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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란의 생일기념 파티는 W호텔 연회장에서 이뤄졌다. 호텔의 실질적 회장인 형란의 생일인 만큼 그곳 연회장의 분위기는 은근한 긴장감과 함께 묘한 열기로 가득했다. 순백의 투피스 정장을 입은 채 머리를 하나로 올린 여진은, 연회장으로 들어가기 전 분홍빛으로 물든 볼에 두 손을 가져다 대며 눈동자를 굴려댔다. 저녁시간이 되자 배가 고파 먹을 거리부터 찾는 중이었다.
연회장으로 들어선 여진은 두 눈을 휘둥그래하게 뜨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주홍빛 천으로 뒤덮인 길다란 테이블마다 에피타이져에서 디저트까지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어머, 헤헤헤"
여진은 에스코트하는 여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엽게 웃음을 뿌려댔다. 여진이 등장한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모아졌지만, 정작 여진은 그걸 알지 못했다.
"오라버니, 우리 얼른 접시 가져와요"
여진은 여민의 팔에 팔짱을 낀 채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여진의 이끌림에 순순히 따라가면서도, 여민은 주위의 분위기를 살펴보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오라버니 먹고 싶은 거 골라 드세요. 헤헤헤"
마련 된 접시를 들어 배실 배실 웃어 보이던 여진은 연어 살이 올려진 카나페에 집게를 가져갔다. 스탠딩 뷔페형식이라 그런지 여진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음식들로 가득했다.
"정여진~!"
여진이 군침을 흘리듯 카나페를 접시에 올린 순간 동우가 곁으로 다가왔다.
"너 언제 왔어?"
"아~ 방금요. 선배님 잠시만요"
동우가 곁에 다가와 말을 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진은 오로지 먹을 거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배가 고프기는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동우의 등장에 여진의 곁에 있던 여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평소처럼, 여진에게 접근하는 동우를 제지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저 새끼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여진이에게 집적된단 말이야.'
여민은 접시에 새우 모양의 딤섬을 올리며 내색하지 않은 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때 여민의 맘을 읽었는지 동우가 여민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 여진이 좀 잠깐 데리고 가겠습니다."
관심 없는 척 접시에 음식을 채우고 있던 여민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동우를 바라봤다.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동우와는 달리 여민은 바로 말꼬리를 잘라먹었다.
"허기진 애를 데리고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지?"
"여진이 배는 제가 알아서 채워주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여진일 보고 싶어 하시거든요"
"대체 왜 윤형란 여사님께서 우리 여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군, 우리 여진인 임자가 있는 몸인데 말이야."
그때 송미자 여사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송미사 여사의 등장에 동우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송미자 여사가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녀를 대하는 동우의 표정은 한결 밝았다.
"동우군, 정말 오랜만에 얼굴 보는 것 같아. 그래 잘 지내고 있고?"
"그럼요.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 뵈어야 하는데, 요즘 저희 어머니 호텔을 이어 받느라 통 찾아 뵙지 못했네요."
"뭘 나까지 신경을 쓰고 그래? 우리 여진이나 잘 챙겨줘."
"여진인 항상 제 눈 안에 있는 아이이니 걱정 마십시오"
송미자 여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 정말 동우군 같은 사윗감만 있으면 맘 놓고 우리 여진이 시집 보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하하하 어머님, 항상 말하지만 언제든지 여진일 주십시오. 제가 데리고 살겠습니다."
진심 가득 섞인 동우의 말에, 옆에서 지켜보던 여민은 짜증이 나려는 걸 참으며 어딘가로 가버렸다. 동우가 곧 앞 테이블에 마련 된 와인 잔을 들었다. 그리고 페니어(와인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서브하고 있는 서빙맨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저, 와인 한잔만요"
서빙맨은 동우가 내민 와인 잔에 붉은 빛깔의 와인을 따라주며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알고 있어요."
서빙맨에 의해 와인이 잔에 가득 채워지자 동우는 송미자 여사를 향해 와인 잔을 내밀었다. 송미자 여사의 손에 잘빠진 와인 잔이 들려졌다.
"어머님, 프랑스의 보졸레 지방 와인입니다. 이번에 저희 어머니 생신파티에 내놓으려고 제가 직접 주문한 것인데 과일 향이 진하게 느껴져 저희 어머니께서 꽤 좋아하시더라구요."
