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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커뮤니케이션, 그 끝없는 밀림의 탐험》 ②
골프 에세이스트로의 변신
자연스럽게 내게는 마음의 평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최고의 화두로 다가왔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불경·성경·이슬람 경전 등 정신세계를 다룬 서적을 두루 탐독했다. 특히 선(禪)과 관련된 책을 많이 접했다. 학창시절 읽었던 중국의 고전들도 다시 펼쳤다. 그 첫 결과물이 골프 에세이 『달마가 골프채를 잡은 까닭은』(1998년 서해문집)이다. 골프의 정신세계를 선과 접목해 다룬 최초의 골프 철학서였기에 골프 애호가들 사이에선 반응이 뜨거웠다.
골프의 구력이 늘어날수록 골프를 잘하기 위한 수련 과정은 선을 하는 과정이나 가톨릭에서의 묵상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쩌면 골프 역시 선의 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달인의 경지에 오른 골퍼가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세계는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세계나 노자와 장자가 설파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절대 무(無)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됐다. 좋은 스코어를 내기 위한 온갖 골프 관련 교훈들,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침서들, 다양한 환경의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등 골프와 관련된 교훈과 일화들은 선의 수행과정에서 듣게 되는 화두(話頭)나 경구들, 선승들의 일화와 신통하게도 맥이 통했다. 만약 선의 시조인 달마대사가 그때 골프를 알았더라면 뼈를 깎는 수행을 마다하고 골프채를 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면벽 좌선보다는 골프를 통해 선의 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리라는 상상까지 해봤다. 그래서 감히 골프 철학서를 자처한 첫 골프 에세이의 제목을 『달마가 골프채를 잡은 까닭은』이라고 정한 것이다.
마음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데는 틱낫한(1926. 10. 11~2022. 1. 22) 스님의 여러 저술이 큰 도움을 주었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출신의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로 생전 100여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2000년대초 한국에 번역·출간된 『화』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프랑스 남부에 명상공동체인 ‘플럼 빌리지’를 세워 서양에 불교 교리를 전파하며 참여불교운동의 실천에 앞장섰다. 틱낫한 스님이 현대인에게 던지는 지혜의 키워드는 ‘알아차림’(awareness), ‘마음챙김’(mindfulness), ‘깨어있음’(enlightenment)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알아차림’이나 ‘마음챙김’, ‘깨어있음’은 동양의 선(禪)이나 명상의 핵심 요소들을 서양의 심리학에 통합시킨 것으로 여러 정신질환, 심리적 스트레스 등에 큰 효과가 있음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일반적 정신치료처럼 감정을 인위적으로 변화·조절하기보다는 감정을 객관화해 거리를 두고 감정의 실체와 그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나는 틱낫한 스님의 이 ‘알아차림’·‘마음챙김’의 지혜를 골프에 적용, 놀라운 효과를 체험했다. 라운드 중 분노나 좌절, 절망에 휩싸일 때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인식하고 그러는 자신을 제3자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내가 뒤땅 한번 친 것 가지고 이렇게 분노하고 있구나’, ‘나는 미스 샷을 냈는데 동반자는 멋지게 온그린에 성공한 것이 배 아파 내가 괴로워하고 있구나’,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그 결과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에 실망하고 있구나’, ‘쉬운 버디 기회를 놓친 뒤 이렇게 무너지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는 보는 마음의 눈이 열리면서 마음의 격랑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마음 움직임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이나 판단을 유보하고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불길이 저절로 사그라드는 효과를 체험했다. 이런 과정을 거듭하면서 거친 파도도 결국은 잔잔한 물결로 수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골퍼에게 필요한 정신력이란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마음의 불길이나 파도에 맹렬히 저항하며 싸우는 게 아니라 불길이 일어나고 사그라드는 과정, 거친 파도가 부서져 거품이 되고 결국 잔잔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여유일 것이다.
