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화를 내되 죄는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노를 품지 말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화를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마음에 품고 지니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곧 이것은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불완전하므로 다툼으로 마음이 상함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상한 마음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일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 한곳에 분노를 품고 있으면 그 틈으로 마귀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그날의 재앙은 그날의 재앙으로 생각하고 어린아이처럼 잊어버리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저의 어린시절에 아이들은 서로 죽일듯이 싸워도 다음날 웃으면서 다시 놀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른이 된 제 자신이 제가 어린아이였을때는 잘 했던 것을 이제는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제안에서 발견합니다.
분노를 품지말고 모든 사실관계 잘 잘못을 모두 판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함입니다.
그것이 어떤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아까 전제한대로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잘 잘못을 따져봐야 모두 잘못이라는 결론으로 나올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져서 나온 사람의 평가는 가치가 없지만 감싸주고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것은 말씀의 순종이므로 가치가 있습니다.
무가치한 일보다는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이 보람찬 것이고, 그 가치는 오직 말씀의 방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더 이상 도둑질 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일하게 하라.
그가 손수 선한 일을 하여 궁핍한 자를 구제할 수 있게 하라.
도둑질은 고급기술입니다. 도둑질할 수 있는 사람은 왠만한 일을 보통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도둑질을 하려면 민첩하고 감각이 살아있어야 하며, 마음이 소심하지 않고 대범하고 겁이 없어야 합니다.
도둑질할 재능으로 일을 하면 왠만한 일은 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둑질을 못하게 하고 아무것도 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능력으로 일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가 자신의 일의 댓가로 궁핍한 사람을 돕게하라고 하십니다.
일을 하는 보람은 돈을 벌어서 자신에게 쓰는 기쁨이 약 10%라고 한다면 자신이 일을 하여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그 기쁨은 100%가 됩니다. 사람들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제 자신이 그러함을 느낍니다. 줄때가 더 기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받을 때 더욱 기쁘게 받도록 하려고 합니다. 사실 받을 때는 그 감흥이 생각보다 떨어져서 실망한적이 있습니다.
너희 입에서 어떠한 더러운 말도 나오지 아니하게 하고 오직 서로를 세우는데 필요한 좋은 것만 말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서 더러운 말이란 그냥 더러운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상하게 하는 말이 곧 더러운 말입니다.
성경은 대칭성이 있어서 더러운 말의 대칭에는 세우는데 필요한 좋은 말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말은 상대방을 깍아내리고 그로인하여 쓰러지게 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거칠고 욕이 없더라도 더러운 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할수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은 권고와 권면이라는 핑계로 정죄를 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권고와 권면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합니다.
사랑은 그를 살리기 위함이지 죽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그가 세움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야합니다. 우리가 많이 하는 실수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와 같은 분노를 마음에 두었다가 그 분노를 상대방에게 권고와 권면으로 위장하여 분노를 표출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분노를 표출하야 약간 시원해 질수 있겠지만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은 쓰러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더러운 말입니다. 욕이나 거칠고 소리가 크다고해서 더러운 말이 아닙니다. 제가 세상을 살다보니 느끼는 것은 욕과 거친말을 하는 사람보다 부드럽고 조용히 말하는 사람이 더 더러운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장하는 말은 오히려 충동적이지 않았습니다. 위장하는 말은 조용하고 방어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모든 신랄함과 분개와 분노와 고함지르는 것과 욕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너희로부터 버리라.
너희는 서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26절 ~ 32절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랄함은 허망한 것입니다. 신랄함은 사람의 잘 잘못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인데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감정적인 잘못은 아날로그라 수치로 가부가 나타나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구분이 된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람간의 문제는 그사람을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용서는 다릅니다.
사랑으로 용서함은 그사람을 살피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위에 나타나듯이 도둑질한 사람을 사랑으로 용서한다면 그가 다른 일을 찾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인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를 요서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냥 용서하고 방관하는 것은 사랑으로 용서함이 아닙니다.
고함지르는 것고 욕설에 대해서 제가 위해 말했던 것은 욕설과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덜 위험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욕설과 고함을 지르는 것을 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우리의 롤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