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모래 뿐인 삭막한 땅을 지나야 볼 수 있는 이 작고 보잘것 없는 섬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황금을 녹여 놓은 것 같은 화려한 금발머리카락에 백옥같이 흰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제 막 17살이 된 것 같은 그 소녀는 밝고 쾌활했다.
소녀는 섬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던 소년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섬이 아름다운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아주 옛날부터 있어왔던 것인데 이 섬이 아름답다니....
소녀는 딱 한달 동안 섬에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대륙 쪽을 바라다보았다. 저 멀리 황성(皇城)이 있는 쪽을 향해 뻔히 보다가 다시 밝게 미소짓곤했다. 그리고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며 이번에는 저 멀리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사람들이 산다는 대륙을 향해 떠나갔다.
소녀는 소년도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소녀를 따라온 우락부락한 사내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래쪽에는 발슈타드 제국(帝國)이 있다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양새를 지녔다던데...”
“설마... 저 쪽까지 가 보시겠다는 겁니까!!”
“아...안될까...”
소년이 처음 보았을 때 우락부락한 사내가 소녀를 노예로 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내는 소녀의 명령에 따르는, 오히려 사내가 노예처럼 보일 정도였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천하대란이 일어납니다!!”
“쳇. 각오하고 나온 것 아니었어?”
“안됩니다!! 그러려면 티레니아 해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 말을 엿듣던 소년이 숨을 삼켰다. 티레니아 해를 건던다? 그건 말도 안된다. 여지껏 그 누구도 티레니아 해를 건넌 적은 없다-, 하지만 소녀는 막무가내로 바다 너머의 대륙에 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몇 날 몇 일을 싸우던 사내는 결국 소녀의 말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좋습니다. 좋아요. 누가 폐..., 아니지. 아가씨의 고집을 꺽겠습니까? 하지만 우선 예나와 메사에게 연락해야 합니다. 또 빌바오에게도 연락해야 합니다...만...”
사내는 잠시 머뭇거렸다. 뭔가 해서는 안될 말이 떠올랐는지 머뭇머뭇 소녀의 눈치를 보았다. 소녀의 환한 미소가 거두어졌다.
“라페츠크 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올지...”
소녀가 피식 웃었다. 그 미소가 굉장히 아름다워서 소년이 멍하게 입을 벌리고 쳐다볼 정도였다. 소녀는 이 섬이 굉장히 예쁘다고 했지만, 소년의 눈에는 저 소녀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그는 내가 어딜 갔는지 말 안 해줘도 잘 알 거야.”
“....그렇습니까?”
“물론이야. 게다가 난 이 여행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어. 내 머릿속을 정리 좀 하기 위해 나온 여행이잖아? 라페츠크에게 간 곳을 말하면 잡으러 올 거야. 분명히. 지금 가면 오히려 더 복잡해서져 내 머리가 뻥- 터져버릴 거야.”
소녀는 귀엽게 손짓으로 머리가 터진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모랫가에 쓰러졌다.
“까아- 내가 죽었나봐.”
가만히 누워 있던 소녀는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눈에 이슬을 맺혔다. 소년이 깜짝 놀랐다.
“딱 이것만 필요하네.”
“무슨...?”
“바하스. 내가 죽으면 딱 이만큼의 땅만 필요한 것 같아. 딱 요만큼만 있으면 되지. 에보라가 했던 말 뜻을 이제야 알겠어.”
소년은 그제서야 우락부락한 사내의 이름이 바하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녀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저 쪽 티레니아 해 건너의 땅을 보고 싶어. 무엇보다도 그 발슈타드 제국을 가고 싶어. 벌써 1년 가까이 내려져 왔다는 그 땅을 가 보고 싶어.”
“........하지만 위험합니다. 전 티레니아 해를 건너는 바보짓을 권하고 싶지 않군요. 제가 아가씨 곁에 붙어 있는 건 아가씨의 생명력이 질기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으면 절대 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다시 사막을 건너는 쪽을 추천합니다.”
“에-! 말이 많다! 바다를 직행한다!!”
“입 다무십시오!! 죽고 싶어 작정하셨습니까?! 사막을 건너 남령주로 갈 것을 권합니다.”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령주란 말을 듣고는 끙끙대기 시작했다.
“그랬다가 예나에게 걸리면?”
“죽으면 그만이죠.”
