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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황 순 원
서당골에는 어제오늘 새 소문이 하나 났다. 막동이 아버지가 윗골 소 사러 갔다가 다시 투전 바람이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난 소문이 막동이 아버지가 이번에는 자기네 집까지 팔았다는 것이다. 그 낡은 쓰러져가는 초가집마저. 산 사람은 물론 새 지주 전필수라는 것이다. 동네 늙은이 송생원은 엊저녁 막동이 아버지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럼 그때 집을 팔아버린 게 분명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고는 모두, 집값은 막동이 아버지가 당장 투전 밑천이 떨어져 등이 단 판이라 사는 편에서 제대로 값을 놓아줬을 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막동이 아버지는 벌써 이 집 판 돈마저 홀딱 날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타곳에서 왔다는 투전꾼은 날고 기는 투전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 소문에는 막동이 아버지가 지금 집 판 돈을 밑천으로 투전판 돈을 몽땅 쓸다시피 했다는 말도 돌았다. 한편 막동이네 집에서는 막동이 할아버지가 아들이 집까지 팔아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이젠 아주 망했구나 하고 땅을 치고 통곡하더니 아들을 만나기만 하면 당장 목을 쳐 죽인다고 시퍼렇게 낫까지 갈아두었다는 것이다.
동네 소문대로 어제 막동이 아버지는 소 사러 갔던 돈 다 투전판에 쓸어넣자 마을로 돌아와 집터와 거기 붙은 채전을 팔아버렸다. 산 사람도 지난 사월에 민창호네 전답을 한목에 전부 사가지고 새로 들어온 지주 전필수였다. 그저 소문과 좀 다른 것은 집까지 팔았다는 말인데, 사실은 그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만은 빼놓은, 집터와 채전이 매매됐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값만 해도 동네 사람들의 추측처럼 헐값으로 넘어간 게 아니고, 이즈음 시세 치고 제값을 다 받은 것이었다. 이것은 지주 전필수의 의량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었다.
이북에서는 토지 개혁이라는 게 실시됐다는 말이 돌고 있는 이때에 이곳 민창호네 전답이니 집이니 할 것 없이 전부 사가지고 온 것부터 보통과 달랐다. 원래 남달리 농토 소유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이다. 손바닥만 한 소작농으로 평생을 고생과 굶주림으로 허덕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라는 동안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하면 넉넉한 농토를 한번 가져보느냐 하는 생각뿐이었다. 서울서 조그만 고물상을 차려놓고 있던 그가 8·15 직후 일본인의 물건을 교묘하게 사고팔고 하여 큰돈을 잡자 머리에 떠오른 것이 농토였다. 세월이 이대로 가서 삼칠제로 소작료를 받게 되면 말할 것 없고, 설혹 나중에 토지 개혁이란 걸 한다 해도 이북모양 무상으로 빼앗지는 않으리라. 그러니 이 통에 헐값으로 농토를 사자. 그러던 차에 우연히 어느 토지 중개인한테서 민창호네 농토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는 곧 답품을 내려갔다. 거기서 전필수는 그곳 사람 송생원을 만나 민창호네가 8·15 직후 동네 사람들에게 쫓기어 서울로 올라갔다는 사실과 그가 다시는 은혜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농사꾼과는 마주서지도 않겠단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필수는 옳다구나 했다. 땅 팔 사람에게 그런 약점이 있으니 헐값으로 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한테 쫓겨난 지주의 뒷자리니 조금만 잘해나가면 도리어 인심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사자. 값을 눌러서 사자.
이렇게 전필수가 민창호네 농토를 아주 헐값으로 사가지고 서당골로 들어오자 먼첨 동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전필수가 동네 사람들을 대하는 품이었다. 전필수는 전에 답품 왔을 때 안 송생원을 먼저 찾아가, 생원님이라고 깍듯이 존대해 부르고 자기더러는 말씀을 낮추라고까지 했다. 그러고는 동네 사람들보고도 자기보다 웬만큼만 연장이면 생원을 붙여 존대해 불렀다. 이것은 먼저 지주 민창호가 온 동네쳐놓고 아직 자기네의 완전한 소작인이 아닌 막동이 할아버지에게만 혀 꼬부라진 상례를 하는 외에는 어떤 수염이 허옇게 센 파파노인보고도 거침없이 하게 하나로 써오던 데 비기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전필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한 바가 있었다. 먼저 지주가 쫓겨났다는 것은 다른 백 가지 이유 다 그만두고 그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는 데 제일 큰 원인이 있었을 게다. 지주라고 다 쫓겨나지 않는 걸 봐도 알 일이 아니냐. 그러니 우선 동네 사람들과 가까워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술을 이용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전필수 자신은 술을 많이 못하면서도 송생원을 비롯해서 동네 늙은이들에게 기회 있는 대로 술대접을 했다.
그 효과는 곧 나타났다. 전필수의 집을 수리할 때였다. 8·15 직후 동네 젊은이들이 읍에서 온 낯선 청년들과 함께 먼저 지주 민창호가 살고 있던 집을 때리고 부수고 하여 형편없이 돼 있었다. 그것을 수리하는 데 전필수는 목수 코주부와 미장이만을 삯전을 주고 얻었을 뿐 소작인들이 모두 자진해서 한 품씩 잡일을 해주게까지 됐던 것이다.
수리하는 동안 전필수는 일하는 데 나와 손수 이것저것 거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막동이네 집이었다. 왼편이 앞쪽으로 쏠려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초가집이었다. 이제 이 초가집이 쓰러진다면 자기네 바로 집 뒤 낙숫물 듣는 밑을 둘러싼 돌 담장을 다치게 될 것이었다. 그렇도록 전필수네 뒷담장과 이 막동이네 집은 맞붙어 있었다. 전필수는 처음 답품 왔을 때 느낀 것이지만, 이곳으로 자기가 오게 되는 날이면 꼭 이 초가집 터를 사 넣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은 단순히 뒤뜰을 넓혀야겠다는 생각과는 다른 의도에서였다. 초가집이 서 있는 대지와, 대지에 붙은 너른 채전을 합치면 네모반듯한 땅이 오백여 평은 실히 될 것이었다. 전필수는 이 초가집 터와 채전을 쓸모 있게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과일나무 같은 것을 심으리라. 그것이 크기까지는 그냥 간작을 해먹을 수가 있고 그것이 다 크는 날이면 수입이 괜찮으리라. 더구나 앞으로 토지 개혁이라는 것이 실시된다 해도 자기가 손수 다루던 땅만은 그냥 자기 것이 된다니 온갖 힘든 품이 드는 농사일랑 자기로서 그다지 많이는 손 못 댈 것이고 그저 이런 뒤 울 안에 자기 같은 사람도 자주 돌보기만 하면 되는 과일나무를 심어 자기 것을 만들어 두는 게 상책이다. 그러니 아무쪼록 기회가 닿는 대로 이 터전을 사 넣도록 하자.
