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KVcUP8aJX8
지난 시간에는 바리새인들이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더니 오늘 본문에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이 사두개파에 속해 있는 상태인데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제사드리는 자들이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당시 영적인 상태가 바닥에 떨어져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사두개인의 누룩은 세속주의를 말합니다. 성전을 통해 얻게 된 권력과 부가 부활신앙, 내세신앙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기 위해 사두개인들이 꺼낸 화두는 대계결혼이었습니다. 결혼한 장남이 자녀가 없이 죽었을 때 홀로 남은 아내는 장남의 동생과 결혼을 해서 가문의 혈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하는 율법조항이 있습니다. 신명기 25장에도 나오고 룻기서에도 남편이 죽은 룻이 시어미와 나눈 대화 속에서도 대계결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사두개인들이 꺼낸 비유속에는 일곱형제가 등장하는데 모든 형제가 다 한 여성과 결혼한 후에 죽었다면 나중에 부활 때에는 이 여성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난처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이 분명히 있다고 할 때에 일곱 형제의 공동아내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면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이에 주님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면서 질문을 했다고 하시면서 부활 때에는 시집도 장가고 가지 않고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부활 때에는 누구의 아내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혼의 첫 번째 목적은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함에 있다고 창세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질병이나 사고나 죽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굳이 내 가족, 네 가족 구별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이 얼마나 일차원적이고 유치하고 수준 낮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던진 질문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31절부터 하신 말씀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되는 말씀이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모세가 양을 치던 중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하시고 또한 약속을 이루신 것처럼 모세와도 약속을 하시고 약속을 동일하게 이루시겠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하실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그리고 당연히 창세기를 읽어보신 분은 그 다음에 나올만한 인물이 요셉인데 왜 요셉의 하나님이라고는 하지 않으신 것일까?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위의 세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그렇게 요셉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하시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요셉이 생략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셉이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구절이 바로 세 사람인 것입니다.
한데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부활을 말씀하시면서 이들을 거론하신 것은 세 사람은 과거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조상이지만 살다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는 살아있는 자들임을 말씀하시기 위해 거론하고 있음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지 죽으면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는 것입니다. 보험도 사람이 죽으면 종결이 되고 연금도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범죄사실도 죽으면 사건이 종결이 됩니다. 살아있을 때에만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신 것은 이들이 살아있어서 이들과 맺은 약속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모세에게도 약속을 분명히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하나님이 직접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인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병, 물질, 여러 가지 삶의 고난이 있다 할 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충만한 승리하시는 복된 날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약속을 성취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사오니 소망 가운데 전진하게 하시고 달려가는 신앙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복된 날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심을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