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을 때, 사람들의 가슴에는 나라를 되찾았다는 벅찬 기쁨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고, 사람들의 눈앞에는 衣食住,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 놓여 있었다.
논밭을 가진 집이라고 해서 형편이 크게 나은 것도 아니었다. 해마다 찾아오는 보릿고개는 여전히 배고픔의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겨울이 오면 밥을 짓고 방을 덥힐 땔감을 마련하는 일 또한 큰 걱정이었다. 산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밥을 짓고 몸을 덥히는 데 필요한 나무를 내어주는, 말 그대로 삶의 곳간이었다.
그러니 산에 나무가 자랄 틈이 있었겠는가.
소나무가 제 몸을 키우기도 전에 베어졌고, 잡목도 땔감이 되어 사라졌다. 낙엽 한 줌조차 귀하던 시절이었다. 도시에서도 무연탄이 널리 쓰이기 전까지는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산에서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 모아 아궁이에 넣었다. 나무가 숲을 이루기 전에 사람들의 배고픔과 추위를 먼저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산은 숲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의 삶을 견뎌야 했다.
거기에 6·25전쟁까지 지나갔다. 전쟁은 사람들의 삶만 할퀴고 간 것이 아니었다. 산천의 속살까지 벗겨 놓았다. 민둥산이 되어버린 산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왜 이렇게 산이 헐벗었을까’ 생각했겠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면서 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석탄과 가스가 보급되고 전기가 들어오면서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하는 일도 차츰 줄었다. 국가적으로 산림녹화사업이 추진되면서 곳곳에 어린 묘목이 심어졌다. 사람들은 비탈진 산에 나무를 심었고, 나무는 말없이 세월을 견뎠다.
10년, 20년, 30년……
사람보다 더디게 자란 나무들이 어느덧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六七十年의 세월이 흘렀다.
민둥산에는 다시 초록이 돌아왔고, 비가 내리면 산은 물을 품었다. 홍수와 산사태가 줄어들고, 계곡에는 물이 머물렀다. 가뭄이 들면 산이 저장해둔 물을 조금씩 내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가 오늘 바라보는 푸른 산천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땀과 기다림이 쌓여 만들어낸 푸른 유산이었다.
나 역시 차를 몰고 한 시간 남짓한 가까운 도시로 갈 때면 일부러 조금 돌아가곤 했다. 빨리 가는 길보다는 숲이 우거진 길을 택했고, 골짜기를 끼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좋아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여행이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숲과 계곡, 굽이진 산길을 바라보는 그 시간도 나에게는 여행이었다.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산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산천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아름다운 산천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산불이었다.
며칠씩 이어지는 대형 산불 앞에서 인간이 자랑하던 문명의 힘도 속수무책이었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물을 퍼부었지만 거센 바람 앞에서는 불길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산불 한 번에 여의도 몇 개에 해당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되기도 했다.
불길이 지나간 산을 바라보면 마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듯했다.
70년 전, 우리가 애써 나무를 심기 전의 민둥산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것 같았다.
또 나무를 심어야 하고, 또 기다려야 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이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데, 산불은 그 세월을 하루아침에 태워버렸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재앙이 산을 덮쳤다.
소나무재선충병이었다.
잡목이야 어느 정도 다시 자라날 수 있지만, 사시사철 푸르던 소나무가 하나둘 붉게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남달랐다. 눈으로 쉽게 볼 수조차 없는 작은 매개체에 의해 재선충병이 퍼져나가면서 동해 남부에서 시작된 피해가 점차 북서쪽으로 번져갔다.
얼마 전 동해안으로 삼척에 갈 일이 있어 차를 몰았다. 영덕을 지나면서 창밖의 산을 바라보았다.
한여름이라면 짙은 녹색으로 뒤덮여 있어야 할 산이 군데군데 붉게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계절을 착각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풍이 아니었다.
죽음이 물든 붉은색이었다.