특히 ‘알아차림’은 연습할 때도 대단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연습장에 가보면 기계적으로, 타성적으로 공을 쳐 내는 사람이 80~90%에 가깝다. 자신의 스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공을 때려내느라 여념이 없다. 이래서는 개선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타성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고질병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 자신 안에 괴물을 키우고 있는 꼴이다. 미스샷이 나오면 왜 그런 샷이 나왔는지, 그때 내 동작의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내 몸이 이상적인 샷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췄는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채고 샷을 할 때마다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방법이다. 달리 말하면 ‘각성(覺醒)의 골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골프 에세이와 소설 잇따라 출간
늘어나는 구력과 함께 골프의 무궁무진한 밀림을 헤매면서 정신세계의 탐험이 안겨주는 깨달음과 열락을 에세이집 『초월의 길, 골프』(2007년 화남)와 『명상골프』(2010년 화남)에 모아 펴냈다. 이어 미처 에세이로 풀어내지 못한 것을 소설에 담았다. 한국 최초의 골프 판타지소설 『버드피쉬』(2012년도서출판 어젠다)를 냈다. 버드피쉬는 새의 머리와 날개에 물고기의 지느러
미와 꼬리를 한 상상의 동물이다. 창공을 날고 싶은 새와 깊은 바다를 유영하고 싶은 물고기의 꿈을 함께 담고 있다. 버드피쉬는 주인공의 골프 인생에서 소중한 ‘정신적 부적’ 역할을 하는 목걸이로 등장한다. 학창시절 촉망받는 아마추어 골프선수로 활약했던 존 무어라는 영국 청년이 주인공이다. 동양사상에 심취해 인도·티베트·네팔·중국·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자아 찾기에 나선 주인공은 한국의 사찰 순례 도중 우연히 지리산 골짜기에서 조난했다가 ‘걸리도사’에게 구조된다. 주인공은 막걸리를 상복하는 사이비 도사를 ‘걸리도사’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1년 동안 선과골프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가 우여곡절 끝에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리는 세계적 권위의 ‘디 오픈 골프대회’에 출전한다. 걸리도사는 주인공의 캐디로 세인트앤드루스에 나타난다. 걸리도사와 짝을 이룬 주인공은 대회 마지막 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샷으로 역전 우승한다. 동서양의 교감을 통해 골프의 완성을 꿈꾸는 과정을 그렸다. 단순한 골프 소설이 아니라 골퍼가 갖춰야 할 정신자세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2020년엔 그동안 여러 지면에 써온 골프칼럼 중에서 정수만을 뽑아 『방민준의 골프오디세이』(도서출판 어젠다)를 냈다. 돌이켜 보면 호머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된 느낌으로 험하디험한 골프의 바다를 항해해온 셈이다. 트로이가 멸망한 뒤 신들의 노여움과 사랑에 얽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0여 년 바다를 떠돌며 방랑한 오디세우스처럼 40년 가까이 무궁무진한 골프의 세계를 탐험해온 것이다. 골프와 얽힌 지난 시간을 톺아보면 그것은 구도의 길이었고,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아 헤매는 항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감동시킨 골프광들
골프 사랑으로 말하면 고(故) 고우영 화백(1938~2005)을 따를 사람이 있을까 싶다. 『삼국지』·『수호지』·『서유기』·『일지매』·『십팔사략』 등으로 장안의 지가를 치솟게 했던 그는 사실 40대 중반까지 골프의 골자도 몰랐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던 그는 골프를 하라는 주위의 끈질긴 권유를 철저히 외면했다. 지인이 새 골프채를 사서 차 트렁크에 실어주었는데도 6개월이나 지나 골프백을 열어보고 골프채가 14개나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정도다.
“잘 아시잖아요, 제가 안 해본 게 없다는 것. 낚시다, 사냥이다, 스킨스쿠버 다이빙이다, 모두 전문가 수준 이상 광적으로 좋아했잖아요. 이런 취미생활 없이 못 살 줄 알았지요. 아, 그런데 골프를 배우고 나니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지더니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지더군요. 모든 관심과 화제가 골프에만 모아지는 거예요. 참 묘하지요?” 골프 사랑에 빠진 사연을 털어놓을 때마다 그는 행복한 듯 빙긋이 웃었다. 그 웃음은 ‘아마 내 골프 사랑을 짐작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이 만화가였던 형님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동양 고전을 소재로 한 만화에 일가를 이룬 그는 골프 역시 매우 늦게, 그것도 독학으로 배웠지만 교과서적인 우아한 스윙과 완벽한 매너와 에티켓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서로 골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순식간에 ‘고우영 화백 애호가’의 한 사람이 됐고, 내 골프 에세이의 삽화를 공짜로 그려주고 나서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죽이 맞는 평생 골프메이트가 됐다. 