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금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연약하고 어리석음을 보게 하시어
더욱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진리의 성령님,
오늘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
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3.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4.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6.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7.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8.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본문 주해)
1절 : ‘이것도’란 25장부터 29장까지를 가리킨다. 앞에 나왔던 내용들(1:1~22:16)도 솔로몬의 잠언인데 왜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한 것일까?
그 이유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사후 250년이 지난 뒤의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국의 최전성기에 주어진 솔로몬 잠언을 재정리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2~3절 :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일을 밝히 드러내는 것은 왕의 영광이다.
하늘이 높고 땅이 깊은 것처럼, 왕의 마음도 헤아리기 어렵다.”(새번역)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인이다. 자기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의 지혜는 일반 백성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지혜여야 한다. 그 지혜를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왕의 마음도 하늘이 높고 땅이 깊은 것처럼 헤아리기가 어려운데 감히 여호와 하나님의 그 광대하심을 인간이 어찌 다 헤아려 알 수가 있는가 하는 말씀이다.
4~5절 : “은에서 찌꺼기를 없애라. 그래야 은장색의 손에서 그릇이 되어 나온다.
왕 앞에서는 악한 사람을 없애라. 그래야 왕위가 공의 위에 굳게 선다.”(새번역)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하듯이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없애라고 한다. 그래야 왕위가 공의 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세상의 정치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는 간사한 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말씀이다.
6~7절 :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높은 사람의 자리에 끼여들지 말아라.
너의 눈 앞에 있는 높은 관리들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을 듣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새번역)
지나치게 자기를 과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위치에 합당한 겸손한 생활을 하라는 권고로서, 누가복음 14:7~11절의 내용과 같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결국, 잠언 25장 2~7절은 왕의 분별의 지도력, 진실한 지도력, 겸손의 지도력을 강조하며, 신하의 자세 역시 겸손이 답이라는 것이다.
8~10절 : “너는 급하게 소송하지 말아라. 훗날에 너의 이웃이 너를 이겨 부끄럽게 만들 때에, 네가 어떻게 할지가 염려된다.
이웃과 다툴 일이 있으면 그와 직접 변론만 하고, 그의 비밀을 퍼뜨리지 말아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오히려 너를 비난하면, 그 나쁜 소문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고 따라다닐까 두렵다.”(새번역)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과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는 보다 신중하게 행동하여 수치를 당할 여지를 미리 막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그리고 상대와 시비를 가림에 있어서 정정당당해야 하며 승리를 위해 악한 술수를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뿐만 아니라 방법도 정직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의 비밀을 들추어내어 그를 비난하는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결국 본인이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 된다.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종말의 영인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산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는 종말의식으로 사는 백성들로서 현재도 만 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 앞에 지금 살고 있는 자이며 장차도 주님 앞에 설 것을 믿고 산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신중하고 정직하고 깨끗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12절 :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은, 들을 줄 아는 사람의 귀에는, 금귀고리요, 순금 목걸이이다.”(새번역)
11절의 ‘합당한 말’은 12절의 ‘슬기로운 자의 책망’과 연결이 된다. 즉 합당한 말이란 슬기로운 책망이며 이러한 슬기로운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그러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다.
13절 : “믿음직한 심부름꾼은 그를 보낸 주인에게는 무더운 추수 때의 시원한 냉수와 같아서,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새번역)
지혜로운 왕이나 주인의 명령을 적절하게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은 무더위 가운데 냉수 같은 자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11~13절)
세상에는 많은 멋진 말들이 있어서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또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대개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말들이다.
그 유익이란 것은 이 세상의 형통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에게 지침이 되는 말들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다.
이 죄인들에게 가장 합당한 말이 무엇인가? 죄인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말이 무엇인가?
과연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말일까? 건강하게 사는 법, 인간관계를 잘 하는 법,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일까?
아무리 화려한 삶이라도 이 땅에서 길어야 고작 100년, 그러다가 결국 영원한 멸망 속에 거하게 되는데 과연 그런 말들이 죄인에 합당한 말들이 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합당한 말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들려지는 복음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창세전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애당초 자신에게 합당한 말씀인 복음을 들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 빛이 왔으나 빛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빛을 피해 어둠으로 파고 들었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틀어막았다. 드디어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환호했던 자들이다.
복음을 들을 귀, 십자가를 볼 수 있는 눈은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창세전부터 택함받은 주의 백성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면 그들의 눈이 떠지고 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단 한 마디도 자의로 말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처럼 경우에 합당한 말씀을 하신 분이 없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지킨 자들이라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셨다.
그것이 그들이 들어야 할 합당한 말씀이지만, 그들은 귀를 막고 다함께 달려들어 예수님을 죽여버렸다.
그런데 이 복음이 되시고, 복음의 말씀을 주신 슬기로운 분의 책망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생겼으니 바로 성령이 임한 자들이다.
죄로 인해 죽었던 영혼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시어, 그 빛으로 나아오게 하시고, 그 빛 가운데서 살게 하시니 에스겔서의 마른 뼈와 같이 소생하여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기게 되니 그 그릇도 요긴한 것이 되어 쓰임을 받게 된 것이다.
질그릇 같은 존재에 생명이 담기니 충성된 복음의 심부름꾼이 되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제 주님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자가 되어, 그에 청종하는 귀를 가진 자를 찾는 것이다. 그 또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믿음직스러운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묵상 기도)
주님,
자격 없는 자에게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사과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말씀의 빛에 머리 조아리게 하시니
제게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께서 하게 하시는 것임이 믿어지니
저에게는 매일이 기적입니다.
이 기적의 삶을 다 마치고,
충성된 심부름꾼의 사명을 다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주님 품에 환한 얼굴로 안기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부실한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