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채워야 할 것 (사 53:1-6)
이 주간은 교회적으로 고난주간으로 지키는 기간입니다. 모든 교인들은 이 기간을 통해서 경건과 절제, 금식과 회개, 자선과 구제를 통해 우리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고 더욱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본받아 따라가는 신앙을 배우는 때입니다.
우리 주님의 고난으로 우리는 모든 것에서 자유 함을 얻는 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슥13:1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했습니다. 습3:16-17에도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것은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고난을 대신 져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믿음과 아울러 성령으로 이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먼저는 이 은혜를 누림이 곧 하나님께 보답해 드리는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려는 마음가짐이 영적으로 더 성숙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의 사랑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는 그 수준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도 다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서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누릴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어떤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할까요?
1. 희롱 당하신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당하신 후 얼마나 희롱과 모욕을 당했습니까? 당시 실세인 제사장 안나스와 그 해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온갖 곤욕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천한 하속들이 예수님의 뺨을 치고, 눈을 가리우고 때리며 내가 누구냐고 선지자 노릇을 하라면서 욕했습니다.
헤롯에게 갔을 때도 예수님에게 기적을 시험해 보려 하면서 업신여기기 위해서 왕처럼 빛난 옷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빌라도의 판결이 내려진 후 로마 군병들은 왕의 옷과 비슷한 자색옷을 입힌 것도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왕관 대신 가시관을 씌운 것도 그리고 왕의 지팡이처럼 갈대를 쥐게 한 것도 그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린 것도 다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희롱 당하심을 기억하여 희롱을 당해도 노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주의 일하다가 희롱 당해도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다 당하는 모든 거슬리는 악한 말들은 하늘의 상이 큰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진다면 우리 마음에 무슨 갈등이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혹시 나의 범죄로 당하는 고통일지라도 내가 잘못하여 저 사람이 악역을 하는구나 하면서 도리어 그를 축복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십자가의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합니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이 우리들이 범죄한 것을 대신 받으신 대속의 고난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머리의 죄 때문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우리의 손으로 지은 죄 때문에 양 손에 못 박히시고, 우리의 발로 지은 죄 때문에 두 발에 못을 박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은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까지, 그리고 하나님께 범한 죄 사람에게 범한 죄까지, 그리고 과거에 지은 죄 현재에 지은 죄 미래의 죄, 그리고 큰 죄에서 잊어버린 죄까지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두 가지도 아니고 한 사람 두 사람도 아니고 인류의 죄를 다 지셨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조그만 숨 돌릴 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은 우리가 받는 고난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의 고난은 주님이 도와주심이 있지만 주님의 고난은 그 중압감이 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혹시 죄 없이 고난당해도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해서 참아야 합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백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어떤 사람을 16년간 복역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16년이 지난 후 유전자 검사를 받아 진범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그는 석방 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오판한 판사와 배심원들을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난당해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잊어야합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잊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4:12-14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는 심히 큽니다.
3. 채찍에 맞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합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사형수들에게 사형 집행을 하기 전에 채찍으로 때려 고통을 가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전에 이 채찍을 맞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 사용한 채찍은 여러 가죽 줄에 날카롭고 예리한 쇠붙이나 단단한 뼈를 쪼개서 붙여 이 채찍으로 사람을 치면 몸에 감겨 당기면 살점이 찢어지거나 정맥과 동맥이 끊어지는 등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채찍을 다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런 고통을 당하셨을까요? 이사야는 우리의 질고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와 육체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받아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먼저는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늘 우리의 두루마기를 씻어 세마포 같이 희게 될 때 생명나무의 소성케 하시는 은총으로 상처는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순종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내 이웃을 위한 고통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내 이웃의 상처를 우리가 대신 경험하게 되는데 그 때 이웃이 치료되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먼저 우리는 이 고통을 기도로 대신 지고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 때 우리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질고를 아는 자이신데 병들어 질고가 아니라 우리 대신 체휼하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면서 주님은 그 고통을 몸소 다 경험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유 사역자라면 다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역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분이 고통이 내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어느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그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어느 다리 아픈 성도가 왔기에 기도해 주었는데 다리 아픈 성도는 낫고 그 대신 자기 다리가 아파서 걷질 못했다고요. 저도 그런 경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풀어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요 하늘의 상이 됩니다. 혹시 아버지께서 그의 육체를 치료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그의 영혼이 치료 받고 천국에 평안히 간다면 귀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합니다.
이 남은 고난은 몸된 교회를 위한 수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십시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개인의 자유와 편안을 위해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직분은 다를 수 있으나 교회를 위하는 마음은 한결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을 협력하십시다. 주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빌4:18-19에 바울은 자기를 도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8-19)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대속의 십자가는 질 수 없으나 그 사랑을 마음에 간직할 수는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희롱을 당할 때나 고난을 당할 때나 병고를 당할 때나 주의 일에나 어떤 면으로든 주님의 고난을 감사하면서 그 고난에 동참하여 그 고난을 우리의 몸에 채우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