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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복
롬 5:1-11
박우택 목사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나누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빌 4:6-9)입니다. 평강을 누리는 일은 모든 성도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무엇입니까? 평강을 누리고 나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성경이 어떤 책이며 구원이 무엇인지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 지식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삶에서 경험하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식적으로 이해한 교리내용이 삶에서 누리고 경험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 전능하심을 우리 삶에서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래 전에 영국의 신학자 가운데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가 지은 『예수님을 경험하는 영성훈련』을 여러 번 탐독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독교에 대해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분자생물학자였던 그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개혁자들인 안셀름, 루터, 칼빈, 로욜라 등의 신학과 삶을 가르치면서 그때까지 지식적으로 알았던 성경 지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하나님, 개혁자들이 만났던 하나님을 그의 삶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지식적으로 듣고 배웠던 하나님이 만나고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경험해 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은 성도의 삶의 본질이고 믿음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우리 성도가 어떤 사람이며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 성도는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두 번째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복이 무엇인지, 세 번째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그 복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누구인가(롬 3:23-26; 5:1)?
첫 번째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로마서 5:1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자.
여기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할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로마서의 문맥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5:1에서 어떤 설명의 결론을 지시하는 ‘그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의 결론일까요? 성경의 어떤 책이든 논리 구조가 없는 책은 없습니다. 논리는 핵심을 전달하기 위한 경로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 서론(롬 1:1-17)
․ 모든 사람의 죄와 그 비참(롬 1:18-3:20)
․ 하나님이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롬 3:21-11:36)
․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롬 12:1-15:13)
․ 추신(롬 15:14-16:27)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모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3에서 한 줄로 요약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 편에서 쓰일 때 얼굴, 임재, 모습 등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교제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죄를 범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해주셨습니다. 로마서 3:24-26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워 사람들이 전에 지은 죄에 대해 벌하지 않고 넘어가셨던 모든 죄를 담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자들도 의롭다고 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와 교제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일은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4:1-25에서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모든 설명의 결론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5:1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간략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의 신분적 기초입니다.
2.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복은 무엇인가(롬 5:1-4)?
두 번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 곧 우리 성도들이 누리는 복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에 그 결과 세 가지 복이 누린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일, (2)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일, (3) 환난 중에서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롬 5: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가 누리는 첫 번째 복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1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용어의 개념을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화평’의 개념입니다. 헬라어로 ‘에이레이네이’(eivrh,nh)라는 단어로 성경에 ‘화평’, ‘평안’, ‘평화’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이 본문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목적은 죄를 대신 담당하고 의로운 신분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을 ‘화목제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화목’은 ‘화평’이라는 개념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화평’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관계적인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 ‘화평’, ‘평화’, ‘평강’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샬롬’(~Alv')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건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략으로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그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증거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무교병을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고 하시자 기드온이 그대로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를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제물을 태웠습니다. 기드온은 여호와를 사자를 본 줄을 알고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안심하라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드온이 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Al+v' hw"ßhy>)이라고 했습니다(삿 6:24). 그것은 여호와를 보아도 죽지 않고 하나님과 관계가 지속된다는 뜻입니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다는 관계적인 표현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는 말에서 ‘누리자’라는 말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이 원래 기록된 언어인 헬라어 성경에는 ‘가지다’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에코멘’(εχομεν)으로 현재 직설법인데 ‘가지고 있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NIV 영어번역성경은 현재형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가지고(= 누리고) 있습니다”(we have peace with God)라고 번역했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약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심판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대신 그 죄를 대신 담당해 주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1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어 교제할 수 있게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가 받은 첫 번째 복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롬 5:2)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가 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복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로마서 5:2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핵심적인 용어는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들어간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사고게인’(προσαγωγην)인데 신약성경에서 단 세 번만 나타나는 용어입니다. 바울이 쓴 에베소서 2:18과 3:12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나아감’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헬라어 성경에서는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들어감’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된 것에 머물지 아니하고 그 하나님 앞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교제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어학자이면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어령 교수가 딸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인 후 쓴 책인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책에서 이 단어를 ‘접속’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평하게 된 자들이 하나님과 접속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은혜와 능력을 다운로드(download)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문학자다운 정말 좋은 표현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절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로마서 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교제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했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한다”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여기에 ‘즐거워하다’(kauca,omai)라는 개념은 신약성경에 ‘자랑한다’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됩니다(갈 6:14; 빌 3:3). 이 경우에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문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고백에도 나타납니다. 이 신앙고백을 작성했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의 근거 본문으로 시편 73:24-26과 요한복음 17:22, 24을 제시했습니다. 요한복음 17:22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하나이듯이, 성도들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나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 성도가 받은 두 번째 복입니다.
