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Ⅱ-38]스코트·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무탄트 메시지』를 읽으며 서재를 바라보다 눈에 밟힌 책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1997년 1쇄, 보리출판사)였다. 내용은 기억에 없고 제목은 낯이 익는데, 이 책을 읽은 지 20년도 넘은 것같다. 또 감동하느냐?고 흉보지 마시라. 이번엔 연필로 밑줄까지 쳤다. 스코트 니어링과 50년을 넘게 부부로 산 헬렌 니어링이 남편이 스스로 삶을 물리친 후 8년이 넘은 시점에서 담담하고, 자세하게 쓴 자서전 겸 헌사의 기록이다. 스코트는 품위와 존엄이 있는 방식의 죽음을 택했다.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를 거부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고,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100세에 죽음을 맞았다. 석학 이어령 박사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직시하며 기꺼이 맞이했다.
스코트 니어링(1883.8.6.-1983.8.24.), 백과사전 검색을 하니 그에 대한 설명이 너무 재밌어 덧붙인다. 일평생 진보적 사상의 인물로 사는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보자. 어머니, 친할아버지, 대학은사 그리고 톨스토이의 자기 희생, 소크라테스의 이성의 법칙, 부처와 살생하지 말라는 가르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간소한 생활, 마르크스·엥겔스의 착취에 대한 저항, 마하트마 간디와 노자의 비폭력, 빅토르 위고의 인도주의, 예수의 사회봉사, 공자의 중용, 리처드 바크의 우주의식, 월트 휘트먼의 자연주의, 로맹 롤랑의 베토벤 소설 등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가 인생목표로 삼고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한 자기의 길을 보자.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 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등이다.
놀랍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철저한 진보進步였다니? 그의 이런 삶의 뒤에는 아내 헬렌이 있어 가능했을 터. 그들은 끊임없이 고전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내고, 강연을 하몀서도 ‘땅에 뿌리박힌’ 채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단 한번도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가 쓴, 이미 고전이 된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1954년 발행)을 아시리라. 1932년 이 부부가 도시를 떠나 시골(버몬드와 메인)의 낡은 농가로 이주하여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돌집을 짓는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실천하며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기록이다. 스코트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헬렌은 91세가 되던 1995년 교통사고로 생을 마쳤다(1904년생). 헬렌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세계적인 인도의 명상가이자 세상의 스승으로 부린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의 연인이기도 했는데, 이 책에 그 사실에 대한 진솔한 얘기가 쓰여 있다.
『조화로운 삶 』은 ‘평화로운 삶’이나 '자유로운 삶'의 다른 말일 듯하다.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드높이며 사는 삶. 그들이 살았던 집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랑하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가? 하는 비결을 배우며 교훈받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베리가 “사랑은 서로를 마주 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쳐다보는 데 있다”고 했듯이, 이 부부의 정서情緖처럼 생각과 행동에서 조화롭고, 서로 믿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부부가 어디 그리 흔할까? 대단하다. 성性(sex)이 지배하지 않는 부부관계. “땅과 가까이 살고/명상을 할 때에는 마음 깊숙이 들어가라/다른 사람과 사귈 때는 온유하고 친절하라/진실되게 말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라/일처리에 유능하되, 행동으로 옮길 때에는 때를 살펴라>. 그들은 이 <도덕경>의 경구警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그들의 삶과 사상을 본받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할 지는 도무지 모르겠으나, 느낌만큼은 구구절절 100프로 공감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어 기뻤다. 역시 고전은 아무 책이나 되는 게 아님을 알겠다. 인생 독본서인 <논어>를 20대, 40대, 60대에 읽으면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말도 알겠다. 스코트의 100세 생일에 이웃사람이 깃발을 갖고 왔는데, 깃발에는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 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세상이, 이보다 더한 상찬賞讚이 어디 있으랴. 조화로운 삶, 영혼이 자유로운 삶, 참으로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두 사람의 사랑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는 믿음을 갖으며, 이 책을 덮었다. 이제는 밑줄 뿐만이 아니고 필기를 하며 읽어야 할 책이 좋다. 이 아침, 살아있음이 고맙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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