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극적인 동점골과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선전한 이임생 포함, 전체 선수들의 투지 등 현장은 90분 내내 감동의 드라마였지만, 특히 벨기에 관중들을 포함해서 나 자신 모골 송연한 느낌을 받은 것은 관중석 한 쪽에 운집해서일사불란한 응원을 펼치던 우리 붉은 악마들의 모습이었다.
대서양 건너 이 먼 유럽까지 단체 응원을 와서는 마치 매스게임을 하듯 시종일관 흐트럼 없는 응원을 펼치던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라운드에 떨어진 한국선수의 핏방울과 어우러져 비장미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너무나 비장해서 세계인들은 월드컵을 축제로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전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찌됐건 경기가 끝난 후 벨기에 관중석은 예선탈락이 확정되었음에도 한국선수들과 붉은 악마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쳐주었었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본 기자의 입장에서도, 월드컵에서 참패를 당한 후에도 끊임없이 프로축구 서포터의 중심으로서 한국 축구에 뜨거운 열정을 보내는 붉은 악마 응원단에 대하여, 그 건전한 공동체 문화에 대하여 마음 든든한 대견함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특히 도깨비처럼 형상화된 그들 붉은 악마의 상징이, 환웅이 건국한 배달국 제 14대 천황으로 전쟁의 신이라 불리며, 당시 중국 황족의 헌원황재를 철기무기로 가비얍게 제압하던 치우천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잃어버린 우리의 상고사의 영웅을 오천년이 지난 지금 대한의젊은이들이 부활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더 흐믓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일본의 울트라 닛폰이 그들의 상징으로 일본 건국신화의 삼족오(아타카라스)를 표식하는것처럼.
그런데 요즘 통신과 인터넷에서는 느닷없이 나타난 또 하나의 축구 서포터즈 때문에 꽤나 시끄럽다. 이름하여 화이트엔젤, 백의의 천사들이다.
이들은붉은악마 응원단의 악마주의 신드롬 확산에 기도로 대항하며 " 붉은악마응원단을 괴멸시키고(2000.3.1 국민일보)" 전세계 600억명이 시청하는 월드컵 경기를 하나님이 주신 "세계선교의 기회로 활용하기위하여(2001.3.29 국민일보)" 2002 월드컵 선교협의회에서창단한 단체이다. 그리고 월드컵 선교협의회는 울나라 4분의 1에 해당하는 1천 3백만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 대표집단,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의 후원을 받고있다.
하기사 응원단이 하나 더 만들어지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붉은 악마만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서포터즈여야 할 필요도 없는거고 경기장에서 빨강옷을 입던 하얀옷을 입던 한 목소리로 한국선수를 응원하면 그게 즐거운 응원이다. 기자가 프랑스에서 느꼈던 붉은 악마의 지나친 엄숙경건함이 외국인들에게는어쩌면 기이한 진지함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배달의 백의민족 정신을 계승하여 하얀 옷을 입고 대표팀 유니폼도 화이트로 바꾸어야 한다고 응원단까지만들어 주장하는 저들이 과연 한국의 전통과 민족을 운운할 자격이나 되는 것인지 그것을 말해보고 싶다.
우리의 무덤에 칼을 꼿는 그들은 누구인가? ............................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먼 곳으로떠났다해도 결국 자기의 둥지로 되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 행위는 그대로 모든동물의 본능이다.
인간의 귀소본능은 혈통찾기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은 자신의 뿌리와 조상과근원을 찾고싶어 한다. 젖먹이 때 해외로 입양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자기를 버린 부모를
다시 찾는 그 이해못할 광경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개인의 이런 뿌리찾기는 민족의 경우 시원(始原)찾기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내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도대체 우리민족은 어디서시작되었으며, 최초의 국조(國祖)는 누구였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런데불행하게도우리민족은 일제의 지배를 받으며 국조가 신화가 되어 버렸고, 그 신화마저도 식민사관과 외래종교의 영향으로 미신으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일제시대 이전까지 개천절이면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조단군을 모셔왔던 고유전통과 단군에의 믿음은 단군은 곰의 자식이라는 동화 속 스토리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의 역사교육에서 고조선을 언급한 것은 달랑 교과서 서너페이지였으며, 이 마저도상고시대에 대한 언급은 전무한 채 바로 삼국시대로 이어져 버린다.
