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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애벌레의 꿈
상대가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인가.
상대의 믿음이 확실한가.
깊이 고민하며 기도하지 못하고, 서둘러서 성급하게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신랑은 부자였고..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사람이었고..
게다가 자매님을 생각해주는 사람이었다면..
만약 그랬더라면 과연 그때도 자매님은 그가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가 맞았던건지 아닌건지..
또한 그의 신앙상태야 어떻건간에..
지금처럼 내가 혹시 하나님의 뜻을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계셨을까를 여쭙고 싶습니다.
그땐 그것이 하나님 뜻인줄 알고 결혼했는데..
이제와서 보니 하나님 뜻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이혼하겠다고 하시는 것인지요.
왠지 이 말씀이 생각나서 자매님께 적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자매님이 죽어서 맺게 될 많은 열매들중엔 자매님의 아이도 들어간다고 믿어요.
어떻게 결혼을 했건 상관없이 이혼을 하는 가정에선 이상하게도 자녀의 구원이 잘 이루어지질 않더라는 김양재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답해주면 더욱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 제가 아는 것이 한계가 많은 사람이라도 적어보았습니다.
이제라도 말씀에 근거해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깊은 고민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아래는 참고가 되실까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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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응답받는 기도, 해와 달도 멈추게 한 기도>
가나안의 아모리 다섯 왕이 닥쳐왔습니다. 이제껏 겪지 못한 큰일이 나를 덮쳤습니까? 몸은 아무데나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처럼 100% 응답받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육탄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의심을 하기는 했습니다.
"너희가 멀리에서 오지 않았어. 여기 가나안에 사는 사람 같은데?"
잘못된 결혼을 하고, 잘못된 동업을 한 사람들치고 "내가 맨 처음에 의심했었어." 이러지 않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그런데 다 자아도취에 빠져서 "내가 믿게 할 수 있어. 내가 변화시킬 수 있어." 이러면서 시작을 합니다.
의심을 했지만 곰팡이 난 양식이나 찢어진 부대를 보고 결정했습니다. 재물과 학력과 제자 훈련을 증거로 보이니까 거기에 다 넘어가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종이 되겠다고 하니까 넘어갔습니다. 결혼할 때 "나는 당신의 종이 되겠다." 이런 소리 안 들어보신 분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특히 분별이 어려운 이유가 그들의 간증입니다. 기브온처럼 착하고, 간증이 많은 사람을 보고 누가 하나님 앞에 "이 사람이 맞습니까?" 하고 울며불며 기도하겠습니까. 여호수아도 "좋아~ 좋아." 하면서 약조를 맺었는데요. 나의 유익을 위해서 거짓 신앙으로 경건하게 포장해서 오는데 누가 쉽게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공개적인 적을 다루기는 훨씬 쉬운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유다를 가려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거민들은 다 진멸하라고 끝도 없이 말씀을 반복하셨는데, 그렇게 교회를 다니면서 큐티를 했는데 기브온과 화친을 맺게 생겼습니다. 이방인과 영원히 섞이게 될 상황입니다. 얼마나 위태롭고 하나님 나라가 흔들릴 일입니까. 그런데 교묘하게 속이는 것에 모두가 넘어갑니다.
기브온의 거짓말은 라합의 거짓말과 다릅니다. 라합의 거짓말은 여리고의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 편에 선 거짓말입니다. 여리고가 망할 것을 알고 구원을 강청한 거짓말입니다.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진다는 것을 아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기브온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절대로 안망하고 예수 믿겠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와서라도 말씀만 사모하게 해 달라, 이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거짓말입니다. 영을 구하는가 육을 구하는가의 차이입니다. 라합과 기브온을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세워질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 겸손이고 지혜입니다.