(3) 환란 중에서도 즐거워한다(롬 5:3-4)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하나님과 마주보며 교제하는 복을 얻은 우리 성도들이 받은 복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로마서 5:3-4을 보십시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뻐합니다. 여기서의 환난은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존재하는 아픔이나 고통, 두려움과 좌절, 상실과 실망을 포함하여 적대적인 세상의 반대와 핍박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환란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를 억압하는 여러 환란이나 고통스러운 일들을 만날 때 즐거워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육신의 질병이나 경제적인 고통, 아내나 남편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직장 상사나 부하직원의 문제들, 인간관계에서의 배신의 문제들, 이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자들인 우리는 이러한 환난조차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환난조차 기뻐할까요?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만들고 그 일로 인하여 연단을 받게 하기도 합니다. ‘연단’은 헬라어로 ‘도키메이’(dokimh,)라는 단어인데 인격을 다듬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뜻은 우리가 여러 가지 환란을 당하기는 하지만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이라는 학교를 통하여 인내를 배우고, 인내라는 학교에서 잘 훈련되고 다듬어진 신앙 인격을 만들고, 그리고 이 바탕 위에 소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롬 5:2, 11). 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일은 현재적인 성격도 있고 미래적인 성격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재림 시에 얻게 될 완전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즐거움은 부분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은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누리는 복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며 그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환난이나 고통은 우리로 인내하게 만들어 신앙인격을 다듬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만드는 훈련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세 번째 복입니다. 이 세 가지 복은 논리적 연관성이 있습니다. 평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이 있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심지어 환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복이 확실함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롬 5:5-11)?
세 번째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복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 점을 명쾌한 논리로 로마서 5:5-11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로마서 5:5-8을 보십시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지금 우리가 당하는 질병이나 경제적인 고통이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환난은 우리를 인내하게 만들어 인격을 다듬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게 된다는 소망을 이룬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해 줍니다. 여기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을 잘 보십시오. 바꾸어 말하면 소망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뜻이지요. 헬라어 성경에 나타난 의미로는 ‘실망시키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 교제하는데 우리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소망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면서 주의 능력과 임재를 보게 될 소망은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REV영어번역성경은 이 말을 “그러한 소망은 절대로 환상이 아닙니다”(Such hope is no fantasy)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소망은 절대로 환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가 누리는 복이 확실하고 소망이 절대 환상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누리고 경험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이유를 로마서 5:6 이하에서 설명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 5:8). 그렇다면 성령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망인 하나님과 화평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 일이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이 확신을 근거로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까요? 그 결과를 로마서 5:9-11에 설명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들로서 성도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와 교제하며 그 신비한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곧 우리 성도들의 신분이고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로서 어떤 복을 누리는 자들인지 이해되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되어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치 않는 질병이나 경제적인 고통이나 힘들게 만드는 여러 가지 환난을 만나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만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으로 다듬어 우리가 품은 소망이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성도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항상 내주해 계시는 성령을 통하여 이 신비하고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바로 여기서 처음에 했던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나누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빌 4:6-9)입니다. 평강을 누리는 일은 우리 모든 성도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무엇입니까? 평강을 누리고 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혜와 능력을 받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마음의 평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리는 모든 복을 말합니다. 이 복은 때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기도할 때 질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드는 일을 해결해 주시는 것으로 경험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누린다는 것은 이러한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나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경험한 것을 우리 이웃과 나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6월에 부산의 한 교회 주일낮예배를 인도하러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예배 후에 그 교회의 예배위원장이시며 한의사이신 장로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교회에 오게 되었고 그의 아내가 어떻게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한 한 성도가 그 은혜를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장로님의 아내가 악성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당시까지 모든 약을 다 써 보고 좋다는 병원을 다 다녀도 재발하고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그때 이웃에 사는 교회의 한 집사님이 교회에 오면 낫는다고 하셨답니다. 이 집사님이 이 말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때 이 신비로운 믿음의 세계를 경험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함께 교회에 갔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던 피부병이 나았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평강을 나눈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도 주님의 도움을 간절하게 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암으로 불안해 하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있고 불안한 장래 일로 참고 견디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함으로 치료를 경험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을 이웃에게 전하거나 우리가 받은 은혜를 따라 이웃에게 베푼다면 그 일은 하나님의 평강을 나누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신비로운 믿음의 세계를 보고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신 분들은 과거를 추억해 보십시오. 제가 어릴 때와 목회할 때 불치병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고 치유되는 기적같은 일을 보았습니다.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교회에 와서 새벽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해 주신 일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접속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그에게 다운로드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교회에 보내면 공부도 잘하게 되고 착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각종 질병으로 고통하는 분들이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치료되는 역사를 있기를 원합니다. 한밭교회에 가면 어떤 질병도 치료가 된다, 못된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된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된다는 소문이 나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모여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고 나누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는 방법은 이 본문에서 다루지 말하지 않습니다만 바울은 다른 곳에서 말합니다. 빌립보서 4:6-7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경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는 일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이성적인 능력을 초월해 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평강, 곧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그의 무한한 은혜와 능력이 우리 성도들을 지켜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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