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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
20여 년에 걸친 봉사 활동을 통해
에드가 케이시의 투시 능력은 문자
그대로 수천의 실제 사례에 의하여
믿을 수 있는 것임이 증명되었다.
이 사실은 그의 불가사의한
생애의 다음 발전 단계를 살펴볼
때 특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지각 능력은 처음에는
인간의 몸 내부로 돌려졌다.
이 능력이 외부로, 곧
우주라든가 인간과 우주의
관계라든가 또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문제로도 돌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다음과 같은 경위에서 나왔다.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부유한
인쇄업자인 아서 라머스가
친구에게서 케이시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일부러 케이시가 사는
앨라배마의 셀마까지 그를 찾아왔다.
라머스는 건강상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며칠 동안
케이시의 리딩 현장을 보고는
그의 투시 능력이
진짜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라머스는 박식하고 지적인
면에서 아주 예민했기 때문에,
보통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병든 사람의 간장 기능이나 고장난
소화기 작용을 꿰뚫어보는 것만이
아니라..좀 더 보편적인 문제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지금까지의 인류의
철학 체계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진리에 가까이 이르렀는지,
인간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지(만약 있다면) -
영혼 불멸이라는
가르침에는 어떤 진리가 있는지,
죽으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케이시의 투시가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케이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삶의 궁극적 문제에 관한 그러한
추상적인 의문은 여태까지 그의
마음에서 전혀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는 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종교 교리를 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교회의 가르침을 철학이나
과학 또는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비교해 본다는 따위는
전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이상한 잠, 곧 최면 상태에
자기 자신을 들게 하는 것은
오직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고결한 소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능력 속에 병을 진단하고
치료해 주는 것 말고도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라머스가 처음이었으며, 그것은
당장 케이시의 상상력을 일깨웠다.
케이시의 리딩은 그때까지는
주어진 문제에 해답을 주는 데
실패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라머스가 제기하는
의문에 해답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라머스는 사업 관계로 셀마에 계속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몇 주 동안
케이시를 데이턴으로 초청했다.
케이시는 아마도 신이 그에게 새로운
봉사의 길을 보여주시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그 초청에 응하기로 했다.
당시 라머스는 점성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만약 점성학이 올바른 학문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인간과
우주의 다른 부분과의 관계를
바르게 분석하고 체계를 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것이 케이시의 투시능력
을 이용한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23년 10월
어느 날 오후, 케이시가 데이턴의
한 호텔방 침대에 누웠을 때,
그에게는 라머스의 몸 속을 살펴
보는 것이 아니라 호로스코프(천궁도)
를 살펴보라는 암시가 주어졌다.
케이시는 최면 상태에 들자마자
짤막하게 요약된 말로
라머스의 호로스코프를 말했다.
그리고 그 리딩이 거의 끝나갈
무렵 뭔가 약간 모호한 말투로
더듬더듬 "그는 한때
승려였다." 라는 묘한 말을 했다.
그것은 단지 낱말
몇 개를 잇는 단순한 말이었다
그러나 박식하고 인간의 운명에
관한 여러 지식을 섭렵한 라머스에게
그것은 매우 자극적인 말이었다.
그 한 마디는 바로
케이시의 비상한 투시력이
예로부터의 윤회 사상을
사실로 인정하는 말이었다
그때의 리딩이 라머스의 호기심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로 인하여 라머스의
호기심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케이시가 눈을 떠보니
라머스가 흥분하여 방금 케이시가
한 말의 의미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있었다.
만약 윤회가 사실임이 증명된다면
그것은 철학.종교 및 심리학에
관한 현대 사상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라머스는 외쳤다.
만약 케이시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리딩을 해 준다면
윤회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점성학과
윤회는 어떻게 연관될까?
그것들은 인간의 삶과 성격 및
운명을 어떻게 설명해줄까?
라머스는 이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리딩을 해달라고 애타게 졸랐다.
당혹스럽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케이시는 하는 수 없이 승낙했다.
라머스의 열정적인 질문에 대하여
케이시의 리딩은
라머스 자신의 과거세의 경험과
앞으로 그가 연구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문제에 대하여 더욱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 리딩에 따르면, 점성학에는 어느
정도의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태양계는 끊임없이
진화해 가고 있는 영혼에 대하여
일련의 경험을 제공한다.
인간은 이미 이 세계에서의 온갖
경험과 또한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의
의식 경험을 번갈아 갖게 된다.
