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은 한국 정치사상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물론 아직 드러나지 않고 풀리지 않는 대단히 많은 미스터리가 있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것만으로도 최악의 해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배반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배반이 무엇입니까. 배반의 사전적 의미는 믿음을 지켜야 할 대상을 등지고 저버림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지켜야 할 대상을 등지고 저버린 세력은 누구이고 어떤 것인지를 따져 보야야 할 것입니다.
배반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입니다. 1789년 7월 14일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부터 배반은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우선은 바로 정치 핵심세력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제 1세력인 성직자, 제 2세력인 귀족 그리고 제 3세력인 시민층입니다. 물론 모든 세력의 정점에는 왕이 존재합니다. 당시 왕은 루이 16세입니다. 그의 부인은 마리 앙뚜아네트이기도 합니다. 루이16세의 배반은 거액이 소비되는 미국 독립전쟁에 개입을 한 것이고 재정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나라의 부를 대부분 장악하는 1,2세력을 제외하고 3세력에게 거액의 세금을 강요한 것입니다. 이에대한 거센 반발 그리고 그런 혁명을 제어하기 위해 제 3국의 도움을 요청한 것도 국민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자 지방으로 긴급하게 도피한 것도 국민에 대한 배반에 해당합니다. 그런 행위로 인해 혁명주체세력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입니다. 혁명정부의 배반도 만만치 않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그야말로 힘들게 쟁취한 혁명의 성과를 성급한 독단정치로 망가뜨린 것입니다. 급진주의와 온건주의가 대립하고 그 가운데 서로 상대를 암살하는 행위로 인해 혁명의 의미와 귀한 가치를 훼손한 것이 바로 배반입니다. 그 이후 왕정파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혼란한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용인하고 그로 하여금 새로운 독재시스템인 제정을 불러들인 것도 바로 배반속에 존재하는 일입니다. 백년 이상이라는 지난한 혁명의 희생과 피곤함속에 결국 지금같은 프랑스식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혁명은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말을 낳게 하고 있습니다. 모두 배반의 역사적 흐름속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통령은 국민을 배반했습니다. 국민들이 잠시 맡겨둔 권력을 자신의 이해타산에 의해 마구 엉뚱하게 행사했습니다. 국민의 대표를 체포구금하려 했고 비판하는 세력을 처단하려 했고 남북이 대치중이라는 것을 악용해 종북세력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령을 발령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둘러싼 각종 혐의와 잡음을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국민들이 제공한 권력을 악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야당이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고 했지만 그런 상황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바로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국민들에 대한 대단한 배신입니다. 헌법학자들의 대부분이 이번 행위는 내란에 해당되고 탄핵대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계엄령이 내려진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주변에 벌어진 행위도 당연히 배반의 상황입니다. 국민들이 비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인이 특정한 세력의 지휘에 따라 국회에 난입한 것은 그야말로 국민들에 대한 있을 수 없는 배반행위입니다. 요즘처럼 정보와 통신이 활발한 세상에서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국회를 장악하라는 말에 녭 충성!!!하는 조직은 배반의 기수들입니다. 지금이 1950년 한국전쟁때도 아니고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유고 상황도 아닙니다. 뭔가 석연치 않으면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국민의 세금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라고 만들어진 조직의 일원들이 해야할 당연한 책무입니다. 만일 그날 발포명령이 있었고 그런 것이 현실화되었다면 지금 한국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여당의 대표를 포함한 12명의 행보는 지나고 보니 한낱 자신들에 내려진 체포령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읽힙니다. 일단 계엄령을 막고 보자 그러니 야당과 그야말로 일시적 협력관계를 구축한 것 아니였나라고 보는 시각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 상당수는 그래도 여당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일말의 양심이 있구나 판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그런 판단이 너무도 잘 못됐다는 것을 알 게되는데 걸린 시간은 단 며칠이 안됩니다. 매일 달라지는 여당 대표의 입장표명은 야당을 헷갈리게 했고 국민들에게 거짓 판단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일단 계엄령을 피하고 그런 계엄령을 역이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장할 그런 결정적인 계기로 삼자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당시 며칠후 있을 예정인 대통령 탄핵에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는 그런 행위는 그야말로 배반중의 배반적인 행위입니다.