사실은 전필수 뿐 아니고 먼저 지주 민창호도 이 터전을 사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민창호는 그저 큰 집 뒤뜰이 좀 널찍해야지 너무 좁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동네 소작인 늙은이들을 내세워 몇 번 막동이 할아버지에게 보내보다가 오륙 년 전 민창호가 자기네 낡은 집을 헐고 새로 부연¹ 달린 지금의 집으로 바꿔 세울 계획을 하면서는 매일이다시피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막동이 할아버지는 번번이 그냥 돌려보냈다. 작년부터는 민창호네 밭을 부치는 작인이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는 자작농으로만 내려오던 막동이 할아버지가 자기네 땅뙈기 가운데 그중 아끼는 집터와 채전만은 자기 눈에 흙 들기 전에는 못 팔겠다는 것이었다. 민창호도 이 아직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일뿐더러 고집이 센 막동이 할아버지를 어쩔 수 없어 그럼 어디 견뎌보라는 듯이 고래 같은 기와집을 숨이 막히도록 막동이네 집에다 바싹 들이대어 지었던 것이었다. 이런데도 안 팔고 견디겠느냐고.
그러나 전필수는 이 막동이네 터전을 사는 방법에 있어서도 민창호와는 완전히 달랐다. 전필수는 처음부터 이런 일이란 이편에서 사람을 내세운다 어쩐다 덤빌 것이 아니라, 그저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필수는 이 막동이네 터전을 사기 위해 사람을 내세우기는커녕 누구에게나, 비록 술좌석에서라도 비치는 법조차 없었다. 그저 아무 때고 좋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좋은 기회란 언제고 오고야 만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가 뜻밖에 속히 와 닿았다. 막동이 아버지가 몸소 자기네 터전을 안고 전필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전필수는 그때까지 막동이 아버지가 투전꾼이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기는 막동이 아버지가 투전을 끊은 지도 어언간 일 년이 넘어 이즈음은 동네에서 그런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전필수를 찾아온 막동이 아버지는 천연스레 말했다. 지금 윗골에 황소 한 마리 팔 게 났는데 살련즉 돈이 좀 모자라 그러니 자기네 터전을 잡고 좀 돌려달라고.
그러나 전필수는 요새 어떤 걸 저당잡건 돈놀이할 시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편에서 먼저 그것을 팔고 말라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전필수는 그저 돈놀이할 돈은 없다고 했다. 급해진 막동이 아버지는 전에 민창호도 자기네 터전을 사려 들었으니 이 새 지주도 그것을 사라고 하면 그렇게 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숫제 사버리라고 했다. 이제야 고기는 낚시를 문 것이었다. 전필수는 정 그 소를 사야겠으면 마침 자기네도 우차 사려던 돈(전필수는 금년에 벌써 물자리 좋은 논 두 뙈기를 자작의 형식으로 부쳤다)이 있으니 그거로라도 어떻게 해보자고 하면서 마지못해 응하는 체했다. 그리고 땅값은 막동이 아버지가 달라는 대로 매평 십 원씩을 아무 에누리 없이 그냥 주기로 했다. 이런 흥정만은 값을 깎든지 해서 저편에서 아쉬운 뒷맛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단지 낡은 집이나 마저 그 값에 넣자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말았다. 원래가 집이 소용되는 게 아닌 데다 자기가 사서 헐어버리지 않더라도, 이 초가집은 금년 안으로 헐고 다시 짓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지금 마당귀에 재목을 준비해놓은 것만 봐도 곧 다시 지을 모양이니 그것은 또 그때 가서 어디 다른 데다 집자리를 하나 빌려주면 되지 않으리. 혹 집자리로 마땅한 것이 없으면 먼저 지주 때 지어둔 아랫동네 농막을 싼값에 주어도 그만일 것 이다.
한편 박동이 아버지는 자기가 종내 자기네 터전을 팔아먹고야 마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늙은 아버지의 무섭게 노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이것을 밑천으로 기어이 한 박 쥐고야 말리라. 그러고 나서 이 자기네 터전을 도로 찾고 그리고 더는 말고 옛날처럼 자기네가 자작할 만한 땅뙈기만이라도 장만하리라. 그러자 막동이 아버지는 당장 투전 밑천만 가져가면 한 박 쥘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얼른 전필수에게, 혹 소를 못 사게 되어 내일이라도 도로 돈을 가져오면 물러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 전필수는 여기서도 쾌히 그러라고 했다. 앞으로 이런 동네 사람들과는 모든 일에 있어 이렇게 한 수 지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게 도리어 장차 이편에 이가 되는 수가 많으니까. 이렇게 해서 막동이네 터전이 매매되었다. 그러니 동네에 말이 돈 것처럼 막동이 아버지가 등이 달아 파는 것이라 사는 편에서 제값을 놓았을 리 없다는 것은 틀린 소문이었다.
