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16:8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마다 칭찬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껴서 ‘옳지 않은’이라는 말을 놓쳤었나 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하셨는데 제가 비중을 ‘칭찬‘에 두니 주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칭찬하셨을까를 생각해 보니 막다른 골목에 접한 청지기는 ’ 살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만 살아남을 길을 찾은 것이 문제이지만요….
예수님 믿는 사람의 진정한 살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때때로 고난은 우리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가는 살 길이 되는 축복인데 여전히 스스로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는 저에게 ’ 살 길‘을 찾는 지혜자가 되라고 주시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를 휘저어 물결을 만드시는 하나님!
제 마음을 휘저어 주세요.
주님을 사모하는 물결이 날마다 일어나도록 제 마음을 요동시켜주세요.
진정한 살 길 되시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모하도록 제 마음을 휘저어 주세요. 아멘!
오늘 목사님께서 남산에 있는 한맹교회 제직헌신 예배에 가셔야해서 당회원 가족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던 제게 그 교회의 모습은 낯선 느낌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담임하시는 목사님은 뵙기에도 굉장히 느긋한 느낌과 함께 편안한 느낌을 주시는 분이셨는데, 거의 모든 분이 맹인이시고 보실 수 있는 분은 그분들의 발이 되어 움직이셔야 되기에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분들도 계셨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밤 근심된 마음과 걱정으로 쉽게 잠들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삶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라는 글귀가 앞을 보지 못하는 젊은 여자청년이 찬양을 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떠올랐습니다.
나의 삶이 무겁고 벅차다고 느끼며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삶을 살아내려 애쓰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들을 제게 보게 하신 게 아닌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세상의 지혜로 기득차서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마음이 빼앗겨 나의 생각을 세상의 것으로 가득 채우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들처럼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세상은 재물없이 살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하루, 한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더 좋은 직장과 사업장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과 비교해서 더 좋아 보이기 위해 재물을 모으는데 열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은 내 것이라 하시며 내 것이 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재물로 나의 곳간을 채우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고아와 과부와 연약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재물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주님 보시기에 올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한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결론은 불의한 물질이라 할지라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타인을 섬기는 데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유도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돕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물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않고 그것을 선용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늘 섬김을 받고 도움을 받으며 사는 선교사의 삶이지만 그 물질들을 바르게 흘려보내고 지혜롭게 잘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보탬이 되기 원합니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너무나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금요일에 양쪽 난소에 있는 혹을 줄이는 수술을 하고 어제 퇴원을 하였습니다.
수술도 아주 잘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늘 허리와 배에 있던 통증이 혹을 줄이니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함과 힘듦을 알고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다시 들었습니다.
아이를 갖기 까지의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고쳐나가야 할 것도, 앞으로 견디고 인내해야 할 시간도 언제일지 모른 채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시간들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위로의 시간을 주시겠지?라는 소망을 다시금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망을 품게 해주신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담담하게 인내하고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선교사로 살면서 돈때문에돈 때문에 어려웠던 일도 많았고 돈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일도 많았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있으면 좋고 할수 있는 일도 많고 잘 사용하면 유익한 것도 많지만 돈이란 것을 사랑하면 우리의 삶이 돈의 지배를 받아 점점 죄와 가까워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주실때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물질을 필요한 곳에 잘 흘려보내며 살게 하옵소서.
돈 때문에 하나님 속 썩이지 않고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주신 물질을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하는 지혜도 주시옵소서.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4절)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돈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청지기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며 관계를 맺으려 했던 지혜를 칭찬하신 것처럼, 제게 주신 물질을 단순히 소유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관계를 맺고 선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마음에 응답하는 자녀되길 원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부자는 이 땅에서 호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천국에서는 그가 지옥의 고통을 겪었고, 나사로는 이 땅에서는 가난과 고통 속에 있었지만 천국에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조건이나 소유가 영원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이 땅의 재물과 풍요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