이런 차원들에 대하여
점성학은 예로부터 그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행성의 이름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현재 전해져 있는
점성학은 다만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다.
그 까닭은, 첫째로
윤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로
그것은 이름과 점성학적 영향이
인간의 선조직腺組織을
통하여 그리고 다른 영역에서의
그 이전의 경험을 통하여
어떻게 인간에게 작용하는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머스는 점성학 지식을 두루 섭렵했
지만 그 두 가지의 상호 관계에 대해
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케이시는 이런 모든 것을 한낱
공상처럼 여겼지만, 그 자신도
호기심이 일어났기 때문에 라머스
가 청하는 대로 리딩을 계속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은 만약
리딩 도중에 케이시에게
'호로스코프' 에 대하여 좀 더
적절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면 중에 다음과
같은 형식의 암시를 하게 되었다.
당신 앞에는 ' X라는 곳' 에서
xx년 x월 X일에 태어난
'XX라는 이름' 의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현세에서의
이 사람의 현재적 및 잠재적
성격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이 사람과 우주와의 관계, 그리고
이 사람과 우주의 모든 힘과의
관계에 대하여 말해주십시오.
또한 전생에서의 때와 장소와 이름,
그 각각의 전생에 있어 이 사람의
인간적 성장을 도운 것과 그것을
지연시킨 것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그로부터 리딩은 전생에서의
그 개인의 상태를 분명하고
노골적으로 말해주게 되었으며,
이런 리딩과
그때까지의 각 개인의 육체와
건강 상태를 말해주는 리딩을
구분할 필요가 생겨,
전생이나 성격을 말해주는
리딩은 /'라이프 리딩'/
육체와 건강 상태를 말해주는
리딩은 /'피지컬 리딩'/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라이프 리딩과
피지컬 리딩을 하는 방식은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모두 같다.
케이시는 라이프
리딩을 계속하면 어김없이 심한
현기증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현기증의 원인을 발견하려고
자기 자신의 피지컬 리딩을 해보았다.
그 결과 라이프 리딩을 할 때는 몸의
위치를 피지컬 리딩 때와는 반대로
머리는 북쪽으로,다리는 남쪽으로
향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나왔다.
여기에 대해서는 '극성極性의
문제' 라는 언급이 있었을 뿐
다른 설명은 주어지지 않았다.
★★2
케이시 자신에 대한
라이프 리딩에 따르면,
그는 수백 년 전 이집트에 살던
위대한 신비력을 지닌 고승이었는데,
자아가 강하고 관능적이었기
때문에 파멸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 후 페르시아에 태어나서는
내과 의사였다. 그 무렵
사막 전쟁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사막에 홀로 버려져 사경을 헤메다
그는 먹을 것도 물도 없이
3일 밤낮을 극도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 지내면서
그 고통을 면하기 위해
육체에서 의식을 풀어놓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작가 잭 런던의 윤회 소설
*스타 로버The star rover* 에는
미치광이가 된
어떤 죄수가 이와 비슷한 노력을
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케이시는 육체에서
의식을 풀어놓는 시도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현생에서 마음을 풀어놓는 능력을
지니게 된 바탕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현생에서의 그의 모든
미덕과 결점이 솔직히 평가되고,
그것들이 모두 그의 과거생에서의
경험에서 연유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생의 생애는 그의 영혼
에게는 일종의 시금석이었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인류에
봉사할 기회를 얻었으며, 그리하여
과거의 오만하고 유물적인 생각과
관능적이었던 삶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머스는
리딩이 보여주는 이 새로운 방향이
앞으로 더욱 연구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것임을 느끼고
케이시에게 셀마에 있는 가족들을
데이턴으로 불러오라고 했다
케이시의 생활비는
자기가 부담하겠다는 것이었다
케이시 부인과 아들 둘,
그리고 비서인 데이비스 양이
모두 데이턴으로 옮겨왔다
그들도 케이시와 마찬가지로
사태의 변화에 놀랐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차즘
호기심과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들 모두에 대해서도
라이프 리딩을 했다.
어느 사람에 대해서나
개인적인 성격에 관한 솔직한
평가가 내려졌고
그것이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연유하는지가 밝혀졌다.
"전생은 네 번 다 과학자였다''
라든가
"그래서 유물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라든가
''당신은
성질이 매우 급했다.그 때문에
이집트나 영국에 태어났을 때에는
그런 성질로 말미암아 슬프고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현생에서는 그것을
억제하기를 배우고 있다." 등등.
