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4일(목)
* 시작 기도
주님...
하나님을 잘 섬겼던 유다의 아사 왕도 자기에게 위기가 닥치자 하나님보다 아람의 벤하닷을 더 의지하였습니다(대하 16:2).
이것이 사람의 본성인 게지요.
사람의 본성으로 치면 사마리아의 수가 성 여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지요.
마시고 또 마셔도 목이 마른 야곱의 우물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쫓아다니는 자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선물과 진짜 생수이신 아들을 바르게 알지 못하여 헛다리만 긁던 자였습니다.
평생을 주를 믿는다고 하였으나 어쩜 이리도 주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의 유익과 정욕만을 위하여 쫓아다녔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심판은 항상 옳습니다.
이 하루도 주의 장중에 붙들려 살기 원하오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붙잡아 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시고 정욕을 좇아가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사오니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이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24:23-34
제목 : 나는 왕이신 주님의 내시입니다. 내시는 왕의 뜻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중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 너는 그가 네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하지 말지니라.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34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 나의 묵상
재판할 때 얼굴을 보고 편을 들어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23절에서 말씀한다.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재판관은 법정에서 공정하고 바르게 재판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
그런데 솔로몬 시대에도 그렇지 못한 재판이 있었는가 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얼굴을 보고 봐주고, 평소에 좀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중한 벌을 내리는 것은 결코 한 나라나 사회를 바르게 세울 수 없다.
어떤 재판관은 죄인을 향하여 “네가 옳다”고 말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비난을 받고 때로는 저주를 받기도 한다.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뇌물을 받고 죄인을 놔주는 일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사회 지도자들의 令이 서지 않는다.
오늘 이 시대는 사회가 이념적으로 완전히 양극화 되어서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으로 몰아버린다.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이념적 성향이 달라서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전과 수범인 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고 자신의 범죄를 방탄하기 위하여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는 시대다 보니 아무런 힘이 없고 연약한 민초들은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속에서는 울분이 터져 나오지만 그것을 겉으로 어찌 표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세상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즐비하다.
교회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목사와 장로들의 상식 밖의 행동은 일반 성도들의 비난을 받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교회가 마음이 나뉘고 분열되어 쪼개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목사들의 성적 타락의 모습, 교회 재정을 私금고처럼 마음대로 갖다 쓰는 모습, 심지어 자녀들의 학원비나 개인과외비까지 자녀 교육비 명목으로 받아가는 목사, 권력욕에 눈이 멀어 교회의 규모나 재정이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도 선거비용을 물 쓰듯 펑펑 쓰는 목사, 성도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옳고 그름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목사를 두둔하게 만드는 이들, 교회 세습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목사, 은퇴 자금 문제로 교회와 갈등을 빚으면서, 교회야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내 배만 불리면 된다는 식으로 교회가 빚을 내서라도 은퇴금을 두둑이 받아가는 목사들, 교인이 수천 명 되는 규모가 큰 교회 목사가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하면서 작은 개척교회 교인들을 데려와도 괜찮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목사도 있다. 기왕 신앙생활 하려면 큰 교회에서 많은 문화의 혜택을 누리면서 하는 것이 좋으니까 작은 개척교회 교인들을 데려오라고 대놓고 말하는 파렴치한 목사도 있다.
장로는 목사를 마땅히 견제해야 한다면서 안건의 내용과 중요성을 살피지도 않고 사사건건 목사의 목회 방침에 반대하며 목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장로들, 교회 재정 장로로써 재정을 떡 주무르듯 자기 마음대로 집행하고 자기 사업을 위하여 교회 재정을 몰래 빌려가서 쓰고 메꾸고 하는 장로, 교회 재정으로 주식투자까지 했다가 쫄딱 망하고 야반도주한 장로, 마치 자기 돈 주는 것처럼 선심 쓰듯 하는 장로들, 정말 주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마치 회사의 이사들처럼 교회를 운영하려고 하는 장로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옳지 않은 판단과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어느 교수의 말이 오늘 내 양심을 찌른다.
