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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본지 주관으로 열린 ‘IT 특별좌담회’모습.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재영, 오시환, 김대광, 오진영 씨. | | | 불교신문은 지난 17일 ‘인터넷 불교포교와 IT(정보산업) 전망’을 주제로 오시환 유니텔불교동호회 ‘부처님나라’ 대표시삽, 서재영 동국대 선학과 강사, 김대광 (주)다나아이앤씨 대표이사, 오진영 조계종 한국불교정보화사업단 콘텐츠 기획자가 참석한 가운데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인터넷 불교포교가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불자들의 정보화 마인드 변화와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인터넷 포교 비활성화의 1차적 책임은 인터넷을 두려움의 대상이나 비즈니스 수단으로 보는 일부 스님들에게도 없지 않음을 지적하며, 정법을 바로 알리고 의사소통하는 포교 수단으로 인터넷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참석자들은 또 안티불교사이트의 활동과 검증되지 않은 경전내용 베끼기 등의 부작용이 “불자들의 적극성 부재와 분열적 사고”에 기인한 바 크다고 진단하고 “인터넷 결사” “인터넷 경전 결집” “통합적 리더십” “불교사이트 검증제도 도입” 등을 통해 각종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인터넷포교의 청신호는 물론 IT전망도 밝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홈페이지는 법당…정성들여 장엄해야”
서재영 먼저 인터넷 포교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본다.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교를 전하는 포교가 있을 수 있으며 둘째는 기존의 불자들을 정법의 테두리 안으로 올바로 이끌어 주는 포교가 있다. 인터넷 포교는 무엇보다 불교를 모르는 이들에게 불교지식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이다. 5년 전만 해도 출판매체나 간헐적으로 나오는 몇몇 잡지를 통해서만 불교를 만날 수 있던 상황에서 오늘날은 관심만 있으면 상당한 분량의 전문적 정보까지도 인터넷을 통해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분야는 더욱 강화되리라 본다. 그런데 기존에 이미 불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이 얼마만큼 그들을 조직하고 이를 오프라인으로 어떻게 결집시켰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모범적인 단체도 있지만 대부분 일선 신행단체와 인터넷은 결합되지 않아 인터넷 따로 신행단체 따로였던 게 현실이다.
‘인터넷 따로 신행 따로’현실
오시환 불교포교에서 온라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유용한 수단이다. 저의 경우 ‘유니텔’불교동호회를 운영하는 8년 동안 앞서도 지적됐듯이 불교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불교를 알려주는 역할에 충실했다고 본다. 또 그들이 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제대로 불교를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온라인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오프라인 상의 불자들이 초심불자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관심 갖고 손을 내밀었는가이다. 그들이 법당 앞에 서서 절을 할 줄 몰라 당황해 할 때 불교예절을 가르쳐주며 가이드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불자는 많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온라인은 이런 정보까지도 쉽게 접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수단이다. PC통신동호회 중 유니텔 불교동호회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이유도 이런 연유이다.