막동이 아버지가 이 터전 판 돈을 몽땅 잃었다는 거나 반대로 투전판 돈을 모조리 쓸다시피 했다는 소문만은 둘 다 날 만도 했다. 처음에 막동이 아버지는 터전 팔아간 돈을 거진 떼였다. 그러다가 몇 박 연달아 잘 쥐어서 굉장히 따기도 했다. 그러나 막동이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적당한 시기를 가려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래 다시 떼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개 잡기에 패가망신하는 것이 이 적당한 시기를 가려 자리를 일어나지 못하는 데 달렸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머니의 돈이 다 나가면 이제 밑천만 있으면 상대편 주머니를 털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밑천을 장만하게 마련이고, 상당히 돈을 딴 뒤에는 또 그 판돈을 마저 긁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종내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인데 이게 사람의 끝없는 욕심이자 잡기의 한없는 매력일지도 모르나, 막동이 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자리 뜨는 시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런 막동이 아버지에 비하면 한동네 눈이 작아 뱁새라는 별명을 듣는 갑득이 아버지는 참촉기 빠르게 이 시기를 잘 쟀다. 이 뱁새는 첫번에 작정한 액수의 밑천이 다 나가면 얼마 동안은 옆에서 남들이 하는 구경만 한다. 아직 자기의 운이 오지 않았다고. 뱁새 말에 따르면 떼인다고 등이 달면 밑천이 아무리 많아도 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노름판의 운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바뀌는 기미를 타서 다시 들어가 앉는다. 그래 얼마큼 따다가 다시 잃기 시작하면 금방 오줌 누러 나가는 체하고 자리를 뜨고 만다. 뱁새 말로는 노름판 운이란 한참은 이 사람에게 또 한참은 저 사람에게 이렇게 옮아 다니는 것이 되어 얼마큼 따다가 떼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벌써 운이 자기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아가기 시작하는 징조니까 한참 동안은 그 판에서 물러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그런 뱁새는 딴 돈을 집에 가져다 두고 밑천으로 얼마만큼 남겨 가지고 다시 노름판으로 온다. 이렇게 뱁새는 투전으로 묘하게 살림살이 보탬을 해나가는 잡기꾼의 하나였다.
이런 뱁새의 촉기를 막동이 아버지는 전연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 타곳에서 온 투기꾼을 상대로 하는 판에서도 그랬다. 막동이 아버지는 동네에 그런 소문이 날 만큼 앉은자리에서 터전을 팔아가지고 온 돈마저 거의 다 놔줬다가 또 한참 따던 것이 다시 떼이기 시작하여 본전을 새에 두고 얼마큼씩 땄다 잃었다 했다. 그러면서 막동이 아버지는 전필수에게 돈으로 도로 가져오면 터전을 물러달라던 다음날도 지나 보냈다. 막동이 아버지는 이미 그런 것은 잊고 있었다. 그새도 뱁색만은 몇 번인가 판의 기미를 보아 들어앉았다 물러났다 하며 돈냥이나 족히 따서 제 것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 막동이 아버지는 재수 없다고 뱁새가 판에 끼는 걸 마다했으나, 뱁새는 그런 데는 아랑곳없이 그냥 낌새를 보아 드나들었는데, 나중에는 막동이 아버지도 투전에만 열이 떠 뱁새가 하는 짓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영락없이 열병 앓는 사람의 짓이었다. 그러기에 잡기판이 파하는 때면 정말 중한 열병이나 앓고 난 사람처럼 얼굴에 그늘이 지고 온몸이 느른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것은 또 무슨 약이기나 한 듯이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막동이 아버지가 이와 같은 투전판 열병 끝에 술을 잔뜩 먹고 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작두로 찍어낸 일이 있었다. 이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투전꾼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죄임장을 죄일 때 투전 안장을 밑으로 옴츠리는 것이 이 엄지손가락인 것이다. 으레 투전꾼들은 죄임장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마치 그것이 엄지손가락의 탓이기나 한 듯이, 에익 망할 놈의 손가락 같으니, 하고 이 엄지손가락을 나무라는 것이다. 막동이 아버지가 이런 엄지손가락을 제 손으로 작두로 잘라버린 것이다. 8·15 얼마 전의 일이었다. 어디선가 타곳에서 청년 둘이 와서 투전판에 돈을 뿌려놓는다는 소문이 읫골에서 들려왔다. 막동이 아버지도 가만 앉았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갔다. 소문대로 스물두셋밖에 더 나 뵈지 않는 두 청년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왔는지 무한정하고 내놓은 것이었다. 막동이 아버지는 한때 상당히 땄다. 그러나 하룻밤을 지나 밝아올 녘에는 막동이 아버지의 밑천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막동이 아버지는 부랴부랴 집으로 내려와 아버지가 없는 틈을 살펴서 몰래 벌통 하나를 지고 윗골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 꿀벌 한 통 판 돈도 다 날려버리고 말았다. 막동이 아버지는 다시 내려왔다. 두 통 남은 끌통에서 또 한 통을 지고 갈 판이었다. 이런 막동이 아버지는 열병 환자 그것이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눈을 기일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정성을 들이는 꿀벌통을 들
고 나오다가 들키는 날이면 당장 큰 변이 일어나리라는 것도 염두에 없었다. 요행 집에 아버지가 없었다. 벌통을 지고 나오는데 방문이 열리며 일곱 살짜리 딸애 점순이가 밖을 내다보고 곧 문을 닫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막동이 아버지가 벌통을 지고 윗골로 올라갔을 때에는 대전서 왔다던 두 젊은 투전꾼은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그러나 막동이 아버지는 도로 벌통을 지고 집으로 내려오지는 않았다. 그것을 팔아 이번에는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닷새 만엔가 집으로 내려오려 할 때였다. 윗골로 소문이 하나 들어왔다. 그것은 이번에 왔던 두 젊은 놈이 투전 속임수로 이름난 사기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막동이 아버지는 속은 것이었다. 열소리할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십여 년이나 손에서 투전장을 놓아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막동이 아버지였다. 이런 막동이 아버지가 아직 입에서 젖비린내 나는 어린것들에게 속은 것 이었다. 처음에는 그놈들의 속임수를 눈앞에 잡아가지고 당장 모가지를 눌러 죽여버리지 못한 게 분했다. 그러나 차차 그런 분한 생각보다도 도리어 수치를 당했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앞섰다. 에익 투전장을 손에 쥐면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 그 달음으로 집에 달려와 작두에다 손가락을 찍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 뒤로는 투전판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동네에서들도 막동이 아버지가 사십 줄에 들더니 이제 사람 되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송생원은, 전에 어떤 투전꾼은 생전 다시는 투전장을 안 쥐겠다고 엄지손가락을 끊어버렸으나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금 투전장을 쥐고 하는 소리가, 공연히 손가락만 잘라서 요긴할 때 쓰지도 못하고 아프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막동이 아버지를 장하다고 했다. 사실 말이지 그동안 막동이 아버지가 웬만큼만 노름을 끊는 듯이 보였어도 막동이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소 사오라는 돈을 맡길 리 만무했다. 그렇듯 완전히 투전을 끊었었다. 그랬던 막동이 아버지가 이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투전판에 들어앉게 되었다.
