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형을 처음 만난 시기는 1973년 방학을 앞둔 초여름 토요일 남산 독일문화원 강당에서 였다. 그로부터 53년간 거의 한달에 한번 내지 두번의 만남이 지속되었다. 어제도 같이 덕수궁에서 같이 가서 이대원 전시회를 보고 덕수궁 골목을 지나 나오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서 유영국 회고전을 보고 머리를 맞대며 콩국수를 먹었고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동행한 여자후배가 대접해 즐거운 시간을 갖다가 헤여졌다.
남산독일문화원에 혼자 찾아간 것은 내일생에 큰 사건으로 자리 매김했는데 우연이 명륜동 캠퍼스 문과대 건물앞 벤치에 놓여진 연극동아리 신입회원 모집 전단지를 보고 무조건 그걸 들고 찾아간게 50년동안 수백명을 만나고 헤여지는 연결고리가 될줄을 상상도 못했다. 올해 8순을 맞은 형은 당시 남산밑 후암동에 있던 육군경리단 군인이였는데 저녁공연 연습때면 부대서 잠시 외츨증을 끊어 우리들을 보러왔다.
그후 형은 제대하여 우리극단의 연출을 여러편을 맡았고 몇몇대학에서 의뢰해와 연극연출을 맡으며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취직을 하여 소공동 조선호텔에 사무실이 있는 독일항공과 싱가폴항공서 화물담당을 십수년을 했다. 김선배는 무진장 열심히 일을 해서 당시 별명이 소공동 빗자루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도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후에는 1인극 연습을 해서 한국초연의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실험극장에서 장기공연을 했다 그당시 형의 나이 30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그후 추송웅이란 배우가 각색한 <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더 유명해져 추송웅은 엄청나게 돈을 벌었지만 과로가 누적되어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딸인 추상미 배우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방송을 오래 탔다.
형은 항공화물 대리점 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최선을 다해 일했고 주변 지인들이 그업계에 자녀들 취직을 시켜달라고 하면 왠만하면 취업을 시켜 주었고 그인원이 무려 28명에 이르렀다. 우리집 큰누이 아들. 작은 누이딸도 그업계서 근무를 했고 작은 누이딸은 3년근무하다 미국으로 시집을 갔는데 큰누이 아들은 지금도 항공화물업계 간부로 일하고 있다.
형의 부친은 일제시대인 1936년 평양고보 3학년때 전일본.전조선대표로 베를린 동계올림픽에 5천m와 만m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으로 입상을 하였다.. 모든게 어려운 시절에 대단한 실력이였고 은퇴후 대한빙상연맹 회장을 3연임할 정도로 리더십도 대단하셨다 .
올가을 올림픽공원안에 국립스포츠박물관이 문을 연다. 올림픽 출전선수들의 장비가 상설전시되는데 형의 부친이 쓰던 장비도 전시될 예정이다.
형의 팔순을 맞이하여 내년 봄에는 아직 팔순이 조금 모자라는 다른 형들 즉 48년.49년 써클선배들까지 총 6명의 팔순잔치를 같이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내가 행사위원장을 맡으라고 전부 박수를 치는 바람에 근사한 잔치를 구상하고 있다.
남자나이가 팔순이 오기까지는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었고 4.19 5.16. 5.18등 격변의 시대를 몸소 체험한 분들이다. 대다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거의 10년이상을 장수하니 남성 80세는 큰 축복이 아닐수 없다. 형들이 세상사는동안 아프지말고 건강하길 기원해본다.
첫댓글 명륜동에 문과대 캠퍼스가 있는 학교라면..
1398년 설립..정문 들어서면 큰 은행나무 고목이 있는 학교 같은데요..ㅋ
아무튼..글 잘 보고 갑니다..
맞습니다. 성균관대입니다. 봄가을에 공자제사를지내는 명륜당있지요.
팔십까지 후배들과 함께 왕성하게 활동하고 베풀었으니
축복의 나이임에 틀림없네요.