산불에 타버린 고사목과 재선충병으로 말라버린 소나무가 산 곳곳에 서 있었다.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가 뒤섞인 산을 바라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칠십 년 동안 애써 가꾼 산천이 또다시 벗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겨울에는 산불이 산을 삼키고, 여름에는 재선충병이 소나무를 잠식한다. 산 하나가 무너질 때마다 우리는 다시 묘목을 심고, 다시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가 다시 ‘보릿고개’가 아니라 ‘산림의 고개’를 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뭄과 홍수를 걱정하고 산사태를 두려워하던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문화답사나 여행을 떠나면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숲이 깊어지면 마음도 따라 깊어졌고, 골짜기가 나타나면 잠시 차를 세우고 싶었다
.
그러나 요즘은 차를 몰고 산길을 지나면서 자꾸만 고사목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산천을 보려고 떠났다가 죽어가는 산을 보고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어쩌면 이제는 차창의 커튼을 내리고 바깥 풍경을 보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한 시대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났는데 풍경 대신 세상 걱정을 안고 돌아오는 것이다.
참으로 irony한 일이다.
우리는 산을 살리기 위해 반세기 넘게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마침내 울창한 숲을 이루어 놓았다. 그런데 그 숲이 지금 우리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불에 타 검게 변한 나무와 재선충병으로 붉게 말라버린 소나무는 묵묵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너희가 심은 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세월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담하다.
산은 하루아침에 숲이 되지 않는다.
한 그루의 묘목이 그늘을 만들기까지는 수십 년이 필요하다.
우리가 누리는 푸른 산천은 선조들이 물려준 자연이면서, 우리 세대가 어렵게 다시 만들어낸 소중한 유산이다.
이제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
산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나무 몇 그루를 더 심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지키는 일이며, 다음 세대가 바라볼 차창 밖의 풍경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차창 밖 산을 바라본다.
푸른 산을 보고 싶은데
자꾸만 붉은 소나무가 눈에 밟힌다.
불에 탄 산과 고사목이 즐비한 산천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담하다.
그러나 아직 늦지는 않았으리라.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하듯, 다시 푸른 산천을 만드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칠십 년을 기다려 숲을 만들었듯이, 다시 한 세대를 기다릴 각오로 산을 바라보아야 할 때다.
산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잠시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의 숲이다.
그리고 그 숲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돌려주느냐는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첫댓글 저도 올봄 영덕 해파랑길을 가면서 본 창밖에는 온통 헐벗은 산이었고
동해안을 걷다보니 완전 폐허자체였습니다.
몇년전 산불이 지나간 잔해였고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거산님,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동해안을 오가며 바라본 산과 바다는 제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아픔을 함께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산불이 휩쓸고 간 산자락을 바라볼 때는 가슴 한켠이 먹먹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계절은 다시 찾아오고, 검게 탄 산에도 새 생명이 움트듯 자연은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느낀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욱 감사드립니다.
산불로 산이 다시 헐벗어 지는거를 보는거는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세계 여기저기에서 산불이 많이 납디다
산에는 나무가 우거져야 됩니다
우리는 결국 불조심을 할수 밖에 없구
전처럼 산에 나무를 많이 심읍시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님, 따뜻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산불로 산이 헐벗고, 설상가상으로 재선충까지 동해 남부지역을 휩쓸며 산림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산은 다시 푸르러져야 합니다. 불조심으로 산불을 막고, 정성껏 나무를 심어 푸른 숲을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태평성대님 말씀처럼 모두가 산을 아끼고 지키는 데 충성합시다. 충성!
'다시 벗겨지는 산천' 에서 오는
글의 행간 곳곳에는
단석님의 애국하는 마음이 절절합니다.
여럿 류類의 글을 보아왔지만,
이렇듯 설득력 있는 글을 보기는 드물지요.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지요.
다시 새 맘으로 이 나라 금수강산을
지켜야겠습니다.
