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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舊約) ☆ (大先知書)
☞고난(苦難) 주간(週間) 25(월)-29(금)☜
사53-1:12절) 사서 고생(苦生)하신 예수님
銀行에 가면 대형 금고가 있습니다. 그 금고 문은 아주 두꺼운 철판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억지로 그 문(門)을 열 순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금고의 열쇠를 가지고 여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천국(天國)문(門)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本文) 말씀은 천국(天國)문(門)을 열 수 있는 유일(有一)한 열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그 열쇠를 쉬운 말로 표현하면 *대리심판(代理審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죄인(罪人)인 인간들을 위하여 누군가 죄 없는 자가 대신(代身) 하나님의 심판(審判)을 받고, 벌(罰)을 받는 것입니다. 이 방법(方法)이 아니면, 인간들은 영원(永遠)히 하나님의 죄 용서(容恕)를 받을 수 없고, 구원(救援)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구약(舊約) 성경(聖經)은 인간의 죄 용서(容恕)를 제사적(祭祀的)인 개념(槪念) 으로 표현(表現)했습니다. 그것이 대속(代贖)의 죽음입니다. 즉 우리 인간의 억만가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가리우기 위하여 죄 없는 짐승의 피가 흘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적(比喩的)인 의식(儀式)입니다.
그런데 본문(本文)은 제사적(祭祀的)인 개념(槪念)이 아니라, 직접적(直接的)인 형벌(刑罰)의 개념(槪念)으로 이를 설명(說明)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치 형벌(刑罰)의 현장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說明)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리심판(代理審判)*이라는 개념(槪念)이 명확(明確)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설령 죄를 지었다 해도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의 동의(同意)도 없이 나를 대신(代身)해서 심판(審判)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대신(代身)심판(審判)을 받았다고 해서 나의 모든 죄가 단번에 다 용서(容恕)될 수 있습니까? 성경(聖經)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실 선지자(先知者)들인 *우리*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계획(計畫)하신 가장 탁월(卓越)하고, 놀라운 구원(救援)의 방법(方法) 이며, 다른 것으로는 절대로 열리지 않던 천국(天國)문(門)이 곧 이 방법(方法)으로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Ⅰ.여호와의 종에 대한 오해(誤解)(서론)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구원(救援) 방법(方法)에 대해 크게 오해(誤解)했습니다. 그 오해(誤解)에서 가장 큰 것이 여호와의 종에 대한 오해(誤解)였습니다.
53:1-2절)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를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큰 위험(危險)에 빠져서 생명(生命)을 잃게 되었습니다. 나라에서 이 사람들을 건지기 위해 중장비(重裝備)를 동원(動員)하고, 많은 사람들을 보내어 구조(救助) 활동(活動)을 펼친다면, 모두 쉽게 납득(納得)할 것입니다.
그런데 밑바닥에서 조그마한 싹이나, 뿌리 같은 것이 하나 나오는데, 그것을 붙잡으면, 모두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누가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하늘 위에서 대형(大型) 크레인이 내려오든지, 튼튼한 밧줄이 내려와도 믿을까 말까 한데, 밑바닥에서 나오는 연(軟)한 순(筍)이나, 뿌리가 어떻게 우리 인간들을 구원(救援)한다고 믿겠습니까?
그래서 선지자(先知者)는 아예 서두(序頭)에 “우리의 전(傳)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message)를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기들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本文)의 특징(特徵)은 모든 것을“우리”라는 사람의 시각(視覺)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감당(勘當)하기 위해서 고난(苦難)을 당하셨는데, 우리는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여기서“우리”는 누구이겠습니까? 어떤 학자(學者)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先知者)들을 말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구원(救援)받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意味)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生角)하기에는 구원(救援)받은 모든 사람들을 의미(意味)하는데, 현장감(現場感)을 높이기 위하여“우리”라는 표현(表現)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고난(苦難)을 다른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보지 말고, 나의 관점(觀點)에서 보고, 우리의 관점(觀點)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즉 이 성경(聖經)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讀者)들을 그리스도와의 직접적(直接的)인 관계(關係)로 끌어들이기 위하여“우리”라는 표현(表現)을 쓰는 것으로 생각(生角)됩니다.
