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4.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16.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17.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18.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
19.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23.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26.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27.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본문 주해)
14절 : 농사지을 때, 구름이 일지만 기대하는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면 크게 실망한다.그처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같다는 것이다. 말로는 늘 복을 말하고 평안을 말하지만 참된 복과 평안이 아닌 것을 전하는 것과 같다.
진실함이 내포되어 있지 않은 악인의 달콤한 계략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만 끼친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유1:12)
15절 : “분노를 오래 참으면 지배자도 설득되고, 부드러운 혀는 뼈도 녹일 수 있다.”(새번역)
말에 대한 것으로서, 오래 참고 부드럽게 말하면 강한 것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다.
16~17절 : “꿀을 발견하더라도 적당히 먹어라. 과식하면 토할지도 모른다.
이웃집이라 하여 너무 자주 드나들지 말아라. 그가 싫증이 나서 너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새번역)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이러하다. 너무 친하다고 함부로 대하면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자주 나아가야 할 곳이 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히4:16).
18절 : “거짓말로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사람은, 망치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다.”(새번역)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가장 큰 거짓 증거는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증거 하는 것이다.
19절 : “환난을 당할 때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을 믿는 것은, 마치 썩은 이와 뼈가 부러진 다리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새번역)
죄인 된 모든 인생은 썩은 이와 부러진 다리와 같다. 썩은 이와 부러진 다리는 환난 날에 도움은커녕 환난을 더하게 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이 세상은 본격적인 환난의 시대 즉 종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이 환난의 날에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0절 : “마음이 상한 사람 앞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것과 같고, 상처에 초를 붓는 것과 같다.”(새번역)
합당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아픔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말씀이다.(11절)생로병사 모든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는 것이 참된 위로이지만 그것은 ‘경우에 합당하지 않는 말씀’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으로 환난과 마음을 상해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것과 같고 상처에 식초를 붓는 것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는 복음이 참으로 경우에 합당한 말로 들릴 것이다.
21~22절 :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의 낯을 뜨겁게 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너에게 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새번역)
원수에게 먹이고 마시게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전할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그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복음을 선포될 때 그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원수가 목마를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거절하면 그 머리 위에 타는 숯불을 얹어 놓는 것이다. 타는 숯불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한다.
그리고 원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은 것이다.
23절 : “북풍이 비를 일으키듯, 헐뜯는 혀는 얼굴에 분노를 일으킨다.”(새번역)
참소(讒訴)란 남을 헐뜯어 없는 죄를 있는 것처럼 고해바치는 것이다.
인간들이 모인 곳은 얼마나 참소가 많은지 모른다. 사실도 아닌 것을 자신의 선입견으로 추측하여 없는 말도 지어내고 모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소는 사탄의 주 특기이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간에 참소하는 자로 인하여 지옥을 맛보게 된다.
24절 :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넓은 집에서 함께 사는 것보다, 차라리 다락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새번역)
25절 : “먼 데서 오는 기쁜 소식은 목이 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냉수와 같다.”(새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야말로 가장 기쁜 소식이다.
이 복음의 소식은 먼 곳에서 왔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소식이 전하여지기 시작하여 약 2천 년이 걸려서 이곳까지 왔으니 참으로 복음은 멀리서 온 소식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는 그 복음은 땅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영원에서 온 것이다. 영원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 그 복음이 십자가로 밝히 드러났고 그 소식이 지금 우리에게 생명수로 전해지는 것이다.
26절 : “의인이 악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흐려진 샘물과 같고, 오염된 우물물과 같다.”(새번역)
세상에서는 한때 의인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악인의 권세로 핍박하기에 굴복하게 되면 그 의인으로 여겨진 사람이 전한 내용들이 흐려지는 것이다. 즉 우물이 흐려지고 샘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의인으로 모든 악과 원수들을 십자가로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는 결코 흐려지거나 더럽혀지지 않고 영원토록 흘러넘치는 생명수가 된다.
27절 : “꿀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듯이, 영예를 지나치게 구하는 것은 좋지 않다.”(새번역)
꿀이 좋다고 많이 먹으면 토하게 된다. 이처럼 자기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된 것이다. 자기 영예를 구하면서 산다는 것은 자기 자존심과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자기 영예의 헛됨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으로 먼데서 오는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8절 : “자기의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이 무너져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새번역)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성벽이 없는 성에 아무나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온갖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지킬 수가 없기에 우리는 모든 일에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한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한다.(빌4:6~7)
주님이 우리의 성벽이 되어 주시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들어올 수 없다.
(나의 묵상)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25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기별은 복음의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소식, 죽은 자를 살리는 소식이니 이보다 더 좋은 기별이 어디 있겠는가?
내게도 이 기별이 왔다.
그 기별은 영원 전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길고 긴 시간을 달려 내게까지 왔다.
그리고 변죽만을 울리던 3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이제 복판을 울리는 그 명확한 복음의 소리를 듣고 기뻐하는 자가 된 것이다.
성령께서, 창세전부터 내게 영생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게 하셨으니, 곧 눈먼 자가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 약속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주셨으니, 곧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을 믿는 내게 새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것이 믿어지는 믿음도 함께 주셨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게 그 은혜를 받을 만한 무슨 자격이나,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알아가게 하시니 바로 영생을 살고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주님을 알게 되면 될수록 나 중심의 사고가 주님 중심으로 변하게 된다.
그것이 장차 가게 될 천국 때문에 억지로 꾹 참는 자가 아니라, 힘들고 고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것을 능히 이기고도 남는 기쁨과 평안을 주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화려하고 좋은 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외면하고 살았던 자가 자기 부인의 그 십자가를 조용히 붙들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이 십자가야말로 내 인생의 보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좋은 기별을 나도 전하는 자가 된다.
그 이유는 이 사명을 주시기 위해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던 사탄의 세상에서 건져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심으로 주님의 은혜를 충만케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전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믿는 자답지 못한 부분이 많기에 나는 여전히 어리석고 부실한 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더 나아져야 하는데 왜 여전한가? 그것은 살아갈수록 내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이것을 사탄은 날이면 날마다 참소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리석고 부실하기에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고, 날마다 은혜의 보좌로 달려가게 되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깊다(롬5:20)는 말씀을 감사히 받고 또 받는다.
“주 예수여 완전한 주의 사랑 나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하여 날 기쁘게 하옵소서”(찬송가 368장 4절)
어제 금요기도회 때 벅찬 가슴으로 부른 찬송가이다.
내게 좋은 기별을 주셔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또 그 기별을 전하는 자 되게 하시니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는 자가 된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제게 복음의 소식을 전해주시며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심으로
자기부인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좋은 기별을 전하는 자, 복음과 생명의 삶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시니
저는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참소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언제나 평강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니 오직 주님만을 찬송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여 주심을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