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와 신문배달
2025.3.26
아내가 한 달간 입원했다 퇴원한 이후
아침식단과 설거지는 내가 담당합니다.
병원에서 처럼 아침식사를 7시에 하기로 하고
아침형 인간인 제가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면 아침기도를 마치고 담가놓은 그릇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가 끝나면 야채위주로 아침을 차리기에
여러가지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계란등을 찌기도 하고 깎기도 하며
준비하기에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 상사였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신혼때 였습니다.
부인이 학교 교사였기에 맞벌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인 부인이 학교가 멀어 먼저 출근하였기에
아침 설거지 당번은 남편이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어느날 묘안을 생각해서
부인보다 일찍 출근하기로 했답니다.
막상 집을 나왔는데 회사 문은 닫혀있고
갈 데가 없었답니다.
궁리한 끝에 새벽부터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남대문 시장을 찾았답니다.
그곳에 가보니 새벽에 불을 환히 밝히고
새벽장을 보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그곳에서 거래처 키맨들을 만난 것입니다.
맥주회사 영업사원이었기에 그분의 키맨들은
음식점, 주점의 칼잡이(요리사, 주방장)들이었지요.
그들이 직접 장을 봐서 그날 손님에게 줄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러 새벽시장에 온 것입니다.
상사께서는 그분들에게 인사하고
시장안에 있는 다방에서 차를 사 드리면서
친분을 매일 쌓았답니다.
그렇게 해서 영업실적(시장점유율)이 오르고 그 결과
젊은 나이에 중역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전에는 가끔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한 적은 있지만
요즈음은 자주 합니다.
음식을 먹고 난 후 싱크대에 쌓여있는 그릇은
볼 때마다 지저분하고 마음까지 답답합니다.
내가 먹은 그릇인데도...
특히 맛있는 요리를 해 먹었을 때는
더더욱 그렇지요.
기름기있는 그릇, 냄비, 후라이 팬 등
얼른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직장상사의 말이 생각나면서
어차피 할 일이라면
기쁘게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거지의 재미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거품이 풍성하게 날 때,
그 거품을 씻어낼 때
그릇에서 만져지는 뽀득함
그리고 지저분한 그릇들이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을 볼때 내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우리 마음에도 설거지가 필요합니다.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벌레가 꼬이듯
마음의 설거지도 제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좋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의 설거지를 하는 방법으로는
바닷가 김대건로를 산책한다든가
좋은 음악을 듣고, 가끔은 기타도 쳐보고
밭에 나가 검질을 매는 것도 방법입니다.
설거지한 후의 개운함을 말하다 보니
야간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1960년대 후반
2년간 조간신문을 배달한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는 많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그 땐 개발 붐이 불어서 주택을 많이 지었는데
집을 지어서 파는 사람들을 청부업자라고 했습니다.
새로 집이 완성될 때 쯤엔 신문구독의 의향과 상관없이
무조건 신문을 넣어주었습니다.
새벽 4시 전에는 보급소에 도착해
신문에 간지를 끼우고 광고물을 끼우는 작업을 30분 정도 한 후
약 100부에서 150부를 옆구리에 끼고
구독하는 집에 신문을 넣어주고 월 말에 수금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국일보를 배달했습니다.
한국경제와 일간스포츠도 같은 계열이라 같이 배달했지요.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선임을 따라다니며
대문이나 벽에 흰 분필로 H 자를 쓴 집을 찾아서
3~4일 같이 배달한 후엔,
혼자서 컴컴한 밤에 글자를 찾아 배달했습니다.
하지만 집집마다 신문종류마다 글자를 표시해
구독하는 집이 어느 집인지 익숙해 지기까지는
H자를 찾는 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집을 많이 지었습니다.
보급소에서는 새로 지은 집은 무조건 신문을 넣으라고 지시했지요.
당시 급여는 택시 사납금 처럼
신문 한 부 구독료의 일부를 지급받는 식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신문값이 100원이라면 90원을 보급소에 내고
나머지 10원을 내가 먹는 식입니다.
하지만 수금이 쉽지 않았습니다.
구독하겠다고 해서 배달한 집이 대부분이었지만
신규 개척하려고 일방적으로 넣어준 집이나
이사를 가 주인이 바뀐 후 구독을 원치 않는 집에서는
수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집의 신문대금 90원은 내가 지불해야 하기에
실 수입은 많지 않았습니다.
