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31) 부활
“용약하여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 짧은 노래 악보도 다섯 페이지가 넘는 부활 찬송의 시작 구절입니다. 누군가에겐 매년 참 힘든 숙제처럼 돌아오는 노래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노래가 불리는 순간을 참 좋아합니다. 어둠을 밝게 비추며 들어온 부활초를 바라보며 이 노래를 한 구절 한 구절 불러 내려가다 보면 예수님의 부활에 진정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부활 성야 전례의 장엄함과 긴 미사 시간만큼 부활은 우리 신앙에서, 우리가 지금 함께 공부하고 있는 교회의 가르침들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 진리의 정수”이며,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중심 진리로 믿고 실천했으며 성전이 근본 진리로 전해주었고 신약성경의 기록으로 확립되어 십자가와 함께 파스카 신비의 핵심 부분으로 가르쳐 온 신앙 진리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38항).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건임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경비병들이 분명히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들과 제자들에 의해 빈 무덤이 확인되었고, 이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들이 전해집니다. 예수님 부활이 실제 사건이 아닌 사도들이 만들어 낸 신앙의 산물로 폄하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쉽게 믿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명한 토마스 사도의 경우와 같이 직접 보기 전엔 믿지 못하기도 했고, “더러는 의심을 품었다”(마태 28,17)는 성경 말씀이 전해주듯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서도 여전히 의심을 품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그들 스스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너무나 어려우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경험을 통해 생겨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44항).
수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고, 함께 걸으며 말씀을 듣고,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는 등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유령과 같이 형체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혔던 바로 그 육신으로 부활하셨음을 분명하게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야이로의 딸이나 라자로처럼 죽었던 육신이 다시 살아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다시 죽게 될 지상에서의 삶을 새로이 이어나갔을 뿐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는 사건,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그분의 육신은 영광스럽게 된 육신의 새로운 특성도 함께 지닙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이 처음에 예수님이신 줄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나타나기도 하신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45-646항).
서두에 언급한 부활 찬송은 “오, 참으로 복된 밤, 그리스도께서 저승에서 부활하신 밤! 너 홀로 그 시와 때를 알았네” 라고 노래합니다. 오직 밤만이 예수님 부활의 순간을 알았다 표현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그 장면 자체는 누구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무엇인지 아직 우리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부활 사건은 분명 제자들의 직접적인 체험으로 전해진 역사적 사건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해와 체험을 넘어서는 사건입니다. 역사적 사건이면서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이며 그래서 여전히 우리 신앙의 신비로 남아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47항).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276~281쪽, 638~647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11월 3일(나해) 연중 제31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