김대광 불교계에서 인터넷 포교라는 용어가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인터넷 포교라고 할만한 것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또 마인드나 기준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가도 지적하고 싶다. 인터넷을 제작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관련 스님들을 만나뵈면 한결같은 말씀이 ‘남들 다 만드니까, 안 만들면 시대에 뒤쳐지고 인터넷을 모른다는 것 자체가 소위 ‘따’ 당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결국 인터넷포교는 인터넷을 만들어 보자라는 출발선에만 머물러 있지 인터넷 매체가 한국불교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
인터넷 포교 아직은 걸음마 단계…적극 관심 중요
‘시대변화’ 적응하기위한 ‘의식변화’ 뒤따라야
오진영 앞서 지적대로 불교의 인터넷 포교는 현재 초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사찰홈페이지도 그렇고 인터넷 포교라는 개념도 그렇다. PC통신 시대가 가고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을 때야 비로소 불교는 시작단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이 인터넷 포교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중요한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는 것이 문제이다. 인터넷 시대라 해서 빠른 성과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차근차근 자료도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폭넓게 갔으면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불교인터넷 및 통신동호회가 수행중심으로 가고 있는데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반면 부작용도 많다고 본다. 좋게 말해 생활적 수행이지 나쁘게 말하면 ‘미국식’으로 가는 것이다. 즉, 불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아플 때나 힘들 때 찾는 마음수행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터넷동호회가 전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참선, 염불, 간경 등 전문화는 되어가지만 이를 이끌어줄 선지식은 없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조계종이 불교정보화 사업단을 발족하고 전통사찰 DB 구축에 분발하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단순 홈페이지 벗어나
아바타.블로그 등
포교 매체 다양화
김대광 인터넷의 발달은 사찰의 위기의식도 불러오고 있다. 예전에는 불교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사찰에 직접 찾아가 물어봐야 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얻고 질문할 수 있다. 사찰홈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찰의 입장을 많이 듣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찰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불교를 더 알리고 포교한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이들이 보고 뭔가 해를 끼치지 않을까 라든가, 한번 잘못 쓰여진 글이 시비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많다. 앞으로 사찰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오시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일단 인터넷과 관련됐다면 누구의 잘못을 탓하고 변화시키려하기 보다는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여전히 이들을 통합시키고 이끌어줄 종교적 리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터넷이라는 구조는 분명히 양방향인데 불교계 사이트는 많은 부분이 일방향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은 스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스님은 현대인의 생활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방향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이나 부처님 당시의 상황이나 〈아함경〉과 별반 다르지 않는 데 부처님은 그때마다 해결책을 던져 주셨다. 그런데 왜 2500년이 지난 후에는 그런 가이드가 없는가. 이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것도 인터넷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공개되어 있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지적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서재영 아직까지 불교계가 인터넷을 받아들일 마인드가 안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 글이 올라오면 지워야 하는 불안한 상황이고, 홈페이지를 통해 단지 신도를 늘리겠다는 비즈니스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포교가 아니라, 우리 절을 어떻게 하면 빨리 쉽게 오게 할 수 있고 어찌하면 불사금을 더 내게 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신도들을 조직화하고 물적 토대가 공고해지는 것도 일종의 인터넷 포교라고 볼 수 있지만, 살아있는 정법(正法)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이도 의문이다.
사이트 이끌 선지식 절실
앞서의 지적과 달리 최근 인터넷 포교가 미국식으로 가고 전문화되어 간다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교에 나름대로 소양을 갖고 정서를 가진 사람들을 일깨워내서 모아내는데 공헌했기 때문이다. 이는 잠자고 있던 재가불자들이 깨어나 이제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주체로 선다는 의미이다. 인터넷 포교의 바람직한 역할은 불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를 갖는 것이다. 사찰홈페이지가 활성화 안된다고 해서 인터넷 포교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또 스님들의 마인드가 아직까지 안 따라온다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개인들이 깨어나고 그리고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인터넷 초기 문화가 익명성에 기인했다면 이제는 자발적인 표현에 있다. 아바타(avata)와 블로그(blog, 방송 출판 커뮤니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1인 미디어)가 대표적 드러냄이다.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 일원으로 머물러 있기를 꺼려한다. 커뮤니티에 속해 있되 자신은 뭘 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수많은 활동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이것을 어떻게 드러내 줄 것인가도 불교계의 향후 관건이다. 어떻게 보면 상을 갖지 말라는 〈금강경〉의 사고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이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불교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한 불교인이 되도록 장려해주는 ‘미니 홈페이지 만들기 운동’도 필요하다. 자기가 직접 법구경 등 몇 구절이라도 넣어 간단한 홈페이지라도 만들어놓으면 일단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정체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오시환 작은 모임도 중요하지만 그런 모임은 분란이 생기면 십중팔구 깨지기 십상이다. 또 나이가 젊거나 많은 사람들의 모임도 90%이상 얼마 못가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조화이다. 인터넷 포교는 부처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이걸 알려 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현실에 적용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이다.