윗골 소 팔겠다는 사람을 찾아갔더니 하는 말이, 좀 전에 막동이 아버지와 한동네에 사는 밀도꾼이 와서 가져다 잡겠다고 사놓고 갔으니 그 사람이 오거든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들어가 앉는다는 것이 공교롭게 투전판을 벌여놓은 집이었던 것이다. 타곳에서 온 투전꾼 상대로 꽤 큰 판이 벌어져 있었다. 좀 뒤에 막동이 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그 판에 끼어들어가 있었다. 기다리던 밀도꾼이 와 소를 양보하겠노라는 말을 했을 때는 벌써 막동이 아버지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않게 된 뒤였다.
서당골 동네에 막동이 아버지가 다시 투전 바람이 났다는 소문은 밀도꾼 입에서 나왔고, 터전을 팔았다는 소문은 전필수의 입에서 낙온 것이었다. 전필수는 뜻하지 않었던 막동이 아버지가 투전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차 실수했구나 했다. 막동이 아버지 나이 지긋하기에 직접 거래를 했더니 그자가 투전꾼이었다니. 그러나 덤벼서는 안 된다. 좌우간 먼저 자기가 그러한 것을 샀다는 걸 막동이 할아버지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도 직접 찾아가 말을 하느니보다는 우선 소문을 내어 막동이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게 한 후에 좀 씨가 사그라지는 눈치를 보다 찾아가는 게 좋다. 처음부터 직접 찾아가 말했다가 그 고집쟁이 같아 뵈는 영감이 자기는 모른다고 잡아떼는 날이면 재미없다.
전필수의 생각대로 막동이 할아버지는 이 소문을 듣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이젠 아주 망했구나! 목을 쳐 죽일 놈아! 소 영각 같은 고함 소리였다. 그 낡아 기울어진 초가집이 금세 무너앉을 듯한 고함 소리였다. 이래서 동네에서는 아들이 들어오면 목을 쳐 죽인다고 시퍼런 낫을 갈아두었다는 말이 났지만, 실상은 막동이 할아버지 자신이 제 목을 쳐 죽고 싶은 심사였다. 이제 터전마저 팔았으니 자기네가 다시 일어서보기란 정말 틀려버린 것이었다. 남은 것이라야 모새 바닥같이 물이 잦는, 그것조차 손바닥만 한 천둥지기 논 한 뙈기와 자갈밭 한 뙈기였다. 하긴 그러지 않아도 벌써 작년부터 민창호네 밭을 소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러 있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다시 일어나보리라는 바람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 바람마저 이제는 영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태껏 어엿한 자작농으로 내려오던 것을 작년부터 남의 소작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막동이 아버지 탓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삼 년 전에 막동이 할아버지가 일처리 잘못한 탓도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해 샘논을 민창호에게 넘긴 것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개똥밭을 민창호에게 판 것만은 큰 실수였다. 막동이 할아버지의 속셈은 개똥밭을 팔아가지고 그 밭의 세 곱은 실히 되는 야산을 사 최묻이(개간)를 하여 완전한 밭을 만들려는 데 있었다. 막동이네 식구로서는 적어도 그만한 넓이의 땅은 더 있어야만 일 년 계량²을 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동이 할아버지는 생각한 것이었다. 땅이란 원래 기름진 땅이 있는 게 아니고 걸우고 다루는데 달린 거라고. 개똥밭만 해도 어디 본시부터 개똥밭이었나. 막동이 증조할아버지가 겨울이니 여름이니 할 것 없이 이른 새벽 누구 일어나기 전에 동네로 다니면서 개똥을 주워다가 걸운 때문이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마는 세상일치고 힘 안 들이고 되는 일이란 하나도 보지를 못했다. 무엇보다 최묻이 땅에 대해서는 삼 년간 공출이 없다지 않느냐. 그래 야산을 사가지고 최묻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예상했던 몇 배의 품과 힘이 들었다. 막동이 어머니는 물론 막동이와 점순이까지 나무뿌리를 뽑는다 돌을 들추어 낸다 했다.
그러나 워낙 품이 많이 드는 데다가 기경머리³는 닥쳐오고 해서 채 나무뿌리나 돌들도 제대로 추려내지 못하구 그러니까 보습으로 갈지도 못한 땅에 삽과 호미를 쪼아가지고 보리를 심었다. 낟알이 될 리 없었다. 거름이라도 제대로 줬으면 모를 일이었다. 기경머리까지만 해도 거름일랑 최묻이 땅을 위주해서 내리라 했건만 막상 닥쳐놓고는 아무래도 좀더 확실성이 있는 원밭에다 거름을 내고 말았다. 최묻이 땅에는 공출이 없으니, 거기다 거름을 내야 한다고도 생각해보았지만 원밭의 낟알이 잘 안 돼 공출이 모자라면, 최묻이의 소출로라도 충당을 해야 하니 결국 마찬가지였다. 그럴 바에야 좀더 확실성이 있는 원밭에 거름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보리 종자를 뿌리면서 얼마나 여기다 그 아모니(암모니아)라는 금비를 더도 말고 단 한 가마만이라도 먹여봤으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막동이네로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해에나 좀 잘 걸워볼밖에.
