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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불총림 방장 지선스님이 5월13일 하안거 결제일을 맞아 백양사 대웅전에서 결제법어를 내리고 있다. | ||
고불총림은 강맥, 율맥, 선맥, 염불맥이 오롯이 이어져 내려오는 도량이다. 만암스님 이전부터 내려온 전통이 성도재일이나 출가재일 같은 날에 강원 학인 스님이나 수좌 스님, 초보 수행자들에게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도록 했다. 이들 스님들이 논문을 써 발표하면 큰 스님들이 밑에서 합장하며 설법을 들었을 정도로 남다른 교육을 펴온 곳이다.
방장 지선스님은 “절은 가난한데 인물은 끊임없이 배출됐다. 다른 종파를 포함해 한 세기에 교정, 종정 등을 지낸 스님이 6명이나 된다”며 “고려 때는 사찰이름이 정토사로 염불을 치열하게 했던 곳으로, 불복장 등 불교의례의식을 제대로 전수해온 곳도 백양사”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북 마하연 남 운문’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백양사 운문선원은 예부터 알아주는 수행도량이다. 만암, 서옹스님 외에도 용성스님과 고암, 석암스님, 향곡스님 은사 운봉스님, 석주스님 은사 남천스님 등이 운문암에서 수행했다.
백양사는 여타 총림에 비해 비교적 늦은 1996년 총림에 지정됐지만, 그 역사는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암스님은 왜색불교 척결, 교육 현대화, 승풍 진작 등 3대 기치를 내걸고 1947년 2월 성도재일에 고불총림을 결성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혼란에 빠진 교단과 승풍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발로인 셈이다.
당시 불갑사 용흥사, 문수사 등 12개 사찰과 장성, 고창, 함평 등에 위치한 10개 포교당이 동참했다. 하지만 6.25가 발발하고 사찰이 전소되면서 중단됐다. 하지만 만암스님은 30 여년을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승풍을 진작시키고 중창불사를 했다.
현대에 이르러 고불총림의 수행가풍을 드날린 수행자는 서옹스님이다. 스님은 운문선원과 고불선원을 오가며 <벽암록> 법문을 해 선지를 전했다. ‘참사람 결사 운동’과 ‘참사람의 향기’ 수련회를 통해 수행의 대중화에 일조했으며, 1998년에는 백양사에서 무차대법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 하안거에는 지난 4월 승좌고불법회를 통해 방장에 추대된 지선스님이 후학들을 제접한다. 방장 스님은 결제법어에서 수행자들의 요익중생을 강조했다. 수행자들의 요익중생을 강조했다.
“사랑은 헌신을 해야 의미가 있으며 금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 때 가치가 있다”며 “대승의 수행자들의 원력과 책임은 무한정으로 텅빈 소리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활 중에 알게 모르게 방편시현을 해야 한다”고 설했다.
민주화투쟁을 했던 방장 스님의 법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9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재야활동을 하던 스님은 수행자의 개인수행과 현실참여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늘 고민했다.
대승불교는 반야와 방편으로 대표되는데, 지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어찌 방편을 쓸 수 있을지 지혜가 부족했던 때라 갈등이 더 컸다. 분신정국 속에서 데모 현장에 나갈 때마다 유서를 써놓고 나가면서 스님은 “공과 무를 현실에 실현하는 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길 위로 나섰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 고불총림 방장 지선스님의 결제 법어에 앞서 입정을 하고 있는 수좌 스님들의 모습. | ||
방장 스님은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드는 것이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비의 자는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비는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라며 “사회악을 묵인하고 침묵하고 방조하는 것은 악업을 짓는 것”임을 피력했다.
예나 지금이나 “수행자라면 시줏밥을 먹고 수행한 만큼 갚아야 한다”며 “도량을 잘 지키면서 수행가풍을 잇는 것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지혜의 본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불교공부도 웬만큼 한 요즘 사람들은 스님에게 지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법을 지키며 정진하는 눈푸른 수행자들이 한국불교의 희망이라지만 스님은 “운수납자가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40~50년 수행한 스님 가운데에는 스스로가 무상하고 미세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했는데 누굴 구제하냐며 사회에 나가길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며 “옳은 말이지만, 작은 실천이라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부처님의 출가고민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한 것은 생노병사의 근원적인 문제 외에도 민족 간의 전쟁과 계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환기시키며 “선방에 평생 앉아 있는 것만이 옳은 게 아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깨달음도 있다”고 부연했다. 삶의 문제를 도외시해서는 깨달음도 없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 하안거 결제 입재식이 봉행되는 백양사 대웅전으로 스님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
방장 스님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최근 잇따른 사건사고에 정관계의 유착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종교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불신, 불안, 불평등, 부정 등 아니불(不)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라고 안타까워하는 스님은 “비싼 세금을 받아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줬냐. 크고 작은 사건이 이어지는 데 정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모순과 부정, 비리, 거짓말투성이라면 정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았다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발로참회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최고 1인자부터 발로참회 없이 거짓말로 일관하고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이대로 가면 국민들 희망을 잃고 좌절해 우울증을 겪게 되고 정신적 병폐가 생기면 국가적으로도 손해”라고 우려하며 “새 사건으로 지난 사건을 묻어가는 기존의 모습으로는 국민을 구원할 길이 없다. 혁명적인 개혁이 필요한 데 할 수 없다면 물러나야 맞다”고 말했다.
교육과 정치, 경제의 문제를 원인으로 꼽은 스님은 “정치, 교육, 경제가 못하는 일은 종교가 해줘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종교도 대부분 이익집단화 돼 있다 보니 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며 “계파가 있고, 종권을 향해 야합하는 모습이 드러난 우리 종단도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스님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선지식이 나올 수 없다.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불자들도 이런 오탁악세에 무엇이 옳고 그른 줄 판단하는 정견을 길러야 하고, 이를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닌 것은 아니고 기인 것은 기라고 확실히 얘기하고 올바른 집회를 하면 참석하고 옳은 사회현상은 지지하고 박수치고 찍어줘야 한다. 그래야 개혁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진짜 정부를 사랑한다면 과감하게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날 법회에는 고불선원, 운문선원 외에도 용흥사, 불회사 선원에서 정진할 대중들이 함께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