"아, 그래? 내가 와인 쪽으론 문외한이라 뭐라 설명을 해줘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 이거 동우군에게 한 수 배워야지 안되겠어"
"하하 별 말씀을요."
동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어머님, 즐기다가 가십시오. 전 여진이 좀 데리고 저희 어머니께 가보겠습니다."
"아~ 그래, 난 방금 만나고 오는 길이야. 우리 여진일 보고 싶어 하던 눈치던데, 어서 가보게"
동우는 살짝 목례를 하고는 저만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여진에게로 다가갔다. 먹는데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여진은 동우가 곁으로 다가가도 도통 반응이 없었다. 여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동우는 피식 웃으며 여진의 머리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만 좀 먹어. 살찌겠다."
"어머, 선배님도 참. 저는 호리호리하고 완벽한 S라인이라 살 좀 쪄야 돼요.”
여진은 특유의 배실 거리는 미소와 함께 눈웃음을 쳤다. 그러자 동우는 밝게 웃으며 여진의 손목을 잡았다.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동우와 여진에게로 향했다.
"그럼 나중에 먹고, 우리 어머니께 가자. 어머니께서 너 보고 싶어 하셔."
"아~ 맞다. 뵙고 간다는 걸 깜빡 했어요. 그래요, 그럼."
여진은 별 생각 없이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이며 동우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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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툴툴거리며 연회장을 서성이던 여민의 곁으로 깔끔한 슈트 차림의 사촌 정여혁이 다가왔다. 뭔가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지 여혁의 얼굴엔 의도하지 않은 물음표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여혁은 여민에게 잔을 건네며 속삭이듯 물었다.
"야! 여진이 드디어 연애하냐?"
"뭐? 누가 연애 한데?"
아직 여진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집안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송미자여사와 정재형 회장까지도 알지 못했다. J재단의 꽃인 여진의 연애가 알려질 경우 집안 사람들의 집중 관심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걸 염려한 여민이 앞장서서 쉬쉬하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여혁의 물음에 당황한 여민이 다시 한번 물었다.
"누가 그래? 여진이가 연애한다고"
"아니, 아까 식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쉬쉬하면서 이야기 하더라고.. W호텔의 강동우랑 좀 특별한 사이인 것 같다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그런데 아닌가 보네"
"뭐 강동우? 젠장 어따 대고 강동우랑 우리 여진일 엮는 거야?"
"야~! 오늘 사람들이 다 여진이만 보고 있다는 거 못 느꼈냐? 아까도 강동우가 여진이 데리고 윤형란 여사한테 가던데, 그 정도면 사람들이 의심할 만 하지."
"아 젠장."
어쩐지 수상하다 했다. 여진을 바라보는 눈이 많을 때부터 눈치 챘어야 했었다.
여민은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여혁이 쉬지 않고 말했다.
"너 이쪽에서 소문 잘못 나면 어떻게 되는 거 알지? 막말로 나중에 여진이가 다른 남자랑 연애라도 해봐. 다들 강동우랑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갑자기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여진일 어떻게 보겠냐? 여진이에게 눈독 들이고 있는 집안이 한 두 군데도 아닌데 이대로 강동우의 짝이다 하고 도장 찍게 생겼다.”
강동우 이 자식을 그냥~!!!!
여민은 주먹을 세게 쥐며 분을 삭였다. 그제서야 여진을 향한 집중된 시선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민은 빠르게 정장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여민아]
긴 통화음 끝에 들려오는 이환의 목소리는 매우 피곤한 듯 했다.
"지금 어디야?"
[오피스텔 가는 길이야, 왜 무슨 일이야?]
"지금 여진이가 쓰러졌거든, 얼른 뛰어 와라"
[뭐?]
"긴말할 것 없이 얼른 차 돌리고 오라고~!"
[어딘데?]
"W호텔
*아침에 시간 좀 남아서 올리고 갑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첫댓글 아환아 그러다 여진이 뺏긴다 . 너무 재미 있어요
zz 너무 재밌다..
zz 너무 재밌다..
아~ 담편 넘 궁금해요.. 넘 재밌어요..
담편할게요
이환씨 얼른 와서 여진일 찾아가요~~~~~~~~~~~~
아 정말 동우가 뺏어갈려고 별짓을다하네! 이환아! 홧팅!!!!!!!!!!!!!니여자는니가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