케이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라머스나 그의 여러 친구와 같이
케이시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격 묘사도 참으로
정확하고 솔직하고 노골적이어서
라머스의 연구열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나 반대로 케이시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점점 더 불안해져갔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자기 평가의 괴로운 시기가
또다시 닥쳐왔던 것이다.
오랜 회의懷疑를 거쳐
자기가 투시를 하여 의학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악마가 하는 나쁜 일이 아니라
신의 역사를 돕는 좋은
일이라는 확신은 갖게 되었지만,
라이프 리딩을 하기에 이르러서는
그런 투시가 자신이 지금까지
받아들여온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
나는 사상을 담고 있으니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케이시의 마음의
동요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엄격한 정통 그리스도교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당시 그는 자신의 믿음과
다른 사람들의 믿음 사이에
깊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으며.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교라는 불빛
속에 들어 있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빛을 평가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힌두교나 불교의 주된
가르침인 윤회 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케이시는 인간이 죽으면
어떤 경우에는 동물의 모양을 띠고
다시 지상으로 온다는
이른바 영혼 전생의 교리와
윤회를 혼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상태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윤회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다.
그는 어쩌면자기 할아버지가 소로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소를 죽이지 않는다는 힌두교도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또한 자기의 죽은 조상이 어쩌면
곤충으로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고 하여 곤충을
죽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케이시의 이런 혼란을 오래지
않아 라이프 리딩이 풀어 주었다.
리딩이 설명해주는 바에 따르면,
윤회란 인간이 동물의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 아니며,
결코 무지한 사람의 미신이 아니라
철학적.종교적 견지에서 절대로
존중해야 할 가르침인 것이다.
인도나 그밖의 불교 국가에서는
교양 있는 몇백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것을 믿고 있으며,
그런 도덕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나 그밖의 동양의
어떤 종교 유파 가운데에는
인간의 영혼이 동물의
형태를 띠고 나온다는 전생轉生
사상을 설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윤회의
원리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곡된
설에 대한 좁은 지식 때문에,
그 근본에 가로놓여 있는 진리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의 눈을 닫아 버리
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 3
라머스는 리딩에 의하여 윤회
사상을 더욱 분명히 밝혀 나갔다.
그는 윤회란 '진화' 라고 설명한다.
지상에서의 많은 연속적
생애를 통하여
인간의 영혼은 진화하는 것이다.
즉 어떤 때는 남성으로 또는 여성으로,
또 어떤 때는 가난한 신분으로
또는 왕자로
어떤 민족에 태어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다른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면서,
마침내 그 사람의 얼은 그리스도
로 상징되는 /'완전'/에 도달한다
-바로 그런 진화의 과정인 것이다
영혼은 밤마다 다른 분장을 하고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와 같다.
또는 어떤 시기에는 물질적인
/'육체'/라는 장갑을 끼고 있다가
그것이 다 낡으면 벗어버리고 또
다른 장갑으로 갈아끼는 손과도 같다.
북반구의 지식인 가운데도
이런 사상을 받아들여 여기에
대하여 연구하고
저술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쇼펜하우어는
철저하게 이것을 믿었다.
에머슨, 휘트먼, 괴테,
조르다노 브루 노, 플로티노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역시 그러했다.
그런 사람들은 그래도 좋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어떠한가?
케이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윤회 사상을 긍정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와 그 가르침
을 부정하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라머스는 주장했다.
'결국 그리스도가
가르친 진짜 알맹이가 무엇이냐?'
바리새인들 가운데 율법사들이
예수에게 바로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때 예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5. 40절)
어떻게 이 단순하고도 심원한 가르침이
윤회에 의하여 진행되는 생명 진화
라는 사상과 모순된다는 것인가?
어떻게 이 사랑의 원칙이
다른 위대한 종교의 가르침과
모순된다는 것인가?
붓다는 일찍이
''그대 스스로가 남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느끼는 행위로 남들에게
해쳐서는 안 된다'' 고 했다.
또한 "이것은 의무의 으뜸이라
자기가 당했을 때 고통을 느끼는
그런 행위를 남들에게 해서는
안 된다" 고 힌두교 성전은 가르친다.
힌두교나 불교도
사랑의 법칙과 윤회라는 영적
진화의 법칙 사이에 이무런
분열이나 모순도 인정하지 않는다
힌두교나 불교는 오히려 윤회의
법칙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두 법칙 사이에
모순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