허구헌날 외세의침략을 받아 벌창이 난 우리 민족을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고 미화시키고
염색조차 제대로 못해 하얀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곤궁함을 "백의민족"이라며 치켜세운 우리의 빈곤한 나르시즘 속에서 오천년 이전에 오천년의 어마어마한 영웅시대가 존재했으며, 우리의 영토가 바이칼과 시베리아까지 그리고 서(西)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 수메르까지 이어졌다는 환단고기의 주장은 일부러라도 믿고싶은 뿌리에의 자긍심이었다.
비록 그것이 과거의 지나친 미화이고 잃어버린 민족 자긍심을 위로하는 딸딸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믿고 싶은 우리 뿌리에의 귀소 본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민족 자긍심의 구심이 되어야 할 단군은 과거 일본넘들의 조선역사축소정책으로 한 번 죽었고 오늘날 단군숭배를 우상숭배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에의해 두번 죽음을 당하고 있다.
1999년 여름부터 기독교인들은 민족단합을 위해 <한문화운동연합>측에서 학교측에 기증한 단군상을 찾아다니며, 단군의 목을치고 곡괭이로 몸통을부숴 버렸다. 국조의 목을 쳐내는 행위는 개인으로 본다면 내 할아버지와아버지의 무덤에칼을 꼿아 버리는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다. 종교의 이름이 아닌 일반적 사회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행위가 한국땅에서 가능한 이유는 이미 기독교가종교의 영역을 벗어나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되어 버렸다는 반증이다.
개신교의 유입 이후 한국의 기독교가 민족을 위해 한 일은 고작 3.1운동과 유신에 대한 저항정도였다. 그 저항도 대형교회가 아닌 소규모 민중교회를 중심으로벌어진 국지적 음직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 한국의 교회는 철저히 독재와 비민주에 침묵을 지켜왔다. 아니 오히려 광주를 피로 진압한 전두환을 위해 조찬 기도회까지 열 정도였다. 율법학자와 제사장 등 당시가진자를 향해 혹독하게 비판을 해대던 예수의 저항정신은 한국교회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일부교회는 목회 비지니스 집단이 되어가며 신도를 장사수단으로 생각하고, 교세 확장과 목사절대주의에 매몰되었으며, 심지어 중세봉건시대에나 가능한교회세습과 교회에 프리미엄을 얹어 매매가 이루어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부교회는 예수를 모시는 곳이 아니라 금송아지를 모시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안의 목사들은 사랑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미끼로 사람들을 교회로끌어들이는 삐끼가 되어갔으며, 기독교를 구복신앙으로 전락시키는 무당이 되어벼렸다.
그기독교가 이제 단군의 목을 친다. 이 부패한 권력집단은 그러면서도 오직 여호와 예수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찬양하며 반성조차 못한다. 예수의 옆구리를 손으로 찔러 창자를 만져봐야예수를 믿겠다던 그 옛날 바리세인처럼 오늘의 기독교는 단군의목을 쳐 피가나와야 단군을 국조로 섬기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들의오버된 신앙의 광기는 지리산 청학동에 까지 미치고 있었으니 바로 삼성궁이라는 민족성전이 그 곳이다.
삼성궁, 민족의 성전에 불어닥친 십자군의 횡포........................
삼성궁은 지리산 청학동에 위치해 있다. 청학동이 이미 자본의유입으로 전통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있음에도 삼성궁은 마치 한 마리의 학처럼 고집스러운 한민족의 전통을지키고 있다.
이 땅에 국조를 모시는 성전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 곳 주인 강민주(한풀선사)씨가 개인의 사재를 털어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되찾고 민족정기를 되찿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바로 삼성궁이다. 이곳은당대인들과 후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줄 배달겨레의 성전이며또한 한풀선사와 그 제자들의 신선도 수도장이기도 하다.
맨 처음이 곳을방문했을 때 기자는 입구에서 징을 세 번 쳐야 문을 열어준다거나 고구려 복장을 걸쳐야 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사교(邪敎)집단의 거처로 잠시 오인하였었다.
그러나 그 곳 삼성궁의 전경을 보고 본 기자,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리산의 그림같은산자락을 병풍처럼 끼고 오로지 이 곳 사람들의 힘으로 일일이 조경해낸 내부조형물과 특히, 천여 개가 넘는 돌솟대는 한 마디로 비경 그 자체였다. 전 세계의 명물들에 익숙해져 있는 기자의 눈에도 이 곳은 그냥 예사로운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관광지가 어떻게 세상 속에 꼭꼭 숨어있었는지를 의심할 여유도 없이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사당에 이르러 바로 이 곳이 민족의 시조를 모시는 성전이라는걸 깨닫고,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매력에만 감탄해버린 스스로를 비웃어야했다.
