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逆轉-2nd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 시, 두 나라의 국력은 100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한국은 아프리카의 빈곤한 나라보다 가난했다. 당시 한국 외교관의 수는 30~40명 정도였으며, 훈련도 잘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 일본 외무성 외교관은 1,000명이 넘었다. 지금 한국의 GDP는 일본의 1/3 정도로 따라왔고, 실질 구매력(PPP)에는 2018년에 일본을 능가했다. 일본은 한국과 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한국인을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고 전쟁을 벌이면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도 배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중국이 대국이 된 지금 일본은 중국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일본의 협한 실상을 보자. GSOMIA 파기로 서울이 점령된다. 한국이 도쿄올림픽을 거부하면 일본 메달이 늘어난다. 돈 안 쓰는 한국 관광객 안 와도 중국 관광객이 있어 괜찮다. 한국인은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수출 규제로 양국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TV나 주간지에서 양국 간 대립이나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보도가 늘어난다. GSOMIA 종결 선언은 일방적 경제보복에 대한 필연적인 대응 행동이었다. 일본은 “국제법과 논리, 정당한 절차를 통해 관계를 구축하려고 했다.”고는 말해선 안 된다. 강제 동원 문제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추궁받아야 할 이전의 식민지화 책임 같은 역사 문제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천박한 시장 논리가 일본 출판계를 피폐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혐한의 영향력은 TV가 압도적이다. 한국에 대해서라면 무슨 말을 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그 배후에는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냉담한 대응이 숨어 있다. 경기 후퇴, 연금 문제, 소비 침체에 대해서 아베 총리는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코로나에 의료위생 대국 일본의 형편없는 대응 과정을 보자. 인체실험 선이 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의 예를 보자. 승선자는 일본인 1,281명 포함 56개국 2,666명 승무원 1,045명 포함 3,711명, 이 가운데 712명이 감염되고 13명이 죽은 사고가 발생했다. 원래 유람선은 ‘노로바이러스’ 감염이 빈번히 일어나 “바다에 떠다니는 배양접시”라고 불린 만큼 감염증에 약하다. 미 ABC TV는 제2의 감염 중심지가 일본 항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우려해야 할 사태라고 경종을 울렸고 뉴욕 타임스는 “일본 정부의 대응은 공중위생 위기 시에 실시해서는 안 되는 대응의 표본”이라고 비난한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했다.
그런데도 한국이 “의료 붕괴에 빠졌다고 비아냥거린 일본 미디어”는 코로나 감염자 수는 한국 정부의 예상보다 많았고 대구·경북이라는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종교단체발 지역 감염으로 나라 전체가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돌입했다.일본 언론이 보도하자 한국 정부는, “빨리 PCR 검사를 하지 않으면 무자각·무증상 감염자에 의해 감염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라고 검사를 서둘렀다. 1개월도 되지 않아 감염자는 5,000명을 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일본은 한국이 ‘의료 붕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은 보건소 이외에 70개소 이상에서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채택하고 3월에는 ‘워킹스루 검사‘도 더해졌다. 검사 시간은 3분이고 결과는 1~2일 후, 메일이나 전화로 받았다. 환자 수가 늘어나자, 임원 대기 중이던 환자가 죽은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의료 붕괴로 보도했지만, 한국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조치를 찾았다. 격리시설인 ’생활치료센터‘에서 수용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사원 연수센터를 수용해서 19곳 1,200병상을 운용했다. 감염자 수가 정점에 이르자 ’자택 요양‘도 추가했다. 자택 요양자에게는 자치단체에서 ‘자택 격리 세트’를 무료로 제공했다.
