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
'한국 원로'에 대놓고 호통까지 쳤다…싱하이밍 13년째 막말 왜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3.06.12 20:58
박현주 기자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외교적 결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교가에선 싱 대사가 13년 넘게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을 반복해왔다는 반응이 적잖다. 정부가 이번 "베팅" 발언에 대해 최소한 싱 대사 본인의 유감 혹은 사과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배경도 싱 대사의 과거 전력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김상선 기자. 중앙DB.
"가교 못 하면 국익 해쳐"
대통령실 관계자는 12일 싱하이밍 대사의 언행과 관련한 질문에 "대사라는 자리는 본국과 주재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가교 역할이 적절하지 않다면 본국에도, 주재국에도 국익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교관은) 접수국의 내정에 개입해서는 안 될 의무를 진다" 등 내용을 규정한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41조까지 언급했다. 대통령실이 자국 주재 대사를 직접 겨냥해 "국익을 해친다"고 지적한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다. 대통령실이 이번 사안을 그만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등 일방적 주장을 담은 A4 5장 분량의 발언을 쏟아냈다.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온 당시 발언은 민주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가감 없이 그대로 생중계됐다.
정부는 야당 대표를 앞에 두고 나온 싱 대사의 발언을 의도적 행동으로 판단하고, 중국 외교부 차원의 조치는 물론, 그에 앞서 싱 대사가 주재국 대사로서 직접 본인의 발언에 대해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발언 직후 중국 외교부는 "싱 대사는 직무 범위 내 활동을 한 것"이라며 오히려 싱 대사를 두둔했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논란의 본질은 싱 대사가 이 대표를 면담한 사실이 아니라, 싱 대사가 면담 중에 중국의 일방적 입장을 작심한 듯 읽어 내려가는 결례를 범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지난 9일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싱 대사 초치해 엄중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며 발언하는 모습. 김현동 기자
참사관 시절에도 '결례'
싱 대사는 중국 외교부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으로 꼽힌다. 싱 대사는 한국에서 4차례, 북한에서도 2차례 근무하는 등 남북한 공관을 넘나드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오랜 대(對)한국 외교로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그러나 싱 대사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양국 관계 우호 증진이 아니라, 중국의 일방적 입장을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쏟아내는 데 활용됐다.
싱 대사는 공사참사관이던 2010년 장신썬(张鑫森) 당시 신임 주한중국대사가 부임 인사차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을 예방한 자리에 배석했다. 당시 그는 현 전 장관이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자 한국말로 "녹음도 하고 촬영도 하느냐, 너무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장급 외교관이었던 싱 대사가 전면에 나서 주재국 장관의 발언에 '딴지'를 놓은 상황에 대해 외교적 결례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관저를 둘러보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뉴스1.
싱 대사는 2020년 1월 주한중국대사로 부임한 후에는 각종 행사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거친 화법'을 본격적으로 이어갔다. 특히 대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5월 중국 CCTV 인터뷰에서 '신시대 중국 외교'를 설명하면서 "친구는 좋은 술로 대접하되 늑대는 총으로 쏴야 한다"고 말했는데, 외교가에선 이를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기조를 대놓고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韓 간섭 말라…뭔 상관이냐"
실제 '늑대' 발언 후부터 싱 대사의 발언 수위는 더욱 거칠어졌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ㆍ중 고위지도자 아카데미 입학식에서 대만 문제를 꺼낸 뒤 "한국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고 본질을 분명히 알며, 간섭을 배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한ㆍ중 우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활동해야 할 외교 사절이 한국의 정책과 입장을 감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특히 당시 행사는 한ㆍ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미래 협력 강화를 주제로 열렸는데,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건 행사 취지에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언행이었다"고 말했다.
싱 대사는 그 무렵 한ㆍ중 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출판기념회에서도 "왜 한국은 신장 문제를 들고서 중국을 존중하지 않느냐"며 "그걸 갖고 중국을 흔들면 안 된다. 신장이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대답을 좀 해달라"며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이 중국의 신장·위구르 인권 침해를 토론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데 대한 공개 반발이었다.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그의 행동에 참석자들 사이에서 아무런 답이 없자 싱 대사는 연단에 선 채로 자리에 참석한 전직 장관급 원로의 이름을 호명하며 대답을 요구하기도 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김상선 기자. 중앙DB.
개인 비위 의혹도 불거져
싱 대사와 관련한 논란은 외교적 결례를 넘어 개인 신상을 둘러싼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싱 대사는 지난달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울릉도에서 운영 중인 최고급 숙박 시설에 무료로 투숙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호화 접대 의혹이 일자 주한중국대사관 측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측의 초청 형식으로 울릉도에 다녀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정은 한국 측에서 준비한 대로 따랐을 뿐"이라며 "싱 대사의 울릉도 방문은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외교 교류 활동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외교가에는 "싱 대사가 2008~2011년 주한중국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던 당시부터 외교관의 직무와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만한 복잡한 개인적인 신상 문제가 불거졌고, 본국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주한 대사로 보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싱 대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원래 2015~2019년 몽골 대사를 지낸 뒤 외교관직에서 물러나기도 돼 있었다"며 "그러다 미ㆍ중 경쟁이 치열해지며 한반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통'인 싱 대사가 사실상 '부활'해 한국 대사까지 지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도 "논란을 일으킨 이번 베팅 발언은 싱 대사가 한국 대사 자리를 더 오래 지키거나 본국으로 돌아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국 지도부를 향해 발신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나 그의 무리한 발언으로 한국의 반중 감정을 자극하고, 한국 정부의 '원칙 대응'에 가로막히며 양국 관계만 더 어렵게 만든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싱 대사는 올해로 한국 대사 3년 차로, 올해 안에 후임자와 교체가 될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천하이(陈海) 주미얀마 중국대사 등 후임 대사의 구체적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1992년 한·중 수교는 노태우정부가 끈질기게 추진한 북방정책의 ‘화룡점정’이었다. 지금은 인도에 추월을 당했으나 당시 중국 인구는 11억명으로 단연 세계 1위였다. ‘거대한 시장이 새로 열렸다’라는 기대감에 국내에서 중국 열풍이 불었다. 반면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가깝게 지낸 우방인 대만은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았다. 이미 영국·프랑스·일본·미국 등 세계 주요국이 모두 대만과 단교한 상황이었으나, 그래도 ‘같은 분단국이자 투철한 반공 국가인 한국만은 우리 곁을 지킬 것’이라던 대만인의 믿음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