물론 지난 박근혜 탄핵때 여당속 찬성세력들이 지금도 배반자라고 낙인이 찍힌 현실을 직시하고 영악하게 대처했다고 스스로 자평하겠지만 국민들 상당수의 판단을 흐리게 한 행위는 배반이 정확하게 맞습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 7일 오후 5시 국회에서 열린 김건희 특검과 대통령 탄핵 표결에 일단 참석은 한 뒤 김건희 특검을 무산시키고 그 즉시 대통령 탄핵 투표때는 일괄 퇴장하는 수법은 눈가리고 아웅을 넘어선 그야말로 국회안 배반 드라마의 주역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입니다. 당시 국회앞에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국민들 앞에 가장 멋진 포즈로 가장 멋진 시나리오에 따라 충실하게 역할을 행사한 배반자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구 주민들이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이 행한 행위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73%를 넘고 전국 어느지역이나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훨씬 강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당 국회의원들의 행위는 그야말로 지역주민 그리고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에 대한 배반행위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배반행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원인제공자 문제입니다. 현 대통령은 전 정권이 뽑아서 중앙지검장 그리고 검찰총장까지 시켜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시 윤 검사는 스스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자가 천거했고 그것을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현 조국당 대표가 검증을 통해 인정했고 당시 대통령인 문재인씨가 임명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인사검증을 거쳤는지 의문입니다. 조국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워낙 강하게 천거가 들어와 깐깐한 검증절차가 일부 생략됐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검찰총장시절 대통령에 대해 저항하는 움직임에 대해 파면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대통령 문재인씨는 임기가 정해진 인물을 중간에 그만두게 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자신이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검찰개혁이 송두리채 무너지는데 인사 가치를 운운했다는 것이 너무도 배반스런 행위가 아닌가 보입니다. 국민들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주고 자신이 추구하는 검찰개혁이 수포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자신만 욕을 먹지 않겠다고 뒷걸음 친 것이 지금 얼마나 아픈 상처로 남는가는 당시 국민들에 대한 대단한 배신이자 국가적 위해 사항이었던 것입니다.
역사 그리고 특히 정치사는 배반의 기록이라고 어느 학자는 갈파했습니다. 특히 현대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정치사는 그야말로 배반의 흐름입니다. 정치인 서로서로 배반하고 치고 받아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하면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주로 국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배신의 정치가 한국사에 끼치는 폐악상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배반의 정치에 항거하고 더 이상 배반의 정치로 나라가 절단나면 안되겠다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행동 아닙니까. 영하의 추운 날속에 여의도로 여의도로 몰려드는 국민들의 발길은 더 이상 이 나라 정치가 배반의 정치에서 머물러서는 안되겠다는 안타까움의 외침이요 국민적 요구를 가득 담은 주장아니겠습니까. 추운 겨울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여의도의 그 칼바람을 뒤로하고 힘든 외침 그리고 안타까움 부르짓음이 탄핵투표 불성립이라는 표현으로 그냥 결실없는 상황으로 끝난 것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또 다시 배반의 정치 드라마가 연출된다면 국민들은 언제라도 분연히 일어서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잠을 자던 젊은 지성인들인 대학생 그리고 MZ세대들의 뇌를 강타해서 이제는 나라를 위해 분명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약하게 보이고 자기 중심적인 세력으로 인식됐던 그 젊은 세력이 몇십년만에 기지개를 켜고 그들의 소리를 낸 것은 비록 대단히 슬픈 계엄령 그리고 탄핵불발의 현실에서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갖게 하는 일말의 계기가 된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배반의 정치드라마는 순간 연기자들의 현란한 연기에 시청자들이 혼동할 수도 있지만 그런 미몽적 현실은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고 한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배반의 드라마는 촬영하지 말고 정말 이 나라 이 국민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그런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것만이 배반의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 것은 정말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2024년 12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