국조 삼성(三聖)을 모시는 것 뿐만 아니라 기자가 갔을 때, 한 쪽에는 발해의 역사를 발굴하기 위해 뗏목탐사를 하다 목숨을 잃은 독도지킴이 故 장철수 박사도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표현하듯 국조에 절을 안하거나 사진을 찍으면 징벌을 가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그곳에선 없었다. 이곳은 단군을모시는 '종교집단'이 아니었고, 모든 것은 개인의 자유였던 것이다.
처음 이 삼성궁은 한풀선사개인의 뽕나무 밭이었다. 그런데 삼성궁 건립이 시작되자 관광지로서 청학동 개발의 열풍을 타고 정부에서는 삼성궁을 국고보조로건립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삼성궁 확장 공사가시작되자 기독교의 조직적인반대에 부딪친다.
당시(1999.9)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는“공공시설에 단군상을 설치,참배케 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뿐 아니라 헌법에도 위반된다”며 단군상철폐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또“경남 하동군이 단군을 신봉하는 청학서원에 거액의 국고를 지원해 삼성궁을 성역화하도록하는 것을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미신을 조장하는 행위를 철회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국민일보 1999-09-16 )
이미 이런 반대가 있기 전부터 삼성궁 솟대에는 십자가로 낙서가 되고 장승이 뽑혀졌으며 심지어 단군상이 인분으로 더렵혀지기도했다. 이런 기독교의 압력으로 인해 군은 삼성궁 국고 지원을 중단하게 되고 국고지원만 믿고 공사를 진행한 삼성궁만 11억의 빚을 지게 된다.
이런 삼성궁의 경제적 어려움을 눈치챈 각 기업에서는 삼성궁을 기업 수련원 용도로 인수제의를하고, 군에서도 성전으로서가 아닌 단순 관광지 개발 목적으로 합작을하자는 제의를 하고 있으나, 한풀선사는 설령 여태까지의 수고로움이 허사가 된다해도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면 올 10월에 삼성궁을 해체하고 다시 뽕밭으로 원상복구하겠다고 기자에게그 뜻을 밝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에서는 오히려 오래 전부터 평양 부근의 고구려 고분과 단군 왕릉 등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인정받기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우리들은 그나마 한 개인에 의해 어렵게 복원된 상고시대의 전통이 이렇게 무너져야 한다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본 기자는 삼성궁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대로 종교적 의도니 뭐니와는 관계없이국조를 모시는 곳으로서영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남들은 자기들의 역사를 조작하고 신화를 거품화하여 민족내부의 단결을 도모할 때, 우리는 오랫동안지켜온 우리의 전통과문화, 역사마저도 일그러진 종교권력과 반민족적 집단의 아집으로 무너져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삼성궁은 우리와 후손들이 우리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테마관광지로서도 영원히 존재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뿌리를 상실한 민족은 구심체를 잃어버린다. 구심체가 없는 민족은 분열과 갈등만이 존재한다. 우리 민족이 경제적 성장 속에서도 계속적으로 정신적인 황폐함에 신음하고 어떤 계기로도 하나로 뭉치지 못한 채, 조선놈들은 안된다며 스스로 자학하는 그배경에 우리를 하나로 이어줄 뿌리가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된다.
일본과 영국이 천황이니 여왕이니 하며 나름의 상징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로마와 그리스는 말도 안되는신화를 세계에확산하며 지덜 민족적 우수성을 같이 나누고, 심지어 미국은 달러라는물신(物神)속에하나가 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같은 민족임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이런 주장을 두고 구시대적 쇼비니즘이라 말한다면 뿌리조차 없어 부유하는 가련한 민족보다는 민족의 자존을 지킬 줄 아는 쇼비니즘으로 남는 것이 더 가치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국조를 배척하는 행위는 종교를 넘어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다. 우리의 잃어 버린 역사를 다시 찾는 작업에는 기독교든 불교든유교든 한국인이라는 민족운명체의 배를 같이 탄 이상 공동의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끝으로 기사를 맺는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