 작별했다.
북쪽으로 가면서 초원의 빛이 더 짙어진 느낌이다. 사막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고개를 앞두고는 차를 세워 황무지 위에 비스듬히 세워진 돌 하나를 소개하는 민구. BC 3,000년경에 만들어진 사슴 암각화가 새겨진 중요한 유물이란다. 고개를 넘으면 포장도로를 만난다는 말에 ‘고비 여행도 막바지구나’하는 아쉬움과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포장도로로 들어선 차는 최고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울란바토르까지 6시간 정도를 남긴 바양고비 캠프에서 마지막 캠프를 준비했다.
모래사막이 게르의 일부를 덮어가고 있는 바양고비캠프의 매니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아가씨였다. 유창한 우리말에 외모까지 영락없는 한국 아가씨여서 한동안 놀라움이 웃음과 함께 이어졌다. 낙타를 타고 난 후,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하고 싶다는 대원들이 나간 후 폭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흰 빛의 사막은 비가 그친 후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비에 흠뻑 젖은 대원들이 돌아온 후 사막에서의 마지막 밤은 임현숙 대원의 생일파티와 함께 깊어만 갔다.
어둠이 내린 초원 위로 떠오른 달은 어느새 보름달로 바뀌어 있었고, 무수한 별빛은 고비여행의 마지막 밤을 맞은 대원들의 캠프 위로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고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불타 오르는듯 한 저녁놀. 상승기류를 만난 구름이 저녁놀에 물들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