그와의 라운드는 정말 즐거웠고, 배울 것이 많았다. 당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완벽한 스윙을 구현했고, 동반자들을 철저하게 배려했다. 무궁무진한 화제와 풍자·해학·재치가 넘치는 화법으로 동반자들을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골프 열정이었다. 골프 약속을 하고 나면 만날 때마다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우리 짱짱하게 붙어 봅시다”라며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라운드 당일 새벽잠을 설쳐 충혈된 눈으로 나타나곤 했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라운드 전날 흥분하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잔 적이 없다고 실토했다. 골프가 뭐기에 나도 고 화백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고 화백 외에도 수많은 골프광을 만났다. 장인의 부음 소식을 접하고도 골프 약속을 지킨 친구도 있었고, 아내의 출산 예정일에 회사 일을 핑계 대고 라운드를 마친 친구도 있었다. 새벽에 불가피한 일이 생겨 한 자리가 비어 연락했더니 군말 없이 총알처럼 골프장으로 달려 나온 후배도 있었다. 그 후배는 밤새 야근하고 새벽에 막 집에 들어서던 참이었다. 치명적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며칠 후 깨어난 한 선배는 의사에게 던진 첫마디가 “골프 못 칠 정도는 아니지요?”였다고 실토했다. 의수나 의족을 한 사람과의 라운드는 경외심을 갖게 했다. 나도 발목 골절로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으면서도 골프장에 나와 골프채를 휘두른 적
이 있다. 관훈클럽의 해외 답사 여행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기회에는 침대칸에 함께 탄 언론사 선배 부부와 밤새 보드카를 마시며 골프 얘기를 하다 지평선 위로 솟는 붉은 해를 맞은 경험도 했다.
서양에선 결혼하는 날 라운드 약속 때문에 신부를 골프장으로 달려오게 하는가 하면, 아내 장례식날 골프채를 장례 마차에 싣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골프장으로 향하는 경우 등은 흔하다. 자신의 유골을 자주 다니던 골프 코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골퍼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골프광들이 등장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닭고기 수프』 시리즈를 엮어낸 잭캔필드·마크 빅터 한센·제프 오버리·마크 도넬리·크리스 도넬리 등이 공동으로 펴낸 이 책에는 골프와 얽힌 다양한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만난 골프광’이란 글에서 골프광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
뉴욕의 교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길에 종종 만나는 사람끼리의 대화 내용은 이렇다.
“기가 막힌 날씨네요.”
“잔디가 마르고 있으니 곧 라운드하기 딱 좋게 될 거요.”
“그래요, 태양이 높아지고 날이 길어지겠지요.”
“그게 정말 중요하지요, 오전 6시에도 라운드를 돌 수 있거든요. 난 아침 먹기 전에 라운드를 시작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적은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요. 엊저녁에도 친구들 몇이 모여 골프 얘기를 하게 됐는데 오전 5시부터 7시 30분 사이의 황금시간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정말 안타깝다는 말이 나왔어요.”
창밖의 풍경을 보며 대화가 이어진다.
“여기만 해도 제법 전원 분위기가 나지요?”
“그래요. 하지만 이 땅을 쓸모없이 놀리다니 아깝군요. 정원이니 농장 따위밖에 없지 않소? 집도 몇 채 없는 너른 들판에 상추나 심어놓았으니 쯧쯧. 18홀 코스쯤은 너끈히 앉힐 만한 곳인데.”
“그런가요?”
“그럼요. 여기 흙은 아주 가벼워 벙커를 만들기도 쉽다오. 거기서 힘껏 공을 치면 커다란 구멍이 파이겠지요. 지금보다야 백 배 나아지는 셈 아닌가요?”
조간신문을 펼치며 니카라과 파병기사가 나오자 대화가 계속된다.
“해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아나폴리스사관학교에서 골프를 필수과목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정말 커다란 발전이 아니오?그럼 해상 훈련시간은 좀 줄어들지 몰라도 해군의 자질은 틀림없이 향상될 거요. 대단한 결단을 내렸네요.”
롱아일랜드에서 발생한 기이한 살인사건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살인사건 기사 따위는 읽지 않아요. 흥미가 없어서요.”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희생자는 골프채에 맞아 사망했거든요.” “아니 골프채를 휘둘러 살인을 했단 말인가요?” “그렇다는군요. 어떤 클럽을 사용했는지….”