신문을 돌리다 보면 처음엔 옆구리에 낀 신문이
무척이나 무겁지만 배달이 진행됨에 따라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뜀박질도 빨라질 때의 후련함 이랄까
그 기분은 정말 새벽공기보다 상쾌합니다.
또한 배달의 기술도 향상되어 일반 가정 집에는
멀리서도 담 너머로 안전하게 던지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문 앞에 가서 대문 틈 사이로 밀어 넣었지만
요령이 생기면서는
뛰면서 옆구리에 낀 신문(8절지) 한 부를 꺼내어
허벅지에 한 번 때리면 32절지 정도로 작아지는데
‘신문이요!’ 하면서 그것을 던지면
원하는 곳에 안착이 되는 것입니다.
가끔은 수도가 등에 잘못 던져져 신문이 젖어
구독자에게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지만,
수금할 때 집에 들어가든지 집안을 살펴볼 수 있어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셔터 문이 닫힌 상점 같은 곳은
조그만 틈만 보이면 넣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밖에 놔두면 다른 사람의 손을 타기 때문에
신문 모서리가 들어갈 틈만 있으면 그곳으로 살살 끼운 후
던지듯 밀어 넣으면 안전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문을 배달할 때 힘들었던 것은
구독자들의 성격이 다양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일보 사절이라는 글을 붙인 집에도 계속 넣었습니다.
배달 부수가 떨어지면 나의 수입이 줄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넣고 월말에 해결할 생각으로 넣는 것입니다.
'신문사절'이 붙은 집에 넣으러 갈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주인이 집 앞에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인이 안 보이면 더욱 빨리 뛰면서
신문이요! 소리도 하지 않고 던지고 달아나곤 하는데
어떤 집 주인은 대문 안쪽에 숨어있다
신문을 던지자 마자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나오며,
쌍 욕을 하는데 간이 콩알 만한 적도 많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신문이요! 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신문이야, 구문이지!" 하면서
야단을 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배달을 처음 시작하는 지점은 5시 정도 되지만
끝나는 지점은 6시가 넘게 되니
아침형 인간인 그분은 신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어 보기도 했지만
그러면 또 다른 분이 불평을 해서 참 난감했습니다.
특히 수금 할 때가 하일라이트 입니다.
영수증 장부를 들고 구독자 집에 가서 직접 수금을 했는데
첫 방문 때 주는 집도 있지만,
주인(어른)이 부재중 이라든가
돈이 없어 다음에 오라는 사람도 있어
여러 번 방문을 해야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강제로 신문을 넣어 준 집은
정말 방문하기 싫었습니다.
그 동안 넣은 신문을 쌓아 놓고 가져가라는 분,
욕을 하고 야단을 치는 분,
이 번만 봐 줄 테니 다음 달 부터는 넣지 말라는 분 등 다양했지만
어째튼 수금할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고
어린 마음에 상처도 받았습니다.
드문 일이지만 어떤 친절한 분은
어린 학생이 수고했다고 양말 한 켤레라도 주는 분도 계셨는데
그런 분 때문에 힘을 얻고 배달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힘들고 자존심 상했을 법한데
당시엔 그런 감정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다 그렇게 살았고,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니까….
설거지 한 후의 개운하고 후련한 느낌은
신문배달 하면서 점차 신문의 무게가 줄어 들때의 기쁨,
배달을 끝내고 집으로 향할 때의
상쾌한 감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 전에는 언제 저 일을 마칠까
걱정도 되고 하기 싫지만
일을 끝냈을 때의 개운함과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해야겠지요.
미국에서는 월요일을 '블루 먼데이(blue monday)'라고 칭하며
월요일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요일 신경증(sunday neurosis)'이라고 부릅니다.
기분은 대체로 월요일에 최악이고 그다음 날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다가
금요일에 급격히 좋아집니다.
'금요일이라니 감사합니다!
(TGIF, Thanks God It's Friday!)'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입니다.
직장인 여러분!
TGIF를 맡보기 위해 월요일 아침도 힘차게
다음 날도 희망차게 하루 하루 시작하면
달콤한 금요일이 다가오겠지요.
이제 마지막 꽃샘 추위인 모양입니다.
우리집 정원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하루 되시길~~
첫댓글 뱌울리나 자매님을 위한 설거지까지~~
참으로 감동입니다
그래서 자매님이 더 빨리 쾌차했군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멋지십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