그러나 다음 해에도 기경머리가 되어서는 별수 없이 얼마 되지않는 거름을 거의 원밭에다 내고 말았다. 그해에는 좀 낫다는 것이 종자를 거둔 정도였다. 그런 데다 큰일날 일이 하나 생겼다. 최묻이 땅에 대한 공출이 나온 것이었다. 면에서 하는 말이, 금년에는 군에서 배당된 공출량이 워낙 세어서 최묻이 땅에까지 부담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막동이 할아버지는 공출 독려가 한창 심해갈 무렵까지도 다른 땅과 달라 좀 용서가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이미 나온 공출 수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그러면 거기서 난 것을 몽땅 낼 터이니 타작할 때와 지켜보라고 했다. 그러나 공출이라는 것은 농민이 지은 낟알 전부 가져가는 것이 아니고, 식량미를 다 제하고 남은 것을 나라를 위해 바치는 것이라고 주재소 주임은 연설조로 크게 떠드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아들놈 투전질 시킬 줄은 알면서 나라 위해 공출할 줄은 모르냐고 늙은이의 어깨를 마구 잡고 흔드는 것이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최묻이 땅에서 난 소출 이상은 더 못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늙은 자기 혼자 맞아 죽는 게 낫지 다른 데 소출에서 그나마 식 량이라고 조금 제해 받은 낟알마저 들이밀었다가는 그야말로 온 집안 식구가 굶어 죽을 판이다. 맞아 죽자. 그러나 며느리와 아들이 보다 못해 남은 낟알을 마저 져다 바치고야 말았다.
최묻이 땅을 그냥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팔아야 했다. 내년의 공출이 무서워서도 팔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걸 누가 살 리 없었다. 그런대로 민창호가 전에 막동이네가 야산으로 살 적 그 값이면 사겠다고 나섰다. 그새 많은 품을 들여 밭을 만들어놓은 값이 있지 않느냐고 해봤으나, 그 대신 산에 섰던 나무를 쳐서 가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공출이 무서워서라도 그까짓 땅 거저 가지래도 누가 안 가질 거라는 것이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그 값에라도 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선 그것으로 연명을 해나가야만 했다.
그러고도 막동이 할아버지는 또 뒤이어 내년에 부칠 밭 걱정을 해야 했다. 이제부터는 민창호네 토지를 한 부분 소작으로 얻는 수밖에 없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이왕 민창호네 토지를 얻어 부칠 바에는 연전에 자기네가 판 개똥밭을 얻어 부치려 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민창호를 찾아가 그런 말을 했다. 민창호는, 네 영감이 종내 내 손아귀에 들고야 말았지, 그렇게 집터를 자기에게 넘기라고 해도 종시 고집을 부리고 안 듣더니. 어디 견디어보라는 듯이 이번에 판 최묻이 땅이나 부치려거든 부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하는 수 없었다. 그 땅을 부칠 터이니 아모니 두 가마만 달라고 했다. 민창호는 막동이 할아버지가 밉기는 하지마는 밭을 위해서이니 마지못해 그것만은 주겠다고 했다. 이제 그 땅은 이 늙은이의 손에서 좋은 밭이 되리라는 것을 민창호는 아는 터이므.로. 이렇게 해서 막동이 할아버지는 그 최묻이 땅을 소작으로 부치게 됐다.
봄에 나가 막동이 할아버지는 최묻이 땅에 아모니를 주면서, 지금 자기가 뿌리고 있는 것이 비료가 아니라 흡사 지난날 장거리에서 보던 설탕 가루라고 생각한다. 이 가루가 정말 땅에게는 설탕 가룬지도 모흔다. 그저 설탕 가루가 꿀보다 못하듯이 이것이 재거름만은 못하다. 그러나 금년에야 이 땅이 설탕 가루 맛을 보는구나. 그러면서 막동이 할아버지는 지금 자기가 들어서 있는 땅이 이미 자기 땅이 아니요 남의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잊은 듯, 자기가 뿌리는 설탕 가루를 땅이 즐기는 것처럼 느껴져 절로 흡족해지는 것이었다.
돋아날 적부터 원밭 못지않게 잘됐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김을 매며, 밭의 돌을 주우며, 밭둑을 깎으며 몇 번이고, 이런 아모니를 자기네는 한줌도 써보지 못했담, 하고 그때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못한 일이건만 자꾸 뉘우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낟알 잘된 걸 보면 기쁘기도 했다. 이것들이 우리들 죽술이라도 먹여줘야 할 텐데……이런 가운데 8·15가 왔다. 그리고 8·15가 왔다는 것은 다른 농민에게서처럼 막동이네에게 있어서도 공출이 없어진다는 데 뜻이 있었다. 마치 여태껏 헐벗고 굶주리게 하던 것이 공출 그것뿐이었다는 듯이.
막동이 할아버지는 그러나 8·15 후에도 배곯이 먹어가며 낟알을 팔아서는 돈을 만들었다. 꿀벌도 그새 세간내어 한 통을 팔았다. 메밀꽃 뒤에 친 꿀은 또 한 숟가락 남기지 않고 긁어 팔았다. 이제야말로 좋은 세상이 돌아왔다. 이때 다시 일어나보아야 한다. 그런 데다 아들까지 그 고질이던 잡기판에서 손을 떼었으니 더할 나위 없다. 농사꾼에게는 농사밖에 없느니라. 막동이 할아버지는 집 고칠 재목까지 장만해놓았다. 그리고 최묻이 땅 팔아 간수해뒀던 돈과 푼푼이 모아뒀던 돈을 죄다 털어 그렇게 오랫동안 맘먹어오던 소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근 십 년 만에. 이 돈을 막동이 아버지가 투전판에 쓸어넣은 것이었다. 게다가 터전까지. 막동이 할아버지의 입에서, 이젠 아주 망했구나, 목을 쳐 죽일 놈아, 하는 소리가 나오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설상은 아들의 목보다도 우선 자기 목을 쳐 죽고 싶은 심사인 것이었다.
그러나 막동이 할아버지는 죽으려도 죽을 겨를이 없었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그 논바닥이 드러날 적마다 풀투성이가 되곤 하는 천둥지기의 김은 어떻게 하느냐. 막동이 할아버지는 우선 들로 나가야 했다.
이런 막동이 할아버지를 전필수는 자기가 부치는 논의 물꼬를 보러 나갔다가 멀찌감치 보고 이제는 좀 씨가 사그라진 모양이다 했다. 그날 점심때 전필수는 막동이 할아버지가 집에 돌하온 틈을 타서 찾아갔다.
막동이 할아버지가 다시 들로 나가려고 집을 나서는 참이었다. 막동이가 학질로 몹시 앓고 있어, 나가는 길에 약이 된다는 할미꽃 뿌리를 캐 들여보내려고 점순이를 데리고 나가는 길이었다.
