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 이병욱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강 건너 등불’이란 노래<작사 지웅>를 처음 들었다.
라디오로 듣던 그 순간 나는 반했다.‘그렇게도 다정하던 그 때 그 사람----’이라며 시작되던 정훈희의 촉촉한 목소리. 강 건너에 있는 어떤 사람을 그리며 노래 부르는 소녀의 애절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는 이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 즈음 정훈희는 톱 가수였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마다 힛트되었다. 이 노래도 물론 힛트되었는데 웬일인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정훈희의 다른 노래가 뜨면서 이 노래가 가라앉았는지, 아니면 다른 가수의 노래가 뜨면서 이 노래가 가라앉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유행가의 속성은 묘해서 어떤 노래가 '뜨면' 다른 노래들은 일제히 가라앉는다. 동시에 두 노래가 '떠서' 유지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노래의 제목부터 나는 좋아하는데 특히 그 절묘한 운율의 짜임에 놀랄 뿐이다.
'강 건너 등불'<이란 다섯 글자가 빚는 운율의 조화부터 살펴본다. 운율은 같거나 비슷한 소리의 반복에서 생겨난다는 상식에서 살폈다. ‘강 건-’에서 ㄱ 소리가 반복되는 것에서 운율이 시작된다. ‘건너’에서는 ㄴ 소리가 반복된다. 곧 ㄱ 과 ㄴ이 반복되며 이어진다. 이런 배치는 사실 우리 입에 배어 있다. ‘가나다라---’에서‘가나’로 이어지는 순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듯싶다. 우리 입에 익숙한 운율로 시작되니 장단점을 낳는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데에서 오는 편안함이 장점이라면, 맥 빠지는 느낌의 상투성이 단점이다. 이 때 단점 되는 부분을 메워주는 게‘등불’이다. 등불은 된소리로 발음이 돼‘등뿔’이다. ㄷ에서 시작되어 ㅇ의 밀치는 힘에 의해서 'ㅂ'이 'ㅃ'이 되는 것이다. 결국 '강 건너’에서 상투성을 띄면서 맥빠질 수 있는 음의 기운을 ‘등뿔’에서 떠받쳐 올리면서 마감지었다. 이렇듯 절묘한 운율적 구조라서‘강 건너 등불’이라는 제목이 우리 입에 오르는 순간 물흐르듯 하는 게 아닐까.
이 노래의 노랫말을 지은 분이 그렇듯 치밀한 계획 아래 제목을 정했을 것 같지는 않다. 쉽게 제목을 정했을 거라 보는데 그 근거는 이렇다. 우선 ‘강 건너--’란 표현은 우리 입에 익은 표현이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란 명시의 한 구절에도 보인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에서 '강'과 '건너'가 '나루'란 디딤돔을 두고 편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입에 익은 '강 건너'에 이어 ‘등불’을 덧붙임으로써 노래 제목이 완성되었으리라.
더 깊게 분석해 본다.‘강 건너 등불’에서 사용되는 글자의 끝소리들이 대부분 울림소리라는 사실이다. ‘강’에서 ㅇ, ‘건’에서 ㄴ, ‘등’에서 ㅇ, ‘불’에서 ㄹ . 이렇게 네 개의 끝소리가 울림소리여서 혀를 굴리는 매끄러운 소리로 일관된다. '-너'는 가운데소리로 끝나지만 'ㅓ'라는 모음은 기본 속성상 울림소리라는 것을 안다면 결국 '강 건너 등불'이란 제목은 울림소리로 끝을 일관하는 특징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입에 익은 노래의 후렴들이 그렇지 않은가? '룰룰루'라든가 '라라라' 등. 민요의 후렴도 그렇다. '아리랑’의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이 그 예이다. 대표적인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후렴구 또한‘얄리얄리얄랑셩얄라리얄라 ’이 아닌가.
제목에 사용되는 소재의 이미지 구성 또한 곱새겨 볼만하다. ‘강’이라는 흐름의 것과‘등불’이라는 고정된 것의 대비가 매우 좋다. 흐르는 것 너머에 있는, 빛을 내며 고정되어 있는 것의 대비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찾는다면 ‘흐르는 세월 속의 인간 삶’이라 할까. ‘강’이라는 큰 자연물과 작은 인공물 ‘등불’과의 규모적 대비를 맛봐도 좋다. 캄캄한 밤의 강물과 빛을 내는 등불이 함께 하는 명암적 대비도 그 맛이 만만치 않다.
이런저런 대비적 관계들 속의 '등불'은, 결코 꿋꿋하게 자리잡고서 강물을 비쳐주는 느낌의 것이 아니다. 쉼 없이 흐르는 강 가에서 깜빡이는 약한 등불이다.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정처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
우연한 기회에 가수 정훈희씨를 라이브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마치 동네 미장원에서 보는 아주머니처럼 깔깔 대며 농담만 잘했다. 그러다 이 노래를 부르려할 때는 자세를 가다듬고 '그렇게도 다정하던----' 하며 아득한 밤 강 건너 등불을 바라보는 애절한 소녀로 변신하던 것이다. 과연 명 가수였다.
그녀는 노래를 마친 뒤 이런 얘기를 했다. "소녀 시절에 이 노래를 불렀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불렀지만, 지금은 이 노래가 가진 가사의 뜻을 음미하며 깊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이 노래를 언제나 잊지 못해 앵콜하는 팬들이 많아서 놀라곤 합니다."하였다.
나도 그런 팬에 속할 듯싶다. 나는 요즈음의 가수들에 질려버렸다. 특히 '화장들 요란하게 하고 나와 기계체조인지 춤인지를 추며 노래 부르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 가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귀에도 안 들어오고 가슴에도 와닿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유튜브 동영상으로 정훈희씨의 '강 건너 등불'을 감상한다. '그렇게도 다정했던' 하며 시작되는 순간 나는 어두운 밤 강 건너 흔들리는 등불 하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옆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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