기브온이 너무 착해보이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화친을 맺습니다. 기브온이 믿지 않는 이방인인데도 "내가 잘 믿을께요." 하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니까, 동정 받을 만하니까 여호수아가 묻지도 않고 약조를 해 버렸습니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결혼을 하고 동업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너무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혼수속도 안 하고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사역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말씀을 보고 제 설교를 들으면서 그 목사님과 사는 것이 간음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도로 전 남편에게로 돌아가야 되지 않는가 상담을 해왔습니다. 결혼도 쉽게 하고, 집에서 나오기도 쉽게 하고, 재혼 비슷한 것도 쉽게 하고, 그 다음에 다시 돌아가려는 것도 쉽게 하고..... 그러면서 말할 수 없는 정죄감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신앙이 있는데 왜 쉽게 결정을 하고 잘못된 길로 갑니까? 먼저 나의 육적인 것이 무너지는 겸손, 땅끝까지 내려가는 경험이 없으면 기브온의 거짓을 분별해낼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약4:2)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항상 모든 결론은 나의 잘못된 시작 때문에 왔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상대방을 탓하기 이전에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욕심을 꺠닫고 있습니까? 감정, 경건함, 외모 등 내가 가장 유혹받는 것은 어떤 부분입니까. 그것이 나의 상처(열등감)와 연관된 것은 아닌가요? 간증하면서 내가 위장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말씀을 근거로 올바른 분별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기브온이 찾아와서 도움을 청합니다. 간신히 용서하고 받아들였는데 골치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내가 용서하고 전도한 기브온에게 돈 문제, 명예 분제, 가정 문제, 질병 문제 등 '왕'급의 대단한 문제들이 연합해서 터졌습니다. 그리고 빨리 도우라고 성화를 합니다. 내가 용서한 것만도 생색을 내고 싶은데 내 시간과 돈까지 쓰게 생겼습니다. 기브온이 하는 말이 "나는 당신들의 종인데, 여호수아 당신이 나를 도와야 되지 않겠어요?" 이러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괜히 전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기브온은 이런 대상입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전쟁이 역사상 가장 큰 전쟁입니다. 아주 어려운 전쟁입니다. 상대방이 안 변하는데도 내가 사랑한다는 것, 죽을 때까지 안 변해도 내 평강이 없어지지 않는, 이 믿음으로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부인이 과거에 창녀였다고 해도 믿음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였는데 가난한 처가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당신이 나 용서한다면서요. 내가 나무 패고 물 긷고 있으면 당신 집에 영원히 받아들여 준다면서요." 하며 속히 도우라고 합니다. 결혼이 후회되지 않겠습니까!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이런 기가 막힌 요구를 하는 것이 오늘의 전쟁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수 10:10-11)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이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 원어 성경을 보면 패하게 하고, 크게 도륙하고, 추격하고, 이르는 네 동사의 주어가 모두 하나님입니다. 내가 길갈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기도하고 행하려 하면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기브온을 돕고자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승리하게 됩니다. 다섯 왕이 몰려와도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이것이 100%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너희들이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선행조건이 무엇입니까. "내 말에 거하면"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하면 100% 응답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전쟁, 아모리 다섯 왕과의 전쟁에서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시지 않으면 내가 칼로 죽일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내가 돈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내가 돕기로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이 칼과 우박을 허락하십니다. 내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수 10:12-13)
여호수아가 얼마나 급했으면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
"하나님, 제가 기브온을 도우려고 그래요. 그러니 태양이 머무르게 해 주세요. 달이 머무르게 해 주세요!!"
내가 기브온을 도와줘야겠는데 돈도 없고 힘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문제는 뻥뻥 터지는데, 남편이, 아빠가 교회 가는 것을 너무 핍박하는데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럴 때 "주님, 아빠가 정말 마음을 돌리고 예수 믿기 위해서 제가 공부를 잘해야겠습니다. 이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세요!!", "주님, 남편이 예수 믿기 위해서 제 병이 나아야겠습니다. 병을 고쳐주세요!!" 하는 기도입니다.
저는 육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를 속인 자를 위해서 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100% 응답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나 아이성 싸움을 할 때는 이렇게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머물러라, 달이 머물러라 이런 기도는 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너'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너도 '사랑스러운 너, 불쌍한 너'가 아니라 '속인 너, 용서할 수 없는 너'를 위해 태양이 머물고, 달이 머물러서 도와주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속인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내 유익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이기에 당당하게 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가장 절박한 기도를 하십니까?
하나님은 이 전쟁의 성격을 원수를 갚는 전쟁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원수를 갚았다는 걸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삼대, 사대 믿음으로 사십 년 광야 생활에, 여리고성과 아이성 다 거치고 우리 가족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섰습니다. 정복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내 가정의 구원을 위해 싸우기도 바쁜 마당에 기브온을 도와서 싸우고 있습니다. "왜 내가 상관없는 일에 용사를 써야 돼, 돈을 써야 돼, 시간을 써야 돼?"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쓰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시간은 생명이고,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위해서 그 시간을 써야 합니까. 생각할수록 싫습니다. 살아갈수록 싫습니다.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싫어! 싫어!" 싫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인간만 없으면 살겠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몰라서 그래요, 살아봐요! 살아봐요..."를 외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브온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나를 속인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원수는 내 남편, 내 자녀가 아닙니다. 그들을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싫어하는 내 마음이 원수입니다. 부도가 나도 내 욕심이 원수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내 속의 분노가 원수입니다. 이혼을 해도 돈 욕심이 원수입니다. 가장 큰 원수가 내 속의 유혹과 탐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적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다.