이 시대 목사와 장로가 죽어야 정말 교회가 산다.
주님은 죽으라고 말씀하시는데 목사인 나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렇게 해서 주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이기적 마음이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는데 나는 화려하고 보기에도 럭셔리한 넓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라 하시는데 나는 나 자신을 부인하기는커녕 내 이름 석 자를 드러내기 위하여 어깨를 으쓱하고, 이를 몰라주면 얼마나 많이 속상해 하였던가?
이미 고인이 되신 이중표목사님의 별세의 목회는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진정한 목회 패러다임이다.
이목사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러나 오늘 내가 먼저 죽지 않고는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겠노라고 따라 나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목회를 하면서도 내 기분이 상하면 그 기분대로 행했던 지난날의 어리석은 모습은 전혀 목사답지 못하고 성도답지 못한 나의 처사였다.
복음을 알기 전에는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그저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은혜받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말씀이 말씀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용하고 도둑질 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고 은혜를 끼치려고 했던 것이다.
성도들이 잘 했던 못 했던 상관없이 고난 가운데 있으면 무조건 말씀으로 가서 위로하고 괜찮다고, 당신이 옳다고 말했던 나는 비난받아 마땅한 거짓 재판관이었다.
복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언제까지 말씀 도둑질을 하면서 살았을지, 언제까지 성도들의 뒤치닥꺼리만 하면서 살았을지, 언제까지 성도들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살았을지.....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성도들 다독거려서 내 성도 만들고, 내 교회 만들어서 큰 교회 이루어 내 욕심 채우려고 했던 나는 죽어 마땅한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런 나를 주님은 복음으로 찾아 오셨고, 나의 목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주셨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꿈틀대며 살아나는 나의 모습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 성도들을 토닥거리고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말씀이 말씀 되도록 바르게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 당장은 듣기 힘들고 수용하기가 힘든 것은 안다.
하지만 주님의 복음만이 아들의 생명을 줄 수 있음을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에게 맡겨 주신 양 떼에게 다시 목마르고 말 야곱의 우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수,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나는 목사다.
목사는 성도들이 세워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시고 세우신 사도이다.
따라서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하면 된다.
내시가 왕의 명령을 받고 영의정에게 가서 왕의 어명을 전할 때 덧붙이거나 뺄 필요가 없다.
왕의 명령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왕의 신하로써 내시의 임무이다.
나는 왕이신 주님의 내시다.
내 것을 덧붙이거나 거기서 빼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내가 왕이 되려고 하는 아주 나쁜 종인 것이다.
오늘도 오직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그런 과정 속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행할 때 오는 기쁨은 곧 주님의 기쁨이다.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나는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이다.
주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바르게 견책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나는 죽고 주님으로 산다.
나는 없어지고 주님만 나타내기를 원한다.
내 이름을 드러내어 나타나는 영광은 사라지고 오직 주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되기를 원한다.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광이 곧 나의 영광이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영광을 아는 빛이 주님으로부터 임하여 내게 들어온다.
그 은혜가 오늘 나의 삶을 사로잡기를 가만히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말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는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이 우매하고 무지한 종을 긍휼히 여기사 주님 품, 말씀의 뜰 안으로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시대 목사들과 장로들이 정말 잘 죽게 하옵소서.
우리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죽게 하시고, 그 죽음을 기뻐하게 하소서.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하소서.
말씀을 도둑질하여 내 맘대로 이용하는 악한 종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그 심판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주의 심판이 없으면 나는 하루도 바르게 살 수 없나이다.
주의 심판은 항상 옳기 때문입니다.
시온의 딸들이 주의 심판이 옳음을 노래하였듯 이 종도 뼛속까지 주의 심판이 옳음을 인정하나이다.
그로 말미암아 주의 공의가 세워지고 지금까지 흑암으로 가득 찼던 내 안에 오직 주의 영광만이 비추게 하소서.
주의 말씀에 복종하여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로 살기 원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오니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주의 영광의 빛을 한없이 부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