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엔 이 시가 이카루스(Icarus/ 아이커러스)를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느낌은 별로 오지 않는데요.
아시다시피 Icarus는 다이달로스(Daedalus/ 디덜러스)의 아들로서 두 부자가 인조 날개를 밀랍으로 어깨에 붙이고 크레타(Crete)섬을 탈출했으나, 아버지인 Daedalus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접근한 탓으로 밀랍이 녹아 지중해에 추락해서 죽었지요.
이 신화를 모티프로 벨기에의 화가인 피터 브뤼겔(Pieter Brueghel)이 그림을 그렸고, Auden은 그 그림을 보고 이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 그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브뤼겔의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방에는 그 외에도 <베들레헴의 인구 조사>, <동방박사의 경배>, <반역 천사의 추락>, <스케이트 타는 겨울 풍경과 새덫> 등 브뤼겔의 여러 작품이 함께 있고, 이 시의 앞부분의 내용은 그의 이런 다른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말해줍니다. 가령, 싯구 중의 'miraculous birth'(기적적인 탄생)은 <동방박사의 경배>를,'skating on a pond'(연못에서 스케이팅하며)는 <스케이트 타는 겨울 풍경과 새덫>의 그림을 보며 Auden은 자기의 생각을 펼쳐 보였던 것이지요.
오든은 브뤼셀 왕립 미술관에 있는 피터 브뤼겔의 여러 그림들을 보고, 그의 그림 전반에 흐르는 인간 이해, 곧 인생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포착한 듯합니다. 즉, 이 시는 위대한 예술 작품에 그려진 삶에 대한 깊은 인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다 바다 속으로 추락하는 Icarus와는 무관하게 일상의 삶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그린 Brueghel의 그림을 통해서,Auden은 고난, 순교와 같은 역사적 대사건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일상적 삶의 불가피성, 필연성을 깨닫게 하고 있지요.(참고로, 유럽 미술관을 순례한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책에 나오는 여러 그림들을 보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원시에 대한 번역을 다시 읽어보시면 조금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고통에 대해서, 그들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 옛날의 대가들이 그 고통이 인간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그들은 얼마나 잘 이해했던가. 어떤 사람이 식사를 하거나
창문을 열거나, 그냥 지루하게 걸어가고 있는
순간에 고통이 발생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이 든 사람은 경건하게, 열렬히
어떤 기적적인 탄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숲 가장자리 연못에서 스케이팅하며,
그것이 일어나지 않기를 특별히 바라는 아이들이 항시 존재한다.
그들은 결코 이것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무서운 순교조차도 하여간 귀퉁이의
어느 구석을 거쳐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
개들이 개 같은 삶을 살아가고 고문자의 말이 나무에다
죄 없는 엉덩이를 부비는 더러운 장소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들이 참화에서 얼마나 한가로이
얼굴을 돌리고 있는가; 농부는 첨벙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 절망적인 외침을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농부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실패는 아니었다. 태양은
여지껏 그러했듯이 푸른 물속으로 사라지는 하얀 다리(Icarus 다리)
위에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놀라운 것을 틀림없이 보았을 호화로운, 우아한 선박은
어딘가 갈 곳이 있어 유유히 고요하게 항해하고 있었다. (방송대 영문과 / 김문수 교수 譯)
다시 말하자면,이카루스에 관한 그림은 오른쪽 귀퉁이 쪽의 바닷물에 완전히 빠지기 직전의 한 쪽 발과 다리의 형상 뿐, 나머지 부분의 그림은 이카루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그저 일상에 바쁘고 다른 위대한 것이나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의 자기 본위에 충실한 감정을 고발한 그림이지요. 이 시의 끝 8행이 그같은 감정에 대한 언급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첫댓글저도 김문수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고난, 순교와 같은 역사적 대사건'이라는 말 자체가 이카루스의 추락을 평범한 사건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위대한' 사건이라는 말에 이미 긍정적인 주관성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오든이 이카루스의 사건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의 추락을 순교에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서 이카루스가 작게 나오고 나머지가 크게 나온 것은 위대한 사건이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카루스가 크게 나왔다면, 오든은 그 시를 쓰지 않았겠지요. 사람들이 위대한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첫댓글 저도 김문수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고난, 순교와 같은 역사적 대사건'이라는 말 자체가 이카루스의 추락을 평범한 사건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위대한' 사건이라는 말에 이미 긍정적인 주관성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오든이 이카루스의 사건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의 추락을 순교에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서 이카루스가 작게 나오고 나머지가 크게 나온 것은 위대한 사건이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카루스가 크게 나왔다면, 오든은 그 시를 쓰지 않았겠지요. 사람들이 위대한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네요. 저는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시인이 이카루스의 추락을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해서 자세한 시적 배경을 모르시는 줄 알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