기브온을 도와야 하는 사건을 겪으면서 나의 원수, 다른 종류의 악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기브온 같은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은 나의 악을 보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 때문에 한 번 회개하기가 어려운데 평생 기브온을 통해 회개할 거리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집에서도 기브온 같은 사람을 보며 내 자신에게 절망하고, 목장에 가니 거기에 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기브온 같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리고에서, 아이에서 승리한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 기브온에서 그 지겨운 인간을 보고 죽을 때까지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길갈로 뛰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길갈로 가서 절박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자신이 점점 부해져서 가나안 정복으로 더 깊게, 깊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사건 속에서 먼저 처리되어야 할 내 속의 원수(욕심, 분노, 시기)를 깨닫고 있습니까? 기브온이 변하는 것보다 내 속의 악을 깨닫는 것이 진정 축복임을 믿으십니까?
남편이 사업을 하면서 아내 이름으로 빚을 얻었고, 사업이 실패하면서 아내가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아내는 직장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은 다른 여자와 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데 남편도, 직장도 잃고... 당연히 이혼소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하던 중에 우리들교회에 오고 설교 시간마다 이혼은 안 된다, 가정을 지켜야 된다고 하니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힘들었지만 말씀에 순종해서 이혼소송을 취하했습니다. 건강도 안 좋아지고 모든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썼습니다. 돈이 없어도 없는 것에 순종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해 있기만 하면 요단강을 건넌다고 하니 말씀이 안 깨달아져도 믿음의 공동체에 붙어 있겠다고 결심하면서 그것이 감사하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억울함과 막막함이 팔짝팔짝 뒤고 싶을 정도의 기쁨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알리지 못할까봐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지체들에게 나누고, 교회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동서가 전도되었고, 남편이 떠 안기고 간 1억 원이 넘는 빚을 시댁에서 갚아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교회에 온지 9개월 만에 직장에 복직이 되었습니다. 처음 생각대로 이혼을 했다면 하나님의 뜻도 어기고, 빚도 그대로 떠안고,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가 됐을 텐데 말씀을 듣고 지켰더니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는 받은 은혜를 나누어 줄 일만 남았다고 합니다.
기브온을 돕는 전쟁이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잘못된 남편이라도 함께 가기 위해 드리는 기도, 그 기도에 하나님은 100%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살리고 지키는 자를 무조건 축복하십니다. 가정이 해체되면 교회도 갈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을 받겠다고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열심히 다녀보십시오. 소나무 몇 뿌리 흔들어 보십시오. 그렇다고 해와 달이 멈추는 게 아닙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드리는 기도가 100%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 나를 속인 사람을 도우려니 너무 힘이 들지만, 나를 살려주신 말씀의 길갈을 기억하고 드리는 기도가 100%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 평생 짐이 되는 기브온을 보며 나의 악을 깨닫고, 원수의 실체를 알고 드리는 기도가 100% 응답받 는 기도입니다.
분별을 잘하는 방법은 스스로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스로 성결케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준비를 요구하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멸시받는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제사장 부시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려고 특별히 말씀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말씀이 임하게 하시려고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 사로잡히게 하셨습니다.(겔1장) 특별히 준비를 요구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강퍆한 남편을 붙이셨습니까? 시부모님을 붙이셨습니까? 사장을 붙이셨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준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쓰시겠구나! 할렐루야!' 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구별된 생각입니까. 내 고난이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임을 알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사를 행하십니다. 그런데 똑같이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 사로잡혀도 말씀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지지리 고생만 하다 죽는 것입니다.
질병과 돈 문제, 배신의 사건 속에서 내가 바라는 여호와의 기이한 일은 무엇입니까?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특별한 사건이 내게 일어나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반응하는 구별된 가치관이 있습니까? 말씀묵상을 통해 날마다 욕심과 원망을 끊으며 성켤게 하십니까?
-백전백승 여호수아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