“몇 번 아이언이었을까요? 신문 좀 봅시다. 나무로 만든 드라이버 같은데. 아니 그저 골프채에 맞았다고만 돼 있구먼. 도대체 신문들이 정확한 보도를 하지 않아요.” “골프를 자주 치시나 봐요?” “아니요. 그렇지 못해 유감이요. 너무 늦게 시작했거든요. 이제 겨우 20년이 됐을 뿐이오. 5월이면 21년이 되지요. 도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꾸물댔는지 모르겠소. 인생의 절반을 낭비한 셈이니까.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서른을 훨씬 넘기고 나서였소. 하긴 우리 인간은 늘 그렇게 인생을 되돌아보며 잃어버린 것을 깨닫는 존재지요. 더 안타까운 것은 골프를 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거요. 잘해봐야 일주일에 네 번 정도지요.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은 거의 놓치지 않지만. 여름휴가 때도 주로 골프를 치는데 그래 봐야 한달 정도지요. 겨울이면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 남쪽으로 내려가 골프를 치고 오는 정도고요. 난 너무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그중 한 사람이 동네 골프클럽에서 우연히 열차에서 만난 사람을 아는 동네 지인을 만났다.
“그 스미스 씨하고 같이 출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대단한 골프광이더군요.” “그 사람이 골프광이라고?” 동네 지인은 코웃음을 쳤다. “스미스가 허허?이제 겨우 공을 맞히는
정도라오. 더군다나 골프를 시작한 지 고작 20년밖에 되지 않았단 말이요.” 20년 경력의 골프광을 ‘이제 겨우 공을 맞히는 정도’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 골프광인지는 아쉽게도 소개되지 않았다.
미국에 ‘골프너트협회’(The Golf Nut Society)란 단체가 있다. 견과류를 의미하는 너트(nut)는 무언가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골프너트협회는 프로선수가 아니면서 광적으로 골프 사랑에 빠진 골퍼들의 모임이다. 골프광협회는 너무 부드럽고 골프미치광이협회쯤으로 옮겨야 제맛이 날 것 같다. 1986년 설립된 이 협회는 골프에 미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소정의 테스트를 거쳐 가입할 수 있다. 당연히 골프 중독 증세가 중증 이상이 돼야 한다. 자신의 골프 사랑, 골프 중독의 정도를 상세히 기록해 제출하면 포인트를 부여한다. 주어진 포인트를 계산해 ‘오늘의 골프 너트’, ‘이 주일의 골퍼너트’, ‘이달의 골프 너트’를 발표하고 연말에 대망의 ‘올해의 골프 너트’를 선정한다. 누적 포인트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서터파이드 골프 너트’(Certified golf nut)라는 명예 칭호가 주어진다. ‘협회 인정 골프광’인 셈이다.
‘올해의 골프 너트’로 선정된다는 것은 골퍼로선 최고의 영예다. 골프 인구나 골프코스 등에서 세계 최고의 골프 환경을 갖춘 미국에서 ‘올해의 골프 너트’로 선정되면 단번에 매스컴을 타고 유명인사의 반열에 오른다. 1986년 설립 첫해 ‘올해의 골프 너트’에는 ‘오리건의 골프 구루’로 알려진 조 멀레이(Joe Malay)가 선정됐다. 해병대 전역 후 골프 사랑에 빠진 그는 평생 12번의 홀인원에 헤아릴 수 없는 에이지슛(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낮은 스코어를 내는 것)을 기록했다.
미국 농구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는 마이클 조던(59)은 이 협회가 창립된 해에 회원으로 가입, 1989년 ‘올해의 골프 너트’로 선정됐다. 2003년 NBA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15시즌 동안 최우수선수(MVP) 5회, NBA 파이널 MVP 6회, 득점왕 10회라는 불멸의 전설을 남긴 조던은 스포츠전문가들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균형 잡힌 골격, 이상적으로 발달한 근육, 그리스 조각상을 능가하는 잘 생긴 외모에 공중에서 유영하듯 마음대로 자신의 육체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보면 그는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선수’가 아니라 지구촌의 ‘유일무이한 인간 개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골프와 얽힌 마이클 조던의 일화들을 보면 만약 그가 농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타이거 우즈를 능가하는 골프선수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 농구부 선수로 활약할 때 그는 골프의 매력을 간파하고 마음을 빼앗겼으나 이미 촉망받는 선수로 지목돼 농구선수로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조던과 골프의 조우는 극히 우연히 이뤄졌지만, 그 파장은 강렬하고도 길었다. 대학 3학년이던 1984년 3월 어느 날, 농구팀 숙소에서 같은 대학의 골프팀 선수인 데이비스 러브 3세를 만났다. 룸메이트인 버즈 피터슨이 심리학 수업을 듣다가 새로 사귄 친구라며 데이비스 러브 3세를 방으로 데려온 것이다. 조던은 피터슨을 따라 데이비스 러브 3세와 함께 대학 골프장으로 갔다. 조던이 데이비스를 따라다니며 퍼트나 드라이버를 잡아보고 공을 치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데이비스는 중고 골프채와 공을 모아 조던에게 선물했다. 조던은 그해 봄에 첫 라운드를 돌았는데 후에 “첫 라운드를 하고부터 골프에 빠졌다”라고 고백했다. 농구스타로 인기가 높은데다 키 198㎝ 거구에 맞는 골프채를 마련하기 어려워 본격적인 연습은 할 수 없었으나 그의 골프사랑은 불이 붙었다. 경기가 없을 땐 수시로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각종 골프대회에도 참가해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그만두고 골프선수를 꿈꾼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자신의 페라리 승용
차 번호판에 ‘RESERVED GOLF NUT’(예약된 골프광)이라고 쓴 번호판붙일 정도였다.