“지가 이번에 큰 실술 했습니다. 전 막동이 아버지가 그런 델 드나드는 줄은 꿈에두 몰랐습지요. 어디 그런 걸 알구서야 그렇게 할 이치가 있습니까. 전 좀 전에야 그런 말을 들었습죠. 생원께서 과히 나삐 생각 말아주십시오. 지금에라두 물러드리겠습니다.”
“나뻐 생각하구 머구 있소. 거 다 그놈이 죽을 정신이 들어 그리 된걸요. 물러주시겠단 말씀은 고맙지만 어디 그럴 돈이 있습니까.”
전필수는 이 막동이 할아버지에게 물러주겠다는 너그러움을 보인 게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들리는 말엔 집까지 끼워가지구 무척 싸게 매매된 것처럼들 말하지만 애최 집은 들지두 않았구 땅값만 매평 십 원씩 쳤습죠.”
없어진 돈이긴 하지만 값만은 그만하면 상당히 받았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한 후 다시,
“글쎄 가격이야 어찌 됐든 막동이 아버지가 그런 줄 알았드면 지가 단돈 오 푼씩인들 걸 사구팔구 하였겠어요?”
전필수는 이번 일로 자기를 나뻐 생각 말라는 뜻의 말을 되뇌는 것이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죽일 놈은 역시 자기 아들놈이라고 생각했다.
뒷재로 가 할미꽃 뿌리를 캐면서도 막동이 할아버지는 그 생각 뿐인 듯 점순이가, 할아버지 무엇을 캐고 있느냐고 팔을 잡을 때야 지금 자기가 할미꽃 아닌 딴 풀뿌리를 캐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할미꽃 뿌리 둘을 캐가지고 냇가로 가 생선 배알이나 타듯이 말짱히 씻어가지고 일어서다가 그제야 막동이 할아버지는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느낀 것처럼 할미꽃 뿌리를 흙이 안 묻을 잔디에다 널고는 거기 옷까지 벗어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논 가운데 들어가 일할 걸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물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강물이 어른 배꼽에도 차지 않는 깊이여서 막동이 할아버지는 무릎을 굽혀 물속에 목까지 담그고 두 손으로 얼굴에다 연거푸 물을 끼얹었다. 그제야 또 좀 정신이 드는 듯 점순이를 바라보며,
“너두 멱 감으렴.”
했다.
점순이는 곧 물로 들어섰다.
“이리 들어온.”
퍽 부드러운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그러나 점순이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염은 못하고 무릎에도 차지 않는 곳에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와 점순이를 덥석 안았다. 점순이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 무서워 할아버지의 목을 꼭 껴안는다. 점순이는 할아버지 품에 안긴 채 물이 허리에도 와 닿기 전에,
“엄마아 ―”
소리를 지르며 자꾸 몸을 위로 솟구는데 할아버지는 또,
“아이구, 넘어진다, 넘어진다.”
하고 그냥 손녀를 물속으로 담근다. 그러는 막동이 할아버지의 훌훌히 물 위에 뜬 흰 수염 앞쪽에서 앞니 없는 입이 크게 벌어져 웃는다. 우글쭈글 컴컴하게 죽은 얼굴 속에 어디 이런 웃음이 있었던가 싶게.
그러나 점순이를 씻어주고 나와 옷을 주워 입는 막동이 할아버지의 얼굴은 또 어느새 좀 전의 웃음이 사라졌나 싶도록 컴컴하게 죽은 우글쭈글한 얼굴이 돼 있었다. 막동이 할아버지가 잔디 위의 할미꽃 뿌리를 집어 점순이에게 쥐어주면서,
“엄마 갖다 줘라.”
하는 말소리도 좀 전의 그런 부드러운 말씨는 아니었다.
막동이 할아버지는 곧장 자기네 논이 있는 아랫골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소처럼. 이제는 어서 가서 논물이 채 마르기 전에 김을 매야겠다는 생각과, 막동이가 앓아눕지 않았으면 그 어미도 나와 한 품은 덜었을걸 하는 생각과, 역시 죽일 놈은 아들놈이라는 생각을 짐처럼 끌고.
막동이가 할미꽃 뿌리를 귀에 꽂고 있었다. 그 할미꽃 뿌리가 어찌나 독한지 형겊에 싸서 꽃았건만 하룻밤 새에 양쪽 귓속이 짜부라지게 부었을 뿐 학질에 듣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낮부터 막동이는 다시 달달 떨다가 온몸이 불덩이처럼 돼버렸다. 일학⁴이 분명 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한 살짜리 막동이가 혼자 누워 있었다. 오늘은 막동이 어머니도 들에 나가고 없었다. 점순이는 지금 앞마당 뙤약볕 아래서 혼자 소꿉질을 하고 있었다.
누더기 이불을 차 팽개친 채 열에 떠 누워 있는 막동이의 탄 입과 코에는 파리가 수두룩 붙어 있었다. 그래도 막동이는 눈을 감은 채 꼼짝 안 했다. 가슴만이 이렇게 살아 있다는 듯이 가쁘게 뛰었다. 그러고는 그저 조용했다. 쫙 열어젖힌 문밖도 그랬다. 점순이가 이따금 혼잣말로 종알거리지만 방 안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이 칠팔월 대낯처럼 길고 느린 닭울음 소리가 들렸다. 바깥세상도 살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그것은 지금 막동이의 가슴이 뛰는 것보다는 퍽 느리고 약한 소리였다. 그뒤에는 한층 더 조용할 뿐.
그때 별안간 점순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오빠 오빠, 저것 좀 봐, 저것……”
하며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막동이는 못 들은 듯 움쭉을 안 했다.
“오빠, 저 봐, 벌들이, 벌들이…….”
그제야 막동이는 그 충혈된 눈을 뜨고, 그래도 귀에 꽂은 할미꽃 뿌리 때문에 잘 못 알아들은 듯이 점순이를 쳐다보았다.
점순이가 울먹울먹해 가지고,
“저 봐, 벌들 좀 봐, 벌 벌…….”
하며 손으로 벌통 있는 쪽을 가리켰다.