부실한 콘텐츠 바로잡아야
오진영 무조건 베끼기 문화도 지적되어야 한다. 인터넷 사이트 자료실에 올라있는 경전내용을 보면 가짜가 너무 많다. 그런데 인터넷 이용자들은 이것을 무조건 수용하고 베끼려 든다. 실제로 각 동호회별로 자료실을 검색해보면 틀린 경전내용이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다.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없고 누가 한번 올리면 베끼기에만 여념이다.
서재영 옳은 지적이다. 온라인 문제의 핵심은 오프라인의 문제와도 중첩된다. 인터넷 속에서만 백날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인터넷동호회와 커뮤니티의 취약점은 인터넷에서 떠들던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데 있다. 가상사회이다보니 오프라인으로 나오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논의되던 생각이 실제사회로 전화될 때 비로소 힘을 갖고 삶을 추동하는 것인데 불교는 이 부분에서 한계이다. 생명력을 가지려면 구심점들과 결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찰과 자매결연을 맺는 것도 한 예이다.
사찰과 자매결연 등
양방향 교류통해
취약점 극복해야
오시환 무엇보다 인터넷 포교의 활성화는 재가불자들에 달려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소속된 유불동의 경우 1996년 8월 처음 서경법회를 시작한 이래 많은 큰 스님들을 모셔서 법문을 청했다. 철저한 준비와 사전교육으로 회원수는 날로 늘어났고 현재도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뭔가를 할 때는 반드시 재가자로서의 다짐과 서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구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손 하나 더 내밀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인터넷 포교는 우리 스스로 누구를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부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배움과 실천적 힘을 얻을 수 있는 스님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재가자도 분명한 눈을 떠야한다. 인터넷은 위험성도 크다. 불교사이트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그쪽으로 몰아넣고 재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재영 천수경에 보면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고 하는데 참된 법을 만나고 오아시스처럼 밝혀주실 스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오만하다. 선지식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 당시 때도 그랬다. 지금이라서가 아니라 정법을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김대광 인터넷을 매개로 한 신행단체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이 따른다. 스님의 입장에서는 내 신도가 아니라는 생각에 관심갖기를 주저하는 것 같고, 인터넷을 매체로 모인 신도들은 저급하다고 인식도 있는 것 같다.
서재영 그것은 단점이면서 장점이기도 한데 일종의 ‘디지털 로마니즘(romanism)’이다. 내 신도, 내 사찰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불교적 소양과 가고 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려 모이기 때문에 과거의 스님 사찰 지역중심이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다. 스님에게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재가자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스님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은 오히려 산사에서 철저히 자기수행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넷만 잘 꾸리고 수행이 없다면 스님이라 할 수 없다.
김대광 현재 불교관련 사이트의 대부분은 재가 중심이다. 오프라인 상에서는 사부대중의 화합을 강조하지만 온라인 쪽에서는 출가자는 소외되어 있다. 이는 미개척 되고 발현되지 않은 영역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종단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의 시기는 ‘인터넷 경전 결집’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인터넷에는 오류 많고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들이 많다. 그것들을 검증하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기독교의 경우 성경 DB(데이터베이스)가 매우 잘되어 있고 공개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 해석이 통일되고 부족한 부분들은 네트즌 신자들에 의해 보강되는 면이 없지 않다. 이에 반해 불교는 ‘모(母)DB’가 없이 각자의 열의로 개별화되어 있다. 통합화나 네트웍이 되어 있지 않아 발생하는 손실도 크다.
제작의 어려움은 앞서 지적했듯이 마인드의 문제가 가장 크다. 사찰사이트를 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동떨어져 별개인 상황이다. 실제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운영의 실효성이 없다. 가끔 업그레이드 한번하면 몇 년을 버티는가 하면, 수려한 디자인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불교계의 제작 수준이다.
오시환 불교인터넷 포교는 초심자에 맞는 낭만성도 있어야 하지만 작은 것을 통합하는 조화도 필요하다. 기둥이 없어지면 이합집산이 되게 마련이다. 온전한 커뮤니티가 몇 군데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뜻이 맞는 불자들끼리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인터넷 결사’를 제기하고 싶다. 결사가 이뤄져야 신심이 동반된다.