53:1절)우리가 전(傳)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救援) 방법(方法)이 사람들이 생각(生角)하기에 너무나 의외(意外)여서 처음에는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여호와의 팔”은 하나님의 구원(救援) 능력(能力)을 의미(意味)합니다. 하나님의 구원(救援) 능력(能力)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그것은 엄청난 기적도 아니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정치적(政治的)인 결단(決斷)도 아닙니다. 상상(想像)도 못했던 아주 연(軟)한 싹에서 하나님의 구원(救援)의 능력(能力)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원(救援)의 능력(能力)을 이끌고 나타나신 분이 누구입니까? 위대(偉大)한 왕도 아니요, 위대(偉大)한 학자(學者)도 아니요, 그저 평범(平凡)하고 못생긴 바보 같은사람이었습니다.“여호와의 팔”은 곧 그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굉장한 경제적(經濟的) 어려움에 빠져서 미국의 엄청난 원조(援助)를 끌어오기는 했는데, 아주 무식(無識)하고 가난(家難)한 젊은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53:2절)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우리가즉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도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救援者)는 아주 강하고, 튼튼한 밧줄이 아니라, 연(軟)한 순(筍)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남을 구원(救援)하기는커녕 자기도 구원(救援)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세상(世上)의 권력(權力)이나,능력(能力)을 전혀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意味)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적(人間的)인 매력(魅力)조차도 없었습니다. 즉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風采)도 없었고,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눈으로 직접보았다면 틀림없이 실망(失望)했을 것입니다.
가난(家難)한 가정(家庭)에서 자라난 그리스도는 우선 학벌(學閥)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問題)였습니다.
요7:15절)...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또한 정치적(政治的) 기반(基盤)이나, 가문(家門)의 배경(背景)도 전무(全無)한 사람이었습니다.
외모(外貌)조차도 잘 생기지 못하고, 보잘 것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그림에서 보는 예수님의 모습은 모델들의 모습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렇게 잘 생긴 분도 아니고, 키가 큰 분도 아니셨을 것입니다. 외모(外貌)로 본다면 실망(失望)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분이셨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구원자(救援者)를 이렇게 초라(綃羅)한 모습으로 보내셨을까? 기왕이면, 전도(傳道)에 도움이 되도록 키도 크고, 인물(人物)도 영화배우(映畵排優)처럼 잘생기면, 못생긴 것보다는 나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는 매력(魅力)을 느낄 만한 조건(條件)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對)했습니까?
53:3절)그는 멸시(蔑視)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蔑視)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얼굴을 돌리고,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길가에 앉아서 구걸(求乞)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조차 *재수없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한 장애(障礙)를 가진 분들이 *앵벌이’를 한다고 땅바닥을 기어가면서 물건을 파는데, 물론 불쌍해서 사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개를 싹 돌리고, 못 본체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볼 때, 아주 혐오(嫌惡)스러운 사람을 대(對)하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슬픔의 사람’(man of sorrow)이었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고 했습니다.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찢어지게 가난(家難)한 생활(生活)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는 것은 질병(疾病)과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질병(疾病)을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 병(病)을 많이 앓았든지, 아니면 간병인(看病人)같은 일을 하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생애(生涯) 전체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 가난(家難)하고, 질병(疾病)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家難)하게 생활(生活)하셨고, 사역(事役)기간 중에도 늘 가난(家難)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가난(家難)했던 것은 목수(木手) 수입이 시원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요셉이 일찍 죽는 바람에 소년(小年)가장(家長)노릇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자라신 나사렛은 일종의 철거민(撤去民)촌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거칠고, 반항적(反抗的)이며, 불량(不良)스러웠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양아치 족 사이에서 자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예수님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성경(聖經)에는 예수님 자신이 많이 *아팠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으면, 병(病)과 많이 가까울 수 있습니다.
젊은 여자분 중에 안마(按摩)를 잘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안마(按摩)를 잘하느냐? 고 물어보면, 결혼(結婚)하기 전에 *친정 아버지가 늘 편찮으셨기 때문에 안마(按摩)를 수년간 해드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프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주위에 아픈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몸이 아픈 사람들의 심정(心情)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습니다.
본격적(本格的)으로 복음(福音)을 전(傳)하면서 그는 더욱 가난(家難)해지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병자(病者)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끼니조차 거르면서' 복음(福音)을 전(傳)하셨는데, 제자들 역시 가난(家難)한 집단(集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난(家難)과 질병(疾病)은 예수님을 상징(象徵)하는 말처럼 되었고, 조금이라도 돈이 있고 유식(有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길에서 동냥하는 거지를 대(對)하듯이 예수님을 피(避)했고, 앵벌이 하는 사람을 보듯이 고개를 싹 돌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도 진심(眞心)으로 그를 위하여 변호(辯護)하고, 그를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生角)할 정도로 예수님을 귀(貴)하게 생각(生角)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우리”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에게 그렇게 했고, 만약 *오늘날 이 시대(時代)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그 현장(現場)에 있었더라면, 분명히 그런 식으로 행동(行動)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아-멘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절)
아-멘 댓글은 은혜받은 성도의 기본, ⟺ 감사와 중보기도는 정회원의 축복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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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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