막동이는 벌떡 일어났다. 보니 벌들이 세간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벌써 바구니만큼 뭉친 벌떼가 꽤 높이 떠 순간순간 둥글게 됐다 길쭉해졌다 하면서 서쪽 하늘로 움직여가고 있었다. 큰일이다. 어느새 막동이는 벌떼 뭉치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며칠 전부터 벌 세간내줘야겠다더니 종내 이렇게 됐구나. 이제 이 벌떼 뭉치가 첫번에 가 앉는 것을 받아오지 못하면 아주 잃고 만다. 재작년엔가도 벌 세간내줄 것을 미처 못 내주어 저희끼리 세간나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뒷재에 가 앉은 것을 나무하러 갔던 동네 사람들이 알려서 달려갔으나 미처 받아내릴 새도 없이 벌떼가 다시 날아가 막동이 아버지, 막동이 할아버지, 막동이가 아무리 따라가도 종시 내려와 앉지를 않아 잃어버리고 만 일이 있었다. 오늘은 기어이 첫번 앉는 데서 받아와야겠다. 막동이는 허든거리는 다리로 뙤약볕 속을 큰일났다고 에에 소리를 지르며 벌떼 뭉치를 따라갔다. 점순이는 또 점순이대로 어쩔 줄을 모르고 흑흑 느끼면서 오빠의 뒤를 따르고.
벌떼 묵치는 동구 밖 버드나무에 앉았다. 막동이는 점순이더러 거기 있으라고 하고는 집 쪽으로 달음질쳐 갔다. 좀 있다 주막 모퉁이로 나타나 이리로 달려오는 막동이의 어깨에는 망태기가 메어져 있었고, 망태기 속에는 벌통에서 꺼낸 소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막동이는 버드나무 밑으로 오더니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그냥 나무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첫 가지를 붙들기 전에 맥없이 미끄러져내리고 말았다. 숨을 좀 돌릴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디 앉는 것도 아니고, 막동이는 그저 나무를 안은 채 서서 한편 뺨을 나무에다 붙이고 눈을 감는 것이었다.
벌에게 여기저기 쏘여가며 소초에다 장봉 든 벌떼 뭉치를 옮겨 망태기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막동이는 그만 방바닥에 고꾸라지듯이 나가쓰러졌다. 입에서는 절로 으응 으응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막동이 옆 누더기 이불을 씌워놓은 망태기 속에선 벌떼가 웅웅거리고 있었다. 어른들이 돌아오기까지 막동이 동무나 해주려는 듯이.
다음날 아침 일찍이 집을 나서던 막동이 할아버지는 눈여겨보지 않은 며칠 새에 집이 알아보게 더 기울어진 것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면 금방 넘어질 것 같아 집 가까이 오기조차 꺼릴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손질할 형편도 못 되는 막동이네는 하는 수 없이 나무 같은 것으로라도 기울어진 데를 임시 버티어 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동네 목수 코주부를 불러가지고 집 고치려고 구해다둔 재목 가운데서 나무 몇 개를 골라내고 있는데, 앞 돌담 모퉁이를 돌아 전필수가 이리 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이런 시기가 오기를 엿보고나 있던 듯이.
“이거 원 어디 나무 한두 개루 버테가지구 되겠습니까. 벌써부터 말씀드리려구 했습니다만 혹 무엇하게 생각허실까 봐 잠자쿠 있었는데……저 아랫동네 저희 농막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루 옮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문만 없는데, 여기 성한 문이나 떼다 달구 곧 드시두룩 하십시오.”
막동이 할아버지는 고마울밖에 없었다. 목수 코주부도 우선 그렇게 하고 나서 집을 바로잡든지 어떻게 하자고 해, 곧 옮길 준비를 했다.
이 막동이네 이사한다는 것을 마침 투전판에서 딴 돈을 집에 두러 내려왔던 뱁새가 알고 올라가 막동이 아버지에게 전했다. 이 말을 듣고도 막동이 아버지는 한참이나 못 들은 듯 투전장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펄떡 투전장을 던지고 일어났다.
서당골로 내려오는 도중 막동이 아버지는 자꾸 무엇을 한 가지 잊고 오는 것만 같았다. 한참 따는 판에 일어서서 오느라고 그런가. 얼마큼 오다가 그 자꾸 무엇을 잊은 것 같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소를 못 사가지고 온다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벌써 그 소는 밀도꾼이 사다가 잡았을 게다. 소야 이후에 살 수도 있다. 먼저 터전부터 물러야 한다. 그렇지만 날짜가 지났다고 안 물러주겠다면? 사정을 하자. 죽자 하고 사정을 하자. 그래도 안 물러주겠다면? 기어코 안 물러주겠다면? 막동이 아버지는 가슴이 우주주해옴을 느꼈다.
뒷재에서 내려다보니 이미 이사는 거의 끝난 듯 아버지가 뜰 한 옆 벌통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막동이 아버지는 곧장 전필수네 집으로 내려갔다. 전필수는 막동이 아버지를 보자 이 작자가 또 밑천을 다 없애고 생투정이나 하러 온 것이 아닌가 했다. 그만큼 막동이 아버지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막동이 아버지는 주머니에 있는 돈뭉치를 전부 꺼내어 전필수 앞에 밀어놓으며 말했다.
“물러주시오.”
그러자 전필수는 잠자코 돈을 집어 천천히 세어나가다가 터전 값만 자기가 가지고,
“이거면 됐소.”
하고 남은 돈과 계약서를 도로 내주는 것이었다.
막동이 아버지는 전필수의 너무나 너그러운 처사에 도리어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그곳을 나오면서, 이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손으로 다신 터전을 팔지 않으리라 마음먹는 것이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다. 집에는 어둑해진 뒤에 들어가자. 그러면 그새 주막에 가 술이나 한잔 먹자. 주막을 찾아가던 막동이 아버지는 저쪽에서 쇠고기를 사들고 오는 동네 사람들과 만났다. 중복이 지난 줄 알았더니 바로 내일이었다. 집에 두어 근 사보내야겠다. 까치골로 밀도꾼을 찾아갔다. 가서 보니 오늘 잡은 소가 바로 윗골 그 소였다.