참으로 좋은 수필 한편, 감사합니다.^^
콩꽃님, 귀한 말씀으로 마음을 깊이 헤아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천이 다시 헐벗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안타까움과, 우리의 금수강산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글에 담았을 뿐인데 이렇게 깊이 공감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큰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말씀처럼 자연을 지키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이자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공감과 귀한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
오늘아침 조선일보에도 산야를 덮고있는 재선충병이 특집기사로 나와 경주시 외동읍 야산이 초록빛이 아니라 검붉게 변한 사진이 나왔습니다. 지난 38년간 재선충 방제약에 쓴돈이 2조.. 피해반복지역에는 수종을 바꾼다고 하니 서서히 변화가 오겠지요..
언덕저편1님, 깊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푸르러야 할 여름 산이 병들어 붉게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단순히 나무 몇 그루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산천의 한 자락이 무너지는 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이제라도 피해가 반복되는 곳의 수종을 바꾸고, 긴 호흡으로 숲을 되살리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다시 푸른 산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산천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하나둘 모여 작은 울림이 되고, 그 울림이 결국 건강한 숲을 되살리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따뜻한 공감과 귀한 말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약 70년 전 고향 공주에 살 무렵 산에 나무 심으러 다니시는 부모님 따라 다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애써 심고 가꾼 나무들이 산불이나 병충해로 인해 다시 벌거숭이가 되는 안타까움에 할 말을 잃게됩니다. ㅠ^^*
수피님,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산에 나무를 심으러 다니셨던 그 기억이 참 정겹고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한 그루 한 그루 정성으로 심었던 나무들이 세월을 견디며 숲이 되었을 텐데, 산불과 병충해로 다시 벌거숭이가 된 모습을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허전하셨을까요.
그래도 그때 심은 나무와 함께한 부모님의 땀과 정성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의 아름다운 숲과 수피님의 추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중한 추억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식목일이면 대구 앞산(비슬산)에
나무를 심고, 현충일이면
단체로 그 산에 가서 송충이를
잡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헐벗은 산들이 세월 지나 멋진
숲으로 바뀌었는데...
군데군데 다시 벗겨지고 있었군요.
어제 단석님의 글을 읽고
애리조나 고산지대를 지나는데
붉게 변한 소나무들이 제법 많이
보여 사진에 담았습니다.
쉬면서 검색해보니 여기는
재선충 피해는 아니고
나무껍질벌레(Bark Beetle)의
대량번식이 원인이 된다네요.
요즘 기후도 그렇고 지구촌 곳곳이
난리라 걱정입니다.
마음자리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은 앞산의 풍경이 참 정겹고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헐벗었던 산에 한 그루 한 그루 정성으로 심은 나무가 세월을 품어 오늘의 푸른 숲이 되었으니, 숲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땀과 마음이 함께 키워낸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제 다시 붉게 물들어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 산천의 병든 모습을 애리조나 고산지대에서도 마주하셨다니, 나무의 아픔이 어느 한 지역만의 일이 아닌 듯합니다.
부디 기후가 더 이상 숲의 적이 되지 않고, 우리가 심었던 나무들이 오래도록 푸른 생명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귀한 기억과 사진,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민둥산에서 푸른 숲으로 돌아오기까지
우리 산천이 견뎌온 세월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산불과 재선충병으로 붉게 말라가는 소나무를 보며
“우리가 심은 것은 나무가 아니라 세월이었다”는 말씀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산을 지키는 일이
다음 세대가 바라볼 풍경을 지키는 일이라는 말씀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푸른 산천을 다시 오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탁구시인님,
깊은 공감과 따뜻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민둥산을 푸른 숲으로 일구어 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가 심은 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우리 삶의 역사요,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산불과 재선충병으로 다시 붉게 스러지는 산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오늘의 작은 관심과 실천이 훗날 다시 푸른 산천을 일구는 씨앗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