“수평적 네트워크로 불자 역량 강화를…”
서재영 ‘인터넷 결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문적으로 세분화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합도 필요하다. 덧붙이자면 최근 불교를 빙자해 운영되는 사이비 사이트에 대한 대응도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인터넷 동호회나 카페의 불자들이 상호인정해주는 하나의 포탈사이트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불교사이트들을 재분류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법의 길을 걷는 사이트에 ‘사이버 인증 리본’을 달아주는 것도 방편이다. 굳이 사이비 단체들에 대응해 힘을 소모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도태시켜야 한다. 또 인터넷의 바다를 수없이 도는 오류투성이의 경전들을 인터넷 결집하는 것도 중요한 지적이다. 아마 이것이 종단에서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한다.
오진영 최근 돌고 있는 소문 중에 인터넷의 경전들이 이웃종교인들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되는 면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서울 화계사 게시판에 〈금강경〉이 이웃종교의 절대자가 말한 것이라고 게시해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다. 또 이를 주제로 한 논문도 나왔다. 스님의 설법을 바꿔 마치 그들의 절대자가 말한 것인 양 바꾸기도 한다. 이웃종교가 불교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광 문화적 차이인데 기독교는 악의적 글이 올라오면 답글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불교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 같다. 안타깝다.
오시환 그래도 여전히 불교는 인터넷을 만나면서 황금을 손에 쥔 형세이다. 과거 기독교 등 이웃종교가 번창했다면 이제는 바뀌었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도 그렇다. 인터넷 기독교 동호회는 잘 안된다. 왜냐하면 오프라인 교회가 신도들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스님들이 내 사찰, 내 신도를 찾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1세기 문화시대 핵심은 ‘불교’
김대광 불교계 사이트를 조사해보면 대략 1000개 정도가 개설되어 있다. 인터넷 다음 카페의 경우 3500여개에 이른다고 하지만 대략 유용성이 있는 것은 1000개 정도이다. 앞으로 3000~4000개 정도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반해 이웃종교는 수적으로는 많다. 하지만 이웃종교의 인터넷 성장은 상당히 정체되어 있는 구조이다. 근본 원인은 수평적 네트웍의 불가능에 있다. 불교는 수평적 네트웍이 가능하고 사찰과 사찰간의 네트웍도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종교에서 불교의 인터넷 전망은 매우 밝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고 하듯이 문화의 중심은 종교에 있다. 특히 불교는 문화의 핵심이고 경쟁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개발되고 만들어져야 될 내용들이 상당히 존재하는데 현재 불교계는 상당히 역량 있는 불자들이 많음에도 재야에 묻혀 개별화되어 있는 것 같다. 역량을 집중하고 통합하는 것이 발전 정도를 당길 수 있는 최선이다. 가능성은 우리들의 몫이며 이를 위해 다각적인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
서재영 이제는 콘텐츠 중심으로 사고를 바꿔 사찰에서 무엇을 특화시켜서 네티즌과 불자들에게 전해줄 것인가를 고민해 내용 중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터넷 결사를 통해 질이 보장되는 쪽으로 자기반성과 반문을 되새기며 추스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이 살아 움직이는 괴물이 아닌 철저하게 사람이 만들어간다는 사람중심의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스님과 불자들도 공부하게 될 것이고 정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남들에게 욕 듣지 않고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저절로 업그레이드되고 지성화 될 것이다. 지성화는 소수의 지성화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함께 가는 지성화이다. 이러한 생각이 보편화된다면 불교계 IT직업 전망 또한 밝아질 것으로 본다.
정리=배재수 기자 dongin21@ibulgyo.com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좌담참석자
오시환(유니텔불교동호회 대표시삽)
서재영(동국대 선학과 강사)
김대광((주)다나아이앤씨 대표이사)
오진영(조계종 정보화사업단 콘텐츠 기획자 )
[불교신문 2000호/ 1월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