고기 두 근을 사가지고 동네로 들어와 거기 놀고 있는 한 애를 시켜 집에 보내고는 그길로 주막으로 갔다. 소낙비라도 오려는지 고추잠자리들이 나지막이 날고 있었다. 막걸리를 두 사발째 마시고 앉았는데 들에서 들어오던 송생원이 주막 앞을 지나다 막동이 아버지를 보고,
“이거 누군가?”
하며 들어섰다. 막동이 아버지가 막걸리라도 한 사발 사려니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서.
송생원은 막동이 아버지가 낸 막걸리 한 사발을 서너 번에 다 마시고 나서 입가에 묻은 술기까지 말짱히 핥으며,
“자네 많이 땄다믄서?”
하고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한 사발 더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뭐 딴 거 없어요.”
막동이 아버지는 터전 팔았던 계약서를 송생원 앞에 내놓았다.
“이걸 도루 찾았군그래.”
이런 걸 보면 이 치가 아주 잡기에 빠진 자는 아니라고 송생원은,
“용한데.”
하고는,
“그래 아무 말 없이 물러주던가?”
했다.
“네, 그냥 잠자쿠 물러줍디다.”
“그랬을 테지. 전필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구. 하여튼 잘됐네.”
그러니 오늘은 이 사람이 한턱 낼 만도 하다고 이번에는 송생원이 직접 주모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더 청했다.
송생원이 새로 부은 막걸리 사발을 막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술청이 어두워지며 어딘가 먼 데서 비 듣는 소리가 들린 듯한 순간, 물기 머금은 바람이 일면서 뒤이어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송생원이 사발 든 손을 멈춘 채,
“한 줄기 퍼부었으믄…….”
하였는데, 퍼부었으면 좋겠다 했는지, 시원하겠다 했는지, 끝말은 소낙비 소리 때문에 분명 하지가 않았다.
송생원이 좀 전처럼 막걸리 한 사발을 다 마시고 나서, 입술이랑 윗수염을 핥고 있을 즈음에는 소낙비가 뚝 그쳤다. 그러고는 별나게 새빨간 저녁놀빛에 물들면서 날이 저물어갔다. 송생원은 저녁 전의 출출한 속이라 막걸리 두 사발에 그만 취하고 말았다. 송생원은 아까부터 묵묵히 막걸리만 들고 있는 막동이 아버지에게,
“자네 참 용하네만 아마 못 뗄걸. 거 보지. 다시 안 할 것처럼 손꾸락까지 자르구서두…….”
그러다가 취한 속에서도 술을 얻어먹으면서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듯,
“그래두 자넨 참 용해. 팔았던 땅을 도루 찾구…… 참 자네 이참에 집 새루 짓게. 자넨 참 용해…… 허지만 자네 두구 보게……”
송생원은 취한 탓인지 막동이 아버지에게 좀 듣기 좋은 소릴 한다는 것이 또 엇나갈 것 같아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니 난 가보겠네.”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손 못 뗀다고? 그래 결국은 또 터전을 팔아먹게 된다는 거지? 망할 놈의 늙은이 같으니 라고 아가리를 찢어놓고 말라. ……하기는 열소리 할 때 숨어 투전을 하다가 들켜 아버지한테 그 굵다란 소나무 화라지⁵가 뚝뚝 부러져 나가도록 매를 맞곤 했건만 그냥 그걸 끊지 못하고 오늘까지 온 나니까…… 그러나 이번만은 안 그럴걸, 죽어도 안 그럴걸! 그렇지만 송생원의 말대로……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만…… 아니다……
막동이 아버지가 주막을 나온 때는 아주 깜깜하게 어두운 뒤였다. 달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 막동이 아버지는 자기네 낡은 집 밑에 시체가 되어 발견됐다. 기울어졌던 쪽 기둥을 안고 있는 것이 그 기둥을 밀어 집을 넘어뜨리면서 깔린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막동이 아버지가 죽으려고 그런 짓을 했는지, 취한 김에 낡은 집을 허물어버린다고 하다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그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집 이 무너지면서 전필수네 뒷담장 일부분을 헐어놓았다. 그리고 엊저녁 소낙비가 내리붓고 뒤이어 어두웠기 때문에 막동이 할아버지가 밖에서 벌들이 채 못 들어왔을 걸 염려하여 다음날 저녁때 옮겨가려고 그냥 두었던 벌통들을 묻어버렸다. 거기에서 벌들이 날아 나오고 있었다. 마치 막동이 아버지의 몸에서인 듯.
그날 밤 밤샘들을 하는데 전필수가 막걸리 한 동이를 들려가지고 왔다.
전필수는 동네 늙은이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돌리다가 그새 할미꽃 뿌리의 효험을 봐서인지 또는 어제오늘 너무 놀란 탓인지 학질만은 나아가지고, 핼쑥해서 앉아 있는 막동이 옆의 막동이할아버지를 향해, 새 집을 짓고 들 때까지 아무 염려 말고 여기 계시라는 말을 했다. 그저 넘어진 자기네 담장만은 좀 손질을 해달라고 하면서.
거기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이 전필수의 인정스러움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송생원도 한옆에 앉아 이 전필수의 인정 많은 마음씨에 같이 감복하면서 문득 마음 한구석에 저 사람이 저렇게 인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막동이네 집은 언제고 꼭 저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야 말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송생원은 마침 차례에 온 막걸리 사발을 받자 그런 건 어찌 되건 어서 술이나 먹고 보자고, 벌컥벌컥 보기 좋게 사발을 비우는 것이었다.
아들의 장례가 있은 다음날 막동이 할아버지는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전필수네 담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누구의 입에서도 말이 없었다. 이때 어디선가 꿀벌 한 마리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그렇잖으면 익은 길이라 저도 모르게 옛집에 들렀던 것인지 이잉하고 막동이네 무너진 오막살이 위를 한바퀴 돌아 지금 바삐 담장을 쌓아 올리고 있는 막동이네 식구들 머리 위로 지나갔다.
누구 하나 이 벌에게는 주의가 가지 않는 속에서 그래도 막동이가 핼쑥한 얼굴로 눈을 들었다. 순간 막동이의 시야를 고래 같은 기와집이 가로막아버렸다. 그러나 무엇을 찾는 듯한 막동이의 눈은 그냥 앞을 막는 기와집 용마루 너머 하늘 저쪽에 부어진 채로 있었다.
-끝-
2016년 5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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