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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수유마을 봄풍경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 끝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섬진강 한편에서 노란 산수유도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산수유꽃은 멀리서 보면 개나리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꽃잎의 길이가 2mm 정도로 매우 작다. 때문에 낱낱의 꽃송이는 화려한 느낌이 들지 않지만 수천 그루가 한꺼번에 노란 꽃무리를 지으면 화사하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키가 7m가 넘도록 꼿꼿하게 자라기 때문에 줄기가 살포시 휘어지며 피어나는 개나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당당함을 지녔다.
산수유로 가장 유명한 곳은 구례군 산동면이다. '산동'은 1000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동면의 계천리, 원촌리, 위안리 등지에 산수유 고목이 숲처럼 우거져 해마다 봄이 되면 마을 곳곳이 샛노랗게 변한다. 지리산의 듬직한 산줄기가 뻗어내려 섬진강에 슬쩍 발을 담근 구례는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아 유명하다.
산동면에서도 만복대(1433m) 기슭에 자리한 위안리 상위마을은 마을 전체에 3만여 그루의 산수유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어 대표적인 산수유마을로 꼽힌다. 마을 위편에 자리한 정자에 올라 발밑을 내려다보면 졸졸 흐르는 냇가, 밭고랑,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돌담 사이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을 비집고 나온 산수유가 마을을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샛노란 산수유에 폭 파묻혀 있다 보면 마을 안에 있는 사람조차 노란 꽃이 된 듯하다.
산수유 꽃구경은 대개 상위마을만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곳의 묘미는 굽이굽이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여기저기 산수유로 도배된 아랫녘 마을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찬찬히 구경하는 것이다. 상위마을에서 하위마을을 거쳐 반곡마을, 대평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2km 남짓, 꽃과 어우러진 돌담길은 누구에게나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할 만큼 서정적인 멋을 자아낸다. 소박한 시골집 마당까지 파고든 산수유 꽃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이끼 낀 돌담 너머 허름한 빈집에도 노란 산수유가 가지를 길게 드리워 쓸쓸함을 밀어낸다. 노란 산수유로 인해 주인 없는 빈집 풍경이 오히려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현천마을 저수지를 끼고 노란 자태를 뽐내는 산수유, 고운 옷을 입은 마을이 더없이 아름답다.
한가롭게 거닐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냇가 바위에 걸터앉아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노란 꽃잎이 동동 떠다니는 개울물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특히 상위마을 아래편, 드라마 〈봄의 왈츠〉 무대로도 등장한 반곡마을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으로 수십 명이 앉아도 남을 만큼 넓은 너럭바위가 있어 물가에서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고로쇠 약수로도 유명한 산수유마을 입구에는 게르마늄 온천으로 이름난 '지리산 온천랜드'가 있어 꽃 여행과 함께 온천욕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반면 좀더 호젓하게 꽃 풍경을 음미하고 싶다면 상위마을에서 19번 국도 건너편 원촌리에 자리한 현천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산수유 철마다 북적대는 상위마을과는 달리 현천마을은 언제나 고즈넉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옹기종기 어우러진 초가집과 기와집은 물론 한적한 돌담길과 마을 앞 저수지를 노랗게 휘감은 모습이 아름다운 현천마을은 산수유축제 포스터의 대표 얼굴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심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