“이쪽으로 가나 저쪽으로 가나 죽잖아!!!”
“그러게 누가 이런 철없는 짓을 하라고 했습니까!!”
“제길! 이럴 줄 알고 혼자 여행하려 했던 건데 넌 왜 쫓아와서!”
바하스의 얼굴이 흉그러졌다. 가뜩이나 흉측했던 얼굴이 일그러지자 소녀도 움찔 내심 놀랐고 소년은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좋은 말로 할때 사막을 건너시죠? 그 편이 훨씬 안전한데.”
“그거야... 사막도 재밌기는 했어!”
“누가 재미 있으라고 목숨걸고 사막을 여행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소녀는 뻔뻔스레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제발!! 20살이 넘었어도 어째 애 같습니까!!! 안전한 사막길 놔두고 네그라샤 사막을 넘질 않나!!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 같다고요!!”
소년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봐도 17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가 벌써 20살을 넘겼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저 죽음의 사막 네그라샤를 넘다니.
하지만 소녀는 쯥,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는 다시 바다를 쳐다보았다.
“애. 너 이름이 뭐니?”
참 빨리도 물어본다 생각하고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땅에 쭉 써 내려갔다. 읽던 소녀가 눈을 찌푸렸다.
소년은 기분이 상했다.
오지의 섬 따위가 아름답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하지만 소녀는 그저 기분좋게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섬을 건너면...아르아크 족에게 다시 한번 가 보자.”
“무슨 말씀이십니까?”
“놓고 온 물건이 있는데 잘 됐어..., 오히려 아주 잘 됐어.”
그리고 다음 날 소녀와 바하스는 짐을 챙겨 배가 오길 기다렸다.
배는 아주 가끔씩밖에 오지 않는데 오늘을 놓친다면 또 한달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브와이프. 너 나 따라 안 갈래?”
“.........?”
“너 나 따라와라.”
하지만 소년이 대답하기도 전에 바하스가 막아 섰다.
“지금 두 명만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여비가 빠듯합니다.”
소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팔목에 있던 홍옥으로 만든 진귀한 팔찌를 소년에게 주었다. 소녀는 생긋 웃었다.
“여기 있으면 불길한 것들이 내 뒤를 따라 올 거야. 그러면, 그때 이 팔찌를 보여주고 널 데려가라고 해. 어기면 불손죄로 죽여버리겠다고 내가 말했다고 해.”
소년은 어리버리 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홍옥으로 만든 팔찌는 백금줄에 희안한 문양과 보석이 박혀 있었다. 소년은 그저 멍하니 그 팔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참. 내 이름을 가르쳐 줄께. 아명(兒名)밖에 못 가르쳐 주지만. 내 이름은 네샤야. 네샤. 어렸을 적 우리 어머니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
“....”
“잊어먹지 마.”
그리고 배가 뭍에 닿았고 네샤와 바하스는 배를 타고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섬이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에에 시끄럽다!!!! 누가 거기서 드래곤을 맞딱뜨릴 줄 알았냐!!”
“신관이라는 자가 말하는 거 하고는.”
“시끄러워! 넌 왜 난리야?!”
“셋 다 입 다물지 못해!!! 이것들이 정말!! 큰 어른을 앞에 두고 무슨 짓이야?!”
“당신이 더 애 같은데요.”
“시끄럽다!! 제 에미를 쏙 빼닮아가지고 재수없어!”
“어른이 그런 말을 씁니까? 원 애 같아서.”
“깔깔깔. 제국도 멀지 않았구먼. 이 모양들이니.”
“입 다물어! 포로 주제에!”
6명이나 되는 대 인원은 제각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섬의 고요함에서만 있어왔던 소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소녀가 말한 불길한 것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어라! 제가 왜 폐하의 팔찌를 가지고 있어?!”
“그러게요...., 훔친 것 아닐까요?”
“폐하한테서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간 바로 사지육신 찢긴다.”
그 중 제일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이 소년 앞에 섰다.그리고 당당하게.
“나는 임페리얼 근위대 제 6 기사 예카테리나 사트렌 트리에스테 공작이다. 넌 왜 폐하의 팔찌를 가지고 있는 거지?”
그 말과 함께 소심했던 브와이프는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소심했던 브와이프는 공작이란 말에 기적했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끌려왔다는 것을 알고 또 기절했다.
그것이 브와이프의 어처구니 없는 여행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