1988년 NBA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 MVP로 선정되고도 정작 시상식날 그는 홈구장(시카고 불스)에서 1,400㎞나 떨어진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GC에서 라운드를 했다. 이듬해에도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자마자 시카고에서 밤새 차를 몰아 파인허스트로 달려가 이른 아침부터 라운드했다.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미국 드림팀 선수로 출전했던 조던은 36홀 라운드를 마친 뒤 농구 경기장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사기꾼 골퍼와 열흘간 내기 골프를 쳐 125만 달러를 잃기도 했다. 1993년 조던은 피닉스 NBA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36홀을 어둠 속에서
마쳐 화제가 됐다. 농구선수로서 현역에서 물러난 뒤 그는 플로리다주 베어스클럽에서 어니 엘스·키건 브래들리·루크 도널드 등 PGA투어 선수들과는 물론 저명인사들과 거의 매일 골프를 즐겼다. 1년에 적게는 100라운드 이상, 많게는 380라운드에 이른다니 조던은 지구촌 최고의 골프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3년 올해의 골프 너트로 뽑힌 보브 페이건이란 사람은 2,820권의 골프 서적과 1,200여 종의 골프 연필을 수집했다. 골프를 치면서 친누이 3명을 모두 골프공으로 맞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한낮 온도가 섭씨 45도를 넘어가는 7월의 팜스프링스 사막지대에서 하루 동안 서로 다른 6곳의 18홀 골프장을 돌기도 했다. 그는 1년 중 부활절 주일과 어버이날, 추수감사절, 성탄절, 배우자의 생일에 모두 골프를 칠 경우 부여하는 ‘골프 미치광이 슬램’(Golf Nut Slam)을 달성해 협회의 역대 랭킹 1위에 올라 있다고 한다. 2007년의 골프 너트 짐 멀론은 세법 전문 변호사 출신으로 2006년 58세로 은퇴한 뒤 ‘진정한 골프 미치광이’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자고 작심, 골프에 몰두했다. 전립선암 수술이 예정돼 있던 그는 수술 전에 공을 2개씩 치면서 빨리 걸어 하루 2라운드를 도는 훈련을 거듭했다.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그는 퇴원 직후 집 안에 설치해놓은 그린에서 퍼팅을 연습했고, 수술 후 회복을 위해 플로리다로 여행했을 때는 9번 아이언으로 연습하다 수술 부위가 일부 터지기도 했다. 1993년 올해의 골프 너트로 선정된 E. M. 밴디웨거는 빵 전문가로, 매일 밀가루를 반죽한 뒤 부풀어 오를 때까지 1시간 동안 퍼팅 연습을 하고, 반죽을 오븐에 집어넣고는 칩샷을 연습하며, 오븐에서 꺼내놓고 식는 동안 드라이빙 레인지에 갔다가 구운 빵을 갖고 골프장으로 이동, 친구와 직원들에게 빵을 나눠주었다.
2001년 아일랜드에 사는 이반 모리스가 비(非)미국인으로는 처음 올해의 골프 너트로 선정됐다. 골프 칼럼니스트로 2권의 골프 서적을 펴내기도 한 그는 임신한 아내에게 골프 토너먼트에 나갈 수 있도록 출산을 앞당기는 인공출산을 간곡히 요청했다. 아내의 곁을 지키지 못한 채 출전하느냐, 골프를 포기하고 아내 곁을 지키느냐를 놓고 고민하다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아들의 출산을 확인하고 출전한 그는 마침내 그 대회에서 우승, 우승 트로피에 갓난아이를 넣고 자랑스레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