일본도 한국과 같은 것을 할 수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감염자 수를 적게 보이고자 하는 정권의 의향이 작용했다. 어떻게든 도쿄올림픽 개최를 시행하고 싶었던 아베 총리는 검사를 억제하는 것이 나쁠 게 없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은 연기되었다. 도쿄도 외 7개 지역에 긴급사태가 선언되고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위기관리 개념이 실종된 것이었다. 일본의 PCR 검사 체제가 미비했던 이유는 담당 보건소였다. 보건소는 제국의 육·해군으로부터 정보를 은폐하는 체질을 물려받은 것이다,
일본은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ATM을 안 쓰는 신기한 선진국으로 팩스와 복사기, 도장 시스템이 감염을 부추긴 꼴이다. 아베 정권이 스캔들을 일으켜도 잠시 지지율이 하락했다 다시 회복된다. 이는 총리에 촌탁하는 관료, 정치가, 대중매체 등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는 촌탁을 모르니 아베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대책으로 지급되는 마스크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아베노 마스크’ 배부에 사용된 경비는 한 가구당 2장의 마스크에 466억의 세금이 투입되었는데 정작 “귀에 걸리지 않는다” 아우성치는 작은 마스크였다.
아베는 긴급 경제 대책으로 전국 모든 사람에게 10만 엔씩 나눠주는 ’특별정액부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청서는 우편과 온라인 두 가지다. 우편은 자치단체에서 온 서류에 필요 사항을 기재해 반송한다. 온라인은 ’지방공공단체 정보시스템 기구‘에 필요 사항을 입력하고 송신한다. 가구주 본인 확인을 위해 ’마이넘버 카드‘가 필요하고 가구주 이외의 가족은 신청자가 직접 이름을 입력한다. 급부금 온라인 신청을 두고 온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다. 자치단체 창구에 사람이 몰려 직원이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온라인 신청은 장애가 계속 발생했다. 결국 급부금 지급에서 마이넘버제도를 이용한 디지털 작업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정부의 행정적 무능이 전 세계에 폭로되었다.
한국은 ’긴급재난지원금’을 2주 만에 97% 지급했다. 신용카드 인프라를 활용한 것이다. 카드 결제는 소득공제를 늘려 카드 사용을 촉진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어났으나 일본의 도장문화는 재택근무를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사내 문서에 찍을 회사 인감은 집에 가져갈, 수 없기에 도장을 찍으려 출근해야 한다. 일본은 다양한 세계가 종이 문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은행 업무, 계좌이체도 많은 사람이 창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한국은 KTX 표를 없애버리고 인터넷으로 좌석 예약을 받는다. 승차권을 검사하는 개찰구가 없다. 줄을 서는 수고 없이 승차하여 자리에 앉아 있으면, 승무원이 힐끗 좌석을 확인하고 지나간다. 개찰기는 고밀화가 필요한 고가다. 개당 억 단위의 가격이다. 모든 역에 개찰구를 설치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진정한 혁신은 한국처럼 개찰기와 검표 수고를 없애는 것이다, 일본은 ‘kaizen’은 능하지만, 혁신은 보기 힘들다. 혁신하는 국가에 뒤처질 운명만이 일본 앞에 놓여 있다.
섬나라 근성이나 일본 기질은 전통적으로 일본인이나 일본 사회에 뿌리내려 있던 것은 아니다. 고도성장을 거치며 경제 대국이 되기까지 50년 남짓 성공을 거두며, 유지해 온 전시체제 하의 기질이 어설프지만, 강력한 동조체제로 고착된 것이다. 혐한 중·노년 남성의 불안과 일본의 존재감 저하를 반영한다. 혐한 의식이 강해지는 이유는 고도 경제성장에서 거품경제까지 경험해 온 세대로, 아시아에서 일본이 경제 대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경제에 중국에 추월당해 일본의 지위가 저하하는 현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무리하게 우월감을 맛보고 싶으면, 과거에 일본보다 아래였던 나라를 적대시하고 업신여기는 책이나 잡지 기사를 읽고 마약처럼 탐닉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이런 배경에 일본인 중년 남성의 정체성 위기가 있다. 태평양 전쟁 때, 1943년 캐나다는 일본인 22,000명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재산을 압류했다. 그것도 1949년에야 풀어줬다. 이들은 빼앗긴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연합군 측, 45국은 일본과는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간주하여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재 캐나다 일본계 인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조약으로 없어진 것은 외교 보호권이지 개인 청구권은 소멸한 게 아니다”라며 캐나다 정부에 소송하라고 밝혔다. 일본은 한일청구권 협상으로 개인 청구권이 없어졌다는 현재의 입장과 정반대 주장을 했다고 필자는 주장 한다.
2024.02.04.
한일 역전-2nd
이명찬 지음
서울 셀렉션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