그 뒤를 따라가는 언덕저편님이 축하의 모임을 주선한다니 이어서 축복의 나이도 맞겠지요.
축하합니다.
20년전 선배들 환갑잔치도 제가 주동이 되어 포천 여자동기가 하는 식당서 했답니다. 그분중 두분이 세상을 떠났지요.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나 팔순을 맞은 형님과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다가오는 팔순잔치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우정을 더욱 빛내는 아름다운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여섯 분 모두 늘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좋은 벗으로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렇게 팔팔하던 선배도 어제 전시회구경다니며 허리가 아프다며 일찍 가자고해서 반만보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팔순까지 건강하게 사는건 큰 축복입니다.
언덕저편님 지나온 세월 잘보았읍니다 성균관대로 말씀하오니~
성대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보고 공부도좀했죠 집이 성북동이라
혜화동, 서울문리대, 창경원스케트등등 때뭇지않는 그시절 그립습니다 소공동 반도호텔 다그리운옛추억그리면서 삽니다~~~
서울시내 최고급 호텔이였던 반도호텔안에 반도화랑이 있었는데 요새 덕수궁서 전시회하는 이대원화백이 반도화랑 대표였지요. 그의 밑에서 일하던 여직원 박명자씨. 지금은 최고의 화랑인 현대화랑주인으로 거부가 되었답니다.
언덕저편님의 끈끈한 선후배 관계,
참 부럽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53년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인연,
그게 예사 인연입니까.
팔순잔치를 후배인 언덕저편님께서
주관해 하신다니
그분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왕성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선배님은 퇴직후 형편이 안좋은데도 연극공연때 적은 돈받고 도와준 분들이 늘 짐이되어 다섯분을 일일이 찾아가 30만원과 판화소품을 선물했습니다. 그분중 세분이 그후 별세했지요.
제 큰형이 광복되던 해에 태어났으니 그 세대가 되겠군요. 기적의 부흥 시대를 앞서 개척해나간 선배님들, 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남자 팔순은 박수 받아 마땅한 축복의 나이 맞습니다.
남자들 팔순이 될떄까지 고생많이한 세대입니다. 부모님 공양하고 자식들 카우면서 회사를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머리싸매면서 불철주야 일한 세대입니다.
연극을 하셨군요.
멋진 선배님과의 추억을 갖고계시네요.
'빨간 피터의 고백'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추송웅이 공연하던 장면이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누렇게 바랜 당시의 수첩을 뒤지니 77.8.25.목요일 남편과 함께 봤네요
선배님 무더위에 잘지내시죠? 아니 무려 50년전 연극을 본 메모를 갖고 계시는군요. 저희는 103회까지 공연을 하고 문을 닫았어요. 써클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 일곱쌍 나왔지요. 그들중 40명은 꾸준히 만나고 있답니다. 저도 4학년때 보름정도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요.
건강하게 팔순을 맞이하셨다면 축복이지요.
선배들을 위해 팔순잔치도 주관하시고요.
53년간 계속 만남을 지속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성균관대는 학교갈 때 매일 지나가던 곳이네요.
오랫동안 그 동네에 살았지요~~
건강하게 팔순을 맞이하면 최상인데 두분은 몸이 아픕니다. 세월이 무상하지요.
잘 사신 분이네요.
언덕저편님 주변에는
좋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
언덕님께서도 덕이 많은
분이시지요.
모두
행복지수 플러스입니다.
잘 읽어습니다.
그선배는 딸셋을 내리낳고 여덟살터울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형수나이가 38세때니 아들을 낳기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손주들이 딸만 있다고 탄식하는 아버지께 바친다고 약속하고 영등포시장서 지은 보약한채 먹고 낳은 아들. 그아들이 장가간지 5년만에 아들딸 쌍둥이를 낳아 손주가 8명이 되어 선배는 아주 해피하답니다.