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계학연구소가 스물의 나이를 맞아 성인식 잔치를 합니다. 성인식은 두 가지 기능을 합니다. 하나는 성인에 입문하여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축하하는 기능이며, 둘은 성인이 되기 위해 마땅히 일정한 고비와 시련을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기능입니다.
퇴계학연구소 20주년 기념 학술행사는 약관의 나이테를 이루면서 누가 보더라도 성인기에 접어들었기에, 그 튼실한 성장의 면모를 기리며 축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에는 {퇴계학자료총서} 100권 간행을 기념하는 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으며, 학회지 {퇴계학}도 창간 이래 거르지 않고 해마다 꾸준히 간행하여 17집에 이른 사실을 자랑할 만합니다. 그 동안 연구소를 이끌어 온 연구소장님들과 교수 여러분들께 격려의 말씀을 드리며, 20주년 기념학술행사를 국제적인 규모로 꾸려낸 안병걸 연구소장님의 노고를 특히 기리고자 합니다.
만 20세에 치르는 성인식은 일종의 통과의례라고도 합니다. 물리적 나이테로 성인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통과의례를 치르면서 실제로 성인다운 능력과 슬기를 갖추었는가 하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비로소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퇴계학연구소는 인문학문의 출발점이자 도달점인 철학을 하는 연구소이자, 퇴계선생의 학문을 연구하되 퇴계선생답게 하는 '메타철학' 연구소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무 살이라는 성인의 나이테 못지 않게 퇴계선생의 학문을 닮은 '퇴계학의 퇴계학'을 하는 메타퇴계학연구소로 거듭 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퇴계선생의 사상을 모릅니다만, 적어도 선생은 자신을 그리지도 말고 기리지도 말라는 뜻을 남긴 사실은 분명하게 새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퇴계선생은 여느 선비와 달리 초상화를 남기지 않았고, 國葬의 禮를 막은 것은 물론 우뚝한 비석조차 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선생의 뜻에 따라 비석으로 기리지도 않고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는데도 퇴계의 학문과 사상은 여느 선비보다 높게 드러나고 밝게 빛이 납니다.
자신을 그리지도 기리지도 못하게 한 선생의 말씀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뜻을 본받아 실천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 뜻에서 퇴계학연구소는 퇴계학을 퇴계학답게 실천하고 있는가 성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철학은 지식의 학문이 아니라 성찰의 학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학술대회를 성찰할 때, 국제행사에 맞지 않게 조촐하고 소박하게 꾸린 것이야말로 퇴계학다운 학문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술대회의 알맹이인 발표논문들이 퇴계선생다운 학문수준을 겨냥하고 있는가, 퇴계학다운 학문의 정신이 살아 있는가 성찰할 때, 저는 감히 어떤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제가 하는 것은 성찰이 아니라 평가이기 때문에 성찰은 퇴계학 전공자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려드립니다.
오늘 20주년 학술대회를 계기로 퇴계학연구소가 메타퇴계학의 본보기를 이루고, 퇴계학의 본향답게 퇴계학연구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 동안 따뜻한 관심을 아끼지 않은 안동시를 비롯한 관계기관 여러분들의 격려와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학술대회를 위해 오랫동안 논문을 준비해 주신 발표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특히 학술대회를 축하하고자 찾아주신 中國 산동사회과학원 유학연구소 투쿠어커(도可國) 所長께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 생각에는 퇴계선생께서 오늘 바쁜 일정을 다 제쳐두고 우리 학술대회를 지켜보고자 이 자리에 강림해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선생께 부끄럽지 않은 뜻 있고 유익한 학술대회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며, 퇴